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39화 (439/488)

외전 30. 팀

무형이 아니라면 유형이다.

그렇다고 염력을 억지로 보이게 할 필요는 없다.

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으니.

“커스텀 기어를?”

얼핏 보면 사관학교가 싸움꾼만 키워 내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안에는 스펠 크리에이터를 위한 수업도 있고 그들만을 위한 리그도 있다.

규모 자체가 괜히 세계 제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엔지니어 육성도 함께한다.

지원 기업은 블루 인더스트리.

그렇다. 유신의 아버지인 강푸름이 만든 회사다.

괜히 유신이 방에서 돈가스 튀기고 마카롱만 만들어도 안 쫓겨나는 게 아니다.

특혜 중의 특혜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특수종 사관학교 엔지니어 육성 사업에서 블루 인터스트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니까.

그러니까 유신이 아버지가 삐져서 ‘나 안 해!’를 시전하면 엔지니어 육성 클래스가 무너진다.

이걸 대비하기 위해 잘 자란 엔지니어를 도로 학교에서 교수로 임용하려는데.

이게 어디 쉽나.

“제대로 된 애들은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고. 가르치는 일에 관심 있는 애들은 능력이 안 돼.”

아버지 말씀이다.

왜 자기를 세최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며, 특수종 세상에서는 엔지니어 쪽이 최고로 정신 나간 집단이라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대부분 자신의 발상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싶어 한다.

이 중에는 돈을 밝히는 사람도 있고.

다른 부가적인 이득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롯이 실력으로 증명되는 세계이기에, 연구에 미친 이들이 성격은 좀 모났어도 더 우대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니 돈도 명예도 그쪽이 가져가게 되고.

블루 인더스트리는 이런 엔지니어가 제 꿈을 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니.

사관학교 출신도 다 블루 인더스트리에 들어가길 원하게 되는 거다.

그러니 도로 학교로 돌아오는 놈이 없는 거고.

학교 입장에서 보자면 최악의 케이스였으니, 어쩔 수 없이 방식을 좀 바꿨다.

이것도 벌써 오 년이 넘은 이야기다.

블루 인더스트리에 재원을 뺏기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자체 연구소를 설립했다.

미래의 동량이라 할 수 있는 사관학교 생도가 쓸 무기를 만드는 데 투자한 것이다.

연구 시설, 설비, 장비 투자를 화끈하게 했다고 들었다.

하고 싶은 연구 마음껏 하라고 돈을 쏟아부었다.

정부와 단군이 기어 업계의 강자라는 것도 이제는 옛 얘기가 된 이유다.

최근에는 최고 명품은 블루.

대량 양산품은 단군.

정부 쪽 자체 제작 루트는 거의 망했고.

가장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기어는 사관학교 내부 연구소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난 그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을 만나는 중이었다.

아니, 그냥 기어 하나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곧바로 수석 연구원이 나왔다.

좀 당황스러운데.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니.

나는 멀뚱히 나를 보는 수석 연구원을 보며 답했다.

“네. 커스텀 기어 만들고 싶은데, 직접 하시게요?”

“왜? 나로는 성에 안 차?”

빨간 뿔테에 홀로그램으로 변하는 렌즈를 끼고 머리는 모히칸 스타일이다.

독특한 패션 감각은 더 말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연구소 수석 연구원.

소위 말하는 최근 가장 힙한 기어 엔지니어다.

‘기억 박’이라는 별명까지 있다.

퓨어와 사이오닉 엔지니어 방면에서는 손꼽히는 유명 인사고.

잡지에도 간간이 나올 정도다.

그런 사람이 날 맞았다.

이거 왜 이래?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그럼 말해. 뭐가 필요한데.”

커스텀 기어는 사용자가 구상한다. 그게 아니라면 커스텀이란 이름이 붙을 리가 없었다.

난 설명을 시작했다.

* * *

올해의 생도란 무엇인가.

