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 이후는 손끝을 떨었다.
이후가 온신과 싸우기로 한 건 누구의 뜻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였다.
거절해도 될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 단순했다.
세최특의 아들이니까.
후는 세최특의 아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의 그릇을, 바닥을, 실력을, 혈통을 보고 싶었다.
무능력자라 불리는 데 그게 정말인지.
제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으므로.
그리고 확인했다.
‘무능력자다.’
능력은 없다. 일반인이다. 특수종이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싸워 봤기에 안다. 숨기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그건 뭐였지?’
그럼에도 상대는 평범하지 않았다.
“감상이 어때?”
“어떤 감상?”
정미랑이 개인 훈련장 출입구에 등을 기대어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총을 쏴 갈긴 표적지가 이후의 앞으로 홀로그램 형태로 나타났다.
중앙 삼 점사, 간격은 1cm 내외다.
나쁘지 않은 실력이었다.
아니, 훌륭했다.
물론 불멸자와 비교해서는 조금 부족하겠지만, 이후는 혼혈이 아닌 순혈 변신족이니,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그는 홀로그램 표적지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무능력자를 평가하는 게 가치가 있나?”
말하며 손가락을 까닥이자, 홀로그램 표적지가 사라졌다.
훈련에 사용한 총기를 반납하자, 머리 위에서 AI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후, 사격 훈련 종료, 확인. 총기 반납 확인. 이상 없음, 나가셔도 좋습니다.”
기계적인 목소리에 이어 미랑이 재차 물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텐데?”
알고 묻는 건가?
둘이 어릴 때부터 어울린 사이였다고 들었다.
알음알음 들리는 소문으로는 정미랑 때문에 유온신이 사관 학교에 입학했다고도 들었고.
대련 때 쓰러진 온신의 시선은 미랑에게 꽂혀 있었다.
물론 미랑과 온신의 관계야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대신 온전히 유온신이란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정식 루트로 입학한 건 아니지만.’
비공식 루트, 그중 기부 입학 사례가 없던 건 아니지만,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일반인이 특수종 사관 학교에 들어온 것 자체가 큰 이슈였다.
그리고 지금.
이후는 이슈와 별개로 그에 대한 평가를 조정하는 중이었다.
그저 무능력자로 치부할 수 없었다.
단 한 순간의 격돌.
잠깐의 틈새,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후는 한 방에 때려눕힐 생각이었다.
그렇게 했다. 결과도 그렇게 나왔고.
다만, 그 과정에서 상대의 동작을 봤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잔상을 따라 반응했다.
일반인이 부분 변신을 한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잡아?
어지간한 수준의 변신족이 아니라면 현재 이후의 공격을 막아 낼 1학년은 없다.
그는 차세대 최고의 기대주.
호랑이 변신의 이후니까.
이 사관 학교를 통틀어 최고의 인재라 불리는 몸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후는 손끝을 떨었다.
‘그 한 방이 빗나갔다면.’
곧바로 반격이 이어졌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이어졌다.
이기는 건 자신이다.
당연하다.
상대는 장비도 없이 맨몸 대련을 했다.
변신족과 일반인의 맨몸 대련?
성인과 아이의 싸움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도 반격을 한다.
더욱이 그 눈빛.
‘지는 건 더럽게 싫어하게 생겼던데.’
“온신은 멈출 애가 아니야.”
미랑이 말한다. 그 말투 안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이후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걱정되고 신경 쓰이면 좀 더 잘해 주지 그러냐?”
“……그건 별개의 문제니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후는 그저 일반인 온신이 만약 특수종이었거나, 특수 제작된 기어를 입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만 했을 뿐.
‘변신족이었다면 좋았을걸.’
그는 그게 진심으로 아쉬웠다.
* * *
8시간의 미친 훈련으로 코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그래도 뿌듯했다.
나쁜 수준은 아니야.
지금 초능을 레벨로 치면 얼마나 될까?
테스트를 받아야 정확하겠지만, 기본기는 다 뗐으니까 2레벨은 되지 않을까?
그럴 거로 예상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누구에게 능력을 밝히고 싶진 않았다.
얘만 빼고.
“어, 진짜네?”
유신은 놀랐다. 그리고는 금세 본래의 강유신으로 돌아왔다.
“근데 불멸과 변신 사이에서 초능력자가 맞냐?”
관심이 멀어졌다는 거다.
애초에 특수종 세계에 큰 관심이 없는 놈이다.
기어를 만드는 것도 관심 없고.
꿈이 뭐냐고 묻는 말에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요리사라 말하는 놈인데 뭐.
그에게 세상은 요리와 음식, 끼니에 한정되어 있다.
그럼 내 세상은?
정미랑이지.
정미랑이야말로 내 세상이다.
“그런 건 상관없어. 내가 특수종이 됐다는 게 중요하지.”
