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0. 그녀는 화끈했고 직설적이었다.
특수종 사관 학교라고 해서 가혹한 훈련만 있는 건 아니었다.
후기 시험, 흔히 기말고사라 불리기 직전에 사관 학교는 축제를 열었다.
일반 대학처럼 주점을 열거나 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벤트는 있었다.
초청 가수나 아이돌이 오기도 했고 댄스 타임도 있었다.
평소에는 허용되지 않는 주류를 어느 정도 마셔도,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취할 때까지 마시는 놈은 없다.
사관 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기록으로 남으니까.
그러니 축제라고 해서 또 모두 다 나와 노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다들 적당히 어울리고 평소보다 조금 풀어지는,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난 이번 축제에서 노리는 바가 있었다.
댄스 타임이다.
미랑과 단둘이 춤을 추며 전교생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 여자가 내 여자라고.
그리고 내 계획은 초장부터 잡쳤다.
“작전?”
“응, 그렇다는데.”
소식은 유신이 들고 왔다.
미랑이 축제 때 학교에 없다는 거였다.
2학년 중에 몇 명이 실력을 인정받아 특수종 임무에 차출되었다고 한다.
그중에 미랑이 껴 있고.
그럼 뭐, 나도 축제에 볼일은 없었다.
“온신아, 사관 학교는 낭만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내 옆에서 유신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얘는 또 왜 이러나 하고 쳐다보니.
“축제하면 당연히 주점도 열고 노점 식당도 열고, 그 맛 아니냐?”
거듭 말하지만, 사관 학교에는 그런 낭만이 없다.
이번 체험단 사건이 그걸 증명하지 않았나.
이곳은 죽이거나, 죽지 않기 위한 훈련을 받는 곳이라는 걸.
그러니, 축제 같은 시시껄렁한 짓을 하며 낭만을 찾긴 어려웠다.
애초에 축제라는 개념이 생긴 것도 외부인이 와서 사관 학교를 구경하라는 취지로 만든 거라고 알고 있고.
그러니까 우리의 현 위치는 대학생이 아니다.
훈련병에 가깝지.
“아쉽다. 난 무척 아쉬워.”
“슬슬 아버지한테 말하고 자퇴해야 하지 않겠냐?”
낙제생 강유신.
수업을 듣길 하나, 시험을 잘 보길 하나, 그렇다고 실기 시험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였나.
유신은 낙제생이었다.
그런데도 학교에 붙어 있다.
그런 상황을 아는 내가 말하니, 유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땅이 꺼질 것 같았다.
“말했는데, 내 마음대로 자퇴하면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하시더라.”
유신은 몹시 우울해 보였다.
난 그런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힘내라. 이제 가 보고.”
“그게 끝?”
아니, 훈련하는 곳에 와서 10분 시간 내줬으면 됐지 뭐.
물론 내가 먼저 부르긴 했다.
미랑이 누나 위치랑 일정 좀 파악해 달라고.
대가로 이 정도로 투정 들어줬으면 된 거다.
난 오늘도 우정을 지켰다.
“말을 말자. 미친놈아.”
유신이 밖으로 나갔다. 난 그런 친구의 뒤통수에 대고 중지를 들어 친근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꺼져라.”
“병신.”
유신도 나와 같은 형태의 손 인사를 끝으로 나갔다.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닌 사이다.
이 정도야, 친밀함의 표현 딱 그 정도였다.
이후 난 훈련에 매진했다.
초능은 양파와 같았다. 까고 또 까도 새로운 걸 깨달았다.
응용과 적응.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이런저런 걸 시도해 보며 새로운 걸 깨닫고.
그걸 몸에 익히고 나면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배우면 배울수록 신이 났다.
본래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훈련, 그것도 가혹함을 넘어 참혹한 훈련을 받아 온 나에게 기술만 단련하는 이 시간은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온신.”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는 사이, 레베카가 날 불렀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생수병을 물고 꼴깍꼴깍 물을 마시는 참이었다.
난 눈만 들어 한 열다섯 살쯤 먹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레베카를 봤다.
“왜?”
물을 꿀꺽 삼키고 물으니, 레베카는 ‘생각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콘셉트에 걸맞은 행동을 보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죠?”
질문이었다.
본래 초반 AI는 간단한 일정 관리가 전부였다.
이후 나온 것도 질문까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십 년, AI는 크나큰 발전을 이룬 분야였다.
지금의 AI는 마스터 또는 주인이라 불리는 사용자에 맞춰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업데이트한다.
이것도 뭐 문제가 있니 마니 하고 말이 많긴 한데.
그것까지야 일개 사용자인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재밌어서.”
난 단출하게 답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물론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하자면.
