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 기대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다.
“아, 진짜 넌 왜 말을 그렇게 듣냐?”
“내가 그렇게 들은 게 아니고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네가?”
“그럼 뭐? 세최특니이이임? 이렇게 불러 줄까?”
분명 아들 걱정으로 시작한 대화였다.
주말 낮, 식탁 앞에서 중국식 볶음밥을 직접 해서 먹는 중이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볶음밥을 먹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어쩌다 보니 싸우고 있다.
“하, 진짜.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왜? 아, 왜 나 같은 애랑 결혼해서 꼬우셔?”
“말이 꼬였다. 너 심보만큼 꼬였어.”
“아, 내 심보가 꼬였어?”
말싸움이 곧 힘을 쓰는 싸움이 되는 건 둘의 일상이었다.
딱히 서로를 향한 살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이건 일방적으로 광익의 잘못이었다.
“어, 몰랐어? 잔뜩 꼬였지. 배배 꼬였지, 스크류 바 저리 가라지.”
일단 입을 털기 시작하면 혜민의 멘탈을 제대로 부쉈다.
그 덕분이다.
화르륵.
혜민은 말 대신 행동을 택했다.
수차례 비슷한 부부 싸움이 있었다.
둘의 패턴은 정해져 있었다.
보호 주문은 완전히 무시한 채로 달려드는 혜민과.
그걸 보고서 피하는 광익이다.
보호 주문이 없기에 툭 치면 진짜 중상이다.
“쳐, 쳐!”
그러니 마음먹고 덤빈다.
광익은 차마 때릴 순 없었다.
혜민의 주문도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심각한 부부 싸움으로 보이겠지만.
이 둘에게는 사소한 일일 뿐이었다.
애초에 정신 구조와 신경 줄이 남들의 몇 배는 두꺼운 이들이었다.
둘은 한바탕 싸웠다.
벽이 그을리고 한쪽에 반쯤 녹은 고드름 창이 꽂혔다.
그래도 집을 완파하진 않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고급 빌라에 살고 있었고.
그 빌라에 보호 주문을 걸어 뒀다.
“후우후우.”
혜민이 숨을 몰아쉰다. 눈빛에 독기가 저물어 가는 낙조처럼 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만하자. 애도 없는데 우리끼리 싸워서 뭐 하냐.”
이제까지 부부 싸움은 온신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다.
둘을 보고 말리려고 용을 쓰는 걸 보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그게 몸에 익어 버린 탓에 오늘도 불을 토하며 싸웠으나.
둘 다 허무했다.
“우리 아들 괜찮겠지?”
혜민이 광익의 품에 폭 안겼다.
광익은 여전히 제 아내를 사랑했다.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그건 혜민도 마찬가지였다.
불같이 싸운 둘은 곧 불같이 사랑을 나눌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광익은 혜민을 달랬다.
“괜찮을 거야. 결사대까지 만들었잖아.”
아내 등쌀에 아예 온신의 뒤를 봐주는 결사대까지 조직했다.
물론 광익 자신의 걱정도 스며들어 있기에 한 일이었다.
그리 말하며 광익은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 집 밖에 나가서 오히려 만족하려나?’
모르겠다. 자신은 아들이 아니다. 부모라고 해서 아들 대신 인생을 살아 줄 순 없다.
그러므로 아들이 하는 일을 말릴 수도 없다.
“정미랑 걔 때문에.”
혜민이 한숨을 내쉰다.
엄마는 엄마였다. 아들의 속내는 이미 다 읽었다.
반은 정기남 덕이었을 거다.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었겠지.
정기남은 결혼 전에는 말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어째 미랑이가 태어난 뒤에 공처가와 딸 바보가 섞인 수다쟁이가 됐다.
혜민은 걱정하면서도 내심 믿는 바가 있긴 했다.
‘내 아들이니까.’
불멸자가 아닌 아들이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내보낼 순 없었다.
나름의 대비는 해 뒀다.
물론 지금 당장 아들이 ‘그걸’ 내보일 일은 없겠지만.
“사관 학교 내에서 미랑이 말고도 다른 애한테 눈 돌리는 것 같다면서요?”
혜민도 들을 건 다 들었다. 결사대 조직 자체가 그녀의 의견 아닌가.
그 말에 광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아직 어린 아들이다.
이 여자, 저 여자 눈에 들어올 법도 하지 않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옳다는 건 아니지만.
“누굴 닮았는지.”
혜민이 혀를 찬다.
“아들은 아들일 뿐, 꼭 누굴 닮으란 법은 없지.”
광익은 단호하게 말했다.
* * *
“온신, 묻고 싶군요.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 거죠?”
이 질문의 의도는 정말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다분히 감탄의 어조다.
정말 뛰어난 인공 지능이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나.
“기발하군요.”
“그렇지?”
시험에 앞서 내가 택한 건, 사자 공부법이었다.
