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1. 기어가 완성됐다.
“야, NS면 다야!”
결국, 협회장이 취조실까지 내려왔다.
이후 일어난 일은 남기주에게는 신세계였다.
안경을 쓰고 온 통통한 변신족 남자, 이동훈 팀장은 협회장의 사자후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정말 눈썹 한 올도 반응하지 않았다.
정작 어릴 때부터 핍박받던 기억에 남기주만 움찔했을 뿐.
협회장, 고모의 전신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걸 본 이동훈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곤 말했다.
“시발, 초면에 반말?”
어? 지금 저렇게 해도 되는 건가?
“미쳤어? 나 누군지 몰라?”
다시금 이어지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이동훈 팀장의 말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취조실 안이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남기주는 NS의 법률지원팀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
그저 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가는 양상이 영 제 상상과는 달랐다.
“시발? 미쳐?”
고모는 이제 살이 떨리다 못해 초당 열두 번의 속도로 진동했다.
고모의 초능은 떨림.
저러다가 능력이 발동되면 곧바로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싸우자고?”
그런데 이동훈 팀장이란 사람이 오히려 그걸 바라는 것 같았다.
웃음기를 보이며 말하는 모습이 도발적이지 않나.
거기에 행동도 곁든다.
우드득.
곧 이동훈 팀장의 오른손이 털로 뒤덮였다. 부분 변신, 변신족의 장기를 보인 거다.
그러자 협회장의 동공이 살만큼이나 떨리기 시작했다.
“하시든가.”
이동훈 팀장은 숫제 여유를 보였고.
고모는 떨림을 멈췄다.
“이봐요. 내가 흥분해서 그런 거지. 그렇다고 남의 회사 사람을 그렇게 빼 가면 돼요? 엄밀히 말해서, 지금 문제가 있어서 컨트롤 중인 사람인데.”
“남의 회사 사람이라니, 엄연히 개인의 의뢰로 온 건데. 맞죠? 남기주 씨?”
문을 바라보던 이동훈 팀장이 돌아서서 물었다.
윙크도 어떤 눈치도 주지 않았지만, 남기주는 할 말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이다.
“네. 제가 의뢰했습니다.”
“NS랑 네가 무슨 연이 있어서?”
고모가 다시 볼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이동훈 팀장 뒤쪽으로 문을 떡하니 막은 모양새가 무슨 짓을 해도 비켜 주지 않을 성싶었다.
“우리 사장님이 좋아하시더라고.”
“네?”
답은 이동훈 팀장이 했고, 그 한마디가 곧 문을 막은 고모의 비대한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이었다.
“우리 사장님이 남기주 씨를 눈여겨봤더라고요. 그래서 친히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시는 거고.”
협회는 저물어 가는 해요, 쓰러져 가는 나무다.
반면에 NS는 어떤가.
떠오르는 해 수준이 아니라, 타오르는 태양이요.
거목을 넘어선, 세계를 덮을 잎사귀를 가진 나무다.
세최특의 존재 자체를 우려하는 이들이 많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
혹, 세최특이 안 좋은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하는가.
이것이 세계 모두의 근심이었다.
그가 독재를 원하면 막을 수단은 있는가.
다행히 세최특은 그런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여전히 자기 기준을 명확히 세운 채 살고 있으니까.
“테러? 하지 마라.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
“범죄? 저지르지 마라. 걸리지도 마라.”
세최특을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수틀리면 사람을 쳐 죽이는 인간을 어떻게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를 악인이라 부르는 사람도 없다.
그가 하는 일은 대부분 정당하고 온당하다.
특히나 한국에서 그의 지위는 입지전적인 수준을 넘어섰다.
그 누구도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
그건 협회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의 존재를 우려한 이들을 위해 세최특이 정치 입지 따위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말했기에, 오히려 한국 협회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불만?”
있을 리가 있나.
“싸우고 싶으시면 덤비시고.”
덤빌 리가 있나.
고모는 진동 계열 초능, 흔히 말하는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자다.
대인 전투 능력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그에 반해 상대는 누구인가.
변신족의 거목, 전대의 영웅, 혼혈 이동훈이다.
유사 이래 최강 혼혈의 지위를 세최특이 차지했다면.
이후 말이 되는 수준의 혼혈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했다는 위인이다.
‘덤비면 코도 깨지고 뒤통수도 깨지는 거지.’
“갑시다.”
좌중을 얼어붙게 만든 이동훈 팀장이 말했고, 남기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와서 협회를 들쑤시고 감사팀의 감시를 받는 이를 데려간다. 안하무인인 격이다.
“검찰의 행사를 방해하는 겁니까?”
배알이 꼴린 검사가 나섰다.
