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2. 냄새가 났다.
“좌측 15m, 셋.”
로니의 말에 장옥이 산탄총을 들었다. 광학 병기는 아니지만, 레일 건 형태의 샷건이었다.
위력에 집중한 변신족 전용 화기다.
반동이 무식할 정도로 세서, 변신족이 아니면 쏘는 족족 어깨뼈가 탈골될 정도의 위력이다.
어디서 저런 걸 구해 왔는지 모르겠네.
기주 아저씨 능력도 좋지.
장옥이 성큼 왼쪽 앞으로 나가더니, 코를 씰룩이고는 허공을 향해 샷 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꽝!
폭음이 터진다. 눈앞에 희끗희끗하게 보였던 카멜레온 울프의 몸이 터지며 가시화되어 보였다.
까가가가강!
쇠로 쇠를 때리는 소리 따위가 나며 허공에 녹색 피가 뿌려졌다.
살점이 찢겨 떨어져 나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머리통 반이 터진 늑대가 바닥을 기다가 푸- 하며 마지막 숨을 토해 내고 죽었다.
쓰러진 놈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늑대와 비슷하나, 털이 각진 쇳덩이 같았다. 두께도 두껍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카멜레온 울프를 상대할 때 달라붙는 걸 가장 주의하라고 했던가.
특히나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엉겨 붙으면 최악이라고 들었다.
저 몸에 붙은 털 하나하나가 단검이 되어 몸을 헤집을 테니, 당연한 얘기였다.
"계속."
내 말에 로니는 아예 눈을 감았다. 불멸자 특유의 감각을 살리는 중인 것 같았다.
시각을 넘어서 청각으로. 청각을 넘어선 오감으로. 오감과 육감, 직감의 세계다.
불열의 피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듣고 본 게 많기에.
지금 로니의 상태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육감의 문을 열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로니가 할 일을 시작했다.
다섯의 팀원 중 주변을 탐지하는 레이더로서 능력을 보였다. 로니가 주변을 탐지하는 사이, 장옥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내 옆으로 붙었다.
“얘들 냄새가 지독하네요. 무슨 락스 냄새 같은 게 나요.”
장옥이 중얼거렸다. 과열된 샷건 냄새 사이로, 바싹 탄 구리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음, 그건 처음 듣는 소리군요. 일전에 다른 변신족은 누린내가 심하다고 했었는데.”
그 말을 이삭이 받았다. 우리 대형은 단순했다. 중앙에 나. 그 옆에 이삭.
내 바로 앞에 레이더 로니, 그 앞 선두를 지키는 건 장옥과 구스타프다.
공격은 장옥이, 수비는 구스타프다.
간단한 대형이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더없이 효율적이었다.
“누린내도 나기는 하는데 묘한 냄새가 섞여서 나요. 사흘 동안 굳은 촛농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된 비누 냄새 같기도 하고.”
그건 대체 무슨 냄새냐?
아마 난 평생 장옥이 말하는 냄새가 원지 모를 터였다. 아니, 오래된 비누 냄새는 뭐고. 사흘 된 촛농 냄새는 대체 무슨 냄새일까.
변신족은 자신만의 느낌으로 냄새를 표현한다지만 장옥은 그 정도가 심했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그냥 개성일까.
신은 공평하기에 육체적 재능을 준 대신 다른 재능을 앗아간 걸지도 모른다.
“전방 넷, 8m.”
로니의 레이더가 다시 발동했다.
"구스!”
내가 외쳤다. 구스타프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면에 손을 내밀었다.
"삼중 방벽."
자신이 구상한 이미지를 허공에 구현한다. 곧 구스타프의 앞에 세 겹의 무형 방벽이 생겼다.
카멜레온 울프는 붙으면 위협적이다. 순간 가속도가 빨라서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데다가 몸뚱이는 단단해서 상대하기도 까다롭고.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했다.
지능이 떨어지는 게 첫째요.
둘째는 불멸자가 팀에 포함되어 있다면 놈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마되는 거다.
투명화하는 의미가 없어지니, 이보다 쉬운 싸움은 없다.
퉁! 퉁! 퉁!
전면에 나타난 놈들이 방벽을 들이받았다. 그런다고 염동 방벽이 뚫리겠나.
“구스?”
“아무렇지도 않아.”
내 질문에 구스타프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구스타프는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가 만든 방벽이 더없이 탄탄해 보였다.
장옥이 손으로 염동 방벽을 짚으며 옆으로 돌아 나가, 샷건으로 늑대 네 마리에 탄환을 먹여 줬다.
늑대는 그때까지도 전면 방벽을 들이받느라 바빴다. 멍청함의 표본 같았다.
장옥이 방벽을 끼고 돌아 방아쇠 몇 번 당기는 거로 끝나는 싸움이라니.
임시로 쳐 둔 막사를 두고 우리는 주변 늑대를 삽시간에 해치웠다.
이 정도면 뭐, 시작으로 나쁘지 않나.
반나절 돈 것만으로 스무 마리 이상의 크리쳐를 해치웠다.
틈틈이 시간이 남을 때는 자원 채취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캘 만한 게 그겁니다. 강철 열매는 쉽게 부서지니 조심하십시오.”
