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아니, 이게 왜 돼?
내 아버지는 갓광익, 세최특이라 불리는 불멸과 변신의 혼혈이다.
규격 외의 존재, 그래, 툭하면 그리 불리는 분이다.
그리고 이런 아버지와 결혼하신 내 어머니는 스펠 유저, 불세출의 천재 마법사다.
그리고 난 두 분의 혈통 중 어떤 것도 이어받지 못했다.
무능력자, 일반인이다.
그래서 난 지금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게 왜 돼?”
“그걸 나한테 묻는 건 아니죠?”
AI 레베카가 답한다.
그래, 너한테 묻는 건 아니지.
내가 몹시 당황스러워서 그래.
진짜 깜짝 놀랐단 말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깬 뒤였다.
아무 생각 없이 책상 한쪽에 세워 둔 탄산수로 손을 뻗었고 일어나서 쥐는 걸 상상한 순간, 툭 하고 탄산수 유리병이 내 손에 날아왔다.
이게 뭐야.
무서워, 나 진짜 놀랐어.
너무 놀라서 엉거주춤 서 있다 보니, 허벅지 근육이 땅겼다.
난 도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단 마셔요. 진정 좀 하고.”
레베카의 말을 따랐다.
탄산수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따가운 탄산을 머금은 물이 목을 타고 내장으로 내려갔다.
대련에서 마구잡이로 깨진 뒤 낙담해서 뭘 제대로 먹지도 않고 낮잠을 자버린 탓에 속이 비었다.
위장에 들어간 물의 흐름이 다 느껴졌다.
탄산이 위장을 자극한다.
“끄억.”
“더러워요.”
지금 그게 중요해?
이거 이상하잖아.
갑자기 의지만으로 이런 게 왜 손에 날아와 잡히는데?
한 번 더 시험해 볼까 싶었다.
이번에는 냉장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연다. 연다. 열고야 만다.
안 열렸다. 냉장고는 꼼짝도 안 했다.
착각이었나?
아니지, 착각 따위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순 없다.
아까랑 뭐가 다른가?
“흐읍.”
기합을 넣어 봤다.
그래도 안 된다. 뭔가 될 것도 같은데, 방법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압!”
기합 종류를 바꿔 봤다.
안 된다.뭐가 문제지?
“꿈인가?”
“전 꿈을 꾸지 않거든요. 현실이에요. 온신.”
레베카의 목소리가 방구석에서 들렸다.
그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조금 전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자기 전에 지갑이 손에 잡힌 것도 염동력이 발동한 듯싶다.
그럼 물건을 쥐었을 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인가.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 봤다.
탄산수나 지갑을 쥘 때는 손으로 쥐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그렇다면 냉장고도 마찬가지지.
가상의 손을 만든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문을 연다.
딸각.
열렸다.
“와 씨.”
“와, 진짜.”
난 놀랐다. 레베카도 놀랐다.
“그게 왜 돼요?”
“이게 왜 돼?”
레베카는 홀로그램으로 자신의 모습을 구현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시늉까지 해줬다.
얘는 왜 이래?
레베카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자, 레베카가 그 상태에서 눈만 옆으로 돌려서 날 보고 말했다.
“이건 AI로써 놀람을 표현하는 패턴이에요. 온신.”
그러냐?
난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현재 상황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정리했다.
“나 초능 특수종이네.”
“그러네요.”
이게, 음, 이렇게도 되네?
아버지는 혼혈, 불멸과 변신의 혈통을 이었고.
어머니는 마법의 혈통을 이었으나.
난 초능 특수종이 됐다.
오늘 난 염동력을 발동했다.
“허.”
반쯤은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고.
또 반쯤은 기대감과 충족감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난 무능력자가 아니었다.
* * *
“초능은 피로 이어지지 않지. 이런 것도 모르고 수업에 들어온 건 아니겠지?”
처음 듣는 건 아니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절로 귀가 쫑긋했다.
“초능력의 발현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유전자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람도 있고 특수한 상황에서 발현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합리적인 이론은 운이다. 전부 무작위다.”
‘초능력의 이해’라는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가 말한다.
저 사람도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한정직, 무려 광변환 초능 소유자다.
어지간한 변신족과도 맞붙어 밀리지 않는 드문 능력의 소유자이며.
과거에는 인베이더라 불리고 현재는 크리쳐라 불리는 것들을 상대로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한때는 NS, 그러니까 아버지 회사의 직원이기도 했으며.
그 덕에 어릴 때부터 자주 봤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 중 하나다.
한창 설명하던 삼촌이 날 보고는 눈을 찡긋했다.
난 모른 척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니,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교수이자 삼촌이 하는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절로 집중이 됐다.
만약 나한테 염력이 발현되지 않았다면 반쯤은 흘려들을 얘기였겠지만.
지금 나한테는 너무 중요한 얘기 아닌가.
“그냥 생길 놈은 생기고 안 생길 놈은 안 생겨. 그러니 초능력이 왜 생겼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 능력을 활용할 방법이나 고민하는 게 생산적이라는 거다.”
