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 너의 보물은 나의 보물 (1)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
그 어떤 커스터마이징 훈련 도구로도 구현해 낼 수 없는 묵직함이다.
밑에서 누군가 발을 잡아끄는 것 같았다.
뿌리치고 이겨 낸다.
발을 떼고 나아간다.
그렇게 압력을 이기고 나아가 주먹을 뻗는다.
상대도 똑같이 손을 뻗었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 순간, 몸이 뒤로 떠밀려 나갈 것 같았다.
무릎을 구부리고 허벅지에 힘을 줘, 무게 중심을 낮췄다.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근육에 부하가 걸렸다.
내가 이렇게 재주를 부리는 동안, 눈앞에 있는 인베이더는 밋밋하게 주먹을 뻗은 자세로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너 말은 할 줄 아냐?”
틈을 보고 말을 툭 걸어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할 줄 모르는군.
놈은 대답 대신 발을 차올렸다.
고개를 꺾어 피하고 왼 팔꿈치를 횡으로 긋는다. 블루 스케일을 조정, 팔꿈치에서 칼날이 솟았다.
커드드드득!
광학 병기조차 막는 방어막이 이번에도 놈을 지켰다.
허공에서 검정과 파랑이 섞인 불똥이 튀었다.
그사이, 횡으로 묵직한 칼날 따위가 목을 노리는 게 느껴졌다.
염력이다.
고개를 숙여 피하니 밑에서 위로 무릎이 솟는다.
양발에 힘을 줘 허리를 뒤로 젖힌다.
훙- 하고 코앞으로 놈의 무릎이 스쳤다.
그대로 드러누우며 복근에 힘을 줘 양발을 위로 올려쳤다.
둥!
방어막이 막는다.
그래도 발차기의 충격을 전부 해소할 순 없을걸?
내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건 괴력의 피다.
발을 차올리다 말고 속도를 늦춰, 끊어치는 게 아니라 닿는 순간 미는 힘으로 바꾼다.
순간적으로 타격의 형태를 변환.
그대로 놈의 명치 어림을 발바닥으로 밀어서 위로 날렸다.
놈의 몸이 붕- 하고 허공에 뜬다.
난 차는 힘을 이용해 손바닥을 뒤집어 머리 옆에 붙인 다음 그대로 밀었다.
반쯤 부서진 철근 따위를 손으로 눌러 찌그러뜨리며 나도 같이 날았다.
위로 솟으며 몸을 바로 하고 공중에서 바짝 붙으려고 하니, 놈이 염동력을 썼다.
피한다. 보이진 않지만, 힘의 흐름은 느껴진다.
피하고 그대로 몸을 뒤틀어 손목을 잡아챘다.
방어막은 발동하지 않는다.
타격과 충격에만 발동하는 종류로 보였다.
잡아당기자, 놈이 그대로 주먹을 내지른다.
피하면서 품을 파고든다.
놈의 발뒤축을 발바닥으로 감아 차며 밑으로 놈을 떨군다.
염동력이 날 노린 순간, 그러니까 단 한 합에 일어난 공수 교환이다.
몸을 돌려 어깨로 놈의 가슴팍을 밀며 추락.
그대로 바닥과 놈의 등이 맞닿았다.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다.
놈은 메다 꽂힌 채로 충격 따위는 무시한 채, 주먹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반사적으로 목을 움직여 각도를 틀어서 맞았는데도 머리가 띵하다.
강체에, 블루 스케일까지 입었는데 이 정도야?
이 자식 힘도 좋네.
괴력의 변신족 버금간다.
멀어지며 블루 피어스, 청기사의 에테르 에너지를 머금은 저격총을 구현.
그대로 쏜다.
숨 쉴 틈도 없는 공방 중에 보인 치명적인 한 수다.
바로 코앞에서 쏜 에너지 탄환은 놈의 왼쪽 가슴 쪽을 때렸으나, 피해는 없었다.
“염병, 이건 안 놀랄 수가 없네.”
