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 요새 인턴은 다 이래?
“휘이이이익! 겁나게 많네!”
흥분한 변신족 팀원 하나가 휘파람을 불며 외쳤다.
외친 변신족을 중심으로 내 눈에만 보이는 번개의 흐름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야생의 살기.
변신족의 특기였다.
녹색 등급의 크리쳐는 단순하고 무식하다.
곧 거대 벼룩 수십 마리가 살기를 뿌려 낸 변신족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는 곧 벼룩 무리가 우르르 땅을 박찼다.
투두두둥 하고 뛰어오른 수십 마리의 거대 벼룩을 보자니, 아찔했다.
거대 벌레 수십 마리가 달려드는 꼴이었다.
“걱정하지 마.”
또래로 보이는 변신족 친구가 말했다.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어투였다.
그렇게 외친 변신족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벼룩 무리가 덮치기 전 땅을 박차 수직으로 솟구쳤다.
벼룩 무리가 바닥에 다시 닿는다. 우습게도 놈들의 대가리가 전부 하늘을 향했다.
“이래서 그린 등급은 쉽지.”
또래 놈이 말했다.
딱히 대단한 작전은 아니었다.
단순하며 직선적인 작전이다.
한 명이 살기로 시선을 끌고 나머지가 처리한다.
변신족 팀 레드 울프는 그렇게 했다.
변신족이 아닌 내가 보기에는 찰나의 틈, 거대 벼룩이 땅을 다시 박차고 튀어 오르기 직전의 그 짧디짧은 순간.
후아아아앙!
팀원 각자가 벼룩을 부수고 으깼다.
총성이 울리진 않았다.
다들 근접 병기를 휘둘렀다.
우직!
누군가는 몽둥이를 휘둘러 벼룩의 머리를 으깼고.
또 누군가는 넓적한 정글도 두 자로 벼룩을 삼등분해 놨다.
석! 석!
칼날을 뭐로 만들었는지 아주 잘도 썰렸다.
녹색의 체액과 내장 비슷한 것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옆에 있던 변신족은 도끼를 휘둘렀는데 이건 벤다는 개념보다는 부순다는 개념이 더 어울릴 만큼 호쾌했다.
후앙! 펑! 펑!
벼룩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며 녹색의 피가 폭죽처럼 터지는 걸 보니, 자연스레 괴력의 변신족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중 레드 울프 팀장의 자태가 최고였다.
그녀의 무기는 양손과 발이었다.
양손과 양발에 금속으로 된 부츠와 장갑을 낀 채로 날뛰었다.
내달리는 주먹에 한 마리의 머리가 펑 하고 터지고.
도착한 지점에서 아래에서 위로 차올린 발끝에 다른 벼룩의 몸통이 쪼개진다.
순식간에 반수의 벼룩이 죽었다.
그래도 반은 남았기에.
공중에 뜬 채로 있는 팀원을 향해서 벼룩이 점프했다.
투두두두두둥!
내가 서 있던 자리까지 땅이 흔들렸다.
육중한 무게를 지닌 벼룩이 단숨에 공중에 뜬 변신족을 향해 날아갔다.
“이러다 나 뒤져어!”
공중에 뜬 친구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외쳤다.
저거 저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순간, 그의 손에서 뭔가가 휭 하고 날았다.
여전히 내 눈에는 그저 빛살처럼 보이는 무언가다.
바닥에 푹하고 꽂히는 걸 보니 나이프였다.
팽하고 날아간 나이프가 바닥에 꽂히고 곧 공중에 있던 변신족은 올라간 것만큼이나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떻게? 아, 내 눈에도 보였다.
나이프 끝에 연결된 와이어를 당긴 거다.
공중에 뜬 벼룩은 또 목표를 놓쳤고.
“크르르릉!”
이번에는 다른 변신족 하나가 야생의 살기를 터트렸다.
내 눈에는 뇌전이 사방으로 퍼지며 나뭇가지 모양처럼 줄기줄기 뻗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벼룩이 달려든다.
