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21화 (421/488)

외전 12. 가을 마녀

필기 테스트, 실기 테스트 총합 1위.

두 개의 테스트 수석 달성.

여기는 특수종 사관 학교, 전 세계에서 난다긴다하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열심히 한다고 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공부야, 어느 정도 예상했다.

벼락치기로 해도 얘들보다는 내가 좀 나으리라고.

어릴 때부터 머리 쓰는 건 투철하게 하지 않았나.

“넌 엄마 닮아서 머리가 좋을 거야.”

라고 말하는 통에, 엄마가 죽기 살기로 공부를 시켰다.

실제로 내 머리가 꽤 영리한 편이라는 건 주변 반응으로 알았고.

하물며 번개 각성제를 수없이 맞으며 집중력을 불태운 시간이었다.

수석은 예상할 수 없었지만, 고득점은 예상했다.

그러니 이게 놀랄 일은 아니리라.

하지만 실기는 좀 의외였다.

전부 허약해 빠진 애들뿐이었다.

그나마 구스타프가 제일 나았지만.

변신족 이후의 수준과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아니, 그것도 부족할 만큼 차이가 컸다.

그래, 안다. 이후는 좀 치는 수준을 넘어선 천재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후는 특별했으니까. 1학년 때부터 작전에 참여했고, 지금 수준으로도 능히 10% 안에 드는 프로야.”

정미랑의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차갑고 명료했다.

“그러니까 이후한테 진 건 신경 안 써도 돼.”

말투와 별개로 내용은 위로와 축하였다.

“이 정도는 할 줄 알았어.”

난 정미랑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날 찾아온 미랑을 보는 순간, 기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더없이 기뻤다.

커피라도 한잔하자니까 금방 가야 한다면서 방에 들어왔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뭔가 이뤄지나 했다.

그런데 들어와서 꺼낸 첫마디가 이후다.

그 새끼, 그 변신족 새끼.

“그럼 그 이후는?”

현재는 3학년, 수석 졸업은 기정사실인 남자.

변신족이 낳은 희대의 천재.

그를 부르는 수식어는 차고도 넘쳤다.

“……조기 졸업하겠지.”

특수종 사관 학교는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려운 곳이다.

평생 ‘졸업’이란 두 글자를 안 붙여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 곳에서 수석도 아니고 조기 졸업?

이후의 재능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냉정한 내 머리는 현 상황을 이해했다.

다만, 머리가 이해하는 것과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채로 정미랑을 직시했다.

“그렇구나.”

“경쟁 상대로 보지 마. 넌 특수종이 아니야.”

당장 얘 앞에서 염력과 뇌전력을 발동하고 싶었다.

거기에 세 번째로 얻은 능력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들떴던 가슴이 차갑게 식었으니까.

지금 이런 초능 몇 개 보여 준다고 미랑의 평가가 변하진 않을 테니까.

“오늘은 왜 바쁜 건데?”

난 화제를 돌렸다.

“이후 선배랑 작전이야.”

하, 그 이후랑 작전을 나가는구나.

배알이 꼴렸다.

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웃지도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그건 정말 최악이니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순 없다.

어디까지나 여유 있고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이미지는 유지하는 게 매너다.

“그렇구나. 그래, 알겠어.”

“간다.”

미랑이 떠났다.

떠나는 미랑을 보며 새삼 난 결심했다.

난 네가 남자 능력만 본다고 해도 괜찮다고.

그럼 그 능력, 내가 갖춰서 네 앞에 서겠다고.

탁.

문이 닫힌 뒤, 난 입을 열었다.

“레베카.”

“처참하네요. 온신.”

AI 주제에 인간의 감정을 알아채지 마라.

비참하니까.

“훈련장 섭외해 줘.”

“그래요.”

본래 중간 테스트가 끝나면 꽤 긴 휴가가 주어진다.

대략 보름.

대부분 생도는 이 기간에 집으로 돌아가지만, 난 시간을 아끼기로 했다.

이제 내 목표는 조기 졸업, 그러니까 이후보다 나은 특수종이 되는 것이므로.

“기다려라. 이후.”

* * *

“아들놈 키워 봤자 하등 소용없다더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혜민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그 난다긴다하는 놈들 사이에서 전반기 테스트 결과로 1등을 먹은 아들이다.

이 소식에 기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러게.”

옆에서 광익이 귓가를 긁으며 답했다.

한가로이 소파에 앉은 둘은 휴가 때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한 아들의 결정을 들은 참이었다.

그와 동시에 테스트와 관련된 것도.