감히 대한민국 검찰을 앞에 두고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어, 맞다. 당신 총장이 들어오래.”
“……네?”
“총장이 좀 보자고 했다고.”
검사장도 아니고 하물며 부장 검사도 아니다.
이름도 못 날린 일개 특수종 하나 잡는 일이었다. 동원된 건 평검사 하나였다.
물론 윗줄의 지시를 받긴 했다.
협회가 손을 쓴 쪽은 부장 검사니까.
그런데 총장의 이름이 나왔다.
배알이 풀린 검사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빨리 튀어 가는 게 좋을걸?”
이동훈 팀장의 말에 평검사는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먼저 움직였다.
말 그대로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변신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빨리.
“발에 불나겠네.”
그걸 본 이동훈 팀장이 말하고 유유히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간 직후, 남기주가 걱정되어 물었다.
“이래도 됩니까?”
“응, 돼.”
서슴없이 말을 놓는다. 그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니었다. 상대는 전대의 영웅 아닌가.
하물며 인베이더 시대를 종식한 100인의 위인을 뽑으면 그중 상위권에 랭크될 특수종이니.
“논쟁 잘하는 법 알아요?”
그래 놓고는 다시 존댓말이다. 남기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가 억지를 부리면 이쪽도 억지를 부려야지. 정론으로 맞서려고 하면 골 아파.”
먼저 억지를 부린 건 협회라는 얘기다. 그 말이 남기주의 가슴에 와닿았다.
“아, 그리고 하시던 일은 계속하시면 돼. 이제 방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니까.”
든든했다. 남기주는 그제야 가슴을 펴고 상쾌한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좋다. 하늘이 뿌옇긴 한데, 그래도 좋았다.
며칠 만에 외부 공기란 말인가.
“오늘 미세먼지 나쁨이야.”
옆에서 이동훈 팀장이 말했으나, 지금은 미세먼지도 상쾌할 따름이었다.
지금쯤 협회 안에서 발광하고 있을 고모를 생각하니, 속이 뻥 뚫렸다.
“감사합니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왜 NS에서 나서는가.
혹시 온신이 정체를 밝힌 건가?
그건 아닌 듯싶었다.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어쨌든 손을 쓴 건 온신일 테니.
‘거기다가 묻자.’
이동훈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가세요. 일 끝났으니.”
동훈의 말에 남기주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섰다.
* * *
“야아아아!”
협회 건물이 때아닌 지진으로 흔들렸다.
진동을 일으킨 주인공, 협회장은 성질이 나다 못 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대로 혈압이 올라 뇌가 터질 것 같았다. 그만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모든 걸 걸고 그 싸가지 없는 새끼 앞길 막는다!”
말만 앞설 뿐이리라.
주변 간부 모두가 알았다.
상대는 NS, 협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 * *
협회의 뒤치다꺼리에 나섰던 검사는 총장 앞에 섰다.
단독 면담이었다.
뻐끔.
총장이 담배 연기를 머금고 뿜었다.
냄새 없는 연초, 특별한 제조 공정을 거친 이계의 풀잎을 원료로 하는 담배다.
현재는 담배를 대신하는 물건으로 유명했다.
중독성은 더 높지만, 인체 유해성은 현저히 적은.
“야.”
총장이 말했다.
“네, 하명하십시오.”
총장과 평검사.
왕과 신하, 아니, 백성의 관계라고 해도 좋았다.
평검사는 바짝 기합이 들어간 자세로 섰다.
“NS가 한국 정치에 관여 안 한다고 하면서 붙인 유일한 조건이 뭔 줄 아냐?”
유명한 얘기다. 알음알음 알면서도 적당히 선을 넘는 부분이기도 했고.
“비리 척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뇌물 먹거나, 그와 비슷한 짓거리 하다 걸리면 재미없을 거란 경고다.
그렇다고 사람 욕심이란 게 어딜 가나.
다들 조금씩은 선을 넘기도 하고 그리 산다. NS가 거기까지는 뭐라 하지 않았기에 그들도 최대한 잘 숨기고 대외적으로는 깨끗한 정치를 표방한다.
그 선을 넘는 것도 어지간한 수준을 잘 넘진 않는다.
부탁을 들어주고 다시 부탁하는 정도지, 예전처럼 사과 상자가 오가진 않는다.
그러다 걸리면 이제는 물리적으로 뼈도 못 추리는 시대가 됐으니까.
뻐끔.
“그걸 아는 새끼가?”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총장은 더 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검사는 깨달았다.
‘시바.’
이제 옷 벗고 변호사 사무실이나 차려야 할 순간이라는 걸.
* * *
“엄마한테 찔렀어요.”
“……그게 다야?”
