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48화 (448/488)

외전 39. 세뱃돈이 남았다.

“나한테도 말 안 해 준다, 이거니?”

고모가 화를 낸다. 남기주는 협회장이자 고모의 분노에도 입을 다물었다. 다물어야 했다.

“너 진짜 이럴 거니?”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건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이 걸려 있다고요.”

홀로그램 너머, 후덕한 여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눈매가 처지며 울상을 짓는다.

“부탁이다. 기주야. 내 너를 아들처럼 키우지 않았니?”

‘그럼 난 내놓은 자식인가?’

협회는 저무는 해였고, 그들만의 리그에 빠진 힘 없는 단체였다.

여기에 꽂아 줬다고 챙겨 준 건 아니란 거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구박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은 결코 아니었다. 어릴 때의 서러움은 커서는 원한이 되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협회장님.”

남기주가 선을 그었다. 협회장의 표정은 곧바로 또 변했다. 이제는 흉신악살 같았다.

눈꼬리가 올라가더니, 입으로는 불을 뿜어낼 것 같았다.

‘변신 초능이라고 해도 믿겠다.’

고모는 어릴 때부터 심술 하나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다.

남점순, 이런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것만 중요하고 남의 것을 탐하는 게 기본 틀이다.

남기주는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노 페이스 팀인지 뭔지, 제대로 활동 못 하게 해 줘?”

“제 개인 출자로 만든 회사에서 나온 프리랜서 팀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협회와 관련이 없다.

“네 말처럼 될 것 같니? 이 싹수없는 새끼! 한번 두고 보자!”

협회장인 심술 덩어리 고모가 홀로그램 통신을 껐다.

남기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뜸 정체를 전부 알려 달라니.’

팀 전체를 협회 쪽에 넣으라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건 곤란하다고 했다.

애초에 계약 자체를 온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썼다.

협회는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다. 수용할 수 있다고 해도 안 된다.

온신의 정체를 아는 순간, 고모는 개수작을 부릴 테니까.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곱게 거절했더니, 정체만 알려 달란다.

아니, 그렇게 쉽게 알려 줄 거면 가면은 왜 씌우겠나.

괜히 개인 돈을 출자해서 프리랜서 팀 회사를 만들었겠냐고.

이걸 위해 회사를 따로 차리기까지 했는데.

‘한숨 나오네. 진짜.’

고모라는 작자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괴롭히려고 작정하고 있으니.

숨을 몇 번 고르고 있는데, 협회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에요? 당장 책상 빼라고 하던데?”

“애초에 내 책상이 거기에 있긴 했고?”

직위는 있으나, 자기가 설 자리는 없는 곳, 그게 협회였다.

“진짜 퇴사예요? 아주 작정하고 덤빌 것 같은데? 이것저것 다 걸어서 경찰에 넘긴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지금 감사팀까지 내려왔다고요.”

협회의 감사팀은 무섭다. 일을 잘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협회의 권력자를 대비하는 개새끼라 무섭다.

“이런 씹.”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어서.

놔두면 정말 콩밥을 먹을지도 몰랐다.

나도 무슨 수를 쓰긴 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 페이스 팀의 정체를 알릴 수는 없다.

이게 터지면.

‘세최특.’

그 양반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그는 아군에게는 한없이 좋은 사람일 수 있었다.

특히 전장에서 앞에 선 세최특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는 말도 들었다.

그럼 그 반대라면?

세최특이 하는 걸 방해하면? 그가 아끼는 것에 손을 대면?

유온신은 세최특의 아들이다.

남기주는 그 사실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죽도 밥도 안 돼.’

“어쩌시게요?”

그나마 인복은 있었는지, 직원 여럿에게 연락이 왔다. 이삭도 이렇게 함께한 사람이었고.

남기주는 새삼 결심했다.

협회를 반드시 때려 부수겠다고.

그리고 주춧돌부터 새로이 쌓겠다고.

그걸 위해서 필요한 것.

권력, 힘, 금전.

모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직원을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미친 유온신 놈.’

이 새끼가 갑자기 사관 학교 생도 여럿을 노 페이스 팀에 밀어 넣고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분명 열 명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얼추 쉰 명이 넘어간다.

용케 비밀 유지가 되는 수준이었다.

아니, 이게 되긴 되는 건가?

아찔하다.

낭떠러지 끝에 선 기분이다.

이러다 수틀리면 곧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맨몸 다이빙을 해야 할 판이었다.

