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4.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진짜.”
누군가의 탄성으로 시작되어.
“그 와중에 얼굴은 왜 잘생겼는데.”
“하, 이건 뭐.”
“대체 언제부터 초능 특수종이었냐고.”
“다 가져라. 씹, 네가 다 가져.”
모두가 감탄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기 실기 시험 수석.
이게 과연 쉬운 일일까.
절대 아니었다.
초능을 발현한 것 또한 놀랄 일이었음에 분명하고.
다만, 고작 초능 특수종 각성만으로는 이리 놀라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그건 이미 이전에 만났던 다른 교수의 반응에서 보지 않았나.
이들이 놀라는 건, 내가 그냥 각성도 아니고 다른 특수종을 압도한 수준의 능력 효율을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교수진 중 하나가 놀라서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대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감탄을 대신한 질문이지.
그중에는 노총각 변신족 교수도 있었다.
“야, 그냥 초능 특수종이라며? 넌 쟤 확인도 안 하고 뭐 했냐?”
괜히 조교만 대차게 까였다.
그럼에도 조교는 억울한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묵묵히 죄송하다고 할 뿐이다.
난 슬쩍 본 그의 얼굴에서 부처를 보았다.
너는 떠들어라. 난 듣지 않을 것이니.
반야바라밀다.
그는 초탈했다. 표정이 그를 대변했다.
어쨌든 난 놀란 이들을 이해한다.
특수종 사관 학교.
한국에 있는 이 학교의 위용은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세계 굴지에서 유학을 보내는 초유의 특수종 교육 기관이므로.
그런 곳에서 1학년 전후기 시험에서 수석을 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도 뜨내기, 일반인, 아버지 뒷배로 들어온 천둥벌거숭이가 그리했다면?
“말도 안 돼!”
초능 특수종, 육체 강화 계열 교수가 말했다.
교수는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교양과 품위를 잊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날 빤히 바라보며 그럴 수 없다고 연신 말하고 있다.
“늦은 각성이잖아. 염동이 아무리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해도 그게 그렇게 쉽게 늘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재능의 문제가 아니지 않지 않나? 근데 왜 초능이야? 변신이나 불멸이어야지?”
중얼거리는 걸 들어 보니, 상태가 가히 좋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너무 놀란 거다.
자신이 상상한 범주 밖에서 일어난 일 덕분에.
그래도 계속 그렇게 놀라시면 앞에 선 내가 좀 무안할 수 있지 않나.
다른 교수의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도 이리 중얼거릴 뿐.
“그, 어, 세최특의 아들은 세최특의 아들이구나.”
물론 교수만 놀란 건 아니다.
“젠장!”
동기 중에는 괜히 화를 내는 놈도 있었고.
“너 진짜.”
“꿈인가?”
순수한 놀람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여자 생도의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반칙이야, 얼굴이.”
“몸도 반칙이던데.”
음, 그런가?
변신족과 대련하며 옷이 좀 찢겨서 지금 난 상의 탈의 상태였다.
덕분에 가혹한 훈련으로 만들어진 몸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오밀조밀하고 꽉 짜인 근육의 향연.
이 정도로 몸을 만들지 않으면 일반인 수준의 육체 능력으로는 불멸과 변신을 못 따라잡는다.
이건 최소한의 조건이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복근, 복근이다.”
“아, 만져 보고 싶다.”
“야, 나도 복근 있는데.”
감탄하는 여자 동기 옆으로 다른 남자 변신족이 말했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니, 친근해 보이는 여자 동기가 말을 받아 주긴 했다.
“복근의 완성은 얼굴이야.”
그런가. 복근의 완성은 얼굴인가.
난 수수하게 찢어진 옷을 챙기다가 못 쓰겠다 싶어서 한쪽에 던졌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대련장 밖으로 나와서 놀란 교수와 동기 사이를 지나치며 유유히 걸었다.
“……왜 멋있는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슬쩍 보니 초능 특수종 여자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그래.
백난희.
몸에서 꽃향기가 나는 친구였다.
능력은 버닝 핸즈.
손만 닿는다면 어지간한 건 다 녹이는 열화 능력자다.
하지만 내 마음의 빗장은 고작 불타는 손으로 녹일 수 없기에.
