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3. 제 아비한테 제대로 배웠어.
특수종 사관 학교의 후기 시험에는 스폰서나 구경하는 눈이 적다.
재능은 보았고 학교 내에서 알아서 키워 줄 테니 이제는 그 이후가 궁금하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기에 그렇다.
물론 단시간에 월등히 실력이 돋보이는 특수종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 드물지만, 아주 가끔은 있었다.
재능이 터진 특수종이.
그리고 그런 이들을 보기 위해 남아 있는 이들도 있었고.
효율적인 업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특수종의 변화를 관찰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협회장의 조카라는 이유로 가진 바 능력과 비교해 천대받는 초능 협회 직원이 있었다.
남기주는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그만큼 놀랐다. 손에 쥐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바닥으로 주르륵 흘렀다.
까만 액체가 쏟아져 흰 스니커즈에 튀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려 기울어진 종이컵을 바로 들었다.
이 모든 건 지금 시험장에 나선 유온신이란 친구 때문이었다.
특수종 생도 1학년 때에만 이뤄지는 전기 시험과 후기 시험.
전기 때는 보는 족족 상대를 적절하게 때려눕힘으로 일반인이 훈련만으로 특수종을 궁지에 몰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더니.
이제는 그보다 더한 걸 보여 주지 않나.
벅벅 눈을 비벼도 상황은 그대로다.
남기주는 자신의 능력 ‘탐닉안’을 발동했다.
이름이 거창한 것에 비해 그가 가진 초능은 한 가지 능력에 국한됐다.
모든 초능이 스펙트럼 색으로 보이는 거다.
보통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그 강도를 파악하고 힘의 영향력은 색이 미치는 범위로 판단한다.
그 덕분에 가까운 이들은 그의 능력을 무지개 눈깔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에 노랑으로 시작해, 녹색, 파랑을 지나 남색의 빛을 보이는 염동력이 있었다.
‘0등급!’
염력을 타고났다고 해서 다 같은 염동 능력자가 아니다.
힘의 농도에 따라 구분이 되는 법이었다.
자신이 가진 근력만큼 능력을 발동할 수 있으면 3등급.
제가 가진 근력의 2배 이상의 염동력을 쓸 수 있으면 2등급.
그리고 2등급 이상의 염력과 그와 별개로 염력 조형이 가능하면 1등급이다.
최소 승용차를 들어 던지는 수준에 그걸 일정한 형태로 조형해야 1등급이 된다는 거다.
사관 학교에 입학한 1학년 염동력자가 대부분 2등급인 이유다.
이 중에서 교육을 통해 염동 조형술을 익혀야 1등급 염동력자가 되는 거고.
이 정도 수준의 염동력자가 모인 것도 특수종 사관학교라는 특수성 때문이지.
보통은 간신히 2등급에서 멈추는 게 대부분이다.
현재 1학년 내에서 가장 주목받은 염동력자는 순도 높은 1등급을 지닌 구스타프.
그의 능력 빛깔이 파랑이었다.
협회가 정한 기준에서 보자면 초록만 돼도 1등급인데, 구스타프가 파랑이다.
그런데 지금 세최특의 아들이 보인 능력은 짙은 남색을 뿌리는 것도 모자라, 범위 또한 넓다.
거기에 염동 조형이 가히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그의 눈에는 색으로 변해 움직이는 염동력이 보였다.
1등급 위에 0등급을 놔둔 이유는 명확했다.
때로는 한계 이상으로 능력을 타고난 이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유온신이 그랬다.
염동 에너지도 차고 넘치면서 그 능력을 조형하는 능력도 자로 잰 듯 정확했고 명확했다.
“와.”
남기주는 절로 감탄을 터트렸다.
전기 시험 때는 아무 능력도 안 보였다고 하던데.
그럼 지금까지 저런 능력을 숨긴 거였던가.
과연 세최특의 아들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건 주변 모두의 생각과 같았다.
“아니, 저게 음.”
“말이 되나?”
“초능이라고? 세최특의 아들이 초능이야?”
“그 소문이 진짜라고?”
한때 온신이 초능 특수종이란 소문이 잠깐 돌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그렇게 온신은 제 능력을 선보였다.
그것도 연신, 수없이, 계속.
* * *
“흥! 알면 안 당해!”
대련장에 올라온 불멸자가 눈가를 떨며 말한다.
긴장한 게 다 보인다. 이 친구야.
온신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투를 빈다고 말하고 싶은데, 좀 전에 그리 말했다가 놀리냐고 꽥 소리를 지르는 동기를 보았다.
굳이 오해를 살 만한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테니.
온신은 말을 아꼈다.
“무시하는 거냐?”
이 미친 동기 새끼들은 입을 열면 놀리냐면서 난리 피우고 입 다물면 무시한다고 시비를 거네?
“아니, 최선을 다하는 중인데?”