목표가 된 변신족은 회피에 전력을 다하고 나머지는 공격에 전력을 다하며, 변신족에게 정신이 팔린 벼룩을 두들겨 패고 찢어 죽인다.
이게 팀 레드 울프의 컨셉이자, 색깔이었다.
더없이 무식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효과는 끝내 주네.’
그 어느 팀이 와도 이런 효율을 낼 순 없을 것이다.
무식하지만, 고효율의 전법.
“크, 재밌겠다.”
문제라면 딱 봐도 치사율이 뭣 나게 높을 것 같다는 거지.
“저게 재밌어?”
내가 묻자.
“그럼 넌 안 신나? 아, 이런 재미를 모르고 사네.”
뭐라는 거야, 이 새끼는.목숨 걸고 싸우는 게 재밌냐?
더 안전하고 돌아가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이러는 게 신나?
하여간 변신족들은 이상한 새끼들이다.
어쨌든 난 이들의 싸움을 눈으로 보며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만약 나라면.
팀을 운영하는 팀장이라면.
그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보는 순간부터 생각했고 고민했으며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변신족의 전투를 보며 거대 벼룩의 움직임을 눈에 넣는다.
그리 보고 또 보며 난 눈으로 싸웠다. 머릿속에서 싸웠다.
과연 지금의 난 실전에 나서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구경하기 심심하지? 총이나 쏴 볼래?”
그리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옆에서 내 호위로 보이는 친구가 저격 라이플을 내줬다.
레일건 형태에 레이저 포인트가 달려, 어지간한 사람이 쏴도 맞추는 거에는 하등 무리가 없는 고급 총기다.
“그럴까.”
“오, 안 빼네. 보통 처음 보는 인턴은 다들 구역질부터 하는데.”
그러냐?
하긴, 사방에 널린 거대 벼룩의 사체와 내장과 녹색의 피가 목가적이며 따스한 풍경이라 할 순 없을 테니.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것도 어릴 때부터 받은 훈련 덕인가.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철컥.
말하며 방아쇠를 당겨 총기를 점검, 탄창과 탄알 등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군 맞추면 안 된다. 멀리 떨어진 놈만…….”
퉁.
호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레일건의 탄환은 일반 탄환보다 배는 빠르다.
그러므로 쏘는 즉시.
펑 하고 머리통에 구멍이 난 벼룩을 보는 게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쏘는 놈이 잘 쏜다는 전제하에.
“와우.”
퉁, 퉁, 퉁.
옆에서 놀라든 말든 삼 연사로 벼룩의 머리통 세 개에 구멍을 냈다.
“뭔데, 뭐 이렇게 잘 쏘냐.”
잘 쏘긴.
애초에 무기가 좋은 거지.
레이저 포인트가 달렸으니 조준이 쉬웠고 목표물의 패턴이 너무 단순했다.
벼룩 새끼들 시선은 전부 앞에서 다 뺏어 주지 않았나.
그러니 쉽지.
물론 난 불멸자도 아니고 특수종 아닌 거로 되어 있기에.
“요새 인턴은 다 이래?”
이렇게 놀라는 것도 이해는 했다.
“아니, 나만 이래.”
대충 대꾸해 주고 계속 쐈다.
외곽뿐 아니라 전면에 보이는 모든 벼룩에게.
“와씨, 보통 총 줘도 제대로 못 쏘는 놈이 태반이랬는데, 이거 맞아요? 누나?”
내 호위인 놈이 저 앞에 대고 외쳤다.
이쪽 팀은 호칭도 퍽 자유로워 보였다.
누나라니.
“그러게!”
그러자 저 앞에서 늑대 한 마리가 답했다.
얼굴은 늑대인데 목소리는 아나운서 뺨쳤다.
언밸런스한 광경이긴 하지만, 그게 퍽 매력적으로 보였다.
얼굴도 꽤 예뻤던 거로 기억하는데.
