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19화 (419/488)

외전 10. 괴물의 아들은 괴물

조교 박응은 눈을 비볐다.

이 새끼 뭔데?

아니, 변신족,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태어나 순혈의 이름을 받은 이들이라면 이해가 간다.

‘아니, 그것도 좀 그렇지.’

아무리 변신족이라도 저렇게 깔끔한 타격은 힘들다.

저건 정말 다년간 단련을 거듭해 온 움직임이다.

상대의 심리를 읽을 줄 알고 여유도 있다.

타격 부위에 힘을 싣는 동작을 보면 짜릿함이 느껴졌다.

교본 그 자체다.

완벽한 무게 이동에 따른 원투.

방금 그 원투에 변신족 하나가 녹다운됐다.

“변신족도?”

불멸자와 초능 특수종을 상대로 한다면 일반인이 어느 정도 날뛸 수 있다.

하지만 변신족은 좀 다르지 않나.

그들의 타고난 운동 능력은 일반인의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그런데 원투 한 번으로?

박응은 변신족이었다.

그의 눈은 지금 세 번째 대련을 치른 온신의 움직임을 읽었다.

‘카운터야.’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강체 수준의 변신족이 아니라면 턱이나 급소를 맞았을 때 버틸 수 없다.

“내가 기절했다고?”

쓰러졌던 변신족 놈이 인정 못 하겠다고 송곳니를 쑥 드러냈다.

그걸 본 조교가 1학년 변신족 생도의 뒤통수를 갈겼다.

뻑!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변신족을 치운다고 진행 요원이 움직였다.

짧은 소란이었다. 별다른 것도 없는 일이고.

박응에게는 관심조차 가지 않는 일이다.

‘저 나이 때 변신족이 다 그렇지.’

처음부터 뼈를 깎아 내고 훈련하는 변신족은 흔치 않다.

각성한 변신족은 처음에 제 몸을 다루며 재미를 느끼기 마련이었다.

몸으로 하는 어지간한 기술은 한 번 보고 몇 번 해 보면 그만이니까 얼마나 신나겠나.

그러다 보니 몸을 단련하는 데 소홀히 하는 이들이 많다.

그걸 실전에 적용하는 건 다른 문제인데도, 그걸 깨닫지 못한다.

어린 변신족은 대개 다 그렇다.

그러다 몇 번 깨지고 나면 달라지는 거고.

하지만 온신은 어떤가.

‘작정하고 키운 거야.’

저 정도면 격투 병기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나.

그런데도.

‘한계는 명확하다.’

특수종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보이는 저 모습에 박응은 감탄했다.

소름이 돋았다. 감동의 물결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3학년 ‘이후’를 상대로는 한 번의 주먹을 견디지 못했을 뿐인 일반인이다.

이후야 워낙 특이 케이스 변신족이긴 하지만.

실전에 들어오면, 컨퀘스트 미션을 시작하게 되면 이후 정도의 수준은 널렸다.

그보다 뛰어난 변신족의 이름을 지금 대보라고 해도 다섯 명 정도는 우습게 말할 수 있었다.

‘기어로 떡칠을 한다고 해도 부족하다.’

특수종의 피가 없기에 그렇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했다.

불멸과 변신, 두 개의 혈통을 가장 진하게 이은 세최특의 아들임에도 일반인이라는 게.

육각형의 결계, 그 안.

한쪽 끝에서 땀 한 방울 안 흘린 채로 선 온신은 말썽을 부리다가 끌려 나가는 변신족을 물끄러미 보다가 두 손을 들었다.

“와아, 유온신!”

드물게 재밌고 흥겨운 광경이긴 했기에.

그 손에 몇몇 구경꾼과 관람객이 환호를 내질렀다.

근데 저 새끼는 이길 때마다 저럴 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과연 그 피가 제대로 이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최특은 세최또라 불리기도 했으니.

그 아들도 만만찮았다.

온신이 양손을 든 채로 수줍게 웃더니,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돌아갔다.

그걸 본 대기하던 1학년 변신족 몇이 흥분해서 콧김을 뿜고 욕설을 뱉었다.

“저 새끼가!”

“내 차례에 갈아 마신다!”

“거꾸로 매달아 주마!”

불멸자나 초능 특수종, 마법사라고 다를 건 없었다.

“건방져.”

“재밌나 보네.”

“멍청하긴.”

“이제까지는 상대가 쉬웠지.”

박응은 차분한 눈으로 대련장 밖으로 나가는 온신을 바라봤다.

온신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는 묵묵히 다음을 준비할 뿐이다. 그렇게 보였다.

박응은 그런 온신을 보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세최특의 아들이 이대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고.

그리고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뭐 불멸자도 아니고.’

변신족의 본능에서 파생된 직감은 전투 상황이 아니고서야 쓸 만한 게 아니었다.

* * *

기본이 됐다 싶으면 3암페어.

좀 친다 싶으면 4암페어.

구스타프 같은 놈은 흔하지 않았다.