별개로, 사관 학교에 있는 지인을 통해 아들의 움직임도 전해 듣고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문제는 없다.

모든 게 너무할 정도로 수월했다.

수월했기에 광익과 혜민 둘 다 의문이 생겼을 뿐.

“초능을 각성했다고 했죠?”

“응.”

“음, 어릴 때부터 훈련을 열심히 시키긴 했지만.”

혜민이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특수종 사관 학교에서 1등을 먹어 치운 건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과할 정도로 잘나가지 않나.

“과연 내 아들이라고 하고 넘어갈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요.”

초능 각성 사실도 뒤늦게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건 좀 과한데.

“이번 기수 애들 수준이 좀 떨어지는 거 아닐까?”

광익이 합당한 의문을 표현했다.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뭐,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거였다.

둘은 축하주를 주고받았다.

초능국의 의뢰 때문에 몇 달 만에 돌아온 집이었다.

아들은 알아서 잘하고 있다.

광익은 자신이 너무 잘난 탓에 아들이 자신의 그늘에 가려져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실제로 한때 아들이 그렇게 되기도 했었고.

그럼 지금은?

‘걱정할 것까진 없겠지?’

광익은 품에 안겨 오는 아내를 안으며 내심 흡족했다.

아들이 자신의 그늘을 벗어난 것만 같아서.

* * *

세 번째 능력은 ‘가속화’였다.

초능력 계열 중 육체 강화에 속하는 능력.

트리플 능력자는 드물다.

하지만 세 개의 능력을 갖추고 해서 그게 일류란 소리는 아니었다.

“단련만이 답이지.”

“말이라고요.”

혼잣말에 레베카가 답했다.

그 뒤는 훈련의 나날이었다.

보름의 휴가 동안 염동, 뇌전, 가속 세 가지의 능력을 갈고닦았다.

염동력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패턴 몇 개를 정했다.

그중에는 구스타프의 기술을 베낀 것도 있었다.

당해 보니까 쓸 만하더라고.

물론 시전 속도를 올릴 필요가 있지만, 그거야 별일 아니었다.

묵직한 무게감을 주려면 염동력으로 만든 무형의 압력판을 중첩해야 했다.

이 모든 작업을 뚝딱하고 처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다 보니 됐다.

아버지면 툭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 돼? 계속해, 하다 보면 돼.”

한때는 그게 참 무식한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해 보니 진짜 되긴 되더라.

하지만 아버지,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에는 차이가 있어요.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타고난 특수종의 피를 잇지 못했기에, 변신족이 작정하고 강각의 돌진을 해 오면 동체 시력으로 잡아 내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그 이후보다 더 나은 가치를 보여 줄 수 있는가.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뇌전력을 활용하는 법, 가속에 익숙해지는 법.

세 가지 초능을 콜라보레이션해서 쓰는 것까지.

참으로 값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난 뒤, 학교에 공고가 붙었다.

[컨퀘스트 미션 체험단 모집]

특수종 사관생도 1학년에게 주어지는 특전이었다.

면접과 기타 여러 가지 허들을 넘어야 하긴 하나.

일단 합격하게 되면 컨퀘스트 미션에 발을 들일 수 있다.

체험단이기에 이세계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이들 뒤에서 보급품이나 들고 따라다니는 게 전부지만, 직접 경험해본다는 게 어디인가.

하물며 이 체험단에 합격한다는 것 자체가 이 학교에서 엘리트로 인정받는 거니.

“도전할 거지?”

로니였다.

기척을 죽인 채 움직이는 게 버릇인지, 바로 옆에서 말할 때까지 온 줄도 몰라서 흠칫 승모근이 솟았다가 내려왔다.

거, 사람 설레게, 아니 놀라게.

“나도 할 거야.”

부드러운 눈웃음, 미랑과는 전혀 다르다.

봄의 꽃이라더니 정말 나타나는 순간 주변을 꽃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같은 불멸자지만, 뭐가 이렇게 다른지.

“응. 할 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로니가 으흥으흥 하며 자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하고 떠났다.

쟤는 나만 보면 말을 걸 건가.

“너군요. 전반기 테스트 두 개를 수석으로 먹어 치운 사람이.”

이번에는 반대쪽이었다.

첫인상이 눈에 확 띄었다.

하늘하늘한 걸음, 그에 어울리는 하늘색 원피스도 입었는데 그게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이온 음료 광고 찍다가 뛰쳐나온 사람 같았다.

길게 기른 갈색 머리칼은 무슨 짓을 했는지 고운 비단처럼 출렁였다.

이런 걸 보고 머리칼이 비단결이라 하는 거겠지.

