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유온신
등이 아팠다.
몽롱하고 눈앞이 흐릿했고, 여기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 할 거냐?”
누군가 말을 건다. 근데 저게 누구였지?
내 이름은 뭐였더라?
기우뚱하게 기울어진 천장이 보였다.
누운 채였다. 아무래도 곱게 누운 건 아닌지, 등 허리가 다 아프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내가 어쩌다가 이러고 있는 거더라?
기억을 더듬어 봤다.
시작이 언제였는지.
왜 여기에서 내가 널브러져 있는지의 시작이다.
“유온신, 약속해.”
엄마는 단호했다.
특수종 사관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하니, 입에서 말 대신 불을 토하셨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불을 뿜어서 꽤 무서웠지.
화륵 하고 불을 뿜는 주문을 부리고는.
거길 보내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여 버리겠다고 하셨던가.
죽을 뻔했다.
인생의 위기는 불현듯 찾아오는 법이라더니.
설마 특수종 사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마디 했다가 엄마한테 타 죽을 뻔할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버지가 바로 곁에 계셨다는 거다.
“여보, 혜민아, 야! 애 진짜 타 죽겠다!”
“응. 그럴 생각인데?”
서늘한 눈빛을 뿜어 대는 어머니와.
“그만, 과해.”
그걸 말리는 아버지였다.
이후에도 난 고집을 부렸다.
불에 타 죽든 말든, 반드시 가겠다고.
“왜?”
당연하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입술을 오물거리던 난 곧 마음을 다잡았다.
차마 모든 걸 다 말할 순 없었다.
자존심이 있지, 정말 그럴 순 없었다.
“당당하게 살고 싶어서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세최특, 갓광익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최강의 특수종이며.
현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인이며.
어머니는 불세출의 재능을 타고난 스펠 유저이자, 모든 마법 연맹에 영향을 끼치는 마법사니까.
난 그런 두 분의 자식이다.
일반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게 변명이 되진 않는다.
불멸과 변신의 피를 잇지 못했다고 해도 난 세최특의 자식이다.
사람들의 기대감이 남달랐다.
열여덟의 생일이 지나고 스물의 생일이 지났을 때, 지구에 있는 모든 인류는 내 상황을 알았다.
아무것도 이어받지 못한 반쪽짜리.
목숨을 반쯤 내놓고 사는지 찌라시를 다루는 기자가 정말 둘의 자식이 맞냐고, 아버지가 다른 거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를 내려 했다고도 들었다.
물론 시도도 못 했다.
아빠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
어쨌든 난 전가의 보도를 꺼낸 셈이었다.
이런 이유라면 당연히 보내 주실 테니.
두 분 덕에 핍박받은 아들이 원합니다.
제 인생을 살기를.
“보내.”
아버지가 먼저 허락했고.
어머니는 조건을 걸었다.
“실전에 나가지 말 것. 나갔다가 걸리면 그냥 죽인다. 무조건 사무직, 책상에만 앉아 있어. 경고야. 너 불멸자 아니다.”
정말 날 죽이진 않으실 거다.
위협이다.
근데 위협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사관 학교 입학을 허락받았었다.
그런데 내가 왜 사관 학교에 가고 싶었더라.
가출했던 정신이 잠깐 집에 들렀다.
흐릿한 시선 너머, 한심한 표정으로 날 보는 여자가 보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누나다.
그렇다고 누나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상대였다.
순혈 불멸자, 정미랑.
이쪽도 유명한 혈통의 딸이었다.
세계 전체를 통틀어 불멸자 중 가장 잘 싸운다는 남자의 피를 이은 순혈의 딸.
순혈 정가의 모든 걸 이어받았다 일컬어지는 재능의 총화.
아버지를 뛰어넘으리라 예상되는 천재.
초라하다. 그 앞에 서면 한없이 초라했다.
그래서였다.
“너 나 좋아하니? 맞아?”
아파트 놀이터에서 달빛을 맞으며 우리는 얘기를 나눴었다.
그렇다고 했다.
“난 순혈 불멸자야. 정미랑이고 정기남의 딸이야. 그럼 넌?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붙이고 와야지 않을까? 적어도 사관 학교 수석 졸업생은 돼야지.”
그럼 만나 줄 것처럼 말하기에 알았다고 했다.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고 했던가.
그렇게 했다.
적어도 미랑의 앞에서는 가슴으로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학해서 봐.”
답하고 방에 돌아와서 혼자 울긴 했지만, 그 정도는 괜찮잖아?
펑펑 운 건 아니다.
눈물 찔끔 흘렸다.
정미랑, 나쁜 년.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붙어 지냈으면서.
아직 제대로 고백도 못 했는데 대뜸 사람 속을 이렇게 뒤집어 놓는다고?
매몰찬 계집.
하지만 그 여자가 자신의 마음에 가득 차 있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어쩌다 이곳에 널브러져 있는지의 기억이 서서히 정리되어 간다.
첫째도 정미랑, 둘째도 정미랑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올랐다.