사자에게 쫓기듯, 짧은 시간에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하지만 뭐든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한계는 금세 찾아왔다.
하루 만에 집중력이라 부르는 어떤 것이 소모됐다.
당연한 일이었다.
잠을 줄여 가며 공부에 집중했으니까.
24시간 이상 깨어 있으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침대에 들어가 스윗 드림하며 잘 순 없지 않나.
외우고 익힐 건 많은데, 시간은 부족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험은 코앞, 남은 시간은 겨우 사흘.
파직.
내 손, 검지와 엄지를 비비니 번개가 튀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번개를 일으켜 몸을 지진다. 초능으로 일으킨 뇌전은 내 몸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초능 특수종 세계의 상식이다.
그래서다. 뇌전을 머금은 에너지를 밖으로 뿜어내는 게 아니라 몸 내부에서 휘돌린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요령이 붙었다.
그 뒤에는 어렵지 않았다.
파지지지직.
휘돌린 번갯불이 전신을 치고 지나갔다.
뇌까지 찌르고 내려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이걸 라이트닝 박카스라 부르겠어.”
각성 효과가 죽여줬다.
입에 깔때기를 꽂고 커피를 갖다 부어도 이럴 순 없을 만큼.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만한 통증이 따라오긴 했지만, 뇌랑 장기만 안 타면 된 거다.
체감하길 뇌를 후려치는 거지, 실제로 뇌 안에 전기를 쏘아 내는 건 아니니까.
각성 효과가 뇌를 깨운다. 흐릿하던 앞이 또렷해지고 잠이 확 달아났다.
잠이 깨고 부가적으로 자극받은 뇌가 본래처럼 싱싱하게 집중력을 발휘했다.
어느 정도 각성 효과는 있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좋아요. 할 수 있어요. 온신!”
책상 앞에 앉는다. 집중한다. 그렇게 사흘의 대장정이 끝났다.
곧바로 시험 시간이었다.
대강 준비하고 나가는 사이, 전화가 왔다.
받으니, 아버지다.
“아들.”
“네.”
“네 엄마가 널 또 데려오겠다고 한 거 아버지가 말렸다.”
안부 전화였다. 어머니는 자주 저러시니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
“사랑해요, 아버지.”
나이 먹은 아들의 수줍은 고백에 아버지는 담담히 답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 넌 어째 사랑이 헤픈 것 같다?”
음, 전화를 끊은 난 잠시 반성했다.
말투에 너무 진심이 없었나 보군.
아버지는 불멸자, 육감이 뛰어나시니.
감정이 없이 하는 말은 귀신같이 잡아내시지.
짧은 통화를 끝내고 걷는 사이, 앞에서 아는 척을 해 왔다.
“시험 잘 봐.”
눈웃음이 탁월하게 예쁜 여자, 로니였다.
“너도.”
로니가 웃으며 돌아섰다. 주변에 어울리는 무리 몇이 ‘쟤가 걔야?’라고 떠드는 게 들렸다.
그래, 내가 걔다.
무능력의 유온신.
요새 사관 학교 내에서는 날 그렇게 불렀다.
날 뭐라 부르든 신경 쓰진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데 신경 쓸 시간에 능력을 탐구하고 공부를 한 자 더 했다.
그게 효율적이지, 암.
어쨌든 나중에 내가 초능을 팍 터트리면 쟤들도 막 눈에서 하트가 나올 거 아닌가.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 들려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감미로웠다.
다시 졸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 뇌전을 태워 한 번 더 뇌를 깨웠다.
몇 번 반복하자, 이제 슬슬 번개 발도 떨어진다.
처음처럼 화끈한 각성 효과가 없다.
그렇게 도착한 시험장이다.
“1분만 늦게 왔으면 낙제였습니다. 생도.”
“네.”
강단 앞에 선 부교수가 말했다.
초능 특수종 출신, 그것도 투시 능력의 부교수다.
그 옆에는 전뇌 능력의 초능 특수종이고.
어설프게 컨닝 따위를 시도하면 그대로 끝장이란 소리였다.
계단식으로 된 강의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옆에서 유신이 반들반들한 얼굴로 날 반겼다.
잘 먹고 잘 자고 푹 쉰 얼굴이다.
유신에게 시험 공부 따위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왜 눈 밑에 화장하고 왔어?”
유신이 말하며 내 눈가를 손가락으로 닦았다.
“어?”
“다크써클이다.”
뇌전으로 몸을 깨우는 건 일시적인 방법이다.
레베카는 감탄한 만큼이나 경고도 했다.
이 모든 각성 효과가 끝났을 때, 후폭풍이 불 거라고.
부작용이야 좀 피곤하고 말겠지, 뭐.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나.
“너 공부했냐?”
유신이 놀랐다. 내가 초능력 있다고 말했을 때보다 더.
이 새끼는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조금.”
