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3. 팀 레드 울프
삭. 똑.
귤로 만든 타르트가 부스러기 하나 없이 잘린다.
깨끗하게 잘린 단면이 유리처럼 반짝였다.
“크으, 이 맛이지.”
유신의 손에 들린 작은 나이프가 빛을 발했다.
광선 나이프다.
그, 네 아버지가 그러라고 준 기어가 아닐 텐데.
이 새끼는 광선검으로 귤 타르트를 자르고 감탄하고 자빠졌다.
내가 블루 인더스트리 대표였다면 지금쯤 거품을 물었을 것 같다.
유신이 반듯하게 자른 타르트를 들고 감상하듯 빛에 돌려봤다.
‘우리’가 있는 곳은 유신의 개인 훈련장이었다.
말이 훈련장이지, 이 미친 자식은 자신의 1년 용돈을 다 꼬라박아서 사관학교 내에 자기 주방을 따로 만들었다.
공사 비용, 렌트비를 다 낸다고 하니 이사장이 흔쾌히 허락해 줬다나 뭐라나.
이제까지 좁은 방에서 뭘 만드는 게 힘들었다고 투덜거리더니, 결국 이런 짓을 했다.
남들은 테스트가 지나고 난 뒤, 다시 필사적인 훈련에 몰두하기 바쁜데.
이 자식은 실기 테스트 광탈 후, 곧바로 이 공사에 매달렸다.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한 놈 아닌가.
“먹어 봐도 되나?”
그리고 바로 옆에서 우리 중 하나인 구스타프가 말했다.
이 새끼는 전반기 테스트 이후 갑자기 내 껌딱지가 됐다.
나도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애가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물론.”
묘하게 유신과 죽이 잘 맞더니, 어느새 이렇게 함께 다니게 됐다.
구스타프가 귤 타르트를 입에 넣었다.
바삭- 하고 입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 맛을 음미하는 듯 두 눈을 감은 구스타프가 으으음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더니 조용히 엄지를 들어 올린다.
유신이 그걸 보더니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들이.”
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왜 내 주변에는 정상인이 없는 것 같지.
“너도 먹어 봐라.”
다행히도 구스타프가 날 형님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다.
그거 얼마나 어색하겠어. 이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한국인으로 태어난 내게 연공서열이 뒤집히는 건 퍽 어색한 일이었다.
우리는 적당히 친구처럼 지내기로 합의를 봤다.
나도 귤 타르트를 하나 입에 넣었다.
삭.
뭔가로 코팅을 했는지, 그렇게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은 단맛이 입안을 감쌌다.
바삭하고 귤이 부서지면서 과일이 머금은 과즙이 튀어나오고 촉촉하고 단단한 타르트가 부서지며 섞였다.
이 맛이었다. 환상의 맛.
“흡.”
난 입을 틀어막고는 조용히 엄지를 들었다.
그래, 이런 걸 먹고 칭찬을 안 할 순 없지.
“둘 다 붙었다며?”
유신이 흡족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다른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체험단이다.
당연하게도 난 합격했고, 구스타프도 합격했다.
실기 테스트 1위와 2위의 위엄이다.
다만, 나는 불협화음이 조금 있었다.
일반인을 거기에 보내는 게 맞냐는 거다.
체험단을 받아 주는 팀에서 그리 반기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이건 전부 구스타프가 전해 준 말이었다.
이 자식 안 그렇게 생겨서 학교 내부에 지연이 꽤 있었다.
나름 정보통이란 거다.
어쨌든 날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둥, 일반인이 어떻게 컨퀘스트 미션에 참여한다는 둥, 자잘한 문제가 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사관 학교 학장이 한마디로 뭉개 버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고맙습니다. 중봉 큰삼촌.
구스타프의 인맥을 쓸 것도 없이 필요하다면 여기저기서 나도 지연과 인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자존심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 그늘에 묶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물론 수틀리면 그런 거 없이 여기저기 헬프 요청을 날리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 혼자 힘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 중이다.
오롯이 미랑이를 얻기 위한 일이지 않나.
이게 무슨 세계 평화를 위한 일도 아니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조금 남사스럽다고나 할까.
“언제 가냐?”
“내일.”
귤 타르트와 함께 홍차를 마시며 유신이 물었다.
답은 구스타프가 했고.
난 먹기 바빴다.
이게 진짜 꿀맛이었다.
“너도 참 난놈이다.”
유신이 날 향해 말했다.
거, 말해 뭐하나.
어릴 때부터 알았으면서.
이후한테 깨질 때야 날 다 허접으로 봤겠지.
하지만 그건 그 새끼가 치사한 거지.
어디 초면에 보자마자 부분 변신해서 달려들고, 지랄이냐.
새끼가 예의가 없어.