남기주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한창 훈련 중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홀로그램 화면을 보는데, 아저씨가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말했다.
“네, 그럼 뭐 제가 다 까발렸을까 봐요? 근데 순두부 맛있어요?”
아니, 아저씨가 입을 크게 벌려 생두부를 막 씹어 댄다. 고소하긴 해도 꽤 싱거울 것 같은데.
“감방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라.”
“허, 그 정도예요?”
“협회 취조실은 어지간한 교도소보다 더해.”
“고생하셨네.”
그렇다고 밥 먹으면서 연락할 건 아니지 않나.
그리 생각하고 보는데 남기주 아저씨가 입을 연다.
“신세 졌다.”
“뭘 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그래, 앞으로도 잘하마.”
“네, 뭐 지금까지도 잘하셨어요.”
전화를 끊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한 건가?
그게 뻘쭘해서 괜히 밥 먹으며 전화한 거고.
어쨌든 말하는 기주 아저씨의 눈빛이 참 마음에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이제 노 페이스 팀에 인생을 쏟아부을 기세였다.
나한테는 좋은 일이다.
늦으면 3학년 초, 빠르면 2학년 말.
노 페이스 팀의 팀장임을 밝힐 것이다.
사관 학교의 가산점 시스템은 몹시도 투명했다.
능력을 보인 만큼 준다. 그만큼 인정해 준다.
이계 탐험에 개척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
조기 졸업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컨퀘스트 미션 상위 열 개 팀에서 스카웃 제안이 올 듯싶다.
그만한 능력이었다.
가령, 그 이후조차도 엄두도 못 낼 위업.
그런데 최근에 이후랑 정미랑이 페어로 이계 개척 탐사에 성공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서포트 해 주는 사람이 둘 붙었다고 했지만, 활약은 둘이 다 했다고.
절로 어금니가 갈리는 소식이었다.
이후 이 새끼는 내 미랑이랑 왜 자꾸 같이 다니는 걸까.
개새끼.
“전화 받고 오더니, 왜 표정이 이후 선배 떠올리는 얼굴이야?”
로니는 불멸자, 그녀는 날카로운 맛이 있다.
너무 날카로워서 가끔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넌 눈치가 너무 빨라.”
“이후 선배 생각했구나.”
말하며 웃는다. 부드러운 로니의 미소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뛰었다.
얘는 함부로 저런 미소를 보인다.
난 필사적으로 미랑이를 떠올렸다.
미안하다. 바람 핀 거 아니다.
얘는 왜 이렇게 웃는 건지.
“흐응, 재밌어. 너.”
또 뭐가 재밌다는 건지.
최근에 로니를 향한 고백이 두 자릿수가 넘어갔다고 들었다.
불멸자 특유의 미모와 분위기, 집안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녀는 최고의 신붓감임이 틀림없다.
그런 애가 툭하면 나랑 구스타프, 유신, 장옥이랑 놀러 다니니.
“넌 집에서 시집가라고 안 하냐?”
“나 아직 스물하나야.”
나랑 동갑이다.
그래, 아직 시집갈 때는 아니긴 하네.
“그래도 공주면 좀 뭐, 정략결혼 그런 거 안 해?”
“연애결혼 아니면 독신으로 살아도 아버지는 상관 안 하실걸? 비용 문제 있었다며? 이제 괜찮아?”
생각해 보니 얘도 공주다. 돈이 필요하면 여기에도 나올 구석이 있었다.
“응. 괜찮아.”
하지만 내가 누군가, NS 창업주의 아들.
세최특의 아들.
억대의 용돈을 받는 남자다.
“온신아, 밑에서 너 부르더라.”
“응?”
그런 우리를 보고 구스타프가 말했다.
“기어 제작 연구팀에서 부른다고.”
“어?”
아니, 레베카는 뭘 하고 구스타프가 이런 연락을 해 준단 말인가.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보니, 레베카가 소곤거렸다.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방해할 수 없었어요.”
이런 미친 AI가.
미랑이도 아니고 로니랑 있는데 분위기 타령을 하면 어떻게 하냐.
“가 봐.”
로니가 말하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레베카, 나랑 로니는 그런 사이 아니다.”
가면서 AI를 꾸짖었다.
얘는 사흘에 한 번쯤은 잔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공지능이다.
“으흥, 그렇군요. 알겠어요.”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알겠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홀로그램으로 굳이 이런 표정까지 만들어서 보여 주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속내를 알아채라는 건가?
AI 주제에?
어쨌든 난 기어 연구소에 도착했다.
기어 박, 박지훈 연구팀장이 보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살이 쪽 빠진 채였다.
“왔구나.”
기어 박이 해골 같은 손을 흔들며 날 반겼다.
정말 몹시도 반가운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