내 상대는 처음 만난 3.5암페어를 빼면 전부 3암페어 이하였다.

하물며 세 번째 변신족은 얼마나 훈련을 게을리했는지, 3암페어에 간신히 턱걸이였다.

재능만 믿고 날뛰다 보면 다 그렇게 되는 거다.

어찌 보면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신나게 쥐어 터지는 건 나였을 지도 모르니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질 것 같진 않네.

수많은 생도가 싸운다. 대련이란 명목하에 서로가 가진 걸 내놓고 겨룬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특수종 사관 학교의 목적이 무엇인가.

컨퀘스트 미션.

이계로 넘어가 크리쳐와 싸우는 거 아닌가.

그걸 위한 공부고, 그걸 위한 단련이다.

그러니 이런 대련 또한 당연했다.

“마냥 온실 속의 화초는 아니구나?”

말을 건 건 네 번째 상대.

눈이 크고 예쁘장한 여자애였다.

나이는 스물? 스물하나?

“어쨌든 반가워.”

말하며 웃는다. 눈으로도 웃고 입으로도 웃는다. 웃는 표정이다.

파직.

그런데, 너 웃는데 왜 암페어가 올라가냐?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염동력이 가시화되어 보이는 순간, 내 능력이 단순히 육체 능력 정도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건 눈치챘지만.

이건 지나치게 편리한데?

그래서 불만이냐고 묻는다면.

불만은 무슨.

불멸자의 직감보다 내 번개 눈이 훨씬 쓸 만했다.

난 상대의 수작을 볼 수 있었다.

웃음 속에 섞인 비수가 날아오는 것도.

이 여자의 노림수도.

“초능?”

슬쩍 몸을 틀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생성된 푸른 뇌전이 작은 덩어리가 되어 날아왔고, 난 그걸 피했다.

그런데 정작 나한테 보였던 게 상대한테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빤히 보자, 상대가 묻는다.

“……나 탐나지 않니?”

어깨쯤까지 내려온 머리를 위로 틀어서 묶었고 검은 눈이 매력적인 여자였다.

“별로.”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면서 몸을 반대쪽으로 틀었다.

말할 때마다 하트 모양 뇌전이 날아온다.

저게 저 여자의 능력일 것이다.

“왜 안 통해?”

황당한지 되묻는다.

난 그녀의 말에 답하는 대신 번개 눈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능력을 쓸 때마다 순간적으로 암페어가 올랐다.

2암페어에서 2.5암페어 수준으로.

더 특이한 건 그녀가 뿜어내는 능력의 덩어리와 밀도를 보고 판단한 거라는 것.

몸에서 보인 게 아니라 입에서 뿜어져 나온 능력의 암페어를 본 거다.

그 말인즉, 내 눈에는 상대의 능력 수준이 보인다는 것.

육체 능력을 뛰어넘어 이런 것도 보인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전부 보였다.

그 이유?

몇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내가 내 뇌를 각성한답시고 지졌던 것.

거듭되는 대련으로 다양한 능력을 지닌 특수종을 상대한 것.

초능은 그 주체의 마음가짐에 달라질 때도 있으므로 들뜬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뭐가 중요할까.

보인다는 게 중요하지.

“너 뭐야?”

황당한 물음이 들렸다.

난 무시하고 거리를 좁혔다.

“나한테 안 반해?”

여자는 당황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난 입을 놀리는 상대에게 다가가며 어깨를 좁히고 몸을 바짝 숙였다.

더킹이다.

복싱은 스탠딩 격투의 기본이라 배웠다.

이걸 가르쳐 준 분의 이름은 장가희.

한때 아버지를 가르쳤다고 들었다.

변신족 할머니인데, 나만 보면 안쓰러워하며 몰래 먹을 것도 많이 주셨다.

“아이고, 우리 온신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리 사랑으로 보듬어 배운 격투기다.

더킹으로 번개 하트를 피해 붙는다.

“야! 너 내가 한…….”

그 뒤에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물어볼 기회가 된다고 해도 대답해 주려나.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라면 안 해 줄 것 같다.

이렇게 처맞고도 대답을 해 준다면, 난 다음부터 이 여자를 보살녀라 부를 테니까.

쩡.

그대로 턱을 어깨로 받은 다음에 배에 힘차게 리버 블로를 꽂았다.

“끼익!”

유혹의 소나타를 입으로 발사하는 여자의 주둥이에서 번개 하트 대신에 비명 비슷한 잇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대로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인사성이 밝은 아이구나.

그런 아이에게는 상을 줘야지!

난 앞으로 수그린 여자의 안면에 무릎을 꽂았다.

빡!

이런 상대일수록 방심하면 안 되므로 난 최선을 다했다.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 중 몇이 인상을 썼다.

왜? 이게 잔인해 보여?

어차피 죽지만 않으면 완벽한 치료가 가능한 세상이다.

그리고 이게 만약 적이었다면 어설프게 대하는 게 더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아, 무슨 여자를 이렇게 패냐고?

분명 그런 눈빛도 보였다.

