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26화 (426/488)

외전 17. 대형 사고

이세계에서 인명 사고는 간간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만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긴 했기에, 대형 사고라고 할 수 있었다.

사망자 숫자가 열아홉.

체험단으로 참여한 생도도 둘이나 죽었다.

다친 사람의 숫자는 그보다 몇 배는 많았다.

내가 간 곳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졌다.

대부분 과거의 인베이더가 부활했다느니.

오랜 기간 안 보인 크리쳐가 새로이 나타났다느니 하는 말들이 돌았다.

뭐, 그거야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확실히 알겠지.

들어 보니까 사고가 터진 이계는 대략 오십여 군데.

어떤 팀도 당분간은 이계에 만들어 둔 기지 너머로의 탐험이 금지됐다.

한동안 수비에 집중한다는 거다.

어디 이계에서는 고블린 군대가 쳐들어왔다고 하던데.

난 오크 부대를 만났으니, 내 쪽이 더 위험했을 거다.

레드 울프 팀과 헤어져 돌아온 생도 집결지는 장례식장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로톤이 죽었어.”

아일랜드 출신의 초능 특수종 생도 하나.

“영우도.”

한국인 변신족 하나도 죽었다.

괴멸적인 피해를 본 것도 두 명의 생도가 죽은 팀에서 나왔다.

두 팀 다 괴멸적인 피해를 받은 이유는 하나다.

‘방심.’

이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에.

이제는 이계 너머가 익숙하다고 생각했기에.

이제는 어지간한 크리쳐를 상대하는 게 수월하다고 생각했기에.

두 개의 체험단 팀은 필요 이상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그대로 괴멸적인 피해를 보았다.

사망자 열아홉 중 아홉이 이 두 팀에서 나왔다.

한순간에 열아홉이나 죽었고.

그중 생도가 둘.

분위기가 박살 나는 건 당연했다.

초상집 분위기를 풍기며 모인 생도는 전부 귀환하기로 했다.

그중에는 구스타프도 있었다.

“괜찮냐?”

안색을 보니 말이 아니다.

파랗게 질린 채로 부들부들 볼을 떨기도 했다.

“아, 괜찮아.”

영혼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뭐라고 더 말을 걸어 위로할 일도 아니었다.

무리한 팀이 아니라면 적당한 선에서 전부 살아남았다.

그들도 사선을 넘긴 했는데 일단 시설에서 멀리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이계에 건설한 시설에는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과한 방어 설비가 갖춰져 있다.

맨 처음 방어 설비를 필요 이상으로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상을 타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쓸데없는 데 자원을 낭비해서 욕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덕분에 더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거다.

이렇게 보니, 새삼 레드 울프 팀의 무식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이계에서 가장 깊게 진입한 팀이 거기 같거든.

진짜 나 아니면 어쩌려고 그런 걸까?

불현듯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특수종 세상에는 또라이들이 많다. 미친 자들의 세상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그러니 명심해라. 미친 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네가 더 미치면 된다. 아빠는 그렇게 했다.”

아니, 그건 당신이 세최특이니까 가능한 거지.

당신 아들은 그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다고.

더 미치라고?

나가서 뒈지라는 건가.

그 순간 잠깐이지만, 이 작자가 내 친부가 맞나 의심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잖아.

혈통도 하나도 안 물려받았고 생김새도 다르고.

그래도 이런 내 의심을 입에서 꺼낼 순 없었다.

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후레자식 같은 말을 꺼낼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물론 그런 말을 했다가는 그날이 바로 어머니가 날 잡아 죽이는 날이 될지도 몰랐기에 안 한 것도 있지만.

어머니는 딱히 폭력적이신 분이 아니다. 다만, 성질이 어디 보통이어야지.

잔소리만 듣다가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넌, 넌 괜찮았냐?”

그래도 친구 하기로 했다고 내 걱정도 들었나 보다.

구스타프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물었다.

“난 뭐.”

“너 배정받은 팀이?”

“레드 울프.”

“그렇구나. 몇 명이나 죽었냐?”

“전부 살았어.”

구스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라는 고갯짓으론 보이지 않았다.

얘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여전히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발을 질질 끌고 걷다가 비틀거리기도 했고.

애 상태가 왜 이러는 건지.

“그래, 다행이다. 어떻게?”

그리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묻는 말에 답하지 않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기에, 난 담담하게 답해 줬다.

“엄청 깊게 들어갔는데 오크 무리가 나오더라고. 인베이더 시절에 나오던 그 오크, 그래서 숨겨 둔 초능을 발동했다.”

“그 팀장이?”

“아니, 내가.”

그 말에 구스타프의 흐리멍덩한 눈이 잠깐 빛을 머금으며 총기를 찾았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너라지만, 과해.”

음? 농담 아닌데?

능력을 쓰고 탈진 증상까지 왔었는데?

어릴 때부터 가혹하게 단련한 덕에 기절까진 가지 않았지만, 기절 일보 직전까진 갔다.

죽다 살아났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도 실전에서는 능력을 처음 써 보는 거라 실수도 좀 했고.

거기에 구스타프의 능력을 보고 따라 한 것도 있어서 말한 건데.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야.”