딱.
그렇게 말하며, 정직 삼촌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손에 맞춰 허공에 홀로그램이 뜨고 교실 조도가 낮아졌다.
홀로그램 위로 ‘초능력의 이해’란 글씨가 둥둥 떴다가 사라졌다.
쓸데없는 효과에 신경을 썼네.
적당히 어두워진 공간에 삼촌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까지 알려진 초능은 수천 가지다. 그중 현실적으로 크게 활용되는 능력을 사대 초능이라 부른다. 첫 번째 초능이 뭔지 대답해 볼 사람?”
그러자 수강생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난 특혜 입학으로 오티도, 친해질 기회도 없이 곧바로 사관 학교에 입성했다.
아는 얼굴이 드문 건 당연했다.
“염동력입니다.”
“정답이다.”
이후 설명이 이어졌다.
두 번째는 원소 구현 능력.
흔히 손에서 불을 뿜어 내거나, 닿는 것만으로 단숨에 얼리거나, 몸에서 번개를 뿜는 그런 종류의 능력을 말한다.
세 번째는 변환 능력.
바위나 불, 빛 등 변하는 종류는 다양하다.
변환 능력 자체는 효율성이 높다는 말이 이어졌다.
어째 자신의 능력이니 더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네 번째는 강화다.
근력이 됐든, 순발력이 됐든, 제 몸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는 걸 말하는 거였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좋았던가?
아니면 정직이 삼촌이 수업을 잘하는 걸까.
모든 것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한 번만 들었는데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너 오늘따라 왜 그러냐?”
옆에서 유신이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뭐가?”
“아니, 좀 그, 이상하잖아? 뭐 이렇게 열심히 들어? 필기도 해?”
홀로그램 태블릿에 이런저런 걸 슥슥 쓰면서 들으니, 더 이해가 잘 되길래 그러는 중이었다.
그래, 어색할 수 있었다.
입학한 지 한 달.
학교 내에 있는 모두는 날 무능력자라 하고.
놀고먹는 놈이라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동안은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정미랑 그 나쁜 년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이거라면, 나도 변할 수 있으므로.
무능력자 유온신이 아닐 수 있으니.
절로 집중력이란 게 타올랐다.
“오늘부터 난 다르다.”
“얌마, 대련 한 번 졌다고 미친 거냐? 괜찮아. 이 학교에서 이후를 이길 놈이 몇 놈이나 된다고.”
유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다. 집중해야 할 때.
더없이 값진 한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여기서 끝이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묻지 말고 잘 간직하고 괜히 물으러 오지 마라.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정직이 삼촌이 나간다. 나가면서 날 다시 힐끗 보셨다.
난 그걸 봤음에도 배운 걸 되새기느라 바빴다.
오늘 수업은 마치 날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총체적 이론 뒤에, 염동력을 다루는 법이 태반이었다.
구조나 형태, 무형의 능력을 구현하는 방식까지.
당장 써 보고 싶었다.
실험할 게 산더미였다.
“간다.”
“뭐? 밥은?”
유신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끼니를 넘기는 건 못 참는 놈이었다.
하지만 난 아니지.
“바빠.”
“네가 뭐가 바빠? 친구도 없으면서.”
그렇지. 유신과 난 이 학교의 공식적인 왕따다.
하지만 친구가 없다고 해서 한가하다는 건 아니지 않나.
“나중에 보자.”
강의실을 나가며 유신을 보자, 세상이 망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은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라 근질거려 뒈질 판이었다.
유신은 금세 털어 내고 일어날 것이다.
곧 혼밥으로 뭘 먹을지 고민할 놈이다.
본래 진지하거나 심각한 친구가 아니다.
다음 수업이 있지만, 과감하게 넘어가기로 마음먹고 걸음을 옮겼다.
불멸자의 특수 능력 파악이란 수업이었는데.
딱히 들을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불멸자로 각성할 줄 알고 어릴 때부터 배운 게 많다.
그게 다 쓸모없을 줄 누가 알았겠나.
아니,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 수업은 들을 필요를 못 느꼈다.
“무능력자 주제에 수업도 째는 거냐?”
지나가는 중에 구스타프가 날 놀렸다.
금발에 파란 눈.
모델 활동 겸하는 오스트리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밀어주는 기대주다.
그 뒤로 외국인 친구 몇이 더 보였다.
이런 금발 머리 친구가 이곳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 있는 특수종 사관 학교는 세계 최고의 시설과 환경이다.
세최특, 그러니까 아버지의 영향력 덕분에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 유학도 번번한 일이다.
구스타프 랑닉, 레벨 4 염동력자.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각 능력을 레벨로 나눈다.
불멸자의 수준도, 변신족의 수준도 레벨로 표현하는 시대가 됐다.
그중 레벨 4는 정말 드물고 뛰어난 능력자란 소리였다.
1학년 중에는 4레벨이 스무 명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구스타프는 실세 중 하나였다.
