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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52화 (452/488)

외전 43. 가시나무 정글

“하.”

남기주는 눈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친놈, 미친놈.”

입에서는 한탄 섞인 욕이 계속 흘러나왔다.

전부 유온신이라는 자식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달리 손을 쓸 방도가 없는걸.

처음에는 부모 잘 만난 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해 보니 만만치 않은 파트너다.

이제는 물주이자,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 줄 유일한 끈이기도 했고.

그러니 원하는 걸 해 줄 수밖에.

‘그래도.’

만약, 혹시나,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남기주 자신의 목숨은 없는 거라고 봐도 좋았다.

그냥 곱게 죽여 주기만 하면 다행일 정도다.

온신의 요구이자 부탁은, 다섯을 한 팀으로 하긴 하지만 싸우는 건 둘만 하겠단다.

“레이더는? 의료팀은?”

“필요 없어요.”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야! 이계가 만만해? 컨퀘스트 미션이 만만하냐? 괜히 프론티어 개척팀이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소거 쪽이라고 해도…….”

“해 줘요. 해 줘요. 해 줘요. 아아아아. 안 들려.”

이런 미친 새끼.

세최특은 제 아들에게 불멸과 변신의 피를 전해 주진 못했으나, 그가 가진 또 다른 혈통은 절절하게 이어 주었으니.

온신도 세최특만큼이나 정상인이 아니었다.

“에효.”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만약 잘못되면 끝이다. 그 외 준비해 줄 건 다 해 줬다.

혹시나 몰라 이삭을 포함해 그림자 경호팀이라도 붙이고 싶었는데.

협회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노리고 있는 마당인지라, 수작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 남기주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기주는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몹시도 경건하게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제발, 제발, 뒈지지 않게 해 주소서.’

뒈지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감당할 수 있었다.

* * *

참으로 가혹한 시간이었다.

조미려는 자신의 긴 흑단 같은 머리칼을 젓가락에 칭칭 감아서 묶으며 생각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정말 몹시도 힘든 시간이었다고.

“고생했습니다.”

“너희도.”

여자와 남자 둘.

마이스터라 불리는 추방자 집단의 일원이었다.

일전, 강철 평야에 있던 연구 기지 하나가 대파된 뒤 그들은 지구에 발을 댔다.

추방자는 개인 식별이 되지 않는다. 한국으로 치면 주민 등록 번호가 없는 사람이다. 거기에 어떤 기록도 없는 그야말로 유령이기에 걸리면 곧바로 죽음이었다.

테러리스트 그 이상으로 배척받는 이들이니.

물론 일반 사람들은 추방자의 존재조차 잘 모르지만.

아는 놈들은 추방자 전용 헌터라는 직종까지 만들어서 그들을 쫓았다.

그들, 사냥꾼은 정말 끈질긴 놈들이었다.

실제 지구에 들어가고 나서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헌터가 냄새를 맡고 쫓아왔었다.

“빌어처먹을 놈들.”

그 덕분에 미려를 지원하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손 하나를 잃었다.

어지간한 공적을 쌓아야, 치료를 받을 수 있으리라.

“고작 둘이라고 했지?”

여자가 물었다.

이번 일은 운이 좋았다.

셋은 노 페이스 팀이란 놈들을 의심했고 쫓았다.

거듭 얘기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지구에서 쫓았으나, 헌터의 추적을 받으며 숨겨진 놈들의 정체를 밝히는 건 너무 힘겨웠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이계에서 쫓자.’

일단 지구만 벗어나면 도망갈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그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정보를 전해 들었다.

이게 운이 좋다고 말한 이유였다.

가시나무 정글에 노 페이스 팀이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실제는 다섯이나, 나머지 셋은 자원 채집 따위만 하기 위해 모은 인원이라고.

그러니 전투 가용 인원은 고작 둘이라는 얘기였다.