자리에 앉아 있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로 참았다.
이제 밥을 다 지은 참이었다.
여기에 코를 빠트릴 순 없는 노릇이다.
곧 눈앞에 단방향 홀로그램이 떠서 문제를 보여 줬다.
역사 문제였다.
[어스 블랙홀이 사라진 해에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시오.]
문제를 보는 순간 답이 보였다.
다음 문제도, 그다음 문제도.하물며 중간중간 창의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문제도 자연스레 술술 답이 나왔다.
레베카는 단순히 공부만 시킨 게 아니었다.
“토론과 대담은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답니다.”
그리 말하며 꾸준히 괴롭히지 않았나.
그 괴롭힘의 결과였다.
* * *
특수종 사관 학교는 아주 특별한 교육 기관이었다.
이곳에 재학 중인 이들은 생도이자 학생이면서도 전투 요원이 될 수 있었다.
그 모든 생도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컨퀘스트 미션.
현 세상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어 가는 직종이자, 모든 특수종이 원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위험은 동반되지만, 그만한 대가가 나오는 직업.
김한은 사관 학교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홀로그램 시험지를 눈으로 넘겼다.
시선 추적 시스템 덕분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됐다.
답안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약해 빠졌군.’
김한은 한때 불멸특수대 화림에서 고통 감내 훈련의 대가로 이름 날린 남자이자, 세최특의 시대를 같이 살아간 불멸자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옛날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예전처럼 어스 블랙홀이 터지는 대신, 이계에 넘어가 크리쳐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전투 형태가 변했다.
단단히 준비하고 목숨이 위험한 수준이 되면 작전을 중지한다.위
험을 줄었고 이득은 커졌다.
그러니 전보다 세상이 말랑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옛날 방식이 익숙한 그에게 요즘 특수종의 정신 상태는 말랑한 걸 넘어서 약해 빠진 거였다.
그는 이번 시험 테스트의 채점관 중 하나였다.
그에게 허약해 빠진 요즘 특수종의 답안지가 들어왔다.
그중 몇 개는 눈에 들어왔지만, 또 몇 개는 눈에 차지 않았다.
늙은 불멸자는 이따위 테스트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표정 풀어요. 지금 인베이더랑, 아니 이제는 크리쳐지, 크리쳐랑 싸우는 것도 아닌데요.”
옆에 있던 다른 채점관이 말한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여자다.
화림에서부터 현재까지 동료로 지내는 사이고.
박다람.
몸 쓰는 불멸자로 유명한 화림 출신의 교수다.
“알아.”
“가끔 보다 보면 마음에 드는 애들도 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이한이 눈여겨보는 특수종도 있었다.
불멸자도 아니고 변신족이 그의 눈에 들었다.
그럴 만했다.
그놈은 다른 놈과 사상이 다르니까.
과감하고 과격하다.
요즘 같은 세상이니, 이런 타입의 리더가 필요하진 않나 싶다.
그리 답안지를 넘기는 사이다.
둘 다 같은 홀로그램에서 멈췄다.
각기 다른 문제를 채점하는 데도 그렇다.
특수종 사관학교의 시험과 채점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각 문제에 각기 다른 교수가 실시간으로 동시 채점을 한다.
교수마다 맡은 분야가 다르기에 생긴 방식이었다.
“유온신.”
김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답을 눈으로 훑는다. 인상적이다. 아니, 인상적인 걸 넘었다.
파격 그 이상이었다.
과거, 이제는 수십 년 전이 되어 버린 그때다. 광익이 화림 면접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총알이 없다면 총을 던져 잡겠다고 했던가?
실제로 그게 가능한 놈이기에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놈도 그런 건가.
박다람은 한참 집중해서 홀로그램을 보다가 파핫 하고 웃어 버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해야겠는데요.”
김한은 대답 대신 채점표에 사인했다.
박다람도 말과 함께 채점을 끝냈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을 증명한다.
그런 면에서 온신은 반쯤은 미친 사람 같았지만.
옛날 사람인 둘에게는 이런 방식이 맞는다고 느꼈다.
“불멸자 죽이기라.”
김한이 중얼거린다. 불멸자를 상대하는 방법에 관한 기술이었다.
퍽 인상적인 수단이 많았다.
“실제 대련해서 못하면 말만 앞서는 머저리가 될 거예요. 그럼 이 점수 따위 아무 소용 없을 거고.”
박다람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예전에는 통통 튀는 단발 미녀였다면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관록이 붙어 농후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무능력자 대 불멸자라.”
“다음 시험이 마침 대련이잖아요?”
“증명할 기회는 충분한 것 같군.”
둘은 결론을 내렸다.
유온신은 둘 중 하나라고.
세상 제일의 머저리거나.
아니면 무능력자의 몸으로도 특수종 세상에 뛰어들 재능의 소유자거나.
무려 그 세최특의 아들.
둘은 당연히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