낭떠러지 밑에 자신을 기다리는 게 물일지,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틈에 이삭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노 페이스 팀 인원이 더 늘었다고 돈이 필요하다는 소식이었다.

“……없어,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고!”

그는 대뜸 소리쳤다.

* * *

“왜요?”

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전원 염동력을 가진 팀으로 구성해서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이삭 형의 표정이 계속 안 좋았다. 안 좋은 수준이 아니라 나락에 떨어진 도박꾼 같다.

눈 밑이 까만 걸 보면 고민도 많아 보였고.

“무슨 일인데요.”

이삭 형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말했다.

“팀원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비밀은 지킬 겁니다.”

진심이었다. 나도 바보가 아니다. 애들 단속에 진심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꼭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알아서 비밀이 지켜지기도 했다.

초반 멤버 몇 명만 날 알았고 나머지는 내 존재 자체도 모르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아예 이 팀을 꾸린 게 구스타프라고 아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로니의 솜씨였다.

그녀는 담백하게 자신의 업적을 말했다.

“숨길 거라면 진실을 섞는 게 좋지.”

사관 학교 동기라고 해서 서로를 전부 아는 건 아니다.

가면을 쓴 채로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게 나와의 훈련과 유신의 요리였다.

이게 또 의외인데, 구스타프를 대외적인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는데도 일부는 유신이 이 모든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으로 아는 애들도 있었다.

“속임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것 역시 로니의 기가 막힌 솜씨였다.

어쨌든 모든 소문에서 나는 제외됐다.

덕분에 비밀 유지는 쉽다.

가면을 쓰고 나서면 날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도 눈치 빠른 이들은 적당히 아는 것 같지만.

또 그만큼 눈치 빠른 애들은 굳이 아는 척을 해 오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왕가에서 자랐어. 태교를 정치질로 했다고.”

그 후 우연히 로니가 게임을 하면서 정치질하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기가 막힐 정도였다.

한 명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들었다.

내가 볼 때는 욕 먹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한순간에 최악의 플레이어가 되었다.

로니는 타고난 정치쟁이였다.

어쨌든 그 덕분에 사람이 많아진 걸 걱정할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삭 형의 표정은 여전히 안 좋았다.

“비밀을 지킨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요?”

“돈이요. 장비부터 시작해서, 마련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협회가 가난해요?”

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초능 협회가 다른 건 잘 못 해도 딴 주머니 차는 건 최고 아니었나?

고모가 협회장이라며?

그럼 주머니가 넉넉할 텐데?

겨우 이 정도로 휘청한다고?

이삭 형은 몇 번이고 말하는 걸 주저했다.

그러다 검은 하늘 너머에서 크리쳐가 우수수 날아왔다.

폭발하는 풍선이었다.

눈 코 입 대신 길쭉한 더듬이를 무기로 삼는 짧은 털의 괴물이었다.

몸이 무척 가벼워 바닥을 한 번 차면 몇 분이고 하늘에 붕붕 떠 있었다.

이쪽의 중력이 지구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발을 디딘 이세계는 검은 하늘의 땅.

적응하기 전에 땅을 잘못 차면 하늘로 몸이 붕 뜨는 곳이다.

“우주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네.”

머리 위로 반짝이는 별들이 잔뜩 있기에 그걸 본 구스타프의 감상이었다.

폭발 풍선이 무수히 날아왔다.

일견해도 오십이 넘었다.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까맣고 짧은 털의 괴물.

분간해 내는 것부터가 일이다.

그래서 이쪽 이계는 불멸자와 초능 특수종이 주력이었다.

불멸자는 특유의 감각으로 적을 감지하고.

초능 특수종, 그중 염동력자는 아예 적이 다가오기 전에 후려칠 수 있으니.

안 보이면 범위를 넓게 뿌린 염력으로 잡아내도 그만이고.

“레이더!”

내가 외쳤다.

염동력자는 날 포함해서 총 셋.

이삭 형을 제외하면 나머지 하나가 레이더 역할이었다.

이 친구 이름은 뭐였더라?

훈련에 간신히 따라오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악바리 근성이 돋보이는 애였다.

아, 율리아다.

그녀는 칙칙한 회색에 빨간 줄 세 개를 대각선으로 그은 가면을 썼다.

아프리카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가진 능력이 독특했다.

“보여라. 보여라. 보여라.”

중얼거리던 그녀의 입가에서 빛의 입자 같은 작은 빛 알갱이가 나왔다.

그러곤 사방으로 퍼졌다.

율리아의 초능은 색적.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힘이다.

