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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49화 (449/488)

외전 40. NS 법률 지원팀장

“엄마!”

“나이가 몇인데 엄마야?”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집인데 어머니가 팔짱을 낀 채 현관문 앞에서부터 날카롭게 노려보신다. 독특한 방법으로 아들을 반기시는군요. 어머님.

“강혜민 여사님, 아들 돌아왔습니다.”

애교로 넘어가려 했는데 실패다.

“엄마 말 안 듣고 거기 가니까 좋니? 좋아? 사춘기도 아니고, 나잇살 먹은 놈이 엄마 말도 안 듣고.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어머니, 전 이미 다 컸습니다.

그리고 커서 정미랑의 남편이 되겠죠.

차마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현관 앞에서 멀뚱히 선 채, 들어가도 되냐고 눈짓만 할 뿐.

어머니는 마지 못한다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종 사관 학교에 들어간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애 잡겠다. 좀 놔둬.”

“놔둬요. 애를 쥐어 패든 말든.”

부모님은 오랜만에 보는 아들 앞에서 애정을 과신하셨다.

애정 표현이 전투의 형태를 띨 뿐, 실제로 서로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시니, 난 이해할 따름이다.

“강혜민, 말투 좀 고쳐.”

“흥.”

“아이고, 이게.”

아버지가 꿀밤을 먹이려고 하자, 어머니의 손등에서 빛이 터졌다.

마법이었다. 주문 발동으로 엄마의 전신에 신체 강화가 걸리고.

“뭐 해?”

아버지가 황당해 되묻자.

“아, 몰라!”

엄마가 사납게 아버지를 들이받았다.

다른 집안이라면 놀라 나자빠졌을 일이지만.

난 태연했다. 하루 이틀 본 상황이 아니다. 거실 한쪽에 피신한 뒤, 곧 어머니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방어 결계가 형성되는 걸 봤다.

누군가 이 사실을 봤다면 기가 찰 일이다.

수억 원이 넘는 방호 시스템을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다툼을 위해 만들었다.

파바박.

대련은 격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천에 하나, 아니 만에 하나의 확률로 태어난 천고의 기재라 할 수 있었다.

스펠 유저 내에서는 정말 천재 중의 천재다.

다만, 아버지는 여전히 건재했다. 괜히 세최특이 아니시란 거다.

내가 볼 때 어머니의 저 태도는 아양이나 앙탈이었다.

아버지를 믿고 하는 앙탈.

둘의 다툼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뻐근했다.

예전에는 이걸 보고 참 상처도 많이 받았었지.

두 분의 사랑 싸움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세최특의 아들, 천재 스펠 유저의 아들.

그리고 그 둘의 아들로서 내가 당연히 보여야 했던 모습들.

난 왜 그런 걸 강요당하고 살았어야 했는가.

“차세대 세최특이 된 기분은 어떠십니까?”

묘하게 자신의 속을 긁어 놓는 기자의 질문 세례 속에서.

난 내 안으로 침잠되어 들어갔었다.

마음의 방에 걸쇠를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얘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그저 내 작은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 머물러야 했다.

그때의 난 물속에 빠진 채,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이런저런 게임에 반쯤 빠져 있다가 익명성에 숨어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댓글 하나 단 적도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그 공포는 뼈와 심장에 새겨져 날 괴롭혔고 죽였고 파괴했으니.

“세최특의 아들!”

그 한마디가 주는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눌러 부쉈다.

어둡고 긴 터널 속.

물이 가득 차,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답답한 어항 속.

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망상으로 버티지도 못했기에, 마지못해 살았었다. 숨만 쉬고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 생각에 푹 절여져 있느라 아버지 어머니가 멈춘 것도 몰랐다.

소파 한쪽에 앉은 내 앞에 어머니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날 보고 계셨다.

그 눈에 어린 걱정이 선뜻 가슴에 와닿는다.

“미안, 아들. 너무 심했지.”

어머니는 이런 분이셨다.

쉽게 끓고 쉽게 식는.

“아니요. 멍청한 생각 했어요.”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가 데면데면하게 옆에 서 있다가 말했다.

“밥 먹을래?”

“좋죠.”

안 좋은 생각은 금세 날아갔다.

내가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을 때도 어머니의 눈은 변한 적이 없었다.

말이 험하다고, 철이 좀 덜 들었다고 해서 어머니의 마음이 어디로 간 건 아니니까.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셨다.

그걸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난 밥을 먹었다.

“그래서, 미랑이는 넘어왔고?”

“아니요.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계획은 있냐?”

메뉴는 육회와 안창살 및 등심, 안심 구이다. 불판 앞에 소고기로 산을 쌓아 구워 먹는 중이었다.

집안에 육향이 가득히 퍼졌고 환풍기가 세차게 웽 하고 돌아갔다.

정겨운 저녁 식탁이다.