“간신히 알아낸 일입니다. 얼마 주실 거요?”

지구에 있는 뒷골목 정보 암거래상에게 구매한 정보다.

덕분에 셋은 덮어쓰고 다니던 크리쳐 가죽 보호구를 넘겼다.

겉보기에는 형편없지만, 마이스터의 기술이 들어간 외투다. 제대로 팔면 최소 수천은 나올 터였다.

남는 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남는 장사로 만들 참이다.

그놈의 가면 쓰는 개자식을 잡아가서 샅샅이 정보를 캘 테니까.

하물며 지구에서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계의 땅에 선 순간, 마음부터 편해지지 않던가.

“가자.”

여자가 둘을 이끌었다.

가시나무 정글은 추방자 무리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놈들이 모인 곳이다.

식인(食人), 식괴(食怪)를 서슴지 않는 ‘이터’의 땅.

여자는 표식을 따라 움직였다.

멋모르고 함께 온 지구의 특수종 둘의 시신을 든 채로.

이게 이터를 위한 선물일 것이다.

“특식을 가져오셨군.”

표식을 따라가자, 곧 가시나무 정글 사이,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무슨 짓을 했는지, 탄탄하고 반반한 땅이다.

그 중앙, 셋을 맞이한 남자가 보였다.

주로 크리쳐 가죽을 입는 마이스터와 달리 지구의 정장 차림이다.

몸에 딱 달라붙는 슈트가 몹시도 잘 어울렸다.

남자는 생긋 웃었다.

두 눈이 시신 두 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스터의 흑색 비단께서는 무슨 일로?”

흑색 비단은 여자의 별명이었다.

“이번에 들어온 놈들을 습격했으면 해서.”

이터는 지구의 헌터들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다. 조금만 흔적을 남겨도 목숨이 위험했다.

“쉽지 않은 일을 요구하시는군요.”

남자는 생긋 웃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는데, 전부 삐죽빼죽했다.

이터의 특징이다.

치아를 뾰족하게 갈고 유지하는 것.

이계에 넘어온 특수종을 공격한다는 건, 가시나무 정글에 흔적이 남을 터였다.

“하지만 특식도 가져오셨고 마이스터를 이끄는 분의 얼굴도 있고 하니, 협조하겠습니다.”

과연 그런 이유일까?

흑색 비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의 눈은 시신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작 습격 이후 생길 다른 콩고물에 관심이 가득한 것 같았다.

사람은 곧 고기다.

그들에게 식인은 일상이니.

물론 흑색 비단은 상대를 비난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다만, 다른 데 정신 팔려 일이 잘못되면 곤란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두 놈은 우리 몫입니다.”

흑색 비단은 단호함을 담아 말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정보였다.

“그러시지요.”

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나무 정글은 여러모로 습격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터 일원의 조력이 큰 힘이 될 터였다.

* * *

난 사관 학교의 수석, 으뜸을 원한다.

그것도 그냥 수석이 아닌, 조기 졸업을 동반하며 이제껏 어떤 사람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자 하고.

그래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미랑을 데려가는 것에 잡음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고 어머니고 장인어른이고 말려도 말릴 수가 없을 테니.

난 이런 방식을 아버지를 보며 배웠다.

세최특, 세계 최강의 특수종.

과연 아버지가 하려는 일을 막으려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럼 처음부터 주변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인정했던가.

그건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고 들었다.

지금처럼 된 건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그리해야 할 것이다.

때마침 초능이 깨어나, 내 뒤를 받쳐 주니 일이 몇 배는 쉬워졌다.

“가자.”

이계 가시나무 정글.

건조한 정글이라 불리기도 하는 독특한 곳이었다.

흙 위로 솟은 뿌리줄기가 사방에 즐비한데, 뿌리 위에는 빽빽한 가시가 가득하다.

사방을 덮은 나뭇잎, 줄기, 몸통 어디든 전부 가시다.

