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2. 월광
“다 만들었다.”
한 달, 기어 박은 약속을 지켰다.
특수종 사관 학교, 기어 연구팀 소속.
세계에서 그를 부르는 말은 ‘디자인의 천재’.
매해 열리는 기어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없이 상을 휩쓴 천재 엔지니어의 작품이다.
그때 만나고 나서 나도 뒷조사 좀 했다.
사실 내가 한 건 아니고 유신한테 말하니 줄줄 나왔다.
제 아버지 회사 물려받을 생각은 없으면서 기어 업계가 돌아가는 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자.”
박지훈 엔지니어, 기어 박이 두툼한 천 주머니를 꺼냈다.
어디 명품 가방을 담을 법한 포스였다. 난 조심스레 그걸 받았다.
그리 무겁진 않았다.
“펴 봐.”
말하는 기어 박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펼쳤다. 풀어서 끄집어냈다.
잘 벼린 칼날이었다.
겉을 젤라틴 같은 거로 감싸 뒀는데, 덕분에 칼날의 예리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해라. 날카롭다.”
젤라틴을 벗겨 내는데 기어 박이 말했다. 난 수석 연구원의 의견을 십분 반영해서 허공에 띄우고 염력으로 뜯어냈다.
어지간히 세밀한 수준의 염력 조절이 되지 않으면 보이지 못할 묘기다.
실제로 염력을 쓴다는 놈 중, 염력으로 젓가락질까지 하는 특수종이 몇 놈이나 되겠나.
아닌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다 하려나?
난 나와 대련하고 훈련하는 이들한테는 전부 그 정도 수준을 요구한다.
스타프조차 처음에는 혀를 내둘렀지만, 하다 보니 이제는 다들 익숙했다.
“이게 뭐가 중요한 훈련인지 모르겠다. 이런 짓을 할 바에는 출력을 높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동기 중 하나가 이렇게 반항하긴 했지만.
“쟤는 세밀한 조정이 되는 애, 쟤는 안 되는 애.”
결과로 보여 주면 그만이었다.
둘이 대련 중이었고 겉보기에는 비슷했으나, 양상은 극명했다.
예시로 나나 구스타프가 나서지 않는다.
나에게는 뇌안이 있다. 세밀한 차이가 눈으로 보듯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알 수 있었다.
약간의 디테일, 그게 동급의 특수종 능력 효율을 바꾼다. 그걸 알기에 강요할 수 있었다.
답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짓이다.
그리고 이건 꼭 염동력에만 통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주먹으로 강철을 부술 수 있다면 손가락으로 콩 한 쪽을 부드럽게 가를 수도 있어야지.”
변신족이 힘을 쓸 때도 통용되는 법칙이다.
불멸자만 노났지.
그들에게 감각의 세밀한 조절은 일상이니까.
다만, 난 불멸자에게도 요구하는 바가 있었다.
“키워, 출력.”
불멸자는 별거 없다. 얘들은 그냥 목숨 반 개쯤 천당에 저당 잡히고 구르면 된다. 그럼 절로 실력이 는다.
재생력 덕분에 다칠 일도 적다.
그러니 한계 따위는 집어치우고, 목숨 걸고 구르면 된다는 거고.
“끄어억, 살려 줘!”
그래서 내 개인 수련장에서 터지는 비명의 반은 불멸자의 몫이었다.
그 외 주문 사용자도 몇 있지만.
얘들은 조심스럽다.
몸뚱이가 일반인의 그것과 같지 않나.
그래서 조심스럽게 주 6일 피지컬 트레이닝 위주로 조졌다.
여기에는 변신족 트레이너의 힘이 컸다.
“우리 집안에서는 열여섯 살 때부터 쇠를 든다.”
변신족 러시아 친구의 말이다.
쇠를 드는 법, 자세를 잡는 법이 프로였다.
그가 주문 사용자의 트레이너가 되었다.
그래서 내 수련장에서 터지는 신음의 반을 주문 사용자의 것으로 만들어 줬다.
“끄윽.”
“흐어어업.”
“더 못 해, 못 한다고.”
“아니, 한다. 넌 할 수 있다. 한 개 더.”
러시아 친구의 코드는 그때 이후로 스파르타가 됐다.
“묘기로군.”
기어 박, 엔지니어는 세부적인 내용까진 다 알진 못해도 내가 보인 세밀한 염동력 조절만큼은 알아봤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다.
하긴, 그러니 무슨 디자인 어워드나 콘테스트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겠지.
안목과 디자인 감각만큼은 탁월한 작자.
젤라틴 덕분에 잘 보이지 않던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심장이 두근댔다.
이건 내 최초의 커스터마이징 장비.
이걸 만든 사람은 디자인의 왕, 디자인의 신.
그런데.
“음.”
외마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어때?”
새로운 게임기를 받은 어린아이 같은 눈빛이었다.