올해 입학한 놈 중 열 손가락은 아슬아슬해도 스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천재다.
“넌 눈깔이 째졌군.”
양옆으로 찢어진 눈을 가진 오스트리아 놈을 말로 호되게 후려치자, 놈이 인상을 썼다.
“부모에게 빨대나 꽂고 사는 새끼가.”
그동안 구스타프는 툭하면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찰진 한국어가 돌아왔다.
그럴 만도 했다.
특수종 사관 학교 유학이 유행을 타는 시점인지라.
한국어는 현재 누구나 배워야 하는 필수 외국어가 됐다.
“쪽쪽쪽.”
난 빨대를 꽂고 빠는 시늉을 해 보였다.
“맛나다. 아버지 덕분에 편히 사는 거, 아이 맛난다.”
어디서 멘탈 공격이냐, 자식아.
구스타프가 눈알을 부르르 떨었다.
얘는 근데 말싸움으로 시작하면 번번이 깨지면서 왜 덤비는 건지 모르겠다.
“이후 선배랑은 대련했다지? 나랑도 한 번 하지 그러냐?”
“기회 되면.”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 다닐 거냐?”
“너 죽을 때까지?”
“이 새끼가?”
말싸움에서 완승하자, 구스타프 뒤에 있던 놈 중 하나가 눈을 부라렸다.
구스타프를 필두로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놈들이 모인 파티다.
그중에는 불멸자도 있고 변신족도 있다.
그중 불멸자가 나섰다.
혼혈로 보였다. 생김새가 그렇다.
“구스타프 너까지 갈 것도 없어. 내 선에서 정리해 주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지? 너희들 후환은 감당이 되겠냐?”
난 당당했다.
왜냐고?
내 아버지가 바로 세최특이니까.
맞으면 바로 아빠한테 전화할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진짜 진절머리 나는 새끼.”
구스타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제 추종자의 팔을 잡아 뒤로 당겼다.
난 가운뎃손가락 대신 생긋 미소를 보여 주고 지나쳤다.
하여간 보기만 하면 저 지랄이지.
말하는 나도 사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진짜 덤비면 당하는 건 기정사실이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밀릴 순 없다.
여기서도 밀리면 너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라.
실력으로 어쩔 수 없다면 말로라도 이겨야 했다.
지고는 못 살겠다.
“두고 보자.”
떠나는 내 뒤로 구스타프가 말했다.
“아우, 삼류 악당 드립이냐?”
난 종종 걸어서 날 비웃는 무리를 지나쳤다.
예전 같으면 말로 이겼음에도 속이 끓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나도 이제 무능력자가 아니므로.
“무능력자 새끼.”
“벌레.”
“모기.”
“파리 새끼.”
추종자 놈들이 뭐라 하든 타격이 없다.
일단 너희는 다 나중에 보자고.
지금 형이 좀 바쁘다. 자식들아.
푸쉭.
자동 개폐 장치가 열린 방문에 들어선다.
그렇게 방에 들어오자마자 난 입을 열었다.
“후, 레베카. 나 오늘 수업 다 짼다.”
“통보네요?”
“그럼 부탁이라도 할까?”
“각 교수님 개인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 드릴까요? 수업을 째는 이유에 관한 소고로 논문을 작성해 보겠어요?”
빌어먹을 AI.
“좀 봐줘.”
그동안 수업을 빼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난 당당했다.
이유가 뭐냐고?
레베카를 만든 놈이 정말 초변태여서 그럴 수 있었다.
“레베카아아.”
이렇게 적당히 조르면.
“어쩔 수 없네요. 이 말썽꾸러기 온신 같으니라고. 대리 출석으로 처리해 둘게요.”
레베카가 알아서 해 주더라고.
이럴 때면 새삼 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기숙사 방에 배정되는 AI를 최고 수준으로 배치했다.
엄마 최고.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비어 있는 훈련장 확인 가능해?”
갑자기 주어진 초능력을 써 보는 것.
아직 누구에게 밝히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에게도 말할 수 없다. 아직은.
“많아요. 혼자서 쓸 거고, 관전 불가, 염동력 제어 훈련장으로 하면 되죠? 무거운 모빌을 추가해 두죠.”
오케이, 좋다.
“레베카, 사랑한다.”
“여자한테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언젠가 등에 비수가 꽂힐지도 몰라요.”
레베카의 홀로그램이 내 등 뒤로 긴 칼을 꽂는 시늉을 해 보였다.
“……조심할게.”
난 얌전히 답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 들어간 뒤 이미지를 연상했다.
그러니까 아까 배운 대로.
솔직히 말하면 초능력 수업은 처음이었다.
당연하게도 난 불멸 또는 변신 또는 마법의 길을 갈 줄 알았으므로.
그래서 말인데.
“음, 쉽네?”
분명 정직이 삼촌 말로는 염동력도 단련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난 훈련장 위에 여덟 개의 모빌을 띄워 둔 채, 생각했다.
이게 어렵다고? 전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