“목표도 명확하고.”
이렇다.
수석 졸업, 기왕이면 조기 졸업,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그 이후라는 변신족의 콧대를 꺾는 것까지.
그러려면 먹고 자는 시간 빼고 훈련에 돌입하는 게 맞지 않나.
축제라고 해서 수업도 없으니, 훈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군요.”
AI 레베카는 오늘도 새로운 걸 배운 셈이다.
인공지능은 학습함으로 표현한다. 오늘도 그녀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온신을 두고 떠드는 건 괜찮나요? 사람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무척 약하다고 해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예시로 들자면…….”
잡다한 얘기가 이어졌다.
오늘따라 학구열이 넘치는군.
그러니까 AI가 업데이트되는 날이라고 봐도 좋았다.
소문이라.나에 관해 떠드는 말들.대부분 악평이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무관심한 유신이 나설 정도로 시끄러웠다.
체험단 일만큼이나 내가 1학년 중 최고 대우를 받은 게 큰 이슈다.
다들 인정하지 않은 분위기다.
전기 고사, 그러니까 중간 실기에서 그렇게 깨졌으면서 인정은 못 하겠단다.
이거 요즘 사회 문제가 된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요즘은 특수종의 선민의식이 큰 문제라고 들었다.
일반인보다 능력이 우월하니, 세상은 특수종의 것이라고.
특수종이야말로 신인류라는 그런 얘기다.
확실히 미친 얘기지.
개체 수 자체가 일반인은 몇십 배는 많다.
하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끝이 명확하지 않나.
특수종 전쟁을 비롯한 역사가 증명하듯 선민의식은 결국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하여간 특수종의 선민의식은 그렇다 치고.
날 향한 비난을 기반으로 하는 루머 따위는 무시할 만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정도는 생채기도 안 날 수준이라 하겠다.
내 아버지는 세최특 유광익이다.
어릴 때부터 주변의 시선을 받는 건 일상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열 살 때까지 유괴 시도만 백 번은 당한 몸이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날 취재하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았나.
고등학생쯤 됐을 때, 뉴스에서 내가 하교하는 모습이 나오는 걸 봤을 때의 황당함이란 참.
그거 도촬이라고 미친 새끼들아.
“아빠가 미안.”
그걸 보고 아버지는 영혼 없는 사과를 하셨다.
별로 신경 쓰는 눈치도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난 아니다.
한동안 꽤 힘들었다.
특히 열여덟, 변신족 각성이 되지 않았을 때.각
포털 사이트에서 내가 메인 이슈가 됐다.
[각성하지 않는 세최특의 아들.]
그게 그리도 궁금하던가.
세최특의 아들이 하는 일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알고 싶었던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마음이 다쳤다.
그때 당시 난 갖가지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려웠으니까.
우울증, 공황 장애 등이 찾아왔다.
그 시절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이 흐릿했다.
남은 기억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때 당시 난 아예 두문불출하고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대신 몸을 굴렸다.
훈련하며 몸을 굴리면 전부 잊을 수 있었으니까.
“아들, 원하면 엄마가 그런 말을 한 놈들 머리통을 날려 줄 수도 있어.”
어머니는 그 시절 참 눈물을 자주 보이셨다.
그럴 법했다. 하나 있는 아들이 자신과 남편 때문에 망가졌으니.
의외로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첫 사과 이후, 그저 시간 나는 대로 찾아와 같이 놀아 주기만 했지.
게임도 하고 등산도 하고 낚시도 하고 그랬다.
노는 걸 제하고는, 아버지는 사과도 하지 않으셨다.
그 속내야 잘 모르겠다.
그때는 그게 좋긴 했다.
그리고 그걸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반은 미랑이 덕분이었기에.
난 그녀를 마음에 품었다.
고마움과 감사함이 깊게 낙인처럼 남은 사람이다.
아마 내가 사관 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끝내 허락할 수 있었던 거에는 이런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망가진 채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당당히 살겠다고 나서는 게 몇 배는 나을 테니.
“그럴 거에 신경 쓸 시간 있으면 향수나 하나 고르겠어.”
그런 나날들이 있었기에, 지금 떠드는 건 귓등으로도 안 들을 수 있었다.
소문을 내든가 말든가.
욕을 하든가 말든가.
내 알 바 아니지.
반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진심을 섞어 말하는데, 그런 소문 따위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향수나 고르고 말겠다.
미랑이는 불멸자치고는 향에 신경 쓰는 편이니까.
무엇보다 현재 난 단련하고 훈련하는 시간에 몰입해 있으며 나아가는 중이었다.
더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기에 정말 쌀 한 톨만큼도 신경이 가지 않았다.