변신하기 전 팀원의 얼굴은 대부분 봤다.
“그럼 너 혼자 있어도 되겠네?”
놀란 것도 잠시다. 내 호위를 도맡은 놈이 신이 난 눈으로 말했다.
“물론.”
“오예, 그럼 혼자 있어라!”
그리 말한 놈이 팽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아니, 내달리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달리며 옷을 손으로 찢어발겨 변신한다. 그 안에 달라붙는 전투 슈트를 입은 채였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데도 터지지 않고 슈트가 늘어난다.
그리 날 호위하던 늑대 한 마리는 싸울 수 있다는 기쁨에 앞으로 내달렸고.
난 계속 쐈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수십 마리 벼룩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10분 내외였다.
무섭도록 빠른 소거 시간이었다.
마지막 한 마리가 죽는 걸 보고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나 하고 앞을 보는데.
“다음!”
팀장의 외침이 들렸다.
“알아서 따라와! 아우!”
그와 동시에 뒤쪽에 처져 있던 변신족 팀원 하나가 뒤를 돌아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며 외쳤다.
아마도 내 호위였던 놈이고.
날 향한 말 같았다.
근데 이거 진짜 미친 인간들 아닌가?
팀장은 그 말만 하고 내달렸고 곧 다른 팀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곧 갈대를 헤치며 열 마리의 늑대가 앞으로 내달리는 장관이 펼쳐졌고.
그 뒤에서 난 신속을 발동했다.
도저히 그냥은 못 쫓아갈 속도였으니까.
* * *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반쯤 목숨을 내놓는 전략과 전술?
이해할 수 있다.
그래, 고효율이니까.
단련된 이들이라면 최소한의 피해로 효율성을 극대화한 거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보니까 알겠다.
이들은 약에 취한 것처럼 전투에 중독된 중독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컨퀘스트 미션에 들어온 건 개개인의 능력이 정말 미치도록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당장 팀장만 해도 100개 팀 안에 들어갈 수준이니.
팀원들도 하나같이 잘 싸웠다.
물론 그래도 미친 건 미친 거다.
“죽어도 좋아!”
탕!
저리 외치며 그린 등급 크리쳐인 뿔 사자의 머리통에 탄환을 쑤셔 박는 게 정상은 아니잖아?
녹색의 피를 흩뿌리는 놈을 향해 내려 찍기를 하며 좋아서 히히힛 웃는 여자도 그렇고.
긴 총을 무기로 삼은 팀원도 사방으로 난사 중이다.
그 와중에 우습게도 백발백중이었고.
정상적인 팀은 아니지만, 이게 이들의 방식이었다.
개개인의 전투력을 믿고 몰아치는 거다.
달려드는 그린 등급 크리쳐만 벌써 백 마리를 넘게 잡은 듯했다.
뱀벌, 뿔사슴, 거대 벼룩, 칼잠자리 등.
그리고 난 뒤에서 총질만 해 댔다. 사실 반쯤 구경만 했고.
“후아, 근데 이거 좀 많지 않나?”
팀원 중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묻는다.
오페라 갈대밭을 다 빠져나올 때쯤이었다.
“그러게 좀 많네.”
팀장이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더니 곧 숨을 크게 들이켜고 가슴을 부풀리더니 외쳤다.
“그게 문제가 되냐!”
그 말에 팀원이 답하고.
“아니! 안 되지!”
“아우우우우!”
늑대 울음이 화음을 넣는다. 그걸 본 난.
정말 이 인간들 이따위로 하는데 어떻게 컨퀘스트 미션에 들어온 거지?
이 세계에 날뛸 때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보지 않나?
이 정도면 반쯤 미친 변신족 팀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근데 난 왜 하필 이런 팀에 배속된 걸까?
다른 애들이 속한 팀도 다 이 모양이려나?
진짜 별 잡다한 생각이 다 머릿속을 스쳤다.
또 날뛰네.
이게 인턴의 견학인가 보다.
