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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04화 (404/488)

404. 너의 보물은 나의 보물 (2)

“보통 이럴 때는 나 없이 살 수 있냐고 물은 다음에 뒤로 물러나라고, 도망가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유연호는 아들의 분투를 바라보며 입을 열고는 제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내는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식으로 그의 눈을 마주 봤다.

세상이 언제 둘에게 만만했던가.

유연호에게도, 강슬혜에게도.

이 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적당히 버티고 참고 견디고 살다 보니, 힘든 순간보다 행복한 나날이 많아졌으므로.

유연호에게 그 모든 행운의 주체는 아내였다.

아내를 만나면서 시작된 거였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 모든 상처가 나을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아내 덕분이었다.

이후, 행복이란 두 글자를 입에 담게 된 건 아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리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딸도 하나 생겼다.

유연호는 아주 잠깐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안 그러고 싶네, 같이 갈까?”

강슬혜는 유연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지아비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야죠.”

“멍청한 아들놈 살리러 가자.”

“마리도 갈게요.”

언제 다가왔는지, 마리가 형형한 눈빛을 보이며 말한다.

마리의 말에 부모는 고개를 저었다.

어찌 낳은 자식만 자식이겠나.

강슬혜는 마리를 품에 안고 키우며 딸로 삼았다.

처음에는 겉치레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정말 그녀의 딸이다.

그건 유연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부모가 제 자식을 불구덩이 속으로 던지겠는가.

그 어떤 부모가 지옥임을 알면서도 자식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겠는가.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둘은 아니었기에.

“마리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하자.”

변신족 마더 테레사가 입을 연다.

“절대로, 절대로 나서지 마렴.”

“마리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

“쉿, 우리 딸. 말 잘 들어야지.”

어미의 말이 부탁이라면, 아비의 말은 타이름이었다.

마리는 차마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반항할 수 없었다.

“너도 내 딸이야.”

유연호가 말한다. 마리는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자신은 진짜 자식이 아니다.

같이 지낸 지 얼마나 됐다고.

고작 변신족 실험체에 불과한 자신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 준단 말인가.

“괜찮아. 마리야.”

결국 눈물이 흘렀다. 그걸 본 어미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마리는 무표정하게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끼기긱.

전방, 광익의 전장에서 기묘한 소음이 흘러나온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중앙에 모였다.

그리 예민하지 않은 이라고 해도 알 수 있었다.

전투의 향방이 기운다.

세최특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푸른 전광의 번쩍임이 줄어들었고.

재생 속도가 느려진다.

피를 게워 내는 모습이 보인다.

딸을 불구덩이에 집어넣을 수 없듯.

아들이 지금 불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있기에 부모는 손을 뻗을 것이다.

그 손에 수포가 생기고 피부가 타들어 가도, 결국 온몸이 타올라도 그리할 것이다.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유무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불멸교는 곧 핍박받는 불멸자를 구할 힘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신이 되어서라도 모두의 앞에 설 것이다.’

과거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 유무인은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도 이런 기분이구나.

수치심이 밀려와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무인은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그 속에선 수치심이 폭격처럼 떨어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았다.

‘내 가족조차 지킬 수 없는 주제에.’

제 손에 닿는 이들도 돌보지 못했으면서 불멸 전체를 담으려 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소리냐.

그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가.

그에 반해, 손자는 어떤가.

인생의 끝자락, 황혼의 불꽃조차 다 태운, 남을 위해 태울 수 있는 숯조차 남지 않은 자신에게 찾아온 손자.

“전 제 주변 사람만 지키면 됩니다. 겸사겸사 인베이더도 죽일 겁니다. 테러범 새끼들도 못 덤비게 으름장을 놓을 거고요. 음, 예쁘고 참한 여자 만나서 알콩달콩 잘 살 거고, 돈도 많이 벌 겁니다. 네, 뭐 돈은 그만큼 쓰긴 하겠지만, 어려운 사람도 적당히 도울 거고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렇게 하고 살 겁니다.”

비전이 뭐냐고 물으니, 나온 답이다.

그 답이, 그 말이, 종일 무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잠들기 직전 잠자리에서 그는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통쾌한 그런 웃음이었다.