“그럼 그래서 그게 레벨 몇인데?”
유신이 묻는 말에 난 카페테리아 구석에서 염동력으로 움직인 잔을 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한 레벨 2쯤 되지 않을까?”
전투에 참여하기 위한 초능 레벨은 3부터다.
“그렇구나.”
역시나 유신은 별 관심은 없다.
하지만 말은 해 주고 싶었다.
딱히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이런 내용을 듣게 하고 싶진 않은 상대다.
그러니까 몇 안 되는 친구라는 거다.
“그래서 목표가 이계 진입팀에 들어가는 거라고?”
컨퀘스트 미션.
현재 인류에게 가장 영광된 일임이 틀림없다.
어리고 특수종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이계 진입하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정부에 들어가는 거니까.
그렇다고 모든 특수종이 원하는 건 아니겠지만, 대다수는 원한다.
아버지 때는 어스 블랙홀과 인베이더 때문에 많은 특수종에게 전투 능력이 강요되었다고 한다.
뭐, 미친 과학자 무리와 테러 단체도 많았다고 하고.
현재는 그런 과학자도 테러 단체는 역사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들이 됐다.
그때는 싸움이 지긋지긋했겠지만, 지금은 평화의 시대다.
역으로 이런 시대이기에 제 능력을 더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계 진입팀, 또는 이계 정복팀은 현시대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력이다.
정복팀 중 유명한 이들은 TV 쇼에도 출현해서 자신이란 가치를 팔기도 한다.
이들은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인기가 몇 배는 더 높았다.
“그래야겠지.”
사관 학교 졸업이 목표라면 컨퀘스트 미션에 들어가는 게 필수이기도 했다.
하는 김에 인기도 생기고 유명해지는 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뭐, 그래도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나한테 중요한 건 정미랑이니까.
걔랑 결혼해서 애는 넷쯤 낳아서 알콩달콩 사는 게 내 인생 목표다.
쪼르륵.
유신이 석 잔째 다른 맛의 스무디를 마시며 눈을 깜빡였다.
“너 나중에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어쩌려고?”
“그럴 일 없어.”
내 순정을 얕보냐?
눈으로 욕하자, 유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아빠가 결혼만 여섯 번 했거든, 할 때마다 아버지는 진심이었다. 대신 차도에도 뛰어들 수 있다고 매번 말씀하셨다.”
“아버지 불멸자시잖아.”
대신 차도에 뛰어들어도 아프고 말지 않나?
“응.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거다.”
지금 하는 얘기에서 어디에 진심이 있는 거지?
유신의 아버지는 그러니까 푸름 삼촌은 유명한 바람둥이다.
무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바람둥이.
어쨌든 유신이 하는 얘기가 뭘 말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는 것.
그래, 나도 머리로는 아는 얘기다.
하지만 그게 피부에 와닿지는 않을 뿐.
“아니, 난 안 변해.”
그러므로 확신한다.
“그래, 그래라.”
유신은 비관적이었다.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확신한다니까.
지금 내 가슴에 타오르는 건 쉬이 꺼지지 않을 불꽃이라는 걸.
“너구나. 유온신이.”
그리고 지금 내 가슴에 두 번째 불꽃을 붙였을지도 모를 여자가 나타났다.
음. 예쁘다.
미랑이랑 버금갈 정도로.
카페 앉은 나와 유신에게 기척도 안 느껴지게 다가온 여자였다.
눈은 칠흑같이 검었고.
머리칼은 옅은 갈색에 길게 땋아서 밑으로 늘어뜨린 채였다.
인상적인 건 여러 가지였다.
1학년 견장을 달았으며 눈이 맑고 빛났다.
이목구비의 조화가 남다르다.
“누구?”
“초능국의 공주라는 직함이 있지만, 여기서는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 알 로니아 레니어. 친구들은 로니라고 불러.”
“아, 로니.”
유신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러냐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반대로 난 로니란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순간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미녀였다.
“초능국의 공주가 불멸자?”
“드물지, 특이하고. 어머니가 불멸자야. 혼혈.”
말하며 로니가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주문하겠냐는 홀로그램 창이 그녀 앞으로 떴다.
로니가 손을 휘젓자, 주문 창이 사라졌다.
카페에 앉으면 곧바로 작동하는 주문 시스템이다.
시키면 곧바로 가져온다.
바로 지금처럼.
위잉.
바퀴 달린 로봇이 유신의 앞에 새로운 스무디를 내려놓았다.
초콜릿과 녹차가 가미된, 열량 폭탄으로 보이는 스무디다.
“아, 그렇구나.”
난 얘가 왜 갑자기 다가왔는지, 여기에 왜 앉았는지 몰랐다.
공주 로니는 그런 날 빤히 보다가 으흠 하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얼굴 진짜 괜찮네. 또 보자.”