디자인 박이 날 보며 평가를 요구했다.
“음.”
난 짧은 신음을 한 번 더 토했다.
아니, 이게 좀 그렇지 않나?
보자마자 휘황찬란한 걸 바라진 않았는데.
이건 그냥 칼날이다. 손잡이도 없는 덩그러니 허공에 뜬 칼날.
난 염력으로 그걸 뱅글뱅글 돌려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은회색의 칼날. 빛을 반사하지도 않아서 더없이 칙칙한 빛깔이다.
양쪽으로 칼날이 있고 납작하다.
한 뼘 정도 길이의 짧은 칼날이 전부였다. 유심히 색다른 걸 찾아봤는데, 없다. 아무런 특이점도 안 보였다.
손잡이도 없고 홈도 없다. 매끈한 몸체가 유려해 보이긴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나 지금 전부라는 말을 몇 번 되뇐 걸까.
하, 이거, 디자인 잘한다며.
“시간이 좀 부족했나 보군요.”
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완성된 건데.”
“이게요?”
“응.”
“칼날만 있는데요?”
“그게 핵심이지.”
이 아저씨 눈치가 개똥인가.
시궁창 눈깔을 가진 엔지니어가 내 표정이나 눈빛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이어 말했다.
“오롯이 칼날, 염동력으로 움직이는 칼날이지.”
그걸 왜 두근대면서 말하는데.
난 영 아닌 것 같은데.
“실망할 필요 없을 거다.”
시궁창 박은 자신만만했으나.
난 뭐, 그냥 그랬다.
아니, 진짜 기대가 되어야 말이지.
고작 칼날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다고.
“사이오닉 에너지를 충전하는걸 축능석이라고 하지. 그걸 섞어 만든 금속을 최근에 개발했다. 거기에 아다만티움을 녹여 코팅했고. 말이야 단순하지, 실제로는 거의 잠도 못 잤어. 금속 반응이 안 맞더라고.”
덤덤하게 말하는데 내용을 들어 보면 과연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겠다.
“중점으로 둔 능력은 두 가지. 축능과 강도. 그거 안 부러진다.”
음?
세상에 부러지지 않는 건 없다.
이계의 금속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어지간해서는 저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세계를 무대로 노는 엔지니어 아닌가.
그만큼 시야도 넓고 아는 것도 많을 것 아닌가.
“안 부러져.”
말하며 숫제 낄낄대기까지 한다. 뇌에 먼지가 좀 낀 것 같은데, 이 아재 괜찮나.
“새로운 금속 조합 방식이다.”
난 염력으로 띄운 칼날의 칭찬을 장장 30분 들은 뒤에야, 중요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상 30분 내내 알아들은 내용은 반도 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말만큼은 귀에 쏙 들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를 응축해서 넣는 연습을 해라. 그거 축적형 기어다.”
당연하지만, 기어를 나누는 기준은 여럿이었다.
사출형, 근거리형.
사이오닉 기어, 스펠 기어.
축적형, 완성형.
완성형은 사용 시 능력의 편차가 적다. 축적형은 그 반대다.
에너지가 쌓일수록 효율적이다.
둘 중 뭐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었다. 쓰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엄밀히 말하자면 근거리형의 사이오닉 기어다.
거기에 축적형이라는 거고.
그런데 손잡이조차 없는 칼이다.
집어 던지는 형태라고 해야 하니, 사출과 근거리의 반반이라고 해야 하나.
치킨도 반반을 안 먹는데 내 기어가 반반이다.
“한 번에 되진 않을 거다. 상위 능력자에게 조언을 구해. 넌 운이 좋다. 여긴 특수종 사관 학교다. 주변에서 도움을 받으면 금세 할 수 있을 거다. 사이오닉 에너지 다루는 법만 배우면…….”
뭐라는 거야.
에너지 응축해서 기어에 넣는 것.
나한테는 쉽다. 쉬운 정도가 아니다.
뇌전.
파직.
뇌안의 원류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내 몸에서 튕기는 뇌전의 힘이다.
그럼 이 힘의 원류는 또 어디인가.
사이오닉 에너지가 기반이다.
그걸 그대로 칼날에 밀어 넣었다.
염동력을 타고 흐른 뇌전에 에너지가 밀어 넣는데, 칼날이 밀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흠?
아예 염동력으로 칼날을 손에 당겼다. 염동력 장갑을 끼운 채, 칼을 잡았다.
[나랑 놀게?]
뭐야? 순간적으로 칼날이 말을 거는 기분이 들었다.
동공이 은색으로 빛나는 꼬맹이가 환상처럼 보였다. 꼬맹이는 하늘 위를 노닐었다. 둥근 지구를 보며 떠돌았다.
토끼를 좋아했고 절구도 좋아했다.
단순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친다.
실제로 말을 건 것은 아니란 것이다.