끝내 눈물이 눈꼬리에 맺힐 그럴 웃음.

‘나는 전부를 살리겠다고 주변을 버렸는데, 손자란 놈은 주변만 살리겠다고 전부를 살리는구나.’

유무인의 인생이 그랬다.

그는 친절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호통을 치려 했다.

하지만 아들은 친절하지 않은 세상을 견디고 나아갔다.

그리고 손자는.

‘친절하지 않으면, 친절하게 고치면 될 것 같은데요.’

마치 광익이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을.

호통을 치고 싸울 게 아니라 힘으로 고치면 되는 거였다.

힘이 안 되면 타일러 바꾸길 바라면 될 일을.

무식하지만, 현명하다.

능력이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보물이다.’

아들은 손자가 보물이라 했다.

그리고 유무인은 새삼 깨달았다.

자신에게도 보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미 죽고 없지만.

하나는 남았다.

무인이 입을 연다.

막 나서려던 유연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하고 싶겠지.

그럴 수 있다. 무인에게는 아버지 노릇을 할 자격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생떼다.

노인네의 헛소리다.

“너한테 보물이면 나한테도 보물이다.”

“무슨…….”

“나서지 마라.”

언령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의지를 담은 언령.

아들의 발이 덜컥 멈춘다. 방심하고 있었기에 당한 한 방이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였다.

“내 지아비는 내가 구한다아아!”

그리고 뒤쪽에서 미친 마법사가 튀어나왔다.

왜 안 나오나 했다.

강혜민이 도약 주문을 걸고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날아오른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겠구먼.’

혜민을 그냥 놔두면 개죽음이 될 것이다.

‘그리 둘 순 없지.’

손자며느리 될 애가 비명횡사하는 걸 볼 순 없는 노릇이다.

유무인은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쨍-

그런 소리가 나는 듯했다.

블랙홀이 있던 자리, 그곳의 그을음 일부가 깨지며 노을이 스며든다.

그 한 줄기 빛이 조명과도 같이 미노년 불멸자를 비췄다.

“다녀오마.”

아들과 며느리를 번갈아 보며 말을 던지곤 뛴다.

“아버지!”

어금니를 갈며 언령의 일부를 푼 연호가 외쳤다.

지독한 언령의 힘이다. 몸이 굳었다. 이런 몸으로는 아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동반 자살이 되리라.

결국, 그는 아버지를 잡지 못했다.

유무인은 광익과 인베이더의 신이란 놈이 싸우는 전장에 접근했고.

그 앞에서 혜민을 향해 손짓했다.

“아우, 누굴 과부로 만들려고 하냐! 유광익 이 새끼야!”

그렇게 외치는 혜민을 향해 무인은 앞뒤 다 자르고 말했다.

“한 번만 막아다오. 시간은 내가 벌겠다.”

눈이 돌아간 혜민이다. 그녀는 앞뒤를 따져 볼 정신도 없었다.

“그럼 내 남편 살아요?”

언제부터 남편이냐.

무인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눌러 참았다.

참 우스운 게, 불멸교주로서 했던 그 수많은 작전과 전투보다 지금 이 순간에서 더없이 흡족함을 느꼈다.

‘신이 있다면.’

자신을 살아남은 게 운명이라면.

이걸 위한 것이리라.

‘도와주소서.’

한때 스스로 신이 되길 바랐던 불멸자는 신에게 빌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다.”

그러려고 여기에 왔다. 살리기 위해 나선 길이다.

“한 번, 막을게요. 제가 막아요.”

“신호하면.”

“하세요. 신호.”

혜민의 눈에서 귀화가 타올랐다. 눈빛에 불길이 이는 듯하다.

그걸 보며 무인은 호흡을 들이켰다.

한계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손자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 버팀의 이유는 무엇이냐?

그렇게라도 사람을 살리겠다고?

제 뒤에 서 있는 것이 자신의 사람이니, 그들을 살리겠다고 등을 보이는 것이냐?

이 순간 모든 특수종은 광익의 등을 바라봤다.

그가 있기에 살 수 있었던 사람도.

그가 있기에 떠날 수 없던 사람도.

모두의 시선이 세최특의 등에 머문다.

하지만 곧, 홀로 바닷물을 막은 댐의 한계가 찾아왔다.

