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5. 약혼자를 위하여 (1)
“크르르르릉!”
갑자기 늑대 무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패 죽인 놈 머리 위에 있던 선이 사라진 직후다.
자연스레 아까 그놈이 크리쳐 통제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만, 지금은 한가하게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염력의 문을 개방한다. 초능 에너지를 끌어 올리며 팔을 양옆으로 뻗었다.
카모플라쥬가 특기인 덩치 큰 늑대가 수십 마리다. 그것도 덩치가 성인 남성을 메인 디너로 씹어 먹을 놈들이니.
나는 팔을 편 채로 양 손가락을 구부리며 손목을 돌렸다.
좌우로 손의 모양을 딴 염력을 밀어내며 잡고 꺾는다.
단단한 염력에 걸린 늑대의 다리나 목 따위가 뒤틀리고 꺾였다.
“구경만 할 거야!”
말하며 손을 위에서 밑으로 내리꽃는다.
꿍!
압력이 늑대 머리 하나를 터트린다. 사방으로 무형의 압력을 뿌려 대자, 뒤에서 쾅쾅하고 폭음이 터졌다. 장옥의 샷건 발사음이다.
“여기로.”
구스타프가 염동 방패를 만들어 이삭 형과 채집팀을 챙기고.
어느새 로니는 사라졌다. 모습을 숨겼다. 기가 막힌 기척 죽이기 다음으로 기습이 이어졌다.
그녀는 늑대 한 마리 한 마리의 목에 와이어를 걸고 잘랐다.
어느새 늑대의 등을 딛고 올라서 양딸을 위로 당긴다. 썩둑 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 대가리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며 잘린 목의 단면에서 피가 우수수 쏟아졌다.
일반 와이어가 아니라 광학 병기였기에 가능한 묘기다.
늑대의 목이 썩둑 썩둑 잘린다. 리더 늑대가 발악하듯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우우우우우!
하울링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걸 보며 오른발을 크게 들었다가 내려찍었다.
염동기, 거인의 한 걸음.
내려찍는 걸음에 맞춰 위에서 밑으로 묵직한 무형의 압력이 생성.
그대로 늑대의 머리를 눌러 터트린다.
펑!
끔찍한 광경임이 틀림없지만, 상대는 크리쳐다. 그리 징그럽지는 않았다.
리더 늑대가 죽자, 남은 놈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굳이 쫓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원숭이도 피 칠갑을 한 채, 제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얘도 좀 싸웠나 보다.
내 팀이 아니라서 신경 쓰지 않아 못 봤다.
“고약한 새끼들이네.”
원숭이가 중얼거렸다. 싸움은 짧았다. 내가 상대를 죽인 뒤,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후."
난 숨을 내뱉고 내가 처죽인 시신을 바라봤다.
6단. 레벨 6、
변신족이 아니라고 해도 염력 뭉개기 정도는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야아, 그걸 그냥 죽이면 어쩌냐.”
구스타프가 뒤에서 말했다.
“웩."
나는 순간 구역질이 치솟았다. 크리쳐를 죽일 때와는 달랐다.
상대는 확실히 사람이었다. 죽고 나자 뒤집어쓴 거적때기 기어의 기능이 풀렸고 그 안에 피떡이 된 시신이 보였다.
내가 속에 든 걸 확 게워 내자, 뒤에서 누가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로니였다.
“어, 미안.”
비싼 마스크 써서 다행이다. 입에서 불순물이 나오자마자 마스크 입 부분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끔찍할 뻔했다.
침 뱉을 수 있는 마스크라고 광고를 그렇게 해 대는 걸 봤는데, 그게 참 대단한 거였다.
이거 만든 사람한테 상 줘야 한다.
그러니까 유신의 아버지 회사에 상을 줘야 할 것이다.
“후."
시큼한 내음이 코끝율 아렸다.
사람을 죽였다.
이쪽 세계에 뛰어들면서 이런 일도 있으리라 수없이 되뇌었다.
그런데도 구역질이 치솟았다.