그냥 불문율처럼 정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영향력이 옳게 퍼지게 도와주고.

더 나아가게 도와주는 것이다.

총장의 명령이 떨어졌기에 온신은 차세대, 그러니까 현재 사관학교가 뽑은 올해의 생도가 되었다.

그래서 생긴 일이었다.

박지훈이 자신의 뿔테 안경을 손으로 올리자, 홀로그램 색이 녹색으로 변했다.

“너 발상이.”

유온신, 올해의 생도.

반쯤은 얕잡아 봤었다. 아버지 때문에 운이 터진 애로 봤는데.

그래서 마지못해 기어 하나 만들어 주면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용도가 뭐라고?”

“무형이 아닌 위력에 집중하는 기어입니다. 그러니까 변신족의 강체를 뚫을 수준의 강도가 필요해요. 크기는 이만했으면 좋겠는데요?”

온신이 설명한 건 커다란 화살이었다. 지훈은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일반 화살이 아니다.

프로 수준의 염동력 에너지를 견뎌야 한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일반적인 합금으로 만들어서는 답이 안 나왔다.

‘아니, 거기서 끝내면 안 되지.’

지훈은 한발 더 나아가 생각했다. 기어 제작 쪽에서는 그가 프로 중의 프로였으니.

평소에 사이오닉 에너지를 축적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으로 위력을 보완하고.

크기는 클 필요가 없지.

“에, 이 정도는 되어야 불멸자도 잡으니까.”

“불멸자를 잡으려고 위력을 높이는 거냐?”

지훈이 물었다.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작게 만들어.”

발상이 떠오른다. 반복된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졌는데 흥미가 확 돋았다.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았다.

“한 달쯤 걸리겠다.”

최소 한 달, 그 정도는 공을 들여야 할 일이었다.

* * *

무슨 기어 만드는 데 한 달이나 걸리나.

얘기를 끝내고 나오니 벌써 정오다. 요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보냈더니, 오랜만에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여유는 곧 생각으로 이어졌다.

남기주 이 양반, 계약서를 썼으면 일을 해야지.

지금까지 뭐 한단 말인가.

당장 이계에 넣어 줄 것처럼 굴더니, 벌써 몇 달째 제자리 아닌가.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못 하고 2학년이 되겠다.

“어쩐 일로 혼자냐? 대련 한판?”

“나중에.”

지나가던 생도가 말을 걸었다. 요새 흔히 있는 일이다.

혼자서 훈련을 거듭하다가 막히면 날 찾는다.

나를 무슨 대련 자판기로 아는 것 같다.

“바쁘구나.”

거절하자 엄청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다. 놔두면 멘탈이 지하를 뚫고 맨틀까지 직행할 것 같았다.

야, 너 표정이 왜 그러나. 사람 미안하게.

이 친구와 꼭 어울려 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대련으로 실력을 겨루는 게 나쁠 건 없었다.

내 훈련에도 도움이 된다.

“전화 한 통화만 하고.”

“그래?”

“응. 그래, 내 대련장 알지? 가 있어라.”

고개를 든 변신족 동기는 눈을 반짝이며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근데 저 친구 실력 많이 늘었네.

뇌안으로 얼핏 보니 육체 레벨이 15가 넘는다.

이전에 봤을 때는 7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누가 자세를 봐주나?

난 그 이후에도 인사 몇 번과 대련 신청 몇 번을 받아 주고는 카페테리아의 방음 부스에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전화를 걸자마자 남기주 씨가 말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말하니,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 그러셨구나.”

“진짜다. 이계 진입로 하나 잡았거든. 오늘 오전에 간신히 회의 끝내고 따 온 거야.”

“오.”

헛소리로 할 말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하다. 자신의 인생을 세차게 건 도박꾼의 열기 따위가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근데 우리 쪽 인원이 한 명밖에 준비가 안 됐어.”

“최소 진입 인원은요?”