눈길 한번 안 주고 지나쳤다.
침묵이 내려앉는다.
고요한 가운데 터벅터벅 내 발걸음 소리만 울렸다.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풀썩 쓰러질 정도로 혹사한 건 아니었다.
이전 체험단 경험을 통해 나도 배운 게 있었으니.
능력을 효율적으로 쓰고 배분하는 법이다.
덕분에 걸을 만했다.
그러니 자연히 주변 반응을 즐길 만했고.
나도 내가 이런 거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모두의 주목을 받고 걷는 이 길.
새삼 ‘행복’이란 두 글자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미랑을 향한 여정에서 얻은 작은 인기에 새삼 뿌듯했고 즐거웠다.
특히나 날 보고 저런 눈빛을 보내는 여자가 많아지니, 참으로 즐겁지 않나.
본래도 얼굴값 한다고 이런 종류의 눈빛을 처음 받아본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그저 구애나 흥미, 호감을 넘어선 그런 눈.
하물며 지금 이 자리의 누구도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지 않는다.
지금 난 세최특의 아니라, 온전히 유온신으로 서 있는 것 같기에.
그게 더없이 기뻤다.
심장이 뛰었고 피로감은 곧 기분 좋은 노곤함으로 변했다.
그리 주변을 둘러보는 중.
훅하고 콧김을 뿜으며 날 보고 눈을 빛내는 아저씨 하나가 보였다.
그 눈빛은 집요했고 날카로웠으며 몹시 반짝거렸다.
길을 걷다가 돈 가방이라도 주운 눈 같은데.
근데 길에서 돈 가방 주웠다고 날름하면 안 돼요. 아저씨.
그거 점유물 이탈 횡령죄라고.
한국처럼 CCTV가 곳곳에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그 이상형을 본 것 같은 눈길을 거둬 줬으면 하는데.
염력으로 눈을 감겨 주고 싶은 그런 눈빛이었다.
다 큰 아저씨에게 저런 눈빛을 받고 싶진 않았기에 그 눈을 외면하고 걸으니, 옆으로 로니가 살짝 붙는다.
“좋아?”
얘는 대뜸 무슨 말인지.
“여자애들이 꺅꺅 하는 거 보니까 좋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말인가.
여긴 특수종 사관 학교.
전 세계에서 난다긴다하는 특수종이 모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 무슨 꺅꺅거리는 여자애가 있단 말인가.
“날 가져, 유온신. 반했다. 꺅.”
있었다.
변신족으로 보였다. 이름이 유지영이었던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변신체는 사자다.
암사자 유지영 하면 1학년 생도 중에서는 꽤 유명했다.
차갑고 냉정한 변신족이라고.
근데 지금은 마지막에 꺅 소리를 일부러 내며 양손을 뺨에 갖다 댄다.
애가 왜 이러나 싶다.
“오빠,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유지영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른 특수종 생도도 중얼거린다.
난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로니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담담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무슨, 좋기는.”
난 겸양을 보였다. 인간관계가 그렇다. 겸손이 필요한 법이다.
“입꼬리가 웃는데?”
“응. 이 자식 너무 좋으면 눈을 천천히 깜빡임, 버릇이다.”
로니의 말에 유신이 끼어들고.
“빌어먹을, 다음에 또 붙어.”
친구가 되기 전에는 찌질이 같다가 이후에는 순딩이, 체험단이 끝났을 때는 좌절에 빠져 있던 구스타프가 이제는 호승심을 불태웠다.
이 새끼 변덕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수준이다.
거, 나중에 너랑 결혼할 여자가 불쌍하다.
이 변덕을 맞춰 주려면 보통 성격으로는 어림도 없을 터였다.
“저거 못 들은 척하는 건 곤란해서 그런 거다.”
유신이 계속 남의 속마음을 읽어 냈다.
이래서 어릴 때부터 친구인 놈이 위험하다.
이건 숫제 내 비밀 보따리 같은 놈이 아닌가.
“아니다.”
난 진중하게 답했다. 이럴 때 좋다고 헤죽거리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특히나 날 주목하는 여성들의 눈빛이 이리 많음에야.
“풉.”
그걸 본 로니가 웃었다.