무릎에 손을 얹은 채로 바닥을 보고 있자니, 한심한 모습을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허리를 펴고 몸을 바로 세웠다.
“인간적이라 좋네.”
옆에서 로니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얘는 불멸자다. 평소에 고통 감내 훈련 따위로 자신의 몸을 다지는 특수종이다.
이들은 살인에 사회적인 거부감을 느낄지언정 생리적인 거부감은 없다.
“체했어요?”
로니 다음에는 장옥이다.
넌 이게 체한 거로 보이냐?
난 고개를 저었다.
변신족은 특유의 둔함이 그들의 정신을 커버하고 지키기에 변신족 중에 시신을 보고 구역질을 하는 이들은 참 드물 것이다.
장옥에게 내 반응은 어색할 수 있었다.
“처음이었구나.”
구스타프가 말했다. 얘는 경험이 있나 보네.
그래, 처음이었다.
크리쳐를 죽일 때와는 달랐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 하지 않겠나.
생리적 거부감 때문에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긴 했지만, 곧 한숨 몇 번에 털어 냈다.
그런 내 어깨에 이삭 형이 손을 올렸다. 이삭 형의 손에서부터 은은한 온기가 느껴지더니, 불편하고 울렁거리던 속이 금세 가라앉았다.
메디컬 이삭의 힘이다.
“여기에 왜 사람이?”
“이건 뭐……."
“변이종 늑대가 이렇게 많다고?”
채집팀 쪽 인원이 놀랐는지, 그제야 입을 뗐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구스타프가 지켜줬겠지, 팀원 중에 유일하게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야 적 리더 보고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기 바빴고.
원숭이가 시신을 살피다가 미간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추방자 아니야?”
그러고선 시체를 발로 툭 찼다.
머리가 으깨진 시신이 옆으로 구르며 그 안에 담긴 걸 쏟아냈다.
아까처럼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이제 괜찮았다. 놀란 건 잠깐이다.
내 손으로 죽여 놓고 내가 토악질을 해 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시신을 발로 찬 원숭이가 날 힐끔 본다. 가면 위라 내
표정이나 눈은 보이지 않겠지만, 토악질하는 건 봤으니.
슬쩍 비웃는 표정 같았다.
비웃을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저렇게 생겼으면 표정을 함부로 지으면 안 된다. 그게 매너다.
“추방자?”
난 처음 듣는 단어였다. 눈치 빠른 이삭 형이 옆에서 속삭여 줬다.
“단죄를 피해 도망간 범죄자들.”
현 세상은 범죄자의 존재를 용납지 않는다. NS를 필두로 모든 단체가 범죄를 후려치고 때려잡는다.
물론 사소한 범죄자를 전부 잡을 수는 없지만, 테러리스트 수준의 범죄자는 발붙이고 살 수가 없는 곳이다.
그중 대가 약한 놈들은 전향하고 숨어 지내기도 했지만.
어느 무리든 강성한 이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추방자란 그런 범죄자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현 세상에서 추방되어 이 세계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총칭이라고도 했다.
“형은 나중에 할 일 없으면 인강 강사 하세요.”
내가 볼 때는 초대박 스타 강사 예약이다. 설명을 들어 보니까,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훌러넘치는 사람이었다.
“뭐?"
“아니에요.”
사이오닉 기어와 추방자.
저 멀리 보이는 투명한 기지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게 확실했다.
“계속 갈 거지?’’
원숭이가 채집팀을 향해 물었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을 봤다면 물러날 법도 했다.
“네.”
하지만 리더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연 있는 얼굴이었다.
"가다가 죽으면요?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뒤에서 내가 물으니, 원숭이가 다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가 자꾸 비웃는 것 같아.
장옥이한테 진즉에 한 대 쥐어박으라고 할 걸 그랬나.
“위험하긴?”
이 새끼는 표정도 마음에 안 들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안목이 형편없다는 거였다.
내가 한 방에 때려죽여서 그렇지, 지금 바닥에 쓰러진 특수종은 원숭이 새끼 다섯이 있어도 못 당할 레벨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뻗댄다고?