축제는 나흘 동안 진행됐고 사람이 꽤 많이 오갔다고 들었다.
그중에 사고도 있었다고 듣긴 했다.
신분을 속이고 들어온 사람이 열 명이 넘는다고 했던가?
여긴 특수종 사관 학교다.
보안 등급이 무척 높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곳을 속이고 들어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어쨌든 불청객의 일을 제하고 이번 축제는 전례 없이 조용히 끝났다.
일전에 체험단에서 터진 일 때문이었다.
각 학년의 생도가 풀어지는 대신 훈련에 몰두했으니.
“다들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초능 수업 중 하나였다.
교수의 이름은 소피아, 러시아 출신의 육체 강화 초능의 달인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꽤 훌륭한 실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초능의 강점은 발동 시간에 있다. 주문은 아무리 빨라도 시전 시간이란 게 있잖아? 하지만 초능은 익숙해지면 그 어떤 능력보다 빨리 발동할 수 있지.”
그리 말하며 교수의 왼쪽 팔뚝이 은회색으로 빛나다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반소매 티를 입은 교수 소피아는 능력 발동이 빠른 것의 강점과 초능을 상대하는 법에 관해 설명했다.
실제로 손짓과 발짓을 섞어 전투 예시를 들어주기도 했다.
“강점은 발동 시간과 의외성, 상대가 내 능력을 모를 때 유효하지. 약점은 단련하지 않은 초능은 쓸모가 없다는 것과 궁합이 안 맞는 상대와는 상성이 최악이라는 것.”
특히나 변신족을 상대하면서 육체 강화 계열은 아무 쓸모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단련된 변신족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거다.
이렇게만 들으면 초능 특수종의 효용성이 무척 떨어지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요는 상황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다음 수업에서 그걸 배울 수 있었다.
환경전투론이란 수업이었다.
교수는 총장의 비서이기도 한 정아 이모였다.
“싸움은 능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으나, 가르치는 것만큼은 열정적이었다.
이렇게 보니 교수진 중 반은 아는 사이잖아.
아버지 덕분이었다.
세최특의 아들이라서 나쁜 것만 있다고 할 순 없었다.
어릴 때 유괴 경험이라든지, 이런저런 일에 시달린 것과 비례해 얻은 것도 많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양질의 경험.
그리고 돈.
우리 집은 재벌이니까.
“축제 때 뭐 했어?”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로니가 날 붙잡았다.
파란 원피스 위에 두꺼운 스웨터 카디건을 걸쳤는데 참 잘 어울렸다.
생도 몇몇이 눈을 돌리는 게 보였다.
그중 변신족 하나는 침을 흘리기도 했다.
“크르르.”
가끔 변신족 중 본능을 컨트롤하지 못해 사고 치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사관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그 정도로 아둔한 놈들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받는다고 해도 실시간으로 사고를 방지하니까.
이쪽 학교 내부에 돌아가는 폐쇄 회로 TV가 몇 개인데.
“방에서 훈련.”
“징하다. 너.”
“열심히 살아야 하니까.”
“수석 졸업이 목표라?”
멈춰 선 채로 얘기를 나누다가 발을 뗐다. 복도 한복판을 가로막은 판이였다.
지나가는 애들이 눈을 흘겼다.
난 신경 쓰지 않고 정원으로 나갔다.
기온이 떨어지고 있어서 꽃이 핀 건 없었다.
단풍이 진 가로수가 빨갛고 노란 잎을 뽐내는 중이었다.
“너 자꾸 왜 나 찾아오냐?”
진정 궁금해서 물었다.
애가 할 일이 없나 싶어서.
아니라면 지금 내 주변 소문이 그리 좋지도 않은데 굳이 왜 내 곁에?
“처음에는 부탁이자 명령 때문에.”
로니는 근처 벤치로 향하더니, 제 무릎을 잡고 앉으며 말했다.
그게 퍽 귀여워 보였다.
내 추측인데, 얘는 자기가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아는 것 같았다.
태도를 보면 그게 보인다.
“부탁? 명령?”
“본가에서 널 좀 돌봐 달라고 하더라고. 위험하지 않게.”
“아.”
대강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다.
부모님 때문이겠지 뭐.
로니는 초능국의 후예 중 하나니까.
그쪽 루트로 내 경호 겸 감시를 맡긴 것이려니 했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날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 안쪽이었다.
“그러냐?”
“근데 지금은 조금 달라.”
“응?”
“지금은 너한테 관심이 생겨서.”
거, 무슨 이런 얘기를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하는 거냐?
“관심이 내가 생각하는 그 관심이 맞냐?”
“응. 남자로서의 유온신이 궁금해.”
초능국의 후예, 공주 로니.
그녀는 화끈했고 직설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