“빌어먹을 놈.”
불멸자답게 속삭임으로 답을 한 동기가 몸을 웅크리더니, 어깨를 흔들었다.
오, 기척 흩날리기.
훌륭했다.
양쪽에서 다 짓쳐들어오는 것으로 보였으니.
지금이라도 좌우 어디서든 튀어나와 단숨에 덮칠 것 같았다.
처음 변신족을 상대할 때 쓴 기술은 ‘덫’이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달려들면 그대로 엉키는 염력의 그물을 앞에 뿌려 놨다.
상대는 초능을 가늠할 본능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보이지 않는 그물을 피할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염동력자라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일 테니까.
그래서 먹혔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좌우로 어깨를 흔들던 불멸자 친구는 곧 방향을 정해 뛰었다.
위였다.
팍.
위로 뛰더니,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꽂혔다.
영리한 움직임이었다. 좌우로 튀어 나갈 것처럼 굴더니, 위를 노린다.
보통 초능 특수종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에 가까우니, 단련한 불멸자라면 능히 신체 능력으로 초능력자를 압도할 수 있다.
그런데 친구야, 전기 시험 때 내가 신체 능력 하나로 먹고살았는데.
그걸 잊은 거니?
뇌전력이 상대의 능력을 가늠하고.
염동력은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이보다 더 쉬운 싸움은 없다.
기척 흩날리기?
“불멸자의 기척 죽이기는 좋은 기예지만, 실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느껴지든 말든 거기에 있다는 거지.”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불멸자를 상대하는 법도 종종 알려 주셨다.
지금 떠오른 말처럼 기척 죽이기는 그들의 실체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므로.
방사형으로 퍼진 염동의 타격을 막을 수 없음이다.
좌우로 흔들고 위에서 찍어 누르는 동기의 복부를 뻥 하고 둥근 형태의 염력이 때렸다.
“꺽!”
불멸자는 직감을 타고나기에 이미 염력이 다가오는 걸 느꼈을 테지만, 공중에 뜨면 피하는 건 어렵지.
전투 경험이 별로 없어서 생긴 문제라고 본다.
그러니 다음 수업은 백전노장 들으렴.
백전노장은 백 번의 전투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수업이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수업이라 골이 아프지만, 들어서 나쁠 건 없더라.
내가 들어 봐서 안다.
“다음?”
염동을 발동한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놀란 동기 무리 사이.
몇 차례 대련이 지나쳤다.
하다 보니까 후기 시험이 무슨 유온신 레이드가 되어 버렸다.
내가 보스 몬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염동력은 순간 발동 능력이다. 그러니 막을 생각하지 말고 힘으로 뚫으면 돼. 순혈 변신족이면 할 수 있다.”
“애초에 염동력이란 보고 느끼는 곳에 발동하는 거니까, 기척을 완벽히 감춰서 뒤를 잡으면 될 것 같은데?”
둘 다 맞는 말이었다.
하나는 변신족 중에서도 상위 성적을 기록한 동기였고.
다른 하나는 봄의 꽃, 로니의 말이다.
아니, 너도 나 잡는 레이드 파티에 들어갔니?
“그것도 아니면 같은 염력으로 상쇄한 다음에 육탄 돌격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마지막은 구스타프다.
어제까지 유신이 방에서 함께 놀고먹고 마셨으면서 이런다고?
물론 저들에게는 내가 초능을 발현했다고 이미 말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이런저런 해답을 준비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시험해 봐야겠는데?”
그리고 다음 상대가 로니였다.
로니는 자신이 말한 이론을 그대로 실현했다.
대련장에 들어서자마자 모습을 감춘 거다.
근데 진짜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불멸자의 기척 죽이기는 사기다.
어떻게 들어오자마자 사람이 없어진 것 같냐?
순간 착각이 들었다.
로니는 아직 밖에 있고 대련은 시작하지 않은 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충실하게 반응했다.
뇌전력의 눈이 로니가 흘린 흔적을 쫓는다.
푸른 뇌전이 허공에 파직거리며 남았다.
로니의 말이 맞았다.
염동력은 보지 않는 곳에 발동할 수 없다.
약점 중 하나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그 약점을 해소할 수도 있다.
앞을 보며 염동의 벽을 만듦과 동시 좌우로 시선을 돌리며 같은 짓을 반복.
삼면을 염동의 벽으로 막는다.
이 모든 걸 1초 내외로 끝낸 뒤, 이후 뒤로 돌아서서 같은 짓을 하니.
뻑!
로니의 진심 펀치가 허공에 막힌 게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팔 근육을 보며 얘도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음을 알았다.
쫙 쪼개진 전완근이 제 존재감을 보였다.
미소만 보이고 다니는 거 보면 영락없는 공주님인데 말이야.
아, 얘 공주님은 맞구나.
“아깝네?”
내가 말하고.