이삭이 나서서 설명을 도맡았다.
나도 처음 보는 거였다. 살면서 이계 자원을 볼 일이 얼마나 있겠나.
땅 위에 강철의 풀이 들쑥날쑥 자라 있는데, 그중 하나에 동그란 열매 따위가 매달린 게 보였다.
달랑거리는 은색 열매는 신비로운 빛깔을 반사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건 아이언 베리인데. 독 있습니다. 먹으면 죽어요. 변신족의 소화력으로도 안 됩니다.”
"그럼 어디다 쓰는 건데요?”
“독을 제거하고 잘 갈면 좋은 약이 됩니다.”
“무슨 약이요?”
“불멸의 비약을 만들 때 씁니다.”
장옥이 묻고 이삭이 답했다. 그걸 물끄러미 보자니, 선생님과 학생처럼 보였다.
장옥은 궁금한 게 많았고 이삭은 아는 게 많았다.
덩달아 나도 지식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자. 조심히 캐 봅시다. 실패해도 됩니다. 그렇게 비싼 건 아닙니다. 대체재가 많거든요.”
이삭의 말에 장옥이 나섰다. 한 뼘 길이의 칼날을 가진 초진동 나이프로 열매가 달린 가지률 잘라, 떨어지는 열매률 부드럽게 받아 내면 끝이었다.
작고 둥근 은색의 열매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아주 물러서, 말랑한 복숭아나 푹 익은 토마토 같았다.
이삭이 작은 주머니률 꺼내 아이언 베리를 담았다.
"보관에 어려음은 없습니다. 큰 충격만 안 받으면 되거든요."
우리는 또 움직였다.
하루 내내 카멜레온 울프를 오십 마리쯤 잡고 임시 구축한 진지로 돌아왔다.
텐트와 경보 장치가 멀쩡했다.
혹 보급품이 습격당하는 일이 있을까 해서 설치해 둔 장비다. 여긴 이미 수차례 소거 작업을 통해 카멜레온 울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세이프티 존 안쪽이니, 당연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캠프를 보며 뒤를 돌아보자, 넓디넓은 평야가 눈을 채웠다.
저 멀리 비스듬히 떨어지는 해가 강철의 땅과 만나며 오색찬란한 빛을 뿌렸다.
지평선이 아름다운 곳.
강철 평야에게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리 이름 붙이고 싶었다.
멋들어진 광경을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땅이 넓네요.”
이삭이 고개률 끄덕였다.
"좁지는 않지요."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짧게 대화를 나눴다.
“계속 이렇게 카멜레온 울프만 두들겨 패다가 돌아가면 끝이죠?”
"전부 촬영할 거고, 이 일은 공식적으로 팀의 공적이 될 겁니다. 지루하게 느껴져도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이삭이 내 속율 들여다본 것처럼 말했다.
나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은데.
"이 일로 컨퀘스트 미션을 얕보진 않겠죠?”
이삭이 물었다.
“네, 제가 경험이 좀 있잖아요?”
일전에 오크 무리를 만나서 화끈하게 싸운 적이 있다. 그때 함께한 변신족 팀은 잘 있으려나.
팀명을 들었는데 금세 까먹었다.
머릿속에 새겨 넣지 않았다.
뭐, 기회가 되면 또만나겠지.
“누나는 공주잖아요. 그럼 편히 살아도 되지 않나요?”
한쪽에선 장옥이 심심한지 로니에게 조심스레 말을 거는 게 보였다.
로니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무표정으로 있었다. 내 위치에서는 로니의 뒤통수만 보였다.
“누나?”
대답이 없자 장옥이 다시 물었고, 그제야 로니가 고개를 돌렸다.
"공주라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사람은 다 각자 사정이 있는 거고. 그리고 공주가 편하다고 누가 그러니?”
말투가 까칠했다. 공격적인 어투였고.
평소의 로니답지 않았다.
그 말에 장옥의 긴 목이 쏙 들어갔다. 우리 기린이 거북이 되겠네.
팀의 불화도 리더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로니?”
내가 둘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내가 좀 예민했어.”
로니가 금세 답하고 장옥이 나와 로니의 눈치를 봤다.
이 자식은 덩치만 컸지, 순 어린애 같네. 아, 어린애 맞나. 아직 열여덟이니까.
한 해가 지나도 열아홉, 한국에서는 성인이 될 수 없는 나이다.
“이리 와.”
장옥을 데리고 뒤로 빠진 뒤 우리는 저녁을 쟁겨 먹었다.
간단한 전투 식량이었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불멸자 몇이 출자한 식품 제조 회사에서 만든 전투 식량인데,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불멸자의 미각에는 그리 입에 맞지 않았는지 로니가 먹다 말았다.
"입에 안 맞아?”
"좀."
얘가 진짜 예민하네.
혹시 그, 음 그날인가?
물어봐야 하나.
나는 리더로서 팀을 안전하게 이끌 의무가 있다.
로니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것을 보는 게 처음이기도 했다.
불멸자치고는 그동안 참 덤덤한 편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계에 넘어와 적응하는 동안 예민해진 건가.
