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 구멍이 없는 세계 (3)
“잘 지냈죠?”
“또 왔네?”
주문이 없다고 해도, 외모 자체가 마법과도 같다.
요한은 상대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렇지 않나.
딱히 뇌쇄적인 눈빛이나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떨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화림에 있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요.”
요한이 특수 제작된 철창에 등을 기댔다.
은은한 한기가 느껴졌다.
원통형 창살, 개인을 가두는 새장이다.
감옥 안에 갇힌 새, 최미남은 수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그렇지.”
“홀이 닫혔어요. 이제 인베이더가 안 나오네요. 대신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데, 신서울에 박쥐 히어로라도 나왔는지 하루아침이면 단숨에 슥삭슥삭이네요.”
요한이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떠든다.
“세상은 넓고 미친 사람은 참 많지. 세최특이 있는 곳에서 용케 덤비네?”
“그러니까요. 다들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만만해 보이는 건지.”
“인베이더의 신이란 놈의 머리통을 걷어찼다면서?”
“네, 그러니까 만만해 보이는 건 아닌 것 같네요.”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니니?”
둘은 웃었다. 이후로도 잡다한 얘기를 나눴다.
요한은 순순히 자신의 부모 얘기도 섞었다. 혼혈로 태어났고, 어릴 때 부모님은 쫓기는 특수종이었다고.
“쫓겨?”
“한때 불멸자 실험체가 인기였잖아요. 그때요.”
“운이 나빴구나.”
최미남은 그 쫓던 주체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말에는 진심이 담겼다.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게 거짓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어디 아픈 곳은 없죠?”
“네가 보기에는 어때?”
“멀쩡해 보이네요.”
“생각보다 대우가 좋아. 교도관들도 그렇고.”
그녀의 말에 요한은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교도관을 말하며 은근히 짓는 미소에 질투를 느낀다.
‘요물이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 안다.
이 여자는 자신을 도구로 볼 것이다.
탈옥 또는 그와 비슷한 성과를 위한 도구.
그걸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다.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게 최미남의 수작이라고 해도.
그녀를 곁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해 뒀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았다.
“나가고 싶어요?”
“밖으로?”
최미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처럼 군다.
“해 줄 수 있니? 그렇게?”
강요하지 않는다. 과하게 감정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물을 뿐이었다.
“열어 주세요.”
요한의 말에 팅- 하고, 전자기기로 작동하는 감옥 문이 열렸다.
원통 새장에 출입구가 생겼다.
“이래도 되는 거야?”
미남이 나오지 않고 물었다.
한참 요한을 보던 미남은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요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감옥 안에서는 주문을 방해하는 장치가 가득하지만.
여긴 아니다.
최미남의 특기는 매혹 주문.
그녀는 요한의 눈과 코, 귀에 주문을 걸었다.
그의 멍한 시선을 보며 미남은 몸을 돌렸다.
그곳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보였다. 어둠을 틈타 기척을 숨기던 불멸자였다.
“그러지 말라니까.”
요한의 단짝이다. 자신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친구가.
반사적으로 매혹 주문을 외워, 방귀태를 향해서도 뿌렸다.
그녀의 주문은 꽃향기와 같아서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방귀태는 그녀의 주문에 노출됐다.
그런데도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다.
최미남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방귀태가 움직였다.
툭, 땅을 차 앞으로 뛰더니, 발을 뻗는다.
앞차기로 미남의 배를 밀어 찼다.
방귀태는 발을 든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방귀태, 다른 여자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남자.”
뭐지, 이 미친 새끼는?
앞을 막자마자 매혹 주문을 걸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
최미남의 주문은 범용적이다. 남녀를 떠나서 조금만 방심하면 자신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어지간하면 그녀의 주문은 먹힌다. 안 먹혀도 이런 경우는 참 드물다.
물론 안 먹히는 타입도 있다.
대신 죽어 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
그리고 매혹 주문과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세최특처럼 미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
“요한아.”
최미남은 내장을 찌르르 울리는 통증을 참고 요한을 불렀다.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주문에 걸린 자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하다.
이 한마디로 방귀태는 요한의 적이 된다.
그녀는 둘이 싸우는 동안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번에도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요한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그 말만 남기곤, 친히 그녀를 다시 감옥 안에 넣어 줬다.
최미남은 요한이 자신의 주문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그의 눈에는 자신만 보였고, 그의 귀는 자신의 목소리만 들었으니까.
그건 너무도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감옥에 도로 들어간 그녀를 두고 요한이 돌아섰다.
“소개팅해 줘? 왜 하필?”
그런 요한을 보고 귀태가 말을 내뱉었다.
“놔둬. 미호한테 달려들 때 내가 말리디?”
“음.”
둘이 떠난다. 최미남은 홀로 남은 채로 생각했다.
‘진짜 반했다고?’
미남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녀가 살면서 당한 일을 안다면 누구라도 그녀를 이해할 것이다.
거짓된 주문만이 그녀의 탈출구이기에.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차라리 몸을 탐해서 억지로 무언가를 했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요한은 언제나 얘기만 하고 갔다.
그게 썩 불편했다. 불쾌했다.
최미남은 조용히, 감옥의 어둠을 벗 삼아 생각의 바다로 항해를 떠났다.
“꼭 그래야겠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건데, 안 되면 말고.”
우리 떠버리 김요한이 이렇게 진지한 적이 있었던가.
요한 형이 더없이 진중한 부탁을 던졌다.
최미남을 빼내 달란다.
NS에서 근무하는 조건을 달고 가석방 자문 위원으로 삼으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골치 아픈 일인 건 분명했다.
다들 반대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우미호한테 말을 슬쩍 꺼내니.
“해 줘.”
대뜸 요한의 편을 들어준다.