순혈 타이틀, 그중에서도 천재란 놈이 일반인을 상대로 그렇게 치사하게 구는 건 잘못된 거 아니냐.
난 그렇게 생각한다.
싸움은 치사할수록 좋고 꼭 붙어서 싸울 필요는 없다고.
그런 면에서 내가 체득한 세 가지 능력은 참으로 유용했다.
“체험단이라 구경만 하는 수준일 거다. 그래도 두근대긴 하네.”
구스타프가 답지 않은 말을 뱉었다.
“두근은 무슨.”
뒤에서 구경만 하면 뭐가 남는다고.
난 나름대로 목표를 세웠다.
정미랑과 결혼하기 위한 첫 번째 스텝.
조기 졸업 프로젝트다.
그러기 위한 것.
활약할 무대가 필요했다.
난 기회가 되면 나설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게 낫지 않나 싶어서.
눈치 봐서 그럴 생각이다.
아무 때나 나서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을 테니.
보통 컨퀘스트 미션에 나서는 팀은 다 알아서 잘하니까,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축하한다. 하여간.”
구스타프는 유신을 보자마자 지난날의 제 과오를 정중히 사과했다.
이후 유신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했다.
그게 퍽 어색할 법도 한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우리 둘의 체험단 합격을 축하하기 위한 지금의 자리였다.
“그럼 뭐, 잘 다녀와라.”
유신이 말한다.
구스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이후 그 새끼, 내가 꼭 잡고야 만다고.
그 시작이 이번 체험단이 되리라.
* * *
“너야? 유온신이?”
체험단은 각각 배정받은 팀이 있었다.
컨퀘스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팀을 운영해야 했다.
팀은 보통 열 명 내외로 구성되고 그중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팀도 있었고 기업이나, 협회, 연맹에서 지원하는 팀도 있었다.
물론 어떤 곳에서도 지원받지 못한 프리랜서 팀도 있었다.
“네. 유온신입니다.”
팀장은 붉은 머리칼의 유럽계 여자였다.
별명이 뭐라더라, 붉은 늑대?
변신족 여자였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더 컸고 팔뚝 근육도 더 두꺼웠다.
그런 몸으로 흐응흐응 콧김을 뿜어 대며 눈으로 내 전신을 훑었다.
“너 싸움 잘하냐?”
“네?”
후우웅.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휘날렸다.
내가 있는 곳은 갈대밭, NS에서 새로이 뚫은 이세계 루트였다.
파라라라락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서로 부대끼며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 소리는 파라라락으로 시작해서 삐이익, 후우우웅, 씨이이이 따위의 소리와 엮여 섞이더니 곧 노랫소리처럼 변했다.
그냥 노래도 아니고 장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한 음악이 사방으로 퍼져 흘렀다.
덕분에 이 땅에 붙은 별명은 ‘오페라 갈대밭’이었다.
그렇다고 특기 좋은 음악은 아니고 보통은 소음 수준이다.
위험 등급은 그린.
그야말로 체험하기 딱 좋은 땅이다.
참고로 위험 등급은 그린에서 오렌지까지 다섯 개 등급이 있고.
그 이후로는 블랙과 화이트 등급이 있다.
크리쳐를 나누는 등급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빠아아아아아!
불멸자에게는 조금 불친절한 땅이다.
저 오페라 갈대가 뿜어 내는 주파수가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을 마구 흔들어 댄다고 하던가?
상대적으로 조금 둔한 쪽인 변신족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일 뿐이지만.
“좀 한답니다. 걔가 이번 전반기 수석이에요. 대장.”
대장이라 불리는 여자 뒤, 오페라 갈대를 배경으로 선 남자가 말했다.
기다란 총을 지팡이 삼아 턱을 괸 채였다.
이 팀의 이름은 레드 울프.
전원 변신족으로 이뤄진 무투파다.
프리랜서 팀이지만, 당연하게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특수종이였다면 어디 치안 부대에나 근무했을 것이다.
컨퀘스트 미션에 왔다는 건 어떤 의미로든 이들의 능력이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그래?”
여자 수장이 미소를 보였다. 어째 불길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내 옆으로 다른 팀원이 슬그머니 붙으며 말했다.
“조심해.”
뭘?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팀원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팀장 이상형이 잘생기고 잘 싸우는 놈인데, 너 생긴 게 딱 팀장 타입이야.”
에?
근데 보통 이런 얘기를 팀장 바로 앞에서 하는 게 맞냐?
팀장은 대수롭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너 귀엽게 생겼다. 여자 친구는 있니?”
삐이-!
오케스트라 갈대의 음이 치솟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엄청난 소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소음을 뚫고 명확하고 정확하게 말했다.
“약혼자가 있습니다!”
상대는 인정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마음속의 약혼자가 있다.
“오호, 더 좋은데, 경쟁 상대 있는 쪽이 더 달아오르는 법이니까.”
