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28화 (428/488)

외전 19. 소문

음? 으으음? 으으으으음?

“저요?”

단언컨대, 이제까지 불린 생도 중 가장 멍청한 반응이었다.

“그래. 너.”

난 중봉 큰 삼촌을 오래 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삼촌은 보기 드물게 들떴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은은하게 홍조가 보이는 볼과 목소리에서 티가 났다.

이 정도면 감 좋은 불멸자라도 알아보겠는데.

저 양반 지금 기뻐하고 있다고, 뿌듯해하고 있다고.

“나와라.”

그 말에 난 중앙으로 나아갔다.

주변 동기 무리가 날 힐끔거렸다.

“쟤, 걔 맞지?”

“응, 세최특.”

“근데 일반인이라며?”

“그런데 팀의 반을 살려? 그 팀은 일반인보다 못 싸운다는데?”

“그 레드 울프라고 들었는데.”

“그게 말이 돼?”

수군수군, 속닥속닥.

날 두고 떠드는 소리 덕분에 순식간에 강당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체험단 행사에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사람이 죽었다.

뉴스에서 연신 떠드는 일이 일어난 거다.

큰 사건이 겹친 행사에서 일반인의 몸으로 최고 상점을 취득했으니.

“에이씨.”

누군가 뒤에서 욕설 비슷한 걸 뱉었지만, 난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걸을 때마다 동기 무리가 옆으로 비켜서 열렸다.

모세의 기적을 부리는 것 같은 기분으로 걸어 중앙으로 나아가니, 홀로그램 영사기 때문에 생긴 빛이 눈을 쏜다.

지금 내 모습이 애들한테 다 보이려나.

중앙 안까지 들어가자, 총장이자 큰 삼촌이 큼큼하고 헛기침을 뱉고서 말했다.

“불행한 사고가 있다고 해서 학교 행사를 멈출 순 없다. 그러므로 위 생도에게 최고 상점을 수여한다. 특전으로 원하는 걸 말해라.”

1학년 일 때만 탈 수 있는 체험단 최고 상점.

이건 곧 신인상이라 불렸다.

아, 레드 울프 팀장이 복귀했나?

그리고 있었던 일을 다 말한 거고?

대충 내 짐작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기회가 오겠나.

하긴 이유가 뭐가 중요할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중요하지.

정미랑을 향한 걸음.

난 착실히 걷는 중이었다.

이렇게 하여 난 최고의 졸업생이 되고.

그렇게 된 내 옆에는 정미랑이 있을 것이다.

분홍빛 꽃과 같은 미래가 머릿속 한쪽을 채운다.

두근대는 심장이 그 미래가 실현 가능하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단출한 대답.

“수고했다.”

단출한 치하.

힘든 일이 있었던 만큼 이런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특수종 사관 학교의 행사였다.

이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축제 기간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려 하자 총장실의 비서가 한쪽으로 손짓했다.

이쪽도 아는 사람이었다.

일반인의 몸으로 특수종 세계를 씹어 먹은 저격수다.

지금은 전투 쪽으로는 손을 놓고 비서라는 직종에 충실하다고 했다.

정아 이모다.

표정은 차갑지만, 마음은 더없이 따뜻한 분이다.

어릴 때부터 봐 온 이모고.

“잘했다.”

이모가 보자마자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손길에 머리를 맡긴 채,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잘했네요.”

“가끔 보면 넌 참 아빠를 많이 닮았어.”

“칭찬이죠?”

“엄마를 닮은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욕인가?

“그래서 특전은 뭐로?”

최고 상점을 취득한 1학년은 특전을 요구할 수 있다.

범위는 넓다고도 좁다고도 할 수 있었다.

돈을 바란다면 돈을.

공간을 바란다면 공간을.

듣는 강의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어지간한 것, 총장실이 감당할 만한 건 다 들어줬다.

특전이란 이름에 걸맞은 대가다.

수업이야 뭐, 지금 듣는 것도 만족하는 편이고.

돈은 이 학교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많을 것이다.

어머니는 용돈이 떨어지는 걸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고.

이렇게 보면 요구할 게 없어 보이긴 하나.

난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기에 말하는 데 주저는 없었다.

* * *

“정말 이걸로 됐어요?”

머리 위, 레베카가 묻는다.

“이거면 충분해.”

특전이라고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으니.

‘미랑의 마음을 훔쳐 주십시오’ 한다고 누가 훔쳐 주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수석 졸업을 시켜 주십시오’ 해도 그리해 주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고작 훈련실?”

레베카는 퍽 이게 아깝게 느껴지나 보다.

난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상당히 좋은 거 아닌가.

특수종 사관 학교의 모든 시설은 인테리어 변환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방째로 통째로 뜯어내 이동이 가능한 조립식 구조다.

그래서 난 내 방에 커넥팅 도어를 달고 훈련장을 연결해 달라고 했다.

당연히 내 전용 훈련장으로.

온신이 요리사를 꿈꿔 주방을 만들었다면 난 수석 졸업을 위해 훈련장을 만든 거다.

유신이야 미친놈이 분명하니 주방을 만들었지만.

