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 새로운 괴물
“나 이런 사람이다.”
남자는 그 말과 함께 명함을 던졌다.
허공에 날린 명함이 휙 하고 날더니 내 무릎 위로 부드럽게 안착했다.
생도들의 시선이 휴게실 구석으로 모였다.
“그 사람 맞지?”
누군가 우리를 보고 속삭였다.
그런데 속삭였다기에는 조금 큰 목소리 같은데.
나한테도 들릴 정도니까.
난 홀로그램 폰으로 노닥거리다 명함을 집어 들었다.
명함이 날아오는 방식이 독특했다.
손재주로 한 건 아니었다.
초능은 더더욱 아니고.
내 눈은 번개의 형태로 상대 초능이 움직이는 걸 본다.
그런데 안 보였다.
그러므로 초능이 아니라는 거다.
대신 다른 걸 느꼈다.
마나의 흐름, 어릴 때부터 어머니한테 죽통 맞아 가며 배운 거다.
불멸자의 직감도 없이 어떻게 마나의 흐름을 읽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어릴 때부터 피 터지면 배운 교육의 부산물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특수종의 피는 잇지 못했지만, 나 체질이 조금 특이한 편이니까.
“나 박강철이다.”
남자가 이어 말했다.
난 명함 대신 상대의 전신을 훑었다.
상대는 마법사.
다만, 그런 것치고는 몸이 무슨.
무엇보다 내 눈에 보이는 암페어가 끔찍한 수준이었다.
숫자로 말하자면 최소 30암페어 이상.
하지만 30암페어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움직일 때마다 멋대로 암페어가 변하고 움직인다.
상대는 그야말로 일류, 프로 중의 프로였다.
근육 하나하나가 다 흉기에 가까운 병기다.
아버지의 시대 때는 마법사가 몸을 이 정도로 단련하는 게 흔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계의 문물은 참 많은 걸 가져다줬고.
그중에는 큰 부작용 없이 몸의 근력과 근육을 단련시켜 주는 약도 있었다.
이 남자도 그런 약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오버 그래스라는 풀과 몇 가지를 섞으면 폭발적인 운동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알고 있다.
물론 약의 도움이 있든 없든, 이 정도 수준의 폭력적인 몸을 만들려면 뼈를 깎는 훈련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명함을 슬쩍 훑었다.
박강철, 마도 연맹 서울 지부 소속.
직급이나 다른 정보는 없었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컨퀘스트 미션에 참여해서 이름을 날린 특수종이 몇 있다.
그중 한 명이었다.
싸우는 마법사 박강철.
별명이랑 외모가 물아일체의 수준이다.
그런데 스폰서가 왜 나한테 오는 걸까나.
사관 학교의 생도에게 스폰서가 붙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돈.
그런데, 난 돈이 필요 없다.
아마도 전 세계를 뒤져도 나만 한 부자는 얼마 없을 테니까.
내 아버지가 세최금이다.
세계 최강 금덩이.
예전에는 산유국이 차지하던 그 자리를, 홀로 이계를 평정함으로써 최고의 부자가 된 사람이 내 아버지란 거다.
“네, 유온신입니다.”
내 대답에 박강철이 눈을 부라렸다.
마법사치고는 지나치게 마초의 냄새가 풍겼다.
그렇게 날 보더니 갑자기 파하하 하고 웃어 버린다.
상대가 이름을 말하길래 통성명이나 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이건 또 왜 이래.
“너 마음에 든다.”
턱하고 박강철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날 당겼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다.
다만, 악의나 살의 따위가 보이지 않았고 마나의 흐름도, 초능의 흔적도 안 보였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턱.
박강철 아저씨가 날 안았다.
시큼털털한 냄새 따위가 났다.
“나중에 내 팀으로 와라.”
싸우는 마법사 박강철.
현재 컨퀘스트 미션을 이끄는 백 개의 팀 중 하나를 책임지는 남자다.
그러니까, 무지막지하게 유명한 특수종이다.
사관 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 백 개의 팀 중 하나에 들어가길 원했다.
그중에서도 이 박강철 아저씨의 팀은 폐쇄적이고 사람 안 받기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는데.
“반드시!”
마법사치고는 상남자의 기운을 물씬 풍기곤 훌쩍 떠났다. 휴게실 문을 뻥 차고 나갔다.
저 양반 참 나갈 때도 영화처럼 나가네.
그가 한 말을 곱씹어봤다.
당연하게도 내 스폰서가 되겠다는 건 아니었다.
지금 하는 짓만 보자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로 보였으니까.
어째 뭉클했다.
나 사관 학교 들어와서 이런 취급 당하는 게 처음인 것 같은데.
본래 일반인 세계에서는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사회성도 좋았다.
그런데 특수종 사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이었는데.
“씁, 부럽네.”
“뭔데, 그 박강철?”
