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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37화 (437/488)

외전 28. 100인 대련

“여기 모인 생도는 재능만 믿고 날뛰는 머저리들이 아니야.”

“그건 맞지.”

로니가 웃으며 동의했다.

“그래서?”

“너 ‘보는’ 초능 있지?”

구스타프의 말에 난 내심 무척 놀랐다. 그래도 겉으로 표를 내진 않았으나, 로니가 그걸 콕 집어냈다.

“놀랐네.”

제기랄, 불멸자의 직감 같으니라고.

나중에 미랑이랑 결혼하면 거짓말은 못 하겠구나.

무슨 말을 해도 잡아내는 불멸자의 직감 앞에서 평생 죄인이 될 바보짓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보는’이란 단어를 강조한 걸 보면 얘 눈치챈 거다.

이건 유신이한테 말 안 했는데 말이야. 밝힌 건 신속과 염력뿐이다.

“몸을 빠르게 하는 초능도 있을 거고?”

“……강유신이 말했어?”

“아니, 유신이는 관심도 없어. 다들 눈치챈 거야. 어떻게 쟤는 보는 것처럼 피하는 거지? 어떻게 쟤는 변신족도 아닌데 저렇게 빠르지? 어떻게 쟤는 염력을 저렇게 쓰는 거지? 의문으로 시작해서 탐구함으로써 알아낸 거다. 날 포함해서 대부분 생도가.”

“하.”

그래, 솔직히 말하면 초능을 개안하고 나서는 상대를 적당히 얕봤다.

뇌안으로 상대 실력이 보였으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레벨이 다가 아니라고 계속 되뇌었는데도 불구하고 얕본 거다.

나 빼고 다 바보인 줄 알았는데, 내가 바보였다.

“칫.”

절로 혀 차는 소리가 나왔다.

“삐졌어?”

로니가 물었다.

“아니.”

사나이한테 삐지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조금 실망한 거다.

그걸 다 알면서 친구라는 놈들이 말을 안 해 줬다.

구스타프가 날 보며 이마를 팔뚝으로 다시 닦고는 말했다.

“친구지만, 우린 경쟁자이기도 하잖아. 사관학교의 성적 우수자가 되는 건 내 바람이기도 하다.”

첫 번째 체험단하고 관둔다며, 자식아.

어째 관둔다고 난리 피운 뒤 멘탈이 단단해진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심하긴 했지? 하지만 너도 우리한테 감췄잖아.”

“난 말할 타이밍을 엿봤을 뿐이다.”

“그 핑계는 좀 추하네.”

로니가 껴들어 말했다.

“그래?”

“응.”

“그럼 뱉은 말을 주워 담은 거로 하자. 말 안 한 건 내가 미안.”

난 손을 들어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고, 구스타프는 웃었다.

“다음에는 나도 미리 말해 주마.”

이 자식들이랑 너무 어울렸나, 정말 말해 주고 싶었다. 혹시나 내가 새로운 능력이 또 나타난다면 말이다.

하지만 벌써 트리플이다.

거기에 초능 능력에 적응하는 속도는 빛과 같다.

“염동 충격파 무지 연습한 건데, 그걸 금세 따라 하냐?”

구스타프가 이리 불만을 내뱉을 정도로.

“맞을 것 같으니까 되더라고.”

“후, 넌 진짜.”

말하다 말고 구스타프가 다시 이마를 닦는데 그걸 보던 나와 로니가 굳었다.

“너 의무실 가야겠다.”

“응? 이 정도로 뭐? 그냥 좀 더운 거야. 무슨 땀이.”

말하며 손등으로 이마를 닦던 구스타프의 얼굴이 굳었다. 손등에 피가 흥건했다. 이마 위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레베카! 의사!”

“네, 벌써 호출했어요.”

AI가 답하고 로니가 급히 구스타프를 눕혔다.