마치 삐죽한 가시철조망을 힘껏 엉키게 만들어 만든 숲 같다.

가시 정글의 가시는 불에 잘 타지도 않아 불로 길을 낼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톱 따위로 베어 내는 게 기본인데.

톱이 아니라 정글도로도 힘만 충분하다면 할 수 있었다.

가령 괴력의 변신족이 나선다면 톱 따위야 없어도 그만이란 얘기다.

“다들 우리를 쳐다보네요.”

장옥이 걱정 따위는 조금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

얘는 근데 심하게 낙천적이긴 하네.

‘전투원이 너랑 나 둘 뿐인데 갈래?’ 하고 물었더니 대뜸 같이 가겠다고 한 것부터 이상하긴 했지.

하지만 또 오겠다고 하는 걸 말리는 것도 우습지 않나.

더욱이 마음을 바꿀까 봐, 이계에 들어오기도 전에는 이유도 묻지 않았었다.

“걱정 같은 건 안 되냐?”

전투원은 둘.오히려 채집팀으로 합류한 셋이 더 불안해 보였다.

얼굴 위를 덮은 가면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통 긴장한 게 아니었다.

채집팀 셋은 기주 아저씨가 구한 사람이다.

사관 학교 생도가 아니었다.

“안 돼요.”

“왜?”

“할 만하니까 하자고 했겠죠.”

뭐지, 이 맹목적인 믿음은.

뿌듯하면서도 이렇게 살아도 되나 걱정이 되는데.

“내가 요새 돈이 좀 필요한데, 보증되냐?”

혹시나 해 툭 던졌더니.

“코드 원이 보증 필요할 일이 있어요? 뭐, 음, 하지만 보증은 절대 서 주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마지막 말은 대단히 진지했다.

그래, 보증은 서 주는 거 아니다.

어벙한 듯하면서도 지킬 건 지킨다. 장옥이도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할 놈이다.

“그래. 좋아. 구 씨.”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 믿고 신뢰를 보여 준다는데 뭐.

“진짜 위험한 거 아니죠?”

오히려 뒤에서 채집팀 중 하나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나이가 느껴졌다.

돌아보니, 홀로그램 가면 위로 작은 점만 두 개 찍혀 있었다.

“네. 말씀드렸듯이 위험하면 곧바로 도주하시면 됩니다.”

가시 정글의 크리쳐는 이 땅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뾰족하고 날카롭다.

크리쳐는 대부분 두 종류가 나오는데 전부 그린 등급이었다.

첫 번째는 긴 가시 호랑이.

뾰족하고 긴 척추가 이마 위로 뚫고 나와서 뿔이자 가시가 되는데 그거로 사람을 찔러 죽인다.

두 번째는 니들 볼.

밤송이처럼 생긴 놈들인데, 좀 크다.

성인 머리통만 한 크기인데, 염력을 다룬다. 염력이라고는 해도 제 몸을 띄우고 날리는 재주만 가진 놈들이기도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곳은 그린 등급이 주가 되기에 사실상 위험한 땅은 아니라는 거다.

가끔 파랑 등급이 리더 급으로 나오지만, 파랑이 하나 정도는 처리하는 거 일도 아니다.

하물며 둘 다 기동성이 그리 뛰어나지도 않고.

위이이잉.

이곳에서 길을 트려면 전기톱이 필수다.

사방에서 함께 들어온 팀 서넛도 서로의 가면 구경이 끝났는지, 전기톱에 시동을 건다.

웨에에엥!

돌아가며 회전하는 톱날이 가시나무 줄기를 자르자, 가시 사이로 녹색 수액이 이슬비처럼 튀었다.

“우리도 가자. 구 씨.”

아까도 말했지만, 괴력의 변신족이 있다면 전기톱을 대신할 수 있었다.

거기에 기어 급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툭.