“진짜 존경스럽다. 저 새끼.”
“하, 과연 세최특은 세최특인가.”
휴게실 여기저기 모인 이들이 떠들고.
곧 유신이 다가왔다.
“박강철이 왔다 갔다며?”
“어. 아까.”
“사랑 고백했다며?”
박강철 아재가 나간 지 30분도 안 됐는데 소문은 금세 와전됐다.
“무슨 고백?”
“널 가져야겠다고.”
“뭔 개소리야.”
당연하게도 개소리였다.
소문의 출처를 찾아보니, 구스타프 애들이 낸 헛소문이었다.
근데 그 새끼는 날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안 그래도 그걸 물어볼 시간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구스타프도 1학년 중에서는 발군이었으니까, 당연히 다 이겨서 대련 콘테스트를 꾸역꾸역 올라오는 중이었다.
* * *
상대해 보니 알겠다.
특수종 사관 학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의 집합체다.
이들이 이곳을 거쳐 나가면 후일, 뛰어난 프로가 된다.
가령 그 박강철 같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오롯이 ‘재능’만 지닌 이들일 뿐이다.
1학년 생도에게 부족한 것, 그건 훈련이고 단련이다.
심리전, 주먹 쓰는 법, 발 쓰는 법, 결론만 말하면 싸우는 법이 부족하다.
반면에 나는 ‘싸우는 법’만큼은 이미 몸에 익힐 대로 익히고 여기에 섰다.
그래, 내가 아무리 아버지 힘으로 학교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도 아무나 여기에 입학시켜 주진 않는다.
아버지도 아들이든 아니든, 아무나 입학시키지 않을 것이고.
들어가서 쥐어 터지고 곧 돌아올 게 뻔한데 왜 보낸단 말인가.
그럴 바엔 그냥 제 손으로 쥐어패고 말지.
“잘해 보자.”
다음 상대는 변신족.
처음 이런 대련 시험을 도입했을 때, 다들 이런 방식은 변신족에게 유리하다고 했다.
다 같이 기어까지 쓰고 싸우는 게 어떠냐고도 했고.
그때 누군가가 한 말이 지금의 제도를 자리 잡게 했다.
“그래서 크리쳐가 정면으로 덤비면 그냥 뒈지게? 변신족만큼 못 싸우니까? 핑계 대지 말고 해라. 말 많은 놈 치고 제대로 하는 놈 못 봤으니까.”
그 누군가가 바로 내 아버지였다.
맞는 말만 하시는 분이다.
그 상대가 변신족이든 뭐든, 근접 전투가 필수니까.
죽은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아무리 이전 시대보다 안전이 보장되었다고 해도.
이계로 넘어가서 크리쳐와 싸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 위험에 자신을 지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 그게 첫째라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나.
“크허헝!”
대신, 변신은 금지다.
그러니까 정미랑과 썸탄다는 소문의 ‘이후’ 수준만 아니라면.
난 변신족도 상대할 만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단순한 새끼들은 무작정 덤비기만 하니까.
투우처럼 달려든다고 당해 주겠냐고.
변신족을 쓰러뜨리고.
“고통은 감내하라고 있는 것, 너는 희열을 아나?”
다음 상대는 시인 흉내를 내는 또라이 불멸자였다.
여기까지 상대해 보고 난 확신했다.
난 내 염동력을 레벨 2로 봤었다.
뇌전력은 범용성과 모든 걸 총합해서 레벨 3에서 4.
특수종 능력의 레벨 시스템의 수준을 그 정도로 봤다.
그런데 내가 상대했던 변신족의 특수종 레벨이 5였고, 불멸자가 6이었다.
이게 무슨.
다들 너무 허약한 거 아니냐고.
그것에 기초해서 내 능력의 레벨을 다시 측정해야 했다.
물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할 일은 아니고.
다만, 난 이번 시험에서 목표를 하나 세우기로 했다.
염동력과 뇌전력을 액티브하게 쓰지는 않기로.
그렇게 몇 번의 대련 이후다.
다음 상대가 나왔다.
“너, 실력을 숨긴 거냐?”
구스타프였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숨기다니, 애초에 아무도 물어본 적이 없잖아.
“종합 전투 능력 A라고?”
줄여서 종전력 A.
프로 수준의 전투력을 지녔다는 말이다.
생도 중에서는 2학년 이후부터나 받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어쩌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 A라고.”
구스타프는 전과 달랐다.
어금니를 박박 갈지도 않았고 눈을 부라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어릴 때부터 산 위에서 몇 번 구르고 떨어지고 하다 보면 돼. 그리고 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냐?”
“……세최특.”
“그래, 세계 최강의 특수종, 그런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봐. 주변의 기대가 사람을 반쯤 죽여 놓거든.”
구스타프가 진지하기에 덩달아 나도 같이 진지해졌다.