“잘 만든 기어에는 그만한 에너지 반향이 일어나는 법, 그걸 세상에서는 혼이 담겼다고도 하지.”
파지지직.
육안으로 보일 만큼 내 손에 뇌전이 모인다. 환상은 금세 스러졌고 스러진 환상 대신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이라.
그러모은 뇌전을 칼날에 넣었다. 반항하듯 밀어내던 칼날의 반항심은 금세 사라지고 뇌전 에너지가 맛있다는 듯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어지간한 초능 특수종이었다면 미라처럼 말라 버릴 정도로.
최소 특수종 레벨 6 수준의 에너지를 삼켰다.
이후, 난 디자인 박의 이름을 인정할 수 있었다. 이 양반은 확실히 디자인에 목숨 걸었다.
퉁.
칼날이 허공에 뜬 채로 빛난다.
눈이 부신 빛은 아니다.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며 자신을 드러낸다.
숨을 듯하면서도 드러내 자신을 보이는 게, 묘한 성격으로 보였다.
빛이 흘러나오며 칼날 주변에 아지랑이 같은 게 생겼는데, 오로라를 보는 기분이었다.
허공에 뜬 별을 눈앞에 데려와서 보는 기분도 들고.
“이름은 월광이다. 저런 빛이 왜 나오는지는 나도 몰라. A급 축능석을 먹어 치운 놈인데, 근데 너 벌써 그런 재주를 익혔냐?”
디자인 박은 여러모로 감탄했다.
에너지를 머금게 하는 수단을 부리는 1학년 생도는 처음인가 보다.
“그런 빛은 처음 본다. 실험 때도 안 나왔어.”
양질의 사이오닉 에너지를 머금은 칼날, 월광이 부르르 떨었다.
어서 빨리 크리쳐의 미간에 자신을 꽂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았다.
“여기.”
디자인 박은 후련한 표정으로 뭘 던졌다.
특수 제작한 검집이었다.
몸 어디에든 찰 수 있는 멜빵 같은 끈도 함께였다.
난 상의를 들고 끈을 감았다.
착 하고 감기는 걸 보니, 이것도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검집은 얇았다. 당연했다. 칼날이 그만큼 얇았으니까.
거기에 안에 젤라틴 같은 게 엷게 펴 발라져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쥐려고 하면 손가락이 다 날아갈 거다.”
디자인 박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장성한 자식을 장가나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얼굴이랄까.
“잘 쓰겠습니다.”
그제야 나도 말했다. 사실 할 말이 이것뿐이었다.
이 양반은 사관 학교 내에서 월급을 받는다. 내가 줄 게 없었다.
“나도 정말 재밌었다.”
후련하고 흡족하고 새삼 열띤 기운을 보이며 천재 엔지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월광을 조종해 검집에 넣었다.
달빛이라, 더없이 어울리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름 지었다면 칼날이, 또는 토막이 따위로 지었을 텐데.
어쨌든 칼날을 수납하고 있자니, 나도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때가 된 것 같았다.
월광 없이도 준비하던 거였는데, 이게 생긴 덕분에 몇 배는 쉬워질 것 같기도 하고.
“갑니다.”
“그래.”
만남만큼 심플한 헤어짐이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상대가 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헤어진 난 곧바로 기주 아저씨에게 연락했다.
“잡아 줘요. 전에 그거.”
몇 가지 사건.
정확히는 협회장이신 고모의 콧대를 권력 스트레이트로 뭉갠 것과.
내가 세뱃돈과 용돈으로 노 페이스 팀의 장비 따위를 마련한 뒤부터 기주 아저씨는 내 의견에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단다고 해도.
“야, 그거 위험한데 꼭 해야겠냐?”
“돈 버셔야죠.”
내가 쓰는 돈과 별개로 아저씨는 돈을 벌어야 한다.
남기주 아저씨는 협회를 나왔고 회사를 차렸다.
오롯이 노 페이스 팀을 위한 일이었다.
회사가 있다면 수익 창출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까지는 돈만 들었는데, 벌 수도 있어야 했다.
그래야 먹고 산다.
난 그 방법의 힌트를 줬고 이번에 시험 삼아 해 보기로 했다.
다만, 거기에 내 의지를 반 스푼 섞었을 뿐.
“그래. 네 멋대로 해라. 시바, 하.”
홀로그램 너머 기주 아저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 같지만.
“갑시다. 동업자 양반.”
알 바 아니었다.
“그려, 가자.”
어딘가 힘이 좀 빠진 기주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였어도 아저씨가 저러는 게 이해는 간다.
내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이계 진입 팀 최소 숫자는 다섯, 그중 셋을 채집 수거를 위한 인원으로 채워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번 이계 진입은 나랑 또 다른 한 명.
둘로만 해결하는 거다.
미랑이와 결혼을 위해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난 과연 이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제는 팀이 아니라 내 개인 능력을 시험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