하물며 조금 전 내가 염동력으로 늑대를 때려잡은 걸 보고도?
아니, 제대로 못 봤나 본데.
자기가 상대해 보니 만만하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늑대가 알아서 물러갔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기도 정신없이 싸우느라 바빠서 제대로 본 게 없을지도 모르고.
원숭이가 시신과 날 번갈아 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음. 더는 못 봐주기는 하겠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 사연도 들어 보고 싶고.
“이거 조력자로 데려온 거죠?”
내가 원숭이를 가리키며 말하자, 채집팀 리더가 눈을 깜빡였다.
“네?”
“아니면 원래 데리고 다니던 애완동물입니까?”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리더가 눈알을 굴렸다. 원숭이와 내 눈치를 본다. 그리고 내 말을 들은 원숭이의 얼굴이 벌게졌다.
“뭐? 뒤가 구려서 얼굴도 가리고 다니는 새끼가!”
"구씨.”
우리는 얼굴을 가렸다. 당연히 별칭이 필요했다. 코드명을 어렵게 지으면 반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쉽게 지었다.
구씨는 장옥을 부르는 말이었다.
“네!”
장옥이 답하고 내 옆에 섰다.
그러자 원숭이가 쌍욕을 중얼거리더니. 변하기 시작했다.
원숭이 놈도 변신족이었다. 그의 어깨에 갈색 털이 솟는다. 덩치가 커진다. 근육이 부푼다. 그런데 얼굴은 안 변했다.
“얼굴은 안 변해?”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변신족이 부분 변신을 많이 하긴 하지만, 얼굴만 빼놓고 변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까득.
원숭이가 어금니률 깨물었다. 그러더니 외쳤다.
"이게 변한 거다!”
외침과 동시에 빡 하고 땅을 찬다.
변신족의 돌진은 무섭고 매섭다. 원숭이가 단숨에 두 배로 커졌다. 곧 주먹이 내 눈앞을 채운다. 그래도 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내 뇌안으로 봤을 때, 얘는 변해도 안 된다. 장옥이 밑이다.
턱.
장옥이 상대의 팔을 붙들었다. 뻗던 팔이 멈췄다.
“끙!”
원숭이가 젖 먹던 힘을 끌어내는 것 같았다. 장옥은 그런 원숭이의 발등을 밟고 팔꿈치를 위로 치켜세웠다.
원숭이가 손으로 급히 막았지만, 무용했다.
쩡!
장옥이 부분 변신하는 재주는 아직 못 하기에 인간 형태로 힘을 썼음에도.
“끄어걱.”
원숭이가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흘린다. 동공이 풀렸다.
기절이다. 쓰러진 놈을 장옥이 한쪽 발을 들고 질질 끌어서 옆에 던졌다.
훙. 텅.
“어, 어?”
모든 건 단숨에 일어난 일이었다. 일이 끝난 뒤에야 채집팀 리더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사연 좀 들어 봅시다.”
팔짱을 낀 채로 내가 말했다.
남자는 주절주절 말을 시작했다.
“그 실종된 친구의 약혼자에게 약속했습니다. 꼭 데려오겠다고.”
와, 엄청난 의리다. 그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이계 탐험을 나선다고?
실종된 사람의 약혼자가 밖에 있단다. 그래서 약혼자와 약속했단다. 친구를 꼭 구해 오겠다고.
채집팀의 나머지 셋도 같은 마음이고?
이 팀 뭐야.
멍청할 정도로 정이 깊잖아.
“계속?”
사연을 다 들은 직후 이삭 형이 물었다. 어쩔까.
리더는 나다. 내 판단과 선택에 따라 기로가 갈린다.
"갑시다.”
궁금해졌다. 과연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샌가 죽은 시신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어쩌겠나.
난 특수종 세상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정미랑이 여기에 있으니까.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산다. 특수종의 한 명으로서. 거칠고 험한 세상의 일원으로서.
그러니 난 그녀를 위해 달리는 종마,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로서 멈출 수 없다.