장옥이 손을 등 뒤로 뻗었다. 몸에 엑스자로 가죽 반도로 고정한 도끼집을 찬 채였다.

곧 손도끼 두 자루가 장옥의 손에 들렸다.

당연하게도 일반 손도끼는 아니다.

내 세뱃돈이 들어가는데 굳이 기본 장비만 갖춰 주고 끝낼 필요는 없으니까.

각자 원하는 거 사라고 했다.

장옥은 거기서 보조 장비로 도끼 두 자루를 챙겼다.

웅.

무려 사이오닉 기어였다.

두 가지 타입으로 전환되는 도끼인데.

“헤헷.”

장옥은 그걸 퍽 좋아했다.

첫 번째 타입은 절삭력 상승효과.

근접 타격류 타입의 도끼다.

이후, 장옥의 양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앙!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수액 소나기가 몰아쳤다.

“억.”

옆 팀에서 그걸 보더니 놀란 신음을 흘렸다.

자기들은 전기톱으로 이슬비를 만드는데, 옆에서는 녹색 소나기를 만든다.

본래 가시나무 정글에서는 지형을 정리하는 일이 반이었다.

정작 크리쳐보다 지형의 어려움 때문에 꺼리는 곳이다.

여기저기 가시 뿌리 때문에 싱크홀도 있어 실종자가 종종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시야 확보를 위해 가시나무를 최대한 잘라 내는 거다.

그거로 움직일 공간도 확보하는 거고.

싱크홀도 미리 보고 피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런 극악의 환경치고는 찾는 사람이 꽤 많았다.

왜? 당연히도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형이 어려운 데 반해 크리쳐가 약한 것도 이유 중 하나고.

땅을 살피다 보면 진한 검은 뿌리 식물이 보이는데.이게 산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보약이었다.

특히 양기를 북돋아 준다는 논문이 수백 개가 나온 뿌리 식물이다.

그러니깐 남자한테 참 좋은 거다.

보통 비싼 게 아니란 소리였다.

“심 봤다!”

이 땅에서는 검은 뿌리를 찾으면 저리 외치기도 한다.

주변 지기를 다 흡수하는 건지, 하나가 나오면 반경 몇 미터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심 봤다’를 외치는 게 룰이 됐다.

그러니까 난 여기서 내 개인 능력을 시험할 겸, 기주 아저씨 주머니도 채워 주러 왔다.

“길 시원하게 잘도 여네.”

가시나무를 잘라 내고 시야와 공간을 확보했으니, 우리에게는 전진만 남을 뿐이다.

다른 팀이 전기톱으로 뻘뻘 땀 흘릴 때, 우리는 달리는 속도로 나아갔다.

이게 다 기주 아저씨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그냥 가도 된다니까 무슨 기어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가지 않으면 안 보내 주겠다니.

차라리 즈려밟고 가라고 했으면 잘 밟고 가 줄 텐데.

앞에서 투신자살하겠다고 하니.

어쩌겠나. 기어라도 철저히 전신에 두르고 와야지.

그 덕분이기도 했다. 일이 좀 많이 쉬워질 듯했다.

* * *

“뭐야,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니, 흑삼 하나 캐는 데 무슨 기어로 무장을 하고 오는 거냐!”

온신 일행을 몰래 쫓던 추방자 무리가 진땀을 흘렸다.

목표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가히 미친놈들이었다.

저리 달리면 한두 마리가 아니라 십수 마리의 크리쳐를 마주하게 될 텐데.

겁도 없이 내달렸다.

그 덕분에 추방자 무리도 발에 땀 나게 그들을 쫓아야 했다.

실제로 땀이 찔끔 났다. 그나마 이터 추방자의 안내로 길을 알아서 이 정도였지.

몰랐다면 그대로 놓칠 뻔했다.

“저것들 정상입니까?”

이터 쪽 추방자도 짜증이 나는지 한마디를 보탰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연하게도 온신은 신나게 질주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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