결론만 말하자면 그냥 놔웠다.
예민하다고 해서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로니가 레이더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면 더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하루 동안 한 일을 되새기고. 팀의 부족한 부분이나, 장점을 정리했다.
그 사이 몇몇 팀이 이쪽 땅을 방문했다. 강철 평야는 인기가 없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언 베리를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불멸자 팀도 있었고. 순수한 호기심에 온 팀도 있었다.
그리고 들어온 모든 팀이 가면을 착용하고 있는 나와 팀원을 힐끗거렸다.
그중에 열매 채취 팀이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어디에서 오신 건지?”
얼굴을 감춘 채로 활동하는 특수종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팀이 통째로 모습을 감춘 건 처음이다.
경계심을 보일 법도 했다.
뭐, 내가 볼 땐 경계심보다는 호기심이 주가 되어 말을 건 것 같았다.
“팀노 페이스입니다.”
이삭이 나서서 상대했다.
“아, 그런 컨셉이시구나.”
둘이 대화를 나누더니, 불멸자 팀이 그리 말하고 물러섰다.
“관종팀인 듯.”
“노 페이스라고 얼굴을 감추고 활동한단다.”
“이유가 뭐래?”
“그게 컨셉이래.”
"전부 상태가 안 좋나 본데.”
"풉."
돌아선 불멸자 친구가 팀에 돌아가 중얼거리는 걸 로니가 실시간으로 중계해 줬다.
채집 팀은 전투 없이 채집만을 목표로 한다. 전부 혼혈 불멸자였다.
이쪽에 순혈 불멸자, 그것도 지금 한창 예민해진 불멸자가 있다는 걸 몰라 떠든 탓에, 우리는 그걸 로니를 통해 전부 들었다.
"한방 먹여줄까요?”
장옥이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니, 놔둬.”
싸워 뭐하겠나.
생각해 보니 나 같아도 이런 팀이 옆에 있으면 손가락을 귀 옆에 대고 돌릴 것 같았다.
컨셉에 너무 몰입해서 전부 가면을 쓰고 싸우는 팀이라니. 다들 상태가 안 좋다고 말할 만했다.
이후 새로운 팀이 들어왔는데 이제까지 들어온 팀과는 목적이 달라 보였다.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수더분하고 훈훈한 혼혈 불멸자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홀로그램을 띄워 수소문을 했다.
궁금해서 빤히 보자, 그 팀이 우리 쪽에 다가왔다.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으십니까? 저기, 가면은 왜?”
"컨셉입니다.”
내가 답했다.
남자가 홀로그램을 보여 줬다.
당연하게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보름 전에 이쪽 평야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혹시나 흔적을 찾으면 후사하겠습니다.”
그러자고 했다.
사흘째, 난 구스타프와 번갈아 가며 전면과 좌우로 방벽을 쳤고.
로니는 감각으로 카멜레온 울프의 숫자를 읽고 방향을 잡아 냈다.
처음에는 범위를 좀 얕게 잡았는데 이제는 좀 더 넓혔다.
장옥이는 거침없이 샷 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다치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삭은 구경만 했다.
"치유계 능력만 있는 겁니까?”
"네."
이삭을 뒤에 두고 계속 진행하고 있자니, 쉬는 시간에 장옥이 돌아와 말했다.
“저, 탄 얼마 안 남았어요.”
이제 돌아가야 할 때인가.
마지막으로 난 뇌전을 튀겨 뇌안을 떴다.
단순한 호기심이자, 실험이었다.
이제야 뇌안을 뜬 이유는 팀의 전투력을 제대로 확인하고 손발을 맞추려고 한 거였다.
내가 없다고 금세 무너지면 안 되지 않나.
이제까지 오롯이 염동력으로 서포트만 한 이유다.
마지막이 되자, 새삼 궁금했다.
뇌안을 뜨면 불멸자의 감각을 대신할 수 있을까?
파직.
뇌전이 치며 눈앞에 파란빛이 오갔다.
곧 내 주변에 있는 크리쳐의 숫자가 보였다.
좌측에 셋, 우측에 넷.
이번에는 좀 많네.
뇌안으로도 보이는구나.
그럼 어느 정도는 불멸자의 감각을 대신할 수도 있겠어.
그리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로니.”
“응?”
“얘네, 왜 한쪽으로만 가는 것 같냐?”
방위를 기준으로 보자면 동에서 서로. 놈들은 한쪽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음? 그렇네.”
로니가 답했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
난 뇌안에 힘을 주고 동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뭐야?
내 뇌안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에너지 집합체로 보고 측정한다.
저 멀리, 서커스의 천막 같은 둥근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뇌안을 닫는다. 보이지 않는다. 다시 뇌안을 뜬다.
그럼 보였다.
그러니까 투명화가 걸린 건물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대강 가늠해 봤을 때, 1시간은 넘게 걸어가야 할 거리로 추정됐다.
넓게 트인 평야라서 어렴풋이 보이는 거지, 다른 지형지물이 있었다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거리다.
큰 점처럼 보이는 투명화가 걸린 구조물.
냄새가 났다.
지독한 구린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