댐이 깨지고 쪼개져 끔찍한 참상이 벌어지기 전, 무인이 끼어들었다.

인베이더의 신은 반사적으로 손을 쳐올렸다.

무지막지한 염동의 충격파가 그를 덮쳤다.

무인에게 이걸 막을 재주는 없었다.

대신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목소리에 힘을 집중했다.

의념과 기백, 모든 것을 담는다.

이 한 방은 혜민이 막을 것이다.

그의 뜻대로 됐다.

혜민은 주문을 읊으며 눈을 빛냈으니.

“막고 또 막으리. 일곱 개의 빛깔이 뭉쳐 은하 위에 펼쳐지니, 그 위로 바다가 뒤집혀 떨어져도 막아 버티리라.”

마더스 스펠로 만든 주문에 갤럭시 필드를 중첩한다.

그녀의 손에 낀 반지 세 개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단연코 말하길, 특수종 세상 제일의 방호 주문이었다.

주문이 충격파를 막는다.

“웩!”

반동으로 피를 토한 혜민의 눈에 무인이 읊조리는 게 보였다.

언령에, 목숨과 모든 걸 건다.

무인은 그리 목숨을 걸며 생각했다.

‘네 보물이면 내 보물이기도 하다.’

뻥-!

귀 바로 옆에서 뭔가 폭발하는 소리 따위가 들렸다.

그다음 눈앞으로 뭔가 흐릿하게 날아오는 게 보였고.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그걸 껴안았다.

가벼웠다.

얼굴이 보인다.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언령의 주인, 할아버지.

여기서 뭐 해요?

입을 열어 말하려고 했는데 피만 울컥 쏟아졌다.

폐를 비롯한 내장이 상해서 말이 안 나온다.

고속 재생도 발동하지 않고.

빌어먹을 블루 스케일도 깨져서 도로 들어갔다.

입안에 머금은 피만 줄줄 흘렸는데.

그걸 알아들은 눈치였는지, 할아버지가 미소와 함께 말한다.

만나서 처음 보는, 속이 시원한 그런 웃음이었다.

“살아라.”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뒷덜미를 잡아 할아버지를 채간다.

난 눈을 깜빡이며, 지금 일어나는 일을 눈에 담았다.

딱딱!

인베이더의 신이라는 개자식이 앞니를 부딪치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손에 갈가리 찢겨 나가는 할아버지도.

“한 번 더!”

그 뒤로 혜민의 목소리도 들렸다.

두-웅!

그러자 내 앞에 일곱 빛깔을 덧씌운 은하수가 나타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탄이 나올 아름다운 방호막이었다.

무지개 은하수는 나타나자마자 무형의 압력을 밀어 내며 무언가를 막았다.

인베이더의 신이 찢어진 할아버지의 시신을 바닥에 버린 뒤, 손을 턴다.

쓰레기라도 버리는 손짓이었다.

그게 눈에 보였다.

“서방, 한 번 더 막진 못하겠다.”

어디서 말하는 거냐.

뒤로 고개를 돌리니, 피를 토해 앞섶이 빨갛게 젖은 혜민이 보였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툭 무릎을 꿇는다.

할아버지가 갈가리 찢겨 죽고, 공격을 막던 혜민은 피를 토해 쓰러졌다.

인베이더의 신이 급할 것 없다는 듯 발을 뗀다. 춤이라도 추는 듯 사뿐사뿐 걷는다.

다가오며 손을 휘젓는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번은 내가 막아. 선배로서 한 번쯤 이런 거 해 보고 싶었다.”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었다.

강아지상의 미남.

불멸특수대 시절 가까이 지냈던 분석팀의 강희모 대리다.

근데 형은 왜 안 도망가고 아직 여기 있어?

강희모 대리의 몸이 터져 나간다.

아, 아무리 불멸자라도 저렇게 되면 살기 힘든데.

아니야, 하체가 남았다. 의지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데.

불멸이라 해도 불사는 아니란 말이다.

“조카를 건드리지 마라!”

그 뒤로 긍낙이 삼촌이 튀어나왔다.

“내 조카를 놔둬!”

“씹, 내 조카야!”

호응이 삼촌도 왔는데.