얘는 뭘 알고 웃는 건가.
어쨌든, 뜨거운 시선이 내 심장을 달군다.
난 1학년에 치른 두 번의 시험으로 내 존재를 증명했다.
무엇보다 초능을 발현함으로 특수종임을 알렸기에.
더는 천둥벌거숭이가 아니었다.
* * *
1학년 수석.
당당히 내 차지였다.
그로 인해 변한 게 있었다.
일단 대우다.
“유온신 군이 내 수업을 들었었나?”
교수 중 대다수가 날 보고 아는 척을 해 왔다.
“이제 땡땡이는 물 건너갔네요.”
상황을 파악한 레베카가 배를 잡고 웃는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자식은 진짜 날 놀리는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손을 썼나?
다른 교수도 대부분 호의를 보였고.
정직이 삼촌은 아예 따로 날 부르기도 했다.
“난 알고 있었다.”
그런 것 같더라고.
어째 수업이 내 현 상황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았으니까.
“아버지가 부탁했어요?”
내가 대뜸 말했다. 카페테리아 앉은 채로 날 보던 정직이 삼촌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네 아버지 부탁이었으면 손도 안 댔을 거다.”
말하며 진저리를 친다. 그러며 계속해서 말했다.
“네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날 얼마나 괴롭혔는지 아니? 후, 그 시절만 생각하면 아주, 지금도 그때 악몽을 꾼다. 그런데 네 아버지 부탁은 무슨! 순수하게 이 삼촌의 호의다.”
후루룩.
온기가 식지 않은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며 난 생각했다.
지금 정직이 삼촌이 욕하는 그 아버지가 누구의 아버지인지는 알고 하는 말일까 하는 생각.
내 아버지의 욕을 눈앞에서 하는 삼촌이라니.
그런데 하도 어릴 때부터 들어서 그러려니 했다.
이걸 알면 분명 아버지가 정직이 삼촌에게 대련하자고 부를 테니, 이걸 알릴 생각도 없었다.
가끔 둘의 대련을 보곤 했던 나로서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말실수 조금 했다가 사람을 지옥 구렁텅이로 밀어낼 순 없지 않나.
대련 때마다 전신이 멍들어서 대련장에서 기어 나오는 삼촌을 보곤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가끔은 내가 나서서 말리기도 했다.
아버지께 그리 몸을 풀고 싶으면 나랑 하자고 말한 거다.
그때마다 정직이 삼촌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날 안았다.
“너밖에 없다. 우리 온신이.”
핫초코의 당분과 온기가 전신을 채우는 잠깐 사이 떠오른 생각을 접으니, 삼촌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날 보고 있었다.
“학교생활 중에 무슨 일 있으면 삼촌한테 말해라.”
“네.”
그 뒤에도 날 찾은 사람은 몇 있었다.
정아 이모가 와서.
“넌 왜 불멸이나 변신이 아니고 초능일까?”
“저도 그게 궁금하긴 합니다. 혹시 저 양자입니까?”
“아니, 임신과 출산까지 다 봤는데, 넌 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이 맞다.”
그래, 그건 아닌 것 같더라.
집에 가 보면 내 어린 시절 앨범이 나이 별로 정리되어 있더라고.
마음이 힘들었을 때, 그 앨범이 힘이 되곤 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뭐라고 불리든.
어머니가 어떤 위치에 있든.
두 분의 사랑이 온전하게 느껴졌기에.
홀로그램 앨범 안에 있는 두 살배기의 나는 아주 활짝 웃고 있었다.
“네 능력은 잘 봤다. 그래도 너무 앞서 나가려고 하지 마라. 한 술에 배부르려고 하지 말고.”
정아 이모는 투박하고 차가운 말투로 따뜻한 걱정을 남겼다.
난 그게 퍽 이모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단번에 나아가지 말고 천천히 차분히 가자.”
그래요. 알겠어요. 이모.
난 수수하게 그 걱정을 받아들였다.
지금 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이분들은 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본다는 걸.
내가 이리 능력을 보였어도 그 눈길이 변하진 않는 거지.
삼촌과 이모를 만나는 중에 집에서도 전화가 왔다.
“집에 한번 오지, 아들?”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