로니는 미소 대신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설마 날 때릴 건 아니지?”
아, 마음 약해진다. 로니는 예쁘다. 미랑이만 아니라면 홀라당 넘어갔을 미인에다가 성격도 좋다.
다른 여자가 본다면 불공평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타입이다.
예쁜데 성격도 좋으면 어쩌란 거야.
그 와중에 능력도 좋으니.
그런 로니가 처연한 눈빛으로 묻는다.
그리고 난.
“난 프로야.”
염력으로 묵직한 주먹을 만들어 복부를 올려 쳤다.
뻑!
“끅!”
로니는 신음을 삼키며 바닥을 굴렀다.
그 위로 다시 염동력을 조작.
“내리찍어라. 거인의 발.”
위에서 밑으로 지름 2m의 염동력의 발을 만들어 내리쳤다.
꽝
!로니는 얻어맞았음에도 한쪽으로 굴러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으나, 이후 반격은 할 수 없었다.
어쩌겠나. 피한 직후 사방에서 염동력의 칼날이 들이밀고 있는데.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야비한 새끼.”
“저 로니를, 우리 로니를, 개자식.”
“고추도 없는 새끼.”
사방에서 날 향한 원망이 들려왔다.
그런데 마지막은 좀 아니지 않냐?
그건 있거든?
그 얘기를 한 놈은 강유신이었다.
말하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는 꼬락서니가 몹시 꼴 보기 싫었다.
저건 이번에도 광속 탈락의 길을 걷고서 저러네.
이 정도면 학교에서 알아서 내보내 줘야 할 수준이지만.
어떻게 그럴까.
이 학교를 지원하는 큰 손 중 하나가 유신의 아버지인걸.
“다음?”
구스타프가 그다음 다음 상대였고.
이 자식이 염동력을 마구잡이로 발동해 주변 공간을 자신의 능력으로 채우려고 하길래.
난 염력을 작게 압축해서 주먹 반만 한 걸 만들어 턱을 때렸다.
한 방으로 끝이었다.
예상하기가 힘든 타입의 공격이긴 했다.
염력의 압축, 염력 밀도라는 개념이 들어간 거니까.
이 수준으로 염력을 다루는 건 아직 구스타프가 해 보지 못했을 터였다.
눈이 돌아가며 기절한 구스타프 아웃.
마지막 대련 상대가 변신족이었는데.
이쯤이면 내가 이 친구 이름을 외워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너 이름이 뭐냐?”
“……아직 내 이름도 모른다고?”
1학년 변신족 중 최강이며, 이후의 뒤를 잇는 남자고 백 개의 팀에 들어가는 것이 내정된 특수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뭐라는 건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콧김을 뿜는 변신족 동기는 꽥 소리를 질렀다.
“이름은 아무한테나 물어봐도 알 거다!”
아니, 내가 너 이름 모른다는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하고 기분 상할 일은 아니잖아.
우리가 뭐, 썸을 타던 사이도 아닌데.
“크르르렁!”
변신족의 염동력 부수기 1장.
아, 이거 나도 할머니한테 배웠는데.
“힘을 기르렴. 힘으로 안 되는 일은 내 힘이 부족하지 않나 먼저 고민하고.”
나도 변신족이 되었다면 저리했을 것이다.
염동의 방패를 겹겹이 놓고 그물까지 쳤지만, 이름 모를 변신족 친구는 번번이 다 뚫고 들어왔다.
다만, 변신족 특유의 단순함인지 절대로 옆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롯이 정면 돌파다.
그럼 안 된다니까 그러네.
아무리 전신에 힘을 준다고 해도 변신족 기예인 강체를 발동한다고 해도.
빈틈은 있다. 약점도 있다.
난 그걸 활용했다.
단순하다. 달려드는 타이밍을 보고 발을 염동력으로 낚아채거나, 발을 디딜 곳에 무형의 압력을 만들어 디딜 곳을 높인다.
턱, 틱.
그런데도 타고난 운동 신경 덩어리인 변신족은 균형을 잡고 버티지만.
이미 돌격하는 속도는 반감됐으니.
이 시점에서 내 승리라 할 수 있었다.
* * *
‘전략이 훌륭하다.’
시험을 지켜보던 이중봉은 감탄했다.
말로 상대의 속을 뒤집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었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으로 도발을 완성하다니.
‘제 아비한테 제대로 배웠어.’
남의 속 뒤집는 거야, 세최특의 숨겨진 기예이자, 특기다.
마지막, 중심을 잃은 변신족을 도망 다니며 연신 두들긴다.
염력으로 발 받침을 만들어 허공을 달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온신의 초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끝내 변신족의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싸움이 끝났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훌륭하다.’
개인의 전략도 그렇고.
가진 바 능력도 그렇다.
모든 게 예상외였다.
그리고 중봉은 그게 못내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