괜히 한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난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진 아들이라 생각하니까.
아마도 평생 그렇게 살 것이고.
한때는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괴로웠고 우울했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난 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그때 날 구원해 준 게 무엇인가.
두 구원자가 날 구했다.
하나는 정미랑이었다.
그래서 반했다고 하는 거고.
두 번째는 돈이었다.
“난 힘들 땐 돈을 써.”
정미랑은 그렇게 말했고, 그 말대로 해 봤다.
생각보다 기분이 괜찮았다.
삶이 고달프고 힘든가?
그럼 돈이 부족하진 않은지 생각해 보라.
누군가의 개소리가 그리 마음에 와닿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난 돈을 쓰고 삶을 다시 채색했다.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 있기에.
“먼저 가?”
싸울 것이다.
그 상대가 누구든 싸우고 또 싸워.
내 것을 쟁취할 것이다.
미랑아, 내가 간다.
“내 친구가 헛소문을 퍼트렸다. 사과하지.”
구스타프가 양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아마 박강철 아저씨와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새끼 근데 오늘따라 되게 진지하네.
“괜찮아.”
신경도 안 쓴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구스타프는 과연 훌륭한 염동력자였다.
레벨 5 수준이 아니잖아.
숨겨둔 실력을 모두 개방한 구스타프의 염동력 레벨은 9.
생도 학년을 기준으로 삼자면 3학년 수준이다.
그리고 구스타프와 싸우며 난 뇌전력으로 보는 암페어 수치를 갖다 버렸다.
본래 모름지기 모든 기계는 프로토 타입보다 다음 버전이 나아지는 법.
난 뇌전력으로 보는 수준을 현재의 레벨에 맞춰서 재조정했다.
그러니까 레벨 9 특수종 능력은 지금 보이는 정도의 밀도와 양이라고 머릿속에서 재입력했다.
싸움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구스타프의 염동력은 뛰어나지만.
다 보이는 나한테는 무용지물이었다.
다만, 마지막 발악만큼은 인상적이었다.
그 덕분에 내 몸에 새로운 변화도 있었고.
“불멸자도 아니면서.”
구스타프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그래서 불만이냐?”
상대 처지에서 보자면 염동 공격을 다 피하니, 황당할 따름이겠지.
그러자 구스타프도 수를 썼다.
“내려앉아라.”
가끔 초능 특수종 중에는 중력을 조절하는 이들이 있다.
엄청나게 귀한 능력이다.
구스타프의 이것도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기술 같았다.
울컥하고 피까지 토하며 초능을 발동한다. 거기에 말과 손짓이 섞였다.
이미지 연상을 머릿속으로만 한 게 아니라 몸짓과 말까지 포함한 거다.
구스타프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도 된 것처럼 양손을 위로 들었다가 밑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위로 뇌전의 덩어리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본래는 무형의 무엇이었을 그것이 내 눈에는 푸른 번개 덩어리로 보였다.
드드드드드.
육각형 결계, 대련장 안을 가득 채운 무형의 덩어리다.
쉽게 말하면 머리 위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와, 솔직히 이건 좀 놀랐다.
레벨 9의 염동력자는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놀랍다. 정말.
일어난 일을 인지하고 인지한 순간 해결책을 모색한다.
수없이 싸우며 배운 전술과 전략을 정리.
지금 필요한 칼을 꺼낸다.
이 염동력을 깨려면 나도 능력을 꺼내야 한다.
그게 최선인가?
아니, 다른 방법도 있다.
기계를 멈추고 싶으면 전력 공급을 차단하면 된다.
그러니까 이 능력의 주체가 되는 놈의 의식을 끊으면 된다.
그 순간, 난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기분을 느꼈다.
묘했다.
툭 하고 앞으로 뛰었는데 몸이 훅하고 날아간다. 몸이 더없이 가볍다.
깃털이라도 된 것처럼 거리를 좁힌다.
그렇게 몇 발자국 뛰자, 놀라서 부릅뜬 구스타프의 눈이 보였다.
염동력의 바윗덩이가 내려앉기 전에 달려들면 된다고 판단하긴 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공간을 좁힐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리고 이 순간 난 또 깨달았다.
나 더블이 아니구나.
세 번째 능력의 각성이었다.
그러니까, 난 트리플 능력자다.
뻑.
“꺽!”
구스타프는 깔끔하게 턱을 맞고 기절했고.
난 몇 번의 대련을 더 한 뒤 당당하게 대련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 * *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일반인이, 특수종 사이에서 대련에서 1등을 먹어?”
사관 학교 스폰서로 이걸 지켜본 이들은 많았다.
불멸자 가문, 변신족 가문, 초능 협회, 마법 연맹의 관계자가 여럿이었다.
그들은 허탈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한 일이었다.
그러하기에 놀랄 만했고.
그러하기에 새로운 괴물의 탄생이라 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