구스타프가 날 거듭 나무랐다.

농담이 아닌데.

레드 울프 팀이 이미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뭐, 그때쯤 알아도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일인데!”

나를 포함한 생도 무리가 빠져나가는 사이, 뒤에서 성질이 난 특수종의 외침이 들렸다.

뒤쪽 분위기도 이곳과 비슷했다.

이곳은 본래 생도 체험단이 모인 집결지였으나.

지금은 이세계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의 피해 보고 현장이 됐다.

그 와중에 생긴 가벼운 부상자를 돌보는 의료 캠프 역할도 하고.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이들이라면 후송차에 실어서 보내기도 했다.

살아만 있다면 재생 치료가 있으니, 죽진 않을 거다.

“후, 씹.”

옆에서 구스타프가 한국에 와서 배운 찰진 욕을 뱉었다.

단 한 글자지만, 마음에 와닿았다.

그에게도 그만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난 따로 묻지 않았다.

내 능력이 진짜라고 더 말하지도 않았고.

레드 울프 팀이 보고서를 올리면 알게 될 텐데 뭐.

이세계에서 터진 이상 현상이라.

난 뒤를 슬쩍 돌아보곤 생각을 이어 나갔다.

갑자기 터진 일에 각 단체에서 인원이 파견됐고, 이곳은 흡사 시장같이 붐볐다.

의료 캠프 역할을 하는 곳과 보고를 받는 곳이 섞였다.

“당장 이계 설비를 보호하기 위한 병력 증강을 해야 합니다.”

그중 특수종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머리칼이 찰랑거리는 남자였다. 생긴 걸 봐서는 무조건 불멸자다.

그것도 순혈의 불멸자.

능력을 떠나 생긴 게 탁월하지 않나.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파견 온 걸 보니, 능력도 인정받은 쪽일 테지.

한 번 돌아보는 거로 관심을 끊고 다시 걷는데, 죽은 이들의 친구였는지 생도 무리 중 누군가 훌쩍였다.

“씨이, 왜 이런 일이.”

그걸 보며 난 그의 몰랑거리는 순두부 같은 마음가짐에 내심 고개를 저었다.

사관 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그럼 참으로 바보 같고 물컹한 정신 상태가 아닌가.

애초에 사관 학교는 싸움을 가르치는 곳이다.

난 일반인의 몸으로 입학했지만.

정신 상태만큼은 저기서 훌쩍거리는 놈보다는 나았다.

“훌쩍거리지 마라. 생도.”

인솔을 맡은 조교가 사납게 훌쩍거리는 친구를 노려봤고.

난 묵묵히 걸었다.

죽은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안 죽었으면 더 좋았을 일이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이걸 비극이라 부른다면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사관 학교에 입학한 생도의 의무일 것이다.

그러니 그 의무를 위해.

난 싸움을 복기하고 사용한 능력의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첫 실전.

무리한 부분도 있었고, 무리해야 했을 때, 나서지 못한 것도 있다.

실수라고 불러야 할 것들.

절로 되새기며 걸었다.

생도 무리의 침울한 걸음이 주변에서 이어졌으나, 난 머리 굴리기 바빴다.

* * *

레드 울프 팀장은 고심 끝에 말했다.

“야, 그거 비밀 지켜 주자.”

“여기서 그거란?”

“온신이 비밀.”

“초능 특수종인 거 말입니까?”

전투 직후, 덕분에 살았다고 고맙다고, 능력은 어떻게 된 거냐 묻자 온신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반한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 앞에서 멋있어 보이려고 숨겼습니다.”

그 단순한 이유에 팀장은 감동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뭐, 이렇게 나서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담담한 그 말투에 실망이 담겨 있진 않았던가. 그는 실망했다.

그게 퍽 마음에 걸렸다.

물론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온신은 담담했으니까.

하지만 레드 울프 팀장은 아니었다.

“애들 입 단속해, 온신의 활약으로 살아남은 거로 하고 초능은 숨겨 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다.

“야, 넌 머리가 있냐 없냐?”

팀장이 나선 팀원을 나무랐다.

사실 머리가 있다면 능력을 밝혀야 했다. 생도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체험단 테스트에 포함된 거니까.

그들의 능력을 사관 학교에 보고하는 게 의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언제는 그런 걸 신경 썼던가.

정작 보고는 윗선 몇 명에게만 몰래 하면 대체로 비밀을 숨겨 줄 순 있을 것이다.

팀장은 오랜만에 머리를 굴렸다.

“숨겨, 우리는 온신의 큐피드가 된다.”

이 팀은 변신족 열 명이 모인 무식한 무투파.

실제 능력은 더 뛰어나지만, 후위 팀으로밖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자유분방함 때문이기도 한 팀이었다.

“네!”

이의를 제기한 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답했다.

“좋아요!”

“큐피드!”

“변신족 큐피드!”

“변피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놈이 나왔지만, 뭐 어떤가.

팀장은 제 뜻대로 된 것에 흡족했고 웃었다.

보고를 올릴 일이 남았지만.

“일이 터졌으니까 여기저기 시설 방어 인력 필요한 거 아니냐? 보고 쌩까고 다음 일 잡고 째자.”