“숨 쉬고 기절하지 말고, 피 좀 흘린다고 안 죽으니까 유언 남길 것 같은 얼굴도 하지 말고.”

로니는 냉정했다. 곧 대련장 안으로 사관학교 관리인 몇이 들어왔다.

“위험하진 않다. 하지만 치료 캡슐에는 들어가야겠군. 그럼.”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구스타프를 들것에 실어 갔다.

관리인 중 하나가 변신족인지 한 손으로 들것을 들었다.

다 떠나고 로니와 둘이 남았다.

슬쩍 돌아보자 마침 눈이 마주쳤다.

이거 분위기가 좀 묘한 것 같은데.

로니는 평소와 다르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말할까 말까 하는 그런 뉘앙스가 물씬 풍겼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난 반사적으로 분위기를 읽어 냈다.

허, 이거 참.안 되는데, 고백하면 곤란한데.

하, 나한테는 정미랑이 있단 말이다.

이놈의 인기.

이런 문제는 어디에 상의할 수도 없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인기 따위는 없었을 테고.

할아버지는 진즉에 할머니에게 반해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런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린 사람이 가족 중에 없다.

거참 곤란하네.

우물거리기에 먼저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구스타프가 저렇게 된 마당에 할 말은 아닌데.”

“아닌데?”

여자가 하는 말의 마지막을 따라 해 주는 건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다고 했다.

좋은 말로 타일러서 마음을 접게 해야 했다.

“대련 마저 할까?”

……대련? 고백 아니고 대련?

“싸워 줄 거지?”

그걸 왜 볼을 붉히면서 말하냐?

“그래, 그러자.”

어쩐지 김이 빠졌다. 난 로니와도 싸웠다. 뇌안으로 보니 얘도 실력이 좀 늘었다.

육체 레벨과 능력 레벨이 올랐다.

구스타프도 그러더니.

뇌안을 꿰뚫어 본 것도 인상 깊었다. 그걸 전투에 써먹기까지 했다.

내 시야가 가려지는 걸 이용해서 몸을 숨겨 기습했다.

구스타프 자식 연구 많이 했겠어.

로니와의 전투도 내 승리였다.

예부터 불멸을 잡는 건 초능이라 하지 않았나.

즉각적인 능력 발현은 불멸자가 덤빌 엄두를 낼 수 없게 한다.

하물며 초능 중에서도 가장 범용성이 뛰어나며 물리력이 가장 우수한 염동력을 지녔으니.

“역시 불멸로는 안 되겠네.”

로니는 패배를 시인했다.

“그래.”

구스타프는 반나절을 입원한 뒤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유신의 방에 모여 맛난 음식을 해치우고 같이 어울렸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이 훈련하자.”

내가 이들을 대련장에 들였다는 거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팀원을 뽑으라고 했으니.

이 둘은 1학년 생도 중에서도 탁월한 수준의 능력자다.

그러니 당연히 팀원 스카우트로 1순위고.

이후 다른 생도가 대련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난 그 모든 대련을 거절하지 않았다.

“싸우다 죽은 귀신 붙었냐? 그걸 다 받아 주게?”

“실전은 좋은 훈련이야.”

물론 실전만으로는 몸이 망가지기 쉽다. 능력의 발전도 어렵고.

어디까지나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실전이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내가 모두를 쥐어 패고 싶어서 대련을 다 수락한 건 아니었다.

목적이 있었다.

팀원을 모으기로 했으니, 옥석을 가려야 하지 않겠나.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벼랑 끝에 내몰 필요가 있는 법이었다.

“슈트 착용 안 하면 안 한다.”

내가 말하자, 몇 명은 다시 오겠다며 돌아섰고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슈트를 입으라는 건, 작정하고 때려 부수겠다는 거다.

기세에서 밀리는 놈들이랑은 놀아 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이들보다 남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중에 염동력자가 내 뇌안의 맹점을 파고들려고 했다.