생각해 보면 괜히 체험단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보통은 이렇게 구경만 하다 끝나는 게 전부니까.
아마 총까지 쏴 봤으니, 내가 특이한 건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이 팀의 운영 방식을 보니 아까 들었던 의문에 답은 하나 나왔다.
아마도 이 팀은 낮은 등급의 크리쳐 전문 소거팀일 것이다.
본래 컨퀘스트 미션은 이계를 정복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이계를 넘어간 모두가 하나같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건 아니니까.
선두에 서는 뱅가드, 전위팀이 있고.
이후 안쪽에 설비와 기지를 구축하는 빌드, 설비팀이 있는 거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레이즈, 후위팀인 소거팀이 있다.
나오는 크리쳐 종류와 숫자가 파악된 곳에 파견 나가는 팀이 바로 후위팀이다.
후위, 소거팀은 위험도로 따지자면 가장 위험도가 낮다.
이미 전위가 탐험을 끝낸 지역의 크리쳐만 정리하면 되니까.
적절한 무장을 갖출 지식이 쌓여 있으니, 무리할 필요가 없는 거고.
그중에서도 레드 울프 팀은 좀 독특하긴 했다.
이 정도 무력 수준이면 무투팀 중에서도 상위가 아닐까 싶으니.
전위팀 일부에 소속돼도 될 판인데.
자기들끼리만 모여 후위팀에 내려앉은 거다.
그러니, 나오는 크리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필요 이상의 전력을 갖추는 게 컨퀘스트 미션에 돌입하는 팀이 갖는 기본 마인드니까.
이게 또 틀렸다고 할 순 없는 거지만.
어쨌든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므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뱅가드니, 빌드니, 이레이즈니.
아직 내가 거기까지 신경 쓸 단계는 아니니까.
내가 가고 싶다고 해도 뱅가드 팀에 넣어 주는 것도 아니고.
보통 백 개의 팀이라 불리는 팀은 뱅가드 임무에 우선 배정된다.
그만큼 전위가 중요하다는 거다.
이계를 탐험하는 것만이 그들의 임무는 아니니까.
내가 알기로는 위험을 미리 감지해서 처리하는 것도 뱅가드팀의 임무라고 알고 있다.
이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런 거 보면 엄마가 날 그렇게 열심히 말리는 것도 이해는 가긴 하지.
하지만 어머니, 기껏 잘 키워 둔 자식이 능력을 썩히는 것도 아깝지 않나요?
특히나 이걸 잘 활용하면 며느리가 떡하니 생길 판입니다.
정미랑을 위하여.
이미 체험 임무가 거의 끝났다는 생각에 총구를 들며 홀로 뇌까리는 중이었다.
펑!
앞에서 폭음이 터졌다.
불멸자가 아님에도 확연히 다른 소리라 느낄 수준의 폭음.
이건 또 뭐야?
“저건 뭐야?”
곧 레드 울프 팀장이 우뚝 멈춰 선 게 보였다.
그리고 레드 울프 팀 앞에 크리쳐가 보였다.
양손에 도끼를 든 크리쳐.
거대한 덩치와 녹색의 피부가 돋보이는 존재.
폭음은 놈이 바닥을 도끼로 후려쳐서 난 소리 같았다.
어라?
난 그동안 배운 역사 홀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저건 과거의 유물 아닌가?
크리쳐의 시대로 넘어오며 사라진 ‘인베이더’였다.
“오크?”
팀장도 놈을 알아봤다.
그리고.
콰우우우우오오오오!
깊은 동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울림의 외침이 사방을 짓눌렀다.
난 그 외침에 전신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수없이 느껴 본 감각이었다.
“이게 야생의 살기란다. 익숙해지면 견딜 만해져.”
어릴 때 훈련하며 장 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번갈아 보여 준 것, 몸에 새겨진 기억이 떠올랐다.
살기다.
놈의 외침에 살기가 실렸고.
그 살기가 주변 일대에 진득한 농도를 담아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