“계획은 무슨, 애 얼굴이 계획이죠.”

어머니가 말하더니, 곧 후하고 한숨을 내뱉고 이어 말씀하셨다.

“난 미랑이 별로다.”

이게 바로 시어머니 포스인가.

“네?”

“애가 별로는 아니고, 그쪽 집안이 별로야.”

이건 인정한다. 미랑이 아버지가 좀 극성이어야지.

어릴 때는 그저 친했던 삼촌이 이제는 최고의 걸림돌이 되었으니까.

“내 딸은 안 돼.”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고 한다.

“어디, 누가 안 돼. 내 아들이 아깝지.”

어머니가 화를 내셨다. 조금 더 흥분하셨다면 콧김 대신 불을 뿜으셨을 듯하다.

“그건 아니지. 미랑이가 좀 더 괜찮잖아.”

아버지는 객관적이고 냉정하셨다.

“야!”

그럼 어머니는 또 이렇게 화를 내시지.

아니, 아버지, 이제는 어머니가 화내는 타이밍도 다 아시면서.

말하는 아버지의 눈가에 웃음이 어려 있었다.

외모는 그저 그래도 늙지 않는 동안인 건 그대로인지라, 아버지랑 함께 나가면 형제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눈웃음만 살살 짓는 걸 보니 장난꾸러기처럼 보였다.

다 알고 하시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이리 화를 내는 걸 즐기시는 거다.

상당한 취향이시네.

“엄마?”

이번에도 어머니는 금세 화를 가라앉히셨다.

“흠, 재미없네.”

아버지가 혀를 차셨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아버지는 언제 철이 드시려나.

먹고 마시고 홀로그램 TV를 켜니, 뉴스가 나왔다.

사실 내가 TV를 켰다. 지금쯤 딱 방송이 나오리라는 걸 예상했다.

뉴스였다.

“최근에 급부상한 이계 소거팀이 있죠?”

“그들을 소거팀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진취적인 그 태도는 가히 개척 임무 이상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과연 노 페이스 팀이 바라는 건 뭘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지,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는 걸 듣고 내가 말했다.

“어머니.”

“응.”

“협회에서 노 페이스 팀 압박 넣는다고 하던데 아세요?”

“압박?”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협회를 싫어하셨다. 그리고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 뚱땡이 아줌마가 미쳤나.”

아버지가 한마디를 거든다.

“왜? 얼굴 숨겨서?”

어머니가 되물었다.

분위기가 괜찮았다. 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대한 나랑 상관없다는 투로.

“모르겠어요. 아, 저 팀을 만들고 서포트하는 게 협회장 조카라고 하던데 둘 사이가 최악이라서 그렇다는데요?”

“웃기는 아줌마네.”

아버지가 다시 거들고.

“그래서 저 팀을 와해라도 시키겠다?”

“와해 수준이 아니라 아예 팀 구성 자체가 불법이라고 우길 작정이라고 하던데, 맞아요? 불법이에요? 얼굴 숨기면 안 돼요?”

아버지는 가면 애호가시다. 내가 안다. 서재에 호랑이 가면을 몇 개나 갖고 계신다.

“얼굴이야 숨겨도 되지. 남기주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 보증 섰다며?”

본래라면 개인의 보증 하나만으로 정체를 숨긴 팀이 운영될 리 없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었다.

노 페이스 팀이 어떤 정치적 입지도 다지지 않고 순순히 크리쳐와의 싸움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사례가 쌓이면 힘이 된다. 경력이 쌓여도 힘이 되고.

노 페이스 팀은 한결같았고.

이미 그걸 반쯤 인정받은 채였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협회가 하는 짓, 그냥 놔둬도 돼요?”

난 운만 띄웠을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아니, 안 되지.”

“나서게?”

정작 아버지는 별 관심 없어 보였지만, 어머니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심술 뚱땡이가 하는 거라잖아. 안 놔두지.”

나이스했다.

분위기 탄 김에 난 한발 더 나아갔다.

“용돈도 좀 주세요. 돈을 다 써서요.”

“……세뱃돈도? 너 어디서 아빠 몰래 사업하냐?”

“아니요. 친구들 밥 좀 사 주다 보니까.”

“이상한 데 다니는 거 아니지?”

어머니가 묻는다. 유흥 업소를 묻는 거라면, 전혀 아닙니다. 제가 그런 곳에 갈 것 같나요.

미랑이 뒤꽁무니 쫓기도 바쁩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레베카한테 물어보세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목에서 레베카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전 마스터의 명령으로 어떤 것도 전하지 못하게 되었는걸요? 그게 아니라면 마스터가 절 포, 포, 포맷시킨다고.”

어쭈? 공포에 질린 척 연기를 해?

“너 레베카 괴롭히니?”

“AI라고 막 대하면 안 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중주가 날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평소에 얼마나 잘해 주는데요. 레베카? 앞으로 내가 유흥이나 기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면 전부 부모님께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춰 주겠니?”