난 진취적이고 충실하고 성실한 학생이기에 훈련장을 요구했다.

그 말을 들은 정아 이모가 퍽 이상한 눈으로 보긴 했지만.

이게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었는 걸.

“가끔 보면 온신은 훈련에 미친 사람 같아요.”

“틀렸어.”

“레베카는 쉬이 틀리지 않는데요?”

“그래도 틀린 건 틀린 거야.”

“뭐가 틀렸는데요?”

“난 훈련에 미치지 않았어.”

“미친 건 인정하는군요.”

끄덕.

“내가 미친 건 정미랑이란 여자지. 난 미랑이한테 미쳤어.”

“……표적 보냅니다.”

AI가 패배를 시인했다.

난 승리를 자축하며 염동력을 발동했다.

우웅.

텅!

다시금 표적을 터트리는 참으로 생산적인 시간이 이어졌다.

* * *

“총장님,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김정아의 말에 이중봉이 고개를 들었다.

한창 홀로그램 서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일에는 이미 적응했고 특수종 사관 학교를 운영하는 거에 진심이지만, 이놈의 서류 작업만큼은 지금도 싫다.

기분 같아서는 이동훈을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절대로 안 놔주겠지.’

김정아를 데려오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회사도 가진 놈이 인재 몇 내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중봉은 속으로 광익을 욕하며 물었다.

“무슨 소문?”

“세최특의 아들이라 눈치를 보느라 상을 줬다고요.”

김정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할 말은 딱 부러지게 확실하게 했다.

그녀의 말에 중봉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광익의 아들이라서 최고 상점을 줬다고?”

지랄 맞은 소리다.

물론 어릴 때부터 봐온 온신의 활약이 기특하긴 했다.

기쁘기도 했고.

하지만 완전 별개의 일이었다.

“네.”

딱 부러진 대답에 중봉은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 생각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수상할 때 내가 좀 흥분하긴 했지.’

거의 티가 나지 않았겠지만, 예민함으로 무장한 불멸자가 본다면 심경의 변화가 보였을 수도 있다.

온신이 정말 기특해서 그런 거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

세최특의 아들, 일반인의 몸으로 특전 입학, 활약에 관한 어떤 증거도 없이 수여된 최고 상점.

‘딱 소문나기 좋은 상황이긴 한데.’

그래서 어쩌라고.

중봉은 총장의 의무를 지키고 권리를 행할 줄 알았다.

다만, 지금 떠도는 소문이 실질적인 문제가 되는 게 아니므로.

‘내 알 바는 아니지.’

기특한 건 기특한 거고, 생도는 생도다.

이건 온신의 일이었다.

중봉이 상관할 일도, 상관해서도 안 되는 일.

“놔둬.”

“해명 안 합니까?”

“넌 겉으로는 차가운데 속으로는 너무 물렀어.”

“해명, 정말 안 합니까?”

어릴 때부터 업어 키운 아이다.

김정아는 비약의 부작용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으니, 온신이 자신의 자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중봉도 손자처럼 키운 아이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안 해.”

“씁.”

김정아가 혀를 찼다.

“비서가 총장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그렇습니까?”

기분 상했군. 중봉은 더 말하지 않고 홀로그램 서류를 띄웠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었다.

* * *

난 훈련과 단련을 겸하며 수업도 빠지지 않기 시작했다.

수업에 빠지지 않은 건 레베카의 권유였다.

“언제까지 벼락치기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관 학교의 공부는 그리 만만하지 않아요. 온신. 수업을 빼먹지 마세요.”

“잔소리하는 게 꼭 우리 엄마 같아.”

“전 당신 같은 아들을 원하지 않았답니다.”

“내가 너보다 연상이야.”

AI에게 나이를 따지는 게 우습지만, 생산 연도를 따지자면 내가 연상이 맞다.

“네, 오빠. 전 당신 같은 오빠를 원하지 않았어요.”

얘는 왜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할까.

어쨌든 레베카의 말대로 이론도 무시할 수 없는 건 맞았고.

따로 공부할 시간은 내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난 수업에 들어가서 딱 그 시간만큼은 미치도록 집중했다.

수업, 이계 전투 백전.

이계의 환경 백 개를 골라 각각 백 번의 싸움을 홀로그램으로 직시하고 의견을 내는 수업이었다.

전략 수업의 하나였다.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도 모를 정도로 눈을 부릅뜬 채, 수업에 집중하느라 난 옆에서 뭐라 하든 듣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걸 넘어, 아예 듣지도 않고 교수님 말만 골라 듣는 경지로 나아갔다.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건 내 특기였다.

그렇게 서너 개의 수업을 들으니,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그렇다고 뇌전력으로 내 뇌를 튕겨 부스터를 쓰진 않았다.

전에 해 보니까 알겠는데, 이게 부작용이 가장 심하더라고.

뇌 부스터는 가장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렇게 수업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듣자니, 확실히 사관 학교의 수업은 가치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략 수업도 그렇고 방어 수업, 변신족의 특성 파악 등.

배울 건 많았다.

물론 그중에서도 초능에 관련된 수업에 가장 집중했고.