그러니까 구스타프가 했던 짓을 똑같이 하더라고.

염동력을 넓게 펼쳐 눈을 가리고 날 잡으려고 한 거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간단하다. 능력이 발동되어도 제 주변은 비워 놓기에, 신속을 발동.

땅을 차고 놈에게 바짝 붙어서 턱을 후려쳤다.

뻑!

슈트의 방어력으로 견디지 못하게 염동력까지 실었다.

그거로 기절이다. 아니, 턱뼈가 깨졌다.

“입원입니다.”

의사가 대련장에 또 왔다.

그 뒤에도 계속 싸웠다.

다음은 혼혈이었다.

불멸과 변신 혼혈, 아버지와 같다.

꽤 매서울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본래 혼혈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 피가 전부 진하게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주 특이한 이레귤러였을 뿐이다.

혼혈 생도는 불멸보다는 변신 쪽에 가까웠다. 재생력을 보조로 사용하고 감각 강화는 버리는 편이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걸 다 말해 주는 이유가 뭐냐?”

갑자기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도 안다고. 너 보는 능력 하고 염동력, 그리고 육체 강화까지.”

난 짧은 대화를 통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몸이 단단한 건 단련했기 때문이지, 육체 강화 초능이 아니다.

초능은 오롯이 속도에만 국한된 능력이다.

그런데 상대는 내 몸이 단단한 것도 초능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건 오롯이 어릴 때부터 해 온 훈련 덕인데 말이야.

“난 정정당당하게 좋다.”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서 난 말 대신 행동으로 몰래 후리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려 줬다.

얘가 말하는 사이에 주변에 염동력으로 덫을 놨다.

슈트를 입은 혼혈 변신족은 그래서 변신도 하기 전에 양다리가 부러졌다.

“이런 개씹, 치사한 새끼가?”

“극찬 감사하고.”

세 번째로 의사가 왔는데 계속 같은 사람이었다.

“수고하십니다.”

번번이 오는 것 같아 인사를 건넸다. 의사는 날 보더니 말했다.

“수고할 일을 너무 자주 만드는데?”

눈매가 매서운 사람이었다. 난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손해일 것 같았다.

네 번째 상대는 변신족이었는데, 끝내 변신을 거부하는 생도였다.

나이는 고작 열여덟,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얘도 천재 오브 더 천재란 소리다.

각성하자마자 사관학교 입학시험에 통과한 거니까.

“너 왜 변신 안 하냐?”

날 쫓다가 염동력에 신나게 두들겨 맞으며 뻗은 변신족 동생 생도가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후, 헤엑, 흐윽, 안 해요, 변신.”

그러니까 왜 안 하는 건데?

뇌안으로 보니 변신족 능력 레벨이 상당히 높았다.

내 초능 레벨이 그동안 발전해서 50에 육박하는데, 이 자식 변신족 잠재 육체 레벨이 대략 50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변신족 생도를 표본으로 봤기에 변신 전후로 레벨 차이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크게 차이가 나면 두 배, 대략 1.5배 정도는 레벨이 늘어난다.

이 친구의 변신 전 레벨은 30.

그러니 변신 후 최소 수치가 50이다.

그런데 끝내 변신을 안 한다.

이래서는 신속을 발동한 날 잡긴 글렀다.

변신족 친구는 바닥에 누운 채로 숨소리만 쌕쌕 뱉었다.

염동력 창이 슈트를 찢고 관통하는 바람에 배에 구멍이 나서 일어나서 덤빌 순 없었다.

변신하지 않는 거 빼고는 전부 합격점인데.

참 희한한 놈이다.

바닥에 피가 고인다. 어린 변신족 생도는 피 묻은 손으로 당구공처럼 바짝 짧게 자른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죽어도 안 해, 변신.”

이 자식 트라우마가 있나?

변신 안 하는 거 외에도 이상한 짓을 하긴 했다.