뭐지, 이 미친 여자는.
콧김을 뿜으며 말하는 게 호러 그 자체다.
무엇보다 호러인 건, 육체 레벨이 무려 30대라는 거.
박강철 아저씨 급의 괴물이었다.
근데 그 아저씨는 정부 연합이 발표한 백 개의 팀 중 하나잖아.
그런 팀을 이끄는 사람과 동급이라니.
어떻게 이런 사람이 아직 안 알려졌지?
“푸흐, 애 그만 겁줘요.”
“난리 나겠네.”
“그만합시다. 대장. 나갈 시간이니까.”
주변에 있던 변신족 무리가 한껏 웃으며 말했다.
이들에게는 이게 반쯤 농담이었나 보다.
아, 괜히 긴장했네.
그러자 아까 옆에 붙었던 팀원이 또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인턴, 우리 대장 짓궂지만, 괜찮은 사람이다.”
그거야 두고 볼 일이고.
“레이더 측정으로 보면 저 앞쪽에 그린과 블루 등급 크리쳐가 나온다고 합니다. 일하러 갈 시간입니다.”
“오야! 오늘도 크리쳐를 쳐 죽이러 가자고!”
대장은 그 뒤로 날 쳐다도 안 보고 달렸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갈대 사이를 달렸다.
“이 빌어먹을 갈대!”
그리 외치며 허리춤에 매달린 정글도를 세차게 휘두른다.
후드드득.
그 한 방에 소리를 뿜어 대던 갈대가 우수수 잘렸다.
이곳은 이계, 우리가 아는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온종일 잘라도 그다음 날이면 다시 갈대밭이 되는 곳이다.
그래도 오늘 당장은 조금 편하게 갈 수 있으리라.
다른 팀원들도 다 같이 정글도를 휘둘렀다.
서걱!
후각! 삐이이리리이! 썩!
여기저기서 잘린 갈대가 허공으로 휘날렸다.
누군가 위에서 본다면 대형 예초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청 떨어지겠네!”
“에라이!”
그렇게 열 명의 변신족이 달리며 칼을 휘두르자, 오케스트라 소리가 희미해지며 작아진다.
난 그들의 뒤에서 짐을 짊어지고 따랐다.
어설픈 달리기로는 놓칠 것 같아, 신속의 초능을 조금 발휘해야 했다.
“뭐야, 너 변신족도 아니면서 되게 잘 달리네.”
그러자 내 바로 옆에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팀원 중 하나로 날 돌봐주기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련, 했으니까.”
염병, 이런 속도로 달리면 혀 안 깨무나.
하여간 무식한 변신족 들 같으니라고.
“대단한데, 일반인!”
이 친구는 말하면서도 뛰는 데 여유가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팀 레드 울프가 유명해지지 않은 건 이들의 전투 방식 때문이었다.
실력과 별개로 이들은 조금, 아니 꽤 무식한 전투를 선호했으니까.
사람 키만큼 자란 갈대는 시야를 가리고 갈대가 모여 토해내는 소리는 소음을 낸다.
덕분에 불멸자에게 이 전장을 불편하다.
하지만 변신족에게는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코로 상대를 감지하는 재주가 있다.
후각의 변신족이니까.
그들은 코를 씰룩이는 거로 다가오는 크리쳐를 감지해 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난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열 명의 변신족이 한순간 제자리에서 멈춘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뇌광이 흘렀다.
레벨 10 이하는 단 한 명도 없는 완연한 전투의 프로들.
그렇게 멈추자마자.
파악.
멈춘 곳 바로 5m 너머의 갈대밭이 흔들리더니 위로 검은 그림자가 솟았다.
그린 등급 크리쳐.
거대 벼룩이었다.
여덟 개의 다리와 휘어지고 늘어나는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괴물이다.
쌔애액!
선두에 있던 대장 붉은 늑대를 향해 날카로운 주둥이가 날아오고.
대장은 대수롭지 않게 팔을 들었다.
내 동체 시력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다 볼 수는 없었다.
그저 뾰족한 주둥이가 낭창거리며 휘어져 들어올 때, 대장의 팔이 잔상을 남기며 흔들렸고.
곧 그녀의 손에 그 주둥이가 잡혔다는 것밖에는.
“꺼져라. 병신 같은 크리쳐야.”
그녀는 곧 양손으로 거대 벼룩의 긴 대롱 주둥이를 잡아 찢었다.
뿌드득!
완력으로 뜯긴 주둥이 중 본체에 붙은 부분이 미친 듯이 파닥거렸다.
그녀의 앞으로 녹색의 피가 흩뿌려졌다.
비처럼 튄 녹색 피가 내 발밑까지 떨어졌다.
전투 시작이었다.
난 제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태어나 처음 보는 크리쳐와의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