홀로 훌쩍이다, 결국 사관 학교 입학 원서를 쓴 날.
“여자 때문이지?”
제기랄 불멸자의 감.
“우는 거 들었다.”
제기랄 불멸자의 귀.
“자식아.”
아버지가 내 머리를 헝클였다.
이제 마흔이 훌쩍 넘으셨으면서도, 아직 겉으로는 이십 대 중반쯤으로밖에 안 보였다.
늙게 늙는 건 특수종의 특징이다.
그럼 미랑이도 늦게 늙겠지?
난 폭삭 늙으면 어쩌지?
관리가 필수였다. 반드시 동안으로 남아야 했다.
불멸의 피를 잇진 못했지만, 다행히 그 피가 다 어디 가진 않았는지, 내 외모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특출났다.
어머니가 그냥 얌전히 모델이나 배우나 하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캐스팅 제의도 많이 받았고.
그러니 안티에이징만 유의하자.
요새 과학의 발달이 눈부시다.
이세계 자원을 끌어다 쓴 효과를 톡톡히 보는 중이니, 안티에이징 정도는 어렵지 않다.
“아들 너무 멍청하죠?”
내가 물었었다.
아버지는 미소를 보여 주시며 말했다.
“인생 뭐 두 번 사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하지만 명심해라. 넌 불멸자도 변신족도 아니다. 목숨은 하나야.”
사지 절단쯤이야 고액의 재생 치료를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죽으면 끝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이세계의 자원을 캐서 쓴다고 해도 소생은 불가능하다.
“네.”
“부모라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네 엄마도 말만 그렇지, 걱정이 앞서서 그런 거다.”
그건 정말인가요?
어릴 때부터 훈련할 때면 절 죽일 듯이 구셨는데요?
친엄마는 맞는 건가요?
맞긴 할 거다. 내 얼굴은 묘하게 엄마를 많이 닮았다.
외할머니는 가끔 날 보면 넌 어떻게 혜민이를 그렇게 쏙 빼닮았니, 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고집부릴 때 그렇게 말씀하시곤 서글픈 미소를 지으셨지.
“내 아들이라서 다들 눈총도 주고 그러는 거 안다. 그게 싫으면 싫다고 말해. 아니꼬운 놈 있으면 말해라. 아빠가 사람 시켜서 슥삭, 응? 알지?”
아버지의 등은 넓다. 가슴도 넓다.
생각도 남다르셨다.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그런 걸 일일이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말하면 정말 하실 것 같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네.”
그래도 대답은 야무지게 했다.
아버지를 마주 보고 미소도 보였다.
새삼, 이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뇌진탕이군. 더 못한다. 너.”
앞에 선 변신족, 이후가 말했다.
두 학년 선배다.
특수종 사관 학교는 학년이 깡패였다.
학년이 높은 이들이 조교도 되고 선생이 되기도 한다.
나이고 뭐고 간에 학년이 계급이 된다.
그리고 눈앞의 상대는 정미랑이 좋아한다는 소문이 도는 상대였다.
호랑이 변신족 이후.
차세대 최고의 변신족 타이틀을 가진 남자.
아빠한테 이를까?
그럼 저 새끼 그냥 슥삭인데.
아, 차마 그렇게는 못 하겠다.
자존심일까? 모르겠다.
그냥 싫다. 심장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이대로 상대를 향해 악을 지르고 싶다. 달려들고 싶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뇌진탕, 머리가 흔들렸다.
뭐에 얻어맞았더라?
첫 일격, 섬광이 번쩍이고 쓰러졌다.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무리다. 일반인이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특수종을 상대로 대련이라니. 세최특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받아 주지도 않았을 거다.”
대련에 참관한 조교가 말했다.
4학년 선배였다.
“네.”
난 답했다.졌다.
이후는 돌아섰고.
정미랑도 돌아섰다.
돌아서는 미랑의 표정이 냉랭했다.
시발. 절로 욕이 나왔다.
눈물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꾹 눌러 참고 주섬주섬 일어나자, 누군가 팔을 부축해 주었다.
“괜찮냐?”
친구다. 이쪽도 어린 시절부터 자주 어울렸다.
강유신,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기어 개발, 제조 회사의 아들내미시다.
소위 말하는 재벌 2세다.
뭐, 그런 것치고는 꽤 불행한 삶을 사는 중인 친구다.
아버지의 강요로 입학했다고 했던가.
푸름 삼촌이 말하길, 제 아들이 놀기만 하는 꼴은 볼 수 없고 재벌 아들로 키울 생각도 없다고 하셨다.
“의무실부터 가자.”
“됐어.”
뇌진탕 따위.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매몰차게 돌아선 정미랑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의무실은 가지 않고 기숙사에 들어왔다.
오늘따라 개인실이 부쩍 넓게 보였다.
“후.”
한숨을 푹 내쉬고, 침대에 궁둥이를 붙이고 뒤로 누웠다.
넓어. 쓸데없이 넓어.