그게 무슨 차별적인 발언인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남녀 차별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안면이 함몰된 채로 쓰러진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한쪽에 잘 눕혔다.

손을 탁하고 터니, 조교이자 심판이 말했다.

“유온신 승.”

그는 인상을 쓰지 않았다.

다음 상대도 여자였는데, 나올 때부터 어금니를 꽉 깨물고 긴장한 게 여실히 보였다.

“후우.”

말 한마디 없이 다시 시작된 대련.

그녀는 마법사였다.

과거, 아버지의 시대에는 마법사가 흔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서에도 그렇게 가르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합의 시대, 현 세상을 아우르는 말이다.

특수종 중 원하면 누구든, 테스트를 받고 들어올 수 있는 사관 학교 시스템이 자리 잡았기에.

마법사라고 냉대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 일반인 가면을 쓰고 사관 학교에 입학한 나야말로 이레귤러 일 것이고.

상대 여자는 운이 안 좋았다.

아마도 내 대련 상대 중 가장 운이 나쁜 축에 속할 것이다.

염동력과 뇌전력이 없다고 하더라고 난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을 너무 잘 알았으니까.

“이 엄마가 어릴 때부터 마법사라면 치를 떨 정도로 많이 상대했거든. 다른 데서 맞아도 열 받는데, 마법사한테 맞진 마라. 아들.”

어머니, 강혜민 여사는 한때 마법 연맹에게 쫓기는 몸이었다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노하우 첫 번째.

마법사가 주둥이를 놀릴 틈을 주지 마라.

“이 땅에 머무는…….”

여자는 입을 열다 말고 눈을 부릅떠 날 바라봤다.

그럴 만했다.

내가 냅다 달려들었으니까.

거리만 좁히면 필승이다? 그건 아니다.

두-웅.

허공에 트라이앵글 필드가 떠오른다. 삼각형이 연이어 만나는 모양의 방어막.

그와 동시에 내가 상대하는 여자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아, 이식계구나.

마법사라고 다 같은 마법사가 아니다.

현 세상의 마법사 중에는 만일을 대비해 제 몸에 기어와 비슷한 걸 이식하는 이들도 있다.

순수 주문계도 있지만, 이런 쪽도 최근에는 각광받는 모양새라고 들었다.

기어와 무기가 없는 대련이지만, 그 몸에 새긴 게 반칙이라고 할 순 없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마법사는 변신족을 만나면 무조건 질 테니까.

그렇다고 이게 또 무조건 마법사에게 유리한 건 아니니까.

“주문은 생각보다 빈틈이 많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난 눈으로 마법 방어막을 훑었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그리고 그걸 쓰는 상대가 어설프다면 더더욱 불완전한 것이다.

과연 그랬다.

이건 뇌전력의 눈도 필요 없다.

마법은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으로 받았다.

재능이 없기에 쓸 수 없을 뿐이지, 난 그 누구보다 마법을 탐닉하고 탐구했다.

난 트라이앵글 필드 위에 파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그걸 본 여자의 표정에 안도감이 깃든다. 눈이 파랗게 번쩍거리는 걸 보니 눈에 주문을 이식한 듯했고.

왜 하필 눈일까.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난 트라이앵글의 틈을 찾아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걸 본 여자 마법사가 에? 하고 황당한 목소리로 반응했고.

난 양손을 집어넣어 트라이앵글 필드를 찢었다.

우드드득.

필드 방어막 주문은 내부 충격에 약하므로 이런 것도 가능했다.

허공에 삼각형의 파란 불빛이 명멸하다 스러진다.

그리고 내 몸을 지탱하던 방어막이 사라졌기에 난 그 밑으로 내려앉았다.

안녕 마법사 친구야?

“꺄아아악!”

손도 안 댔는데 여자 마법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나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어이.

어깨에 손을 올리자, 여자애는 울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기권! 기권할래요!”

그렇게 난 승리를 거머쥐고.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폭력성에 뇌까지 절어 버린 자식.”

“저거 약 먹은 거 아닌가 검사 안 하나?”

물론 했다.

도핑 테스트야 시작하기 전에 했지.

그건 기본이니까.

난 깨끗했다.

그렇게 두어 번 더 상대를 제압하자.

날 보는 시선이 또 한 번 변했다.

“일반인은 맞는데.”

“종합 전투 능력만 보자면 최소 A급. 그것도 대인 전투력은 더 뛰어나다고 봐야겠는데.”

상급생까지도 날 주목하고.

정부, 기업 각 단체에서 나온 스폰서들도 날 보는 눈빛이 변했다.

“얘기 좀 할까?”

스폰서 중 하나로 보였다.

정장에 말끔하게 올백으로 넘긴 머리, 외모는 그럭저럭하다.

그러므로 불멸자는 아닐 것이다. 옷을 입었지만, 그 안에 담긴 몸에서 폭발적인 활력이 느껴졌다.

어지간한 훈련으로 만든 몸이 아니라는 거였다.

“네.”

“괴물의 아들은 과연 괴물이라는 건가.”

남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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