“이게 바로 베갯머리 송사라는 건가. 방귀태가 시켰지?”
요새 둘이 같이 산다고 들었다.
그러니 뒤에서 방귀태가 요한을 위해서 우미호를 설득한 거겠지?
“……혜민이가 불쌍하다.”
우미호가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왜, 뭐, 뭐가.
“요한 씨가 진지하니까 해 주라는 거야.”
안 그래도 해 줄 생각이었거든.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대통령을 만났고.
“표창 같은 거 말고, 최미남을 자문 위원으로 쓸게요.”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네. 올드 포스가 직접 관여한 죄수라.”
그렇습니까?
그럼 올드 포스랑 연락하면 되지.
미 대통령에게 바로 연락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당신이 바로 세최특입니다.”
화끈하네.
그렇게 정리한 일이다.
사람 마음 어디로 튈지 참 모르는 일이지.
김요한과 최미남이라니.
회사로 돌아오자, 정기남이 내 사무실에 들어와 있었다.
“뭐 하냐?”
“……마리랑 진지하게 만나기로 했다.”
이 새끼는 인사도 없이 대뜸 제 본론부터 꺼내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 그게 가능할 것 같냐?”
이 새끼가 돌았나.
어디서 남의 귀한 여동생을 채가려고.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흙을 가져왔다.”
응?
정기남이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낸다. 흙이 담긴 봉투다.
“덤벼라. 눈에 흙을 꽂아 주마.”
진짜 참신하게 미친놈일세.
그래, 한번 어울려 주마.
그 흙이 내 눈에 들어갈지 네 주둥이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말은 이렇게 해도, 내 허락이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물론 정기남 새끼가 세상에 다시 없을 개자식이라면 대가리를 터트려서라도 말리겠지만.
생긴 것답지 않게 여성 편력이 제로다.
내가 아는 한, 여자를 만나는 걸 본 적은 없다.
집안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고.
무려 순혈 정가니까.
그동안 모아 둔 돈도 꽤 되더라고.
이 새끼는 돈 벌어서 주식도 한 주 안 사고 전부 저축했다.
그 돈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신서울에 저택을 샀고.
그때는 그게 신혼집이 될 줄 몰랐다.
난 정기남과 신나게 어울렸다.
물론 내가 쥐어패는 쪽으로.
그 흙은 내 눈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저녁 때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다.
“마리가 물건이니?”
“네가 뭔데 그걸 말릴까나?”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은 말이었거든요.”
“내 아들이지만 참.”
“네, 잘난 아들이죠.”
꾸중은 웃음으로 끝났다.
인베이더가 없는 세상은 참으로 평화롭다. 그게 퍽 만족스러웠다.
“마리는 이해할 수 없네요. 왜 그렇게까지 해요?”
얻어맞은 기남을 향해 마리가 말한다.
정기남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일부야.”
“그렇군요. 마리는 이해했어요.”
꽤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귀하게 대하는 그런 커플.
“그래서 마리랑 안 살 건가요?”
마리는 직설적이었고.
“아니, 평생 같이 살 거다.”
정기남은 부끄러움을 몰랐다.
둘은 진지했다.
그걸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고역이었지만.
강푸름은 오랜만에 나와서 둘을 만났다.
의외로 기남과 푸름은 꽤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푸름은 그걸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놈이야. 넌.”
그는 한마디로 정기남을 단정 지었다.
그럴 만했다. 강푸름은 외골수, 기어에 미친 불멸자다.
일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전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외모와 위치를 활용하는 바람둥이다.
동시에 만나지는 않지만, 연애만 수십 번을 했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정기남은 그와 정반대였다.
“너야말로 정착해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 소식은 들었냐?”
쪼륵.
스트로우를 깨물며 물은 푸름이다. 바닐라라테를 삼키는 동기를 향해 기남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인베이더가 보인다고.”
“홀이 열렸다는 거냐?”
“그건 모르지. 어디까지나 소문이 그렇다고.”
“출처는?”
“중고 아저씨.”
루머였다. NS 정보력으로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무시할 만한 얘기다.
그리 생각한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지.’
미친 자들의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참 이런저런 말, 반쯤은 시답잖은 평화에 찌든 대화를 나누다 말고 기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NS 카페테리아에서 잠깐 짬을 내서 본 참이었다.
푸름은 지나다가 둘을 보고 합석한 거고.
기남과 마리는 작전에 나가는 길이었다.
무장은 전부 전초 기지에 준비해 둬서 둘 다 복장이 가벼웠다.
푸름이 손을 흔든다.
둘이 밖으로 나가자 마리의 오라비이자, 회사의 대표 겸 기남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과 사는 구분하자? 응?”
혜민의 어깨를 껴안고 광익이 말한다.
기남은 그걸 보며 웃음이 나올 뻔했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한결같단 말인가.
다들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미친 친구 새끼는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또라이고.
제 옆구리에 혜민이를 부둥켜안고 나란히 걸을 뿐인 자신과 마리를 보며 하는 말을 보라.
이게 정상인의 마인드라고 할 수 없지 않나.
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당했으면 갚아 줘야지.”
이게 광익의 논리다.
단순한 이야기였다.
인베이더는 침략자였다.
지구를 침략한 괴물이다.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말했다고 해서 그들을 이해할 순 없다.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제까지는 인류는 거의 일방적인 침략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광익이 앞장서서 밴에 올랐다. 기남과 마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 안에 NS 핵심 전력이 다 모였다.
당했다면 갚아 줄 차례.
꽃밭 그 너머에 있는 인베이더를 조지러 가는 길이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라고.”
광익의 말처럼.
이번에는 인류가 칠 차례였다.
홀이 열리지 않는 세계를 맞이한 인류의 새로운 발걸음.
그 시작은 화이트홀을 넘어 침략군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