넓고 이런저런 시스템이 추가된 방은 기부 입학자를 위한 특전이었다.
이쪽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개인실을 배정한다. 다인실은 없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개인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툭하면 말씀하셨다.
“돈으로 되는데 왜 안 하니? 써, 네 아버지는 방에서 뒹굴뒹굴하기만 해도 돈이 수백억씩 쌓이는 양반이란다. 너 그거 아니? 외국에서 네 아빠 용병으로 한 번 쓰면 최소 고용 비용이 200억부터인 거? 그 200억도 사실상 아는 사람 없으면 제안도 못 해요. 그러니 남는 게 돈이란다. 쓰렴.”
그래서 썼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쉬운 일이라고.
돈으로 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그렇게 했다.
그런데 엄마, 사랑은 돈으로 안 되나요?
안 될 것 같다.
정미랑 집안도 빵빵하다.
큰아버지가 사관 학교 출신 학도를 가장 많이 채용하는 기업의 회장이고.
미랑의 아버지가 NS의 핵심 간부니까.
물론 돈만 보자면 우리 집이 더 많겠지만.
걔는 돈으로 안 움직여요.
딱히 무슨 시도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 세상.우울하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는데.
개인 기숙사 벽을 타고 천장 일부까지 이어진 창 너머의 햇살은 따듯하기만 했다.
“날씨는 왜.”
괜히 서글퍼 말하자, 방에 배정된 AI 시스템이 반응했다.
“네, 유온신 님. 오늘 날씨는 구름이 없고 맑습니다. 온도는 24℃,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나가시는 건 어떨까요?”
“싫어. 닥쳐.”
“으으음, 그렇게 말하면 인공지능도 상처받아요. 레베카한테 그럼 못 써.”
아니, 염병, 누가 AI 반응을 이따위로 만들었지?
사관 학교 사물 인터넷 시스템을 만든 인간은 보통 변태가 아닐 것이다.
“레베카, 내가 사관 학교에 온 게 잘못일까?”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딱히 후회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미친 변태의 창조물, 레베카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에요. 유온신 님. 그러니까 그런 개소리 할 시간에 차라리 때려치우고 나가서 양주나 드링킹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알잖아요? 어금니 꽉 깨물고 버텨야죠. 온신이 선택한 사관 학교인걸요?”
……난 확신한다. 레베카를 창조한 새끼는 더 없이 개자식이라고.
사관 학교 입학 한 달.
난 사무직이 아니라 현장 업무를 맡고 싶다고 피력했고.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를 모르겠다.”
4학년 선배이자, 조교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정녕 그러고 싶다면 실력을 증명해 보라 했다.
그 상대가 이후였다.
결과는 처참.
아니, 처참 수준이 아니지.
발렸다. 쪽도 못 써 봤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미랑이랑 이런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언제부터 날 그런 경멸 어린 눈으로 봤지?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참 친밀한 사이였었다.
그랬었다.
“여자의 마음은 모르겠어.”
괜히 넋두리를 더 늘어놓자, 레베카가 반응했다.
“사람 마음은 본래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스물한 살답네요. 사랑의 열병이라, 좋네요. 궁상맞고 찌질하고. 온신의 별명은 세최찌는 어때요? 세계 최고 찌질이?”
아니, 진짜 레베카 만든 거 누구지?
앞으로도 꾸준히 얘랑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야?
“여자한테 차인 건 수업을 빠질 사유가 되지 않아요. 알죠?”
몰라,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난 아예 자세를 고쳐 제대로 누웠다.
“다음 수업은 두 시간 뒤, 초능력의 이해예요. 깨워 줄게요.”
난 답하지 않았다.
깨워 줄까요? 도 아니고 깨워 준단다.
AI가 너무 심하게 간섭하는 것 같지 않나?
난 그리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이야, 진짜 무능력자네?”
사관 학교 생도 중 참으로 많은 이들이 저런 말을 입에 담았다.
그래, 나 무능력자다.
염병, 뭐 보태 준 거 있냐?
생각이 점점이 끊어진다. 난 손을 뻗은 채로 잠에 취했다.
아, 손은 왜 뻗었더라?
한쪽 책상에 놓인 지갑을 향해서였다.
이런 순간에도 미랑과 같이 찍은 사진 한 번 더 보고 자고 싶었으니까.
반쯤 잠에 취한 채였다.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는 그런 몽롱한 상태.
일어나긴 너무 귀찮고.
미랑이는 보고 싶고.
일어나면 잠 깰 것 같은데?
눈이 반쯤 감긴다.
툭.
그때, 내 손에 지갑이 잡혔다.
응? 반쯤 졸면서 내가 들고 왔나?
그렇게 생각했다.
지갑이 열려, 미랑의 사진이 보인다.
난 환하게 웃는 미랑의 얼굴을 보며 잠들었다.
“온신 님?”
잠든 내 머리 위로 AI 주제에 감정, 그것도 황당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나온 것 같았지만.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졸렸다.
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