처음 능력을 보였을 때는 겨우 반경 10m에만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능력을 진화시켰으니.

그녀가 손을 뻗은 쪽으로 넓게 빛의 입자가 퍼진다. 빛의 알갱이는 곧 적에게 붙어 그들의 테두리를 밝혔다. 율리아의 능력으로 크리쳐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조져.”

나도 말하고 염동력을 발동했다.

검지와 중지를 붙인 뒤, 염동탄을 쏘자.

좌우로 붙은 염동력자 둘도 같은 손 모양을 보였다.

이 또한 특훈의 효과였다.

좋은 건 나눠야 하는 법이니.

염동탄 쓰는 요령을 널리 알려 줬다.

구스타프만 염동탄 대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손을 흔들었다.

그 손짓에 맞춰 무형의 충격파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곧 우리의 머리 위에서 폭죽 수백 개가 터졌다.

퍼벙! 꽈광!

안에 폭발하는 기체를 가득 품은 폭발 풍선이 터지고 또 터진다.

하늘 위에 붉은 화염이 캔버스에 그린 유화처럼 퍼졌다. 불똥 몇 개가 이쪽으로 날아오기도 했으나, 구스타프의 염동 방패에 막혀 부스스 흩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관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놀라는 다른 팀원이 이쪽 이계에도 있었다.

“저기 쟤들 맞지? 노 페이스 팀?”

“맞네. 맞아.”

다만, 전과는 반응이 십분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컨셉질 팀이라 불리지 않는다. 단시간에 가장 빨리 성장한 괴물 같은 대형 신인이라 불리지.

한쪽에서는 우리를 신인이라고 부르지 않기도 했다.

“제 추측이지만, 여기저기서 도태되고 핍박받은 특수종이 모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TV 패널이 그리 떠들어 대곤 했다.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으나, 팀에서 추방당한 이들이 모였다는 주장이었다.

웃기는 소리였다.

미안한데 아저씨, 노 페이스 팀은 전원 전부 사관 학교 생도랍니다.

그것도 1학년이 주축이고.

어딜 퇴물 취급인가.

터진 폭죽도 이삭 형의 답답한 속을 풀어 주진 못했는지, 형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협회는 부자지. 하지만 오퍼는 가난해.”

코드명 오퍼, 남기주 아저씨다.

음, 돈이라.

“제가 부담하죠.”

“응?”

“저번 달에 받은 세뱃돈이 좀 남았거든요.”

가끔 사람들이 날 보고 잊고는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세계에서 손꼽는 부자다. 부호다. 재벌이다.

그리고 난 재벌 2세고.

“제가 낸다고요.”

이삭 형은 말하는 김에 그동안 있던 골치 아픈 일을 전부 말했다.

많았다.

사고도 잦았고 걸림돌도 많았다.

용케 기주 아저씨랑 이삭 형 둘이서 여기까지 했다 싶을 정도로.

“돈이랑 그 초능 협회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떻게 잘 비벼 보면 될 것 같았다.

“진짜?”

“제가 빈말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없을 텐데?

“없지.”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해요.”

우리 팀은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폭발 풍선을 족족 터트렸고.

그건 곧 주변의 환호로 변했다.

“와!”

“노 페이스 팀!”

“최고다!”

“멋있어!”

“나랑 결혼해!”

농담 섞인 환호였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자원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자원은 일부만 캤다. 이제까지 이삭 형이 자원을 꼭 캐서 가져가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엄청 귀찮았다.

아니, 굳이 이걸 왜?

우리 목적은 유명세지, 돈이 아닌데?

그런데 오늘 이유를 알았다.

“자원 캐지 마. 놔 둬.”

당당히 말했다. 이삭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용돈을 좀 더 받고 풀어야겠다.

그래 봤자 천 명, 이천 명도 아니고, 끽해야 백몇 명 장비를 챙겨 주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내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유신을 달달 볶아도 되고.

용돈은 나보다 유신이 더 받는 거로 안다.

노 페이스 팀은 의도대로 엄청나게 유명해지는 중이니.

‘기다려라, 미랑아.’

내가 가고 있다.

그 전에 일단 휴가 한 번을 이계 탐험이 아니라 집에 가는 데 써야 할 것 같았다.

협회장이라는 여자가 기주 아저씨를 괴롭히고 있다고 했다.

잘못하면 경찰에 끌려가게 생겼다고 들었는데.

에이, 왜 이러시나 진짜.

그 꼴은 내가 또 못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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