나중에 고백할 때 지금 생각난 걸 말해 볼까?
종마랑 폭주 기관차 괜찮은 것 같은데, 잘 먹힐까?
나중에 유신에게 상의해 봐야겠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저 안에 들어가는 게 미랑을 위한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안다. 아는데, 정말 궁금하다니까.
"음, 세최특의 피는 제대로 이어졌나 보다.’
로니가 옆에 붙으며 속삭였다. 어느새 예민한 로니는 사라지고 평소의 로니로 돌아온 상태다.
다만, 가끔 이렇게 훅 들어와서 입김이 닿을 거리에서 말을 거는 건 쉬이 적옹이 안 된다.
“응?”
“아빠가 자주 말했거든, 세최특은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고.”
채집팀이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그들이 듣지 못하게 로니가 작게 속삭였다.
난 그녀의 말을 곱씹어 봤다.
이게 왜 욕처럼 들리지?
우리는 계속 나아갔고 이삭 형은 중간중간 거리를 가늠했으며, 로니는 레이더 역할에 충실했다.
“예민해 보이더니."
로니에게 슬쩍 말을 걸어 보니.
“요 며칠 신경질 좀 냈지? 이제 괜찮아.”
“정말?”
“응. 아무래도 이쪽에서 은근히 무슨 파장이 흘러나왔던 것 같아. 그게 딱 잡히진 않았지만, 은근히 신경을 건드린 거고, 예전에 불멸자의 주파수 감각이란 논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논문에서 말하길……."
“토스트, 토스트.”
난 급히 이삭 형을 불렀다. 우측에서 세 걸음쯤 떨어져 걷던 이삭 형이 다가왔다.
토스트는 이삭 형의 코드명이다. 자기가 직접 지었다. 왜 토스트인지는 통 모르겠다.
“얘가 갑자기 외계어를 뱉어서요.”
논문이 뭐라고? 주파수가 뭐라고?
“아.”
이삭 형은 웃으며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해 줬다.
“불멸자의 감각은 그들 자신이 못 느끼는 범주까지 파악할 때도 있다는 겁니다. 너무 미약한 신호일 때, 들리거나 느껴지진 않는데 은근히 신경을 건드릴 때가 있는 거죠. 무시하자니 신경 쓰이고 잡아채자니 보이진 않고. 간지러운 곳이 있는데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거랑 비슷한 겁니다.”
와, 예시 봐라. 역시 인강 스타 강사.
"아마도 이계에 넘어와서 적응하는 기간이어서 더 신경이 쓰였을 겁니다.”
모르는 것도 없다. 옆에서 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스크 위로 일자로 뚫린 구멍이 보였다.
구멍 안에서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제 같은 실수는 안 해.”
실수는 한번 해 봤으면 됐단다.
그래, 너 잘났다.
쭉 걷다 보니, 투명화 건물이 코앞이었다.
또 지키는 사람이나 크리쳐가 나오진 않을까 했지만, 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문 찾을 수 있겠어?”
뇌안을 발동한 내가 로니에게 물었다.
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불멸자의 감각만으로 손끝을 뻗었다.
툭.
투명화가 됐다고 해서 물리 법칙에 벗어난다는 건 아니다.
건물은 이곳에 존재한다.
그녀의 손이 건물 벽을 짚고 긋는다. 우측으로 여덟 걸음, 로니는 출입구를 찾았다.
왼쪽으로 갔으면 한참 헤맸을 텐데.
“직감?”
"응.”
내 물음에 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불멸자의 감각은 편리하고 독톡하다.
문을 앞에 둔 우리는 문제에 봉착했다.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음새가 있는 걸 보니 여기가 출입구는 맞는데.
로니가 이음새 사이에 손끝을 대보더니, 공기가 통한다고도 말했고.
어쩔까.
“구씨.”
당기고 밀고 들고 옆으로도 밀어 봤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의심해라.
내 힘이 부족했던 건 아닌지.
“구씨.”
그럼 나보다 힘 좋은 애를 시키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