그러더니 툭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음, 그래.”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어 주니, 로니가 생긋 웃었다.
두근.
심장이 잠깐 반응했다.
아, 정미랑은 날 보지도 않는데 갈아타야 하나? 그게 맞나?
쟤 나한테 관심 충만한 것 같은데.
“넌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보다 더한 놈이 될 것 같다.”
입가에 초콜릿과 녹차의 흔적을 묻힌 유신이 말했다.
난 몹시 노한 눈빛으로 친구를 쏘아봤다.
“야, 그런 눈빛으로 보면 내가 꼭 욕한 것 같잖아.”
유신이 툴툴거렸다.
차마 친구 아버지를 상대로 육두문자를 뱉을 수 없기에 난 말을 삼켰다.
그럼 그게 욕이 아니고 뭐냐.
안 되겠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지.
“난 간다.”
“어딜?”
“훈련하러. 레벨 2로는 이계 진입 불가니까.”
미안하다. 미랑아. 내가 잠깐 한눈을 팔았어.
용서해 줄 거지?
후, 안 그래도 우리 사이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장인어른인 정기남 씨는 나를 몹시 별로라 생각하시니까.
그러니까 잡생각은 던지고 훈련이나 하러 가자고.
이후 일주일 동안, 유신과 떠드는 시간과 꼭 들어야 하는 필수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 일상은 단조로웠다.
일어나면.
“좋은 아침이에요. 온신, 오늘 아침 식사는 소시지 채소볶음이 핵심이네요.”
먹고.
“아침 훈련장 예약해 뒀어요.”
짧게 몸을 풀고.
아침은 초능보다는 체력 단련에 집중했다.
웨이트와 유산소를 병행하는 우리 집 특유의 체력 코스 훈련이다.
집에 있을 때는 아침마다 몸을 썼다.
안 하니까 어색해서 다시 시작했다.
그 뒤에는 수업에 참여했다.
불멸자의 이해, 변신족의 이해, 각 특수종의 이해와.
주문 세계의 이해 따위를 들었고.
한 달이 지나자 몸을 쓰는 수업이 섞였다.
그러니까 사격 훈련 따위다.
타다다다당!
연사가 가능한 권총을 갈기자, 허공에 홀로그램 표적지가 나타났다.
“너 불멸자 아니지?”
사격 교습 강사가 물었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 아닙니다.”
“그래, 혹시나 했다.”
사격 성적은 탑 클래스였다.
불멸자와 버금가는 정도란다.
근데 이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 않나.
움직이면서 쏜 것도 아니고 그냥 제자리 사격인데.
아무리 나라도 재주를 돌며 이 정도 수준의 사격 능력을 보여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불멸자는 가능하지.
그러니 이건 놀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나야 뭐 어릴 때부터 총을 갖고 논 적이 많다.
혹 변신족의 피만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어머니가 조기 교육을 하셨다.
그게 지금 도움이 됐다.
수업 이후에는 다시 훈련.
이론과 체력 단련을 병행한다.
당장 내 몸의 반응 속도나 동체 시력 따위를 변신족과 비교할 순 없다.
그건 일반인의 몸으로는 무리다.
하지만 비슷한 흉내는 낼 수 있다.
“……잘하네.”
본격적인 몸 쓰는 수업이 시작되자 어째 강사 반응이 한결같았다.
난 주변을 둘러봤다.
1학년 무리와 간간이 유급된 2학년 학도, 그사이에 선 강사 또는 교수, 조교까지.
다양하다.
저들의 레벨은 어느 정도나 될까.
새삼 그게 무척 궁금했다.
그렇게 의문만 가졌는데.
파직.
음?
이건 또 뭐야?
갑자기 눈앞에 스파크가 튄다.
“유신아, 지금 뭐 튀지 않았냐?”
“또 사랑의 스파크가 튄 건 아니지?”
아니다. 이 새끼야.
난 정미랑이 일 순위라고.
이 순위는 나도 모르게 로니로 정해 버렸다.
그건 그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였단다.
파직.
한 번 더.
스파크가 눈앞에서 푸른 방전을 일으켰다.
어?
이건 진짜 이상한데.
아무도 못 본 것 같은 게 더 이상하다.
이렇게 선명하게 보였는데?
두 번의 스파크 이후 전신에 짜르르 하는 감각이 스쳐 갔고.
동시에 주변 사람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전류의 형태로 파직거리는 무언가가.
그 순간 또 깨닫는다.
나, 싱글이 아니구나.
초능력은 개수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두 개를 쓰면 듀얼이다.
당연하게도 두 개를 쓰면 그 능력자의 가치는 높아진다.
그리고 난 듀얼 능력자였다.
내 눈에 주변 모두의 몸에 흐르는 전류 따위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