“네, 그러죠.”

레베카가 냉큼 답했다. 이거 진짜 은근히 얄미워.

“그렇답니다.”

생긋 웃으며 내가 대화를 끝냈다. 아버지, 어머니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시고 용돈도 주셨다.

당연히도 적은 돈은 아니었다.

다른 집이 용돈으로 백만 원을 받을 때, 천만 원 단위로 돈을 받은 나다.

이번에는 억 단위 용돈이 들어왔다.

이거면 부족한 기어도 얼추 채울 수 있을 터였다.

하루짜리 짧은 휴가였다.

“겨우 하루 온 거야?”

“학교생활이 매우 바쁩니다.”

“그래, 초능 각성하고 나니까 신이 나디?”

어머니의 투정에 아버지의 질문이 곁들었다.

이 질문만큼은 진심을 듬뿍 담아 답할 수 있었다.

“네, 너무 좋습니다. 너무 신납니다.”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세최특의 아들이 아닌 유온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초능은 말에게 날개를 단 격이었다.

내 대답에 부모님 두 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퍽 보기 좋았다. 어깨에 팔을 올려 어머니를 안는 아버지.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 * *

협회의 감사팀은 남기주의 사생활까지 털었다.

“당신이 뭔데 회사 공금으로 사관 학교에 갑니까? 거기서 무슨 인재를 뽑겠다고. 괜히 핑계 대려고 한 거 아닙니까?”

감찰팀은 까칠했다. 그 뒤에 검사 몇 명이 섞였다고 들었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게 잘도 막아 두셨군요.’

노 페이스 팀을 건드릴 수는 없다. 그렇게 놔둘 수가 없다.

그러니 협회의 심술쟁이가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

남기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그거 공금 횡령이에요, 공금 횡령.”

내부 감찰이 검사 출두까지 이어지고 곧바로 쇠고랑을 차게 되기까지, 이틀이었다.

아직 협회의 힘이 살아 있음을 방증하는 속도였다.

‘지랄하네.’

남기주는 속으로 생각하는 걸 겉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입을 다무는 것으로 일관할 뿐.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훼방을 놔서 골치가 아팠다.

돈이라도 썩어 넘치게 있으면 변호사 선임이 되겠지만.

그게 되어야 말이지.

이미 유온신 새끼 때문에 사채까지 끌어다 쓴 판이다.

‘그놈의 장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으니, 끝까지 가야 할 것이다.

이름에 빨간 줄을 긋고 전과자가 되어도.

그게 퍽 억울해도.

‘시발.’

억울하긴 억울했다.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전과라니.

“들어가면 안 좋을 건데요. 남기주 씨, 당신 특수종이잖아요. 특수종 감옥이란 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중에서 어디 보자, 당신이 갈 곳이 섬이네요.”

말하며 검사가 생긋 웃는다.

섬, 저 멀리 남쪽에 있는 섬에 만든 수용소를 말하는 거다.

사면이 바다요.

안에는 극악한 범죄자가 모인 곳.

“거기 가면 당신 항문이 헐어. 진짜로. 내 말 믿으라고.”

검사가 위협을 가했다. 남기주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고모 진짜.’

암울한 전망만이 그에게 남았을 때, 감찰팀과 검사장이 잠근 문 뒤에서 희망의 서광이 비쳤다.

쿵. 쿵.

누군가가 두어 번 문을 두드리더니.

“왜 안 열려.”

밖에서 누군가 중얼거렸고 곧 우드득 하고 문손잡이를 비틀어 빼 버렸다.

힘 하나는 무식하게 좋은 양반이었다.

쿵.

곧바로 문을 열고, 아니 부수고 들어온 사람이 취조실 안을 둘러봤다.

“여기가 검찰이야? 아니면 감옥이야? 사람을 가두고 이러면 안 되지. 당신들 이거 불법이야, 몰라?”

“……누구?”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검사가 되물었다.

남자는 손끝으로 명함을 한 장 튕겼다.

팅 하고 날아간 메탈 소재의 명함이 취조받던 책상 위로 꽂혔다.

“NS 법률지원팀장, 이동훈.”

이동훈, 전대의 영웅이자, NS의 주춧돌.

전 세계 곳곳에 변신족을 돌보는 보육원 사업을 하며 아내는 사관 학교 교수로 재직.

본인은 한참 쉬다가 NS 법률팀을 조직할 때 들어온 사람이다.

NS 대표인 세최특의 지인이기도 했다.

일개 검사나 협회의 감사팀이 다룰 상대가 아니다.

아니, 협회장이 와도 부족했다. 그만한 거물이었다.

“불법 감금으로 두 명 다 고소감인데, 우리 얘기 좀 할까?”

그런 동훈이 말했고, 검사와 감찰팀장은 주둥이가 없는 크리쳐가 된 양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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