이럴 땐 머리가 또 잘 돌아간다.

그들은 팀장의 의견에 십분 동의해 그대로 도망갔다.

그렇게 온신의 능력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보고를 올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팀장은 간추리고 추려서 보이는 보고 하나와 꽤 상세한 보고 하나를 나눠 하나는 공식 루트로 하나는 비공식 루트로 보냈다.

* * *

“레드 울프 팀 보고서 어디 있냐?”

“여기 있습니다.”

“온신의 활약에 힘입어 오크 무리 섬멸했다, 이게 다야? 얘 미쳤어? 이게 전부야?”

“네, 그게 전부입니다. 그 뒤 곧바로 다른 이계 임무에 지원해 빠져서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꼴통 새끼들이.”

특수종 사관 학교의 교수 몇몇은 현재도 현업에 뛰는 이들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성질을 부렸다.

조교가 그의 눈치를 봤다.

교수는 자신의 큰 코로 콧김을 몇 번 뿜었다.

그걸 보며 난 코뿔소가 떠올랐다.

생긴 것도 딱 그렇게 생겼다.

이 양반 연애는 해 봤으려나.

“너 초능 발현했다고?”

“네.”

성질내다 말고 휙 눈알만 굴려서 묻는다. 난 담담히 답했다.

전부 내 앞에서 나눈 대화였기에 난 흘러가는 상황을 대강 이해했다.

레드 울프 팀장 이 여자 정말 미친 건가.

제대로 보고도 안 하고 그냥 날랐다.

그것뿐 아니라 내 초능도 보고를 생략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보여 줘 봐.”

이번에 체험단에 참가한 생도는 전부 개별 인터뷰를 했다.

나도 그러는 중이었고.

난 그의 요청에 따라 손짓을 해, 바닥에 떨어진 의자를 띄웠다.

“후.”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능력을 조절해 다시 의자를 내려놓았다.

이제 제대로 보여 주면 되겠지?

의자야 염동력을 지녔다는 증명하려고 한 거고.

신속을 통한 움직임과 뇌전력, 염동까지 쓰는 콤비네이션을 막 보여 주려는데.

“염동력이네, 이거로 활약은 무슨, 이 꼴통 새끼 찾아와. 보고서를 이따위로 쓰면 되겠냐? 넌 돌아가고. 일반인이 아니라 초능 특수종으로 보직 변경이네. 의자만 간신히 띄우는 정도지? 바쁘다. 그만 가라.”

현업에 종사하는 교수는 바쁘다. 보통 바쁜 게 아니다.

사관 학교의 겸임 교수로 일하면서 팀에 소속된 일원이 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므로.

자신의 능력 신장을 위해 훈련도 해야 하고.

교육도 해야 하며, 팀의 업무에도 수행해야 한다.

가치가 있다고 해도 고된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그는 말하고 손을 휘저었다.

난 조금 고민했다.

그냥 나가도 되나?

이제 막 능력을 보여 줄 참이었는데?

이번 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노총각 변신족 교수의 조교는 어서 나가라고 눈짓을 더 했다.

그 눈짓이 참 간절했다.

난 돌아 나갔고.

뒤에서 둘이 떠드는 말이 들렸다.

“너 초능이지? 염동력 하나 얻긴 했는데, 저거 적응하고 쓰려면 몇 년이나 걸릴 것 같냐?”

교수가 묻는 말과.

“염동이면 최소 5년입니다.”

대답하는 조교의 말이 들렸다.

탁- 하고 닫히는 문을 뒤로한 채, 난 다시금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자신의 잣대로만 세상을 보는 놈들이 잔뜩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백번 말해도 소용없어. 한 번 보여 주는 게 낫지. 말로 해서 안 믿는 것 같으면 굳이 설득하지 마라. 나중에 어련히 알아서 다 알게 된다.”

난 아버지의 조언을 참고했다.

굳이 여기서 능력 있다고 떵떵거리며 밝힐 이유가 있나?

그게 미랑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발할 수 있는가?

아닐 것 같다.

그럼 뭐, 굳이 나 능력 있다고 광고할 필요는 없겠지.

그 뒤로 이틀 동안 난 푹 쉬었다.

그사이 정규 수업 몇 개를 충실히 들었다.

생도 중 대다수는 침울해 보였다.

특히나 구스타프가.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나도 이런저런 생각할 일이 많았다.

홀로그램 뉴스에서 연신 이번에 일어난 이상 현상을 다루는 일이 잦았다.

뭐라더라, 인베이더의 발호라고 하던가.

본래 이계는 미지의 세계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도 했고.

어떤 예언자는 블랙홀이 부활한다고도 했다.

물론 삼류 예능에 가까운 프로그램에서 한 얘기였고.

그 말을 한 예언자는 욕만 배부르게 드시고 사라지셨다.

사고 이후에 일어난 일로 시끄러운 나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유신이 불렀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난 여기까지인 것 같다.”

구스타프가 무게를 잔뜩 잡으며 한 말에 유신이 어깨를 으쓱하는 게 보였다.

난 둘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유신을 향해 눈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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