“네, 유온신입니다.”

이제는 나도 안다. 주변의 관심이 나에게 쏠린걸.

처음 날 무시하던 애들도 이제는 날 두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찍어 눌렀으니까 그렇다.

“마법은 체질에 안 맞는다면서요?”

말을 건 순간부터 알았다.

이 여자 마법사다.

그것도 수준이 아주 높고 그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복숭앗빛으로 물든 입술이 달싹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스펠 유저가 될 수 있다면 능히 일류 그 이상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정중하지만,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말투였다.

내가 마치 시장판에 나온 소라도 된 기분인걸.

내 등급을 보는 눈이다.

“그 눈빛, 묘하네요.”

문제라면 나 또한 상대를 그렇게 봤다는 거다.

뇌전력의 눈으로 상대를 살피며 주문 레벨을 파악해 봤다.

육체 능력과 가진 능력의 총합.

그녀의 레벨은 최소 13.

절로 휘파람이 나올 수준 아닌가.

실제로 싸울 때는 이보다 더 레벨이 높을 것 같기도 하고.

본래 마법사는 자신이 가진 능력 중 반을 숨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서기 좋아한다고 해도 이 여자는 마법사.

어느 정도는 숨기고 감출 것이다.

그건 마법사의 본능 같은 거다.

“그런가요.”

묘할 만했지. 나도 상대를 측정했으니.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레 표정을 읽었다.

눈은 웃지 않으나, 입은 웃는다.

마법사라곤 하나, 불멸자 못지않은 미모다.

마법사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그 미모를 더 돋보이게 한다.

난 이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가을 마녀.

사대 계절 미녀 중 마지막 한 사람이었다.

“즐거웠어요. 일반인.”

그녀는 말에 가시를 심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녀의 뒤로 추종자가 줄줄이 뒤를 따랐다.

귀를 기울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꽤 명확하게 들렸다.

들으려고 하는 말 같았다.

그러니까 이 근처에 모인 웅성대는 1학년 생도들에게도 명확히 들렸으리라.

아마도 그게 의도한 바일 것이고.

“그래 봤자 일반인, 한계가 너무 명확해요. 훈련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게 있는 법이니. 유일한 희망이 스펠인데, 거기에도 재능이 없다니 불운이네요.”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가.

그녀가 이 학교에서 지닌 무게감은 낮지 않았다.

그건 주변에 있던 동기 무리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나도 훈련 좀 하면 금방 따라가긴 할 것 같긴 해.”

“후반기 테스트 때 보면 될 듯.”

내 평가가 반전된다.

나한테 치인 놈들이 갑자기 콧대를 높인다.

미래, 가능성,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보면 내가 아랫줄로 보일 테니까.

그리고 난 그걸 보며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짜릿한 희열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거구나.

이래서 주인공이 힘을 숨기는구나.

힘숨찐은 이래서 하는 거구나.

난 특수종이 됐다. 초능을 각성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른다.

모르니까 말을 저리 함부로 한다.

당장 저들 앞에서 염동력을 일으키고 뇌전을 뿜어 내고 싶다.

가속으로 뛰어다니며 내 능력을 뽐내고 싶었다.

이 건방진 새끼들아, 사실 나 특수종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꾹 참았다가 터트릴 것이다.

그럼 얼마나 신나겠는가.

툭.

그런 내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또 누군가 싶어 보니.

“흥분하지 마라. 멍청한 놈들이 하는 말이니까.”

음?

“넌 고작 여기서 멈출 남자가 아니야. 난 그걸 안다. 마지막 그 돌진은 절대로 일반인의 움직임도 아니었고.”

으음?

얘는 또 왜 이러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구스타프였다.

그가 눈을 반짝이며 내 곁에 바짝 붙었다.

“헛소문을 퍼트린 놈은 내가 처리했다.”

“……너 많이 아프니?”

불현듯 걱정이 들어 물었다.

애가 상태가 안 좋은 듯해서.

“이제부터 널 형님으로 모시겠다.”

얘 진짜 왜 이래.

“넌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눈깔이 반짝거리는 거 보니까 절대 농담이 아니다.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약을 잘못 처먹은 게 분명했다.

“어이, 구스타프.”

“거절한다고 해도 그림자처럼 따르겠다.”

아니, 그 문제가 아니지 않나.

“내가 더 어려.”

네가 더 연상이야 이 새끼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얘 원래 이랬나.

한 번 지더니, 눈깔이 돌아가 갑자기 충성 맹세를 하고 지랄이다.

애가 한번 쥐어 터지더니 정신을 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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