이계마다 안전을 위해 권장하는 규모가 있다. 가령 진흙 사막이나, 정글 늪과 같이 특이 지형이나 크리쳐 등급이 낮은 곳은 딱히 인원 제한이 없다. 최소 인원으로도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붉은 번개가 치는 땅처럼 크리쳐 등급도 높고 몸을 숨길 곳도 없는 곳은 최소 여덟에서 열 명이 상의 팀원을 소집해 규모를 맞춰야 한다.

“다섯.”

다섯이면 최소 규모다.

보통 팀을 짤 때, 레이더, 저격수, 파이터, 메디컬, 리더의 역할로 나눈다.

리더는 팀을 이끌고 판단하는 역할이고.

나머지야 뭐, 크리쳐가 다가오는 걸 파악하고 싸우는 역할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이게 기본 구조다. 최소한 이런 구조는 만들어야 팀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말인데 조금 더 기다리면 다른 인원을 충당할 테니까…….”

“그냥 하시죠. 다섯이면 이쪽에서 넷을 맞추면 되니까.”

“벌써 넷이나 구했다고?”

“네.”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구한 거 맞지?”

비밀이 필요한 시점이다. 난 홀로그램 가면을 쓰고 남기주 아저씨의 보증으로 팀을 꾸릴 테니까.

작전은 이미 짜 놨다.

실행만 남았을 뿐.

“네.”

구스타프와 로니는 됐고.

장옥이를 데려가면 될 듯했다.

그런데 장옥이가 비밀을 지킬까?

난 이런 쪽에서 직감을 믿는 편이다. 불멸자의 피는 타고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외모에서 그 피의 흔적이 보이듯.

가끔 내 직감은 날카로울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장옥이는 믿을 만한 친구다.

“음, 믿는다. 온신 군.”

“걱정하지 마시고 일정 잘 짜 주세요.”

학교 수업 일정과 겹치면 난감하다.

자, 이제 시작이다. 아버지 어머니 몰래 가는 이세계 탐험.

그대로 대련장으로 돌아가 약속을 미뤄 둔 동기 셋을 맞이했다. 전부 나랑 싸우고 싶어 모인 애들이다.

“오늘 나 기분이 좀 좋다. 한 번에 할까?”

변신족 하나에 불멸자 둘.

요새 초능 특수종 능력자가 가뭄이라더니, 진짜다.

굉장히 드물다. 실제로 초능 특수종보다 불멸, 변신이 더 많이 보였다.

마법사 숫자야 원체 적은 편인데 요즘 늘어나는 추세고.

하지만 초능은 아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협회가 사화에서 점점 발언권과 힘을 잃어 가는 거고.

그러니까 아예 사관학교나 아버지 회사처럼 변신이든 불멸이든 하나 되어 뭉치는 게 훨씬 효율적인데 말이야.

협회나 소수 단체는 아직도 자기들끼리 모이는 걸 선호한다.

그 유명한 불멸특수대도 유명무실해진 시대에 말이야.

“한 번에?”

“셋을 동시에 하겠다고?”

“너 우리가 만만하구나.”

마지막에 말을 뱉은 변신족 동기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야생의 살기다.

아까는 몹시 침울해하더니, 지금은 분노를 표한다.

이게 변신족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단세포 자식.

“만만한 건 아니고 나도 몸은 풀어야지.”

“우리 셋이 몸풀기다?”

“땀도 좀 나면 좋고.”

“셋이 아니면 땀도 안 난다?”

말하면서 머리에 점점 김이 나는 것 같은데?

혹시 네 변신체는 커피포트니?

열이 서서히 잘도 받네.

“나도 끼워 줘. 넷은 무리려나?”

그럴 리가.

구스타프다. 내 대련장은 더 넓어졌다.

한쪽 방을 더 뚫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구스타프가 한창 땀을 흠뻑 흘리다가 들어왔다.

“그럼 나도 같이하자.”