정확히 말하면 두 분의 조카입니다.

“아무래도 여기서 죽겠네. 광익아, 잘했다.”

수수한 말투로 말하는 주일호 선생이다.

“그래. 이제 변신족답네.”

화끈한 장가희 선생도.

“남의 딸을 이렇게 만들었으면 책임져야 한다. 사위.”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

자꾸 어디서 이렇게 튀어나오는 거냐.

김주희 여사다.

책임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위험하니 다 피하라고 하고 싶다.

“말괄량이 딸을 키운 경력으로 제가 세 번 막아요.”

김주희 여사가 말한다. 장모님은 스펠 크리에이터다. 스펠 유저로서의 능력은 평범하다고 하지만.

목숨을 걸었다.

그게 여실히 느껴진다.

부상의 정도가 심해지자,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주변 사람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말이 들린다.

이게 뭐지.

수많은 사람이 내 앞을 막는다.

“그때는 고마웠다.”

“나중에 밥 사쇼.”

“사인은 됐고, 나중에 사진 한 번 찍어 줘요.”

뭐야, 이 인간들.

전부 특수종이다.

도망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안 그런 사람도 있었다.

“나와, 내가 먼저 막아!”

로즈다. 메두사의 눈을 발동한다.

인베이더의 신은 대수롭지 않게 손가락을 튕겼다.

로즈의 앞으로 누군가가 염동 방어막을 펼친다.

깨진다. 다친다. 로즈의 팔 한쪽이 허공을 날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했다.

예민해진 감각이 적의 노림수를 읽어 냈으므로.

저 새끼는 로즈의 머리통을 노렸다.

“이제 연애 좀 해 보려고 했더니, 진짜 너무하다니까.”

정직이다.

“형님, 나중에 나한테 한 대 맞아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는 대신 맞아 줄 테니까!”

광변환을 하고 튀어 나간다. 빛으로 변한 정직의 몸이 쭉 나아가 적을 향한다.

자폭이다. 몸을 겹치게 한 뒤, 변환을 풀어서 인베이더의 몸 안에서 제 몸을 폭탄 삼아 터트리려 한다.

이 미친 새끼.

하지 마!

정직이는 시도도 못 했다.

인베이더의 신을 감싼 무형의 장막이 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사이, 누군가 내 몸을 뒤로 던진다.

“살아남으쇼!”

또 누군가가 내 몸을 받아 뒤로 건넨다.

“일전에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특수종이 내 앞에 등을 보인다.

“팬이었습니다. 진짜 팬이요. 그래서 특수대에서 여기로 왔는데. 제 이름 모르죠?”

안다. 박대기. 박영돈 이사의 아들.

정직이가 툭하면 괴롭히던 직원.

내장이 상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다음에 술 한잔 사 주면 안 됩니까?”

된다, 살아남기만 하면 그리할 거다.

“유광익 군,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는 거 모르겠나.”

김동철 이사.

“너까지, 후, 괜찮다. 안 죽어. 네 회복력이면 괜찮아. 다음을 기약하면 돼.”

남 사장의 비서 형.

많은 사람이 말을 건다.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아무도 내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그 모두의 등이 내 눈앞에 보였다.

난 인베이더의 신이란 개자식한테는 가만히 있으라고 호되게 외쳤고.

내 앞을 막고 등을 보인 모두에게는 당장 도망가라고 외쳤다.

그 외침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그르르륵.

피거품만 나왔다.

내 입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기세를 일으키자.

다들 겁을 먹게 해서 물러나게 하자.

붙어 봐서 안다.

저건 머릿수로 이길 수 있는 괴물이 아니다.

그러니까 안 돼. 하지 마.

그렇게 툭툭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가는 동안, 어깨에 블러드 젝 따위가 꽂혔다.

내장은 누군가가 중간에 특수 붕대로 감아 주었다.

그렇게 반 시체가 된 내 몸이 도착한 곳은 부모님의 곁이었다.

“죄송해요. 마리는 나가야겠어요.”

도착하자마자 들은 얘기다.

이제는 가지 말라고 외칠 기운도 없었다.

마리의 기척이 사라진다. 저 앞으로 달려나간다.

“아들, 왔니?”

엄마가 말한다. 그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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