목을 움츠리고 싸웠고, 향수 냄새가 많이 났다.

“으으윽.”

끝내 변신족 생도는 눈물을 흘렸다. 사관학교 생도는 미완이다. 이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기다.

그러므로 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애처럼 울다니.

“혜림아, 보고 싶다.”

그리고는 애타는 말을 내뱉었다. 그 타이밍에 의사가 왔다.

“배를 뚫어 놨네?”

의사가 한마디를 툭 내뱉더니 곧바로 응급조치를 취했다. 상처 부위를 막고 곧바로 이송이다.

그는 날 보더니, 한마디를 읊조리고 떠났다.

“십팔, 개 남았다.”

뭐가?

“급속 치료 캡슐이.”

의사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만 두들겨 패라는 걸까?”

떠나는 그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로이가 답했다.

“그런 것 같은데?”

하지만 어쩌나, 애들이 자꾸 덤비는걸.

그리고 팀에 합류시킬 레벨 정도를 확인하려면 나도 과격한 테스트를 해야 하지 않겠나.

난 부지런히 대련에 임했다.

캡슐 열여덟 자리를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그사이 회복되어서 나가는 생도가 있을 테니, 로테이션이 잘 돌아가면 될 것이다.

안 되면 학교 차원에서 더 갖추면 될 거 아닌가.

이건 어디까지나 대련 중 사고니까.

난 마법사의 갈비뼈 여섯 대를 부러뜨렸고.

고속 재생이 가능한 불멸자의 사지를 잘랐다.

대련은 나한테도 도움이 됐다.

내 레벨도 덩달아 올랐다.

끊임없이 도전장이 날아왔고 그 와중에 수업에도 참여해야 했다.

남는 시간에는 훈련에 힘썼다.

구스타프를 굴리고, 로니와도 뒹굴었다.

시간은 쏘아진 화살과도 같다고 했던가.

수업과 훈련, 대련을 병행하고 있자니 정말 쏜살같이 시간이 갔다.

그렇게 1학년을 마무리하는 나날이 다가오는 중.

변신족 생도가 또 대련을 요청했다. 열여덟 살의 아직 여물지 못한 영혼이 다시 날 찾았다.

“또 변신 안 할 거면 덤비지 마라.”

그냥 싸우는 건 시간 낭비다.

“할 거예요. 이번에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하는 게 귀여운 친구였다.

그런데 왜 자꾸 목은 움츠리고 있는 건지.

“시작하기 전에 뭐 하나만 묻자.”

“네.”

“혜림이는 누구냐?”

“……약혼자요.”

열여덟이 무슨 약혼?

“약혼?”

“결혼할 사이니까요.”

“집안에서 합의한 그 약혼?”

“……집은 아니고 제가 그렇게 정했어요.”

“자식아, 여자가 원하지 않는데 덤비면 범죄야.”

변신족은 본능을 컨트롤해야 한다. 지금 귀엽게 구는 이 친구도 변신족이다.

수틀리면 본능의 노예가 된다는 거다.

“그런 거 아니에요.”

말하며 볼을 붉힌다. 어째, 왜 동질감이 들지?

“소꿉친구인데, 걔는 일반인이라서. 하여간 결혼할 거고요. 그건 상관할 바 아니잖아요?”

“혜림이도 그런 네 마음 알고?”

“알아요. 졸업하면 결혼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전 조기 졸업할 겁니다.”

새끼가, 형 감동받게.

이제 보니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순정파 변신족이다.

난 눈앞의 변신족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 동질감을 넘어 당위성이 생겼다.

그래, 너로 정했다.

난 이 친구를 남기주 아저씨가 말한 팀의 팀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친구가 세 번째였다.

진즉에 약속한 첫 번째는 로니고.

두 번째는 구스타프였다.

“이제 재주 좀 볼까?”

그 말에 순정파 변신족이 움츠렸던 목을 폈다. 그러자 목이 쭉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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