로니도 함께라, 그럼 다섯이다.

이건 좀 무리 같은데.

거기에 구스타프와 로니는 요새 치열함을 넘어 구토가 나오는 수준으로 단련 중이었다.

그만큼 실력이 몰라보게 늘었고.

“하하, 그럼 5:1로 하자고?”

변신족 동기의 눈이 돌아갔다. 분노라는 두 글자에 몸을 맡겼다.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한다.

“하자, 해! 저거 죽여!”

뭐라 입을 열기도 전, 부지불식간에 대련이 시작된다.

이날 난 염동력의 한계를 엿봤다.

신속과 염동력으로는 다섯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 번째 능력을 보였다.

뇌안은 본래 이 능력의 일부일 뿐.

파지직.

뇌전을 흩뿌렸고, 거기에 당한 로니가 비틀린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너, 음흉해.”

머리털이 쭈뼛 서서 뻗쳤는데도 로니는 예뻤다.

“그래, 내가 한 매력 하지.”

내 새로운 능력을 본 이들은 뭐, 하나쯤 숨기는 게 더 있을 거라고 예상했단다.

세상 다시 없을 음흉함을 지닌 놈이 자기 가진 카드를 다 까진 않았을 거라고.

누가 세상 다시 없을 음흉한 놈이란 말이냐.

대련이 끝나고는 유신을 찾아가 티타임을 가졌다.

이 자식이 뭐 새로운 과자를 구웠다고 오라고 했다.

먹고 마셨다. 유신한테는 솔직하게 전부 말했다. 가면 쓰고 이계에 들어갈 작정이라고.

나중에 3학년이 되기 전에 가면을 벗고 밝혀 업적을 인정받을 생각이라고.

“그게 되겠냐?”

“이미 결과로 증명하면 되는 것, 특수종 세계의 철칙이잖아.”

유신의 말에 내가 답했다. 그 말이 맞긴 하다며 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한 대로 장옥이도 끌어들였다.

“조기 졸업 목표로 한번 달려 볼 텐가?”

“네?”

“비밀 엄수가 조건이다.”

“네? 온신이 형 어디 아프세요?”

“입이 무겁다고 믿겠다. 장옥아. 할 거지?”

“형? 의무실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픈 것 같은데.”

내 할 말만 했더니, 장옥이 놈이 힘으로 날 끌고 가려고 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설득은 성공이었다.

“어디 말할 곳도 없어요. 저 왕따예요.”

학교에 너무 어린 나이에 왔고, 밤마다 혜림이가 보고 싶다고 훌쩍이는 바람에 주변에 친한 이들이 없다고 한다.

다들 자기 일이 바쁘기도 했고.

그렇게 구장옥이 합류.

팀원 넷이 모였고 장옥이까지 유신이 방에 모일 수 있었다. 한참 먹다가 유신이 술 한 병을 가져왔다.

“마실래?”

“콜.”

구스타프가 먼저 답하고.

로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뭐.

장옥이는 미성년자라 음료수로 대체했다.

술은 블루베리와 우롱차로 만든 일본식 리큐어였다.

한 모금 입에 넣어 보니 달짝지근하고 신선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음, 훌륭해.

먹고 마시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자식은 미친 자식이야. 초능을 각성하고 며칠 만에 이렇게 되는 게 맞아? 이게 세상이야? 이게 세상이냐고?”

구스타프 새끼는 술이 약했고.

“넌 음, 그래, 넌 재밌어.”

로니는 볼만 불그스름해지고 덤덤했다.

유신은 어지간하면 안 취하는 걸 이미 알고.

장옥이는 그냥 이 시간이 재밌는지 계속 웃었다.

나 또한 이 시간이 퍽 즐거웠다.

“마셔! 먹어! 신나!”

그리고 나도 술이 약하더라고.

나흘 뒤, 우리는 몰래 가면을 쓰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전부 외박과 휴가를 쓴 채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