마법에 관련된 수업에는 가장 건성이었다.

유일하게 마법과 관련된 수업만 쓸모가 없었다.

이쪽은 외할머니가 백 배는 나았다.

애초에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쪽 교수진도 당연히 난다 긴다 하는 마법사일 텐데 말이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외할머니가 대단해.

“야.”

막 마법 수업 중에 초능 수업에서 배운 걸 복습하고 끝내는 길이였다.

뒤쪽에서 날 붙잡길래 돌아보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구스타프가 보였다.

그 옆에선 온신이도.

그 뒤에는 로니와 여름 햇살 선배가 있었고.

다 같이 모여서 뭐 하는 건가 싶어 보니.

“넌 자존심도 없냐?”

구스타프가 성난 얼굴로 말했다.

“있는데.”

자존심이 없긴 왜 없어.

“성격이 좋은 건가, 아니면 무른 건가, 모르겠네.”

로니는 오늘만큼은 특유의 눈웃음 대신 희미한 미소로 말했다.

어째 기분이 상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 있나?

“성격이 좋은 쪽일걸.”

그래도 답은 충실히 해 줬다.

얘는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걸까?

꽤 성난 표정으로 날 보던 여름 햇살 선배가 콧김을 훅 뿜으며 입을 열었다.

“참는 거냐? 아니면 들킬까 봐 숨기는 거냐? 나 그럼 너한테 흥미 떨어지는데.”

이마에 기습 뽀뽀를 한 선배님.

네, 흥미 떼 주십시오.

안 그래도 선배가 내 이마에 뽀뽀한 걸 미랑이가 알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으니까요.

“뭘 들켜요?”

나 초능 특수종인 거 탄로 났나?

마지막으로 유신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 건 과해.”

뭐가 과한데.

당최 알 수 없는 말투성이였다.

“정말 모르는 얼굴인데, 일단 설명부터 해 주는 게 낫지 않아요?”

이번에는 뒤쪽이었다.

가을 마녀 선배였다.

그녀는 제 갈색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나타났다.

전에 눈 색깔이 어땠더라?

오늘은 녹색이었다.

마법사답게 꾸미는 것도 스케일이 달랐다.

눈 색깔을 확확 바꿔 버리네.

렌즈 따위로 바꾼 눈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주문 냄새가 훅 나는데?

눈에서 묘한 기운이 나오는 것 같았다.

이건 정염의 주문인가? 아니, 무슨 그런 주문을 눈에 담고 다녀.

이식은 아니고 새로운 기법으로 보였다.

물론 내가 알 바는 아니었기에.

난 모두를 시야에 두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너 못 들었냐? 최고 상점 받은 거 전부 조작이라고.”

“아버지 덕분에 학교에서 눈치를 보는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구스타프와 유신이 연이어 말했다.

음?

자세히 물으니, 소문이 돌았단다.

위와 같이 내가 아버지 덕분에 최고 상점을 받았고 총장이 세최특의 눈치를 본다고.

이런 소문이 도는데도 총장은 나서지 않았고.

그대로 소문이 진실처럼 여겨지는 중이라고.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날 보고 수군거리고 그러는 거구나.

알긴 했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음 그러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넌 왜 그러냐?”

유신에게 물었다. 너 평소에 이런 일에 관심 없지 않냐?

“짜증이 나서.”

자기 욕하는 건 잘 참으면서 꼭 친구 욕하는 건 못 참는다. 호구 같은 자식.

“털어, 신경 쓰지 마.”

“해명할 거지?”

유신은 내 능력을 안다.

“굳이?”

그리고 난 해명할 필요를 못 느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 할 일 하기도 바쁘다.

무엇보다 낭중지추라 했다. 주머니 속에 숨긴 송곳은 나오는 법이다.

소문이 아니라, 정면으로 덤비면 호되게 혼내 주겠지만.

아무도 그러진 않았다.

다 나 안 보는 데서 떠드는 거지.

그렇다면.

“다들 신경 끄고 할 일들 하세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지.

아니꼬우면 정면에서 덤비면 되는데, 그런 놈은 하나도 없었다.

하긴 나 같아도 전기 실기 테스트에서 주먹으로 테스트를 제패한 나한테는 덤비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하면서 난 다시 훈련장으로 향하고자 했다.

곧 축제 기간이고 사관 학교의 축제 기간에는 댄스 타임 같은 게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난 그때 정미랑과 손을 맞잡길 원했다.

그러니 훈련 외에도 할 일이 많은 시기란 거다.

그리 툭 하고 떠나자, 내 뒤에 덩그러니 일행만 남았다.

다들 안 가고 뭐 한담.

난 무시하고 발을 놀렸다.

* * *

“저거 원래 저래?”

여름 햇살 선배의 물음에 유신은 고민 끝에 답했다.

“네, 어릴 때부터.”

정작 본인이 저리 무덤덤하니 할 말이 없긴 했다.

저리 반응하니 뭐라 할 말이 없긴 했다.

모인 이 중 대부분이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저었으나.

로니만은 눈을 빛냈다.

당최 유신이란 저 동기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흥미가 생겨.’

그녀는 의무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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