진짜 놀라서 혼잣말을 뱉은 거다.
순간적으로 보인 인베이더의 방어 기예가 놀랍다. 탄환을 맞는 순간 왼쪽 어깨를 뒤로 빼며 탄환에서 전해지는 운동 에너지를 뒤로 흘렸다.
총알을 흘렸다는 거다.
이게 말이 돼?
안 되지만 된다.
저 버릇없게 생긴 놈의 방어막은 한 겹의 옷과 같으면서도 뚫리지 않는 철벽이기도 했다.
아다만티움 벽이라도 구멍 낼 자신 있는 한 방이었는데.
순간적으로 만든 콤비네이션이 안 먹혔다.
주륵.
이마 위쪽에서 뜨끈한 액체가 한 줄기 흘렀다.
피? 음?
아까 맞은 부위구나.
그제야 놈의 손이 보였다. 뭉툭한 손끝에 생긴 가시 따위가 보인다.
너 그 손 변형도 가능했냐?
이런 치사한 새끼, 그건 처음에 보여 줬어야지.
딱딱.
피가 흐르는 내 이마를 본 놈이 앞니를 부딪쳐 소리를 냈다.
그거 기쁘다는 표시냐?
이 새끼가.
다시 집중.
오롯이 모든 감각을 눈앞에 상대에만 집중해야 했다.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생각을 돌릴 겨를 또한 없다.
“또 해 보자.”
웃으며 달려간다. 콤비네이션이 안 먹힌다면 이건 어떨까.
어머니에게 받은 게 괴력(怪力)이라면.
아버지에게 받은 건 괴이(怪異)다.
기척 죽이기로 배우기 시작한 기예.
기술을 굳이 나누지 않는다.
흘리고 죽이고 쪼개고 속인다.
수십 개의 나를 만들어 공격하고.
또 수십 개의 나를 만들어 속인다.
하지만 놈은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밑에서 위로 염동력이 날아온다.
피하고 수십 개의 페인팅 속에서 속인 한 방을 먹인다.
본래라면 이런 소리와 함께 어디 한 군데는 부러져야 했을 텐데.
무형의 방어막이 이번에도 막는다.
안 뚫린다.
그럼 방귀태식 전법으로 간다.
한 번 후려서 안 넘어가는 나무라면 열 번을.
열 번 쳐서 안 넘어가는 나무라면 백 번을.
백 번을 때려도 안 넘어간다면 천 번을.
천 번이 부족하다면 만 번을.
의도를 숨기고 같은 부위를 계속 때린다.
모든 공격을 피하는데, 가끔 어떤 공격은 피할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곤 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걸 맞으면 구멍이 날 것 같은 그런 일격.
짜릿하다.
심장이 뛰고 피가 요동친다.
놈의 손과 발은 자유자재로 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피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잘해야 삐죽해지거나, 각이 지는 정도가 전부다.
덤비고 또 덤빈다.
어깨를 짓누르는 염동의 압력은 근성으로 떨쳐 내고.
순간순간 내 정신의 빈틈을 파고들려는 무형의 파장은 기합으로 이겨 낸다.
그러면서 번번이 공격에 성공한다.
발목을 걷어차고 또 차고 또 찬다.
방귀태식 전법이 무르익어 수없이 같은 부위를 때린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일격이 내 가슴을 후렸다.
둥근 형태의 주먹이었다.
우직!
그 한 방에 가슴뼈가 함몰됐다.
블루 스케일도, 강체도 부수는 일격.
괴력에 염동력을 더해 관통하는 주먹이다.
끔찍한 수준의 충격이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그대로 내장이 박살 났겠지만, 맞는 순간 몸을 옆으로 돌려 흘렸다.
아까 얘를 보고 배운 그대로 했다.
타격을 입은 순간을 쪼개 흘리기다.
그러면서 회축.
회전하는 힘을 가미한 돌려차기가 그대로 놈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빠-악!
이번에야말로 경쾌한 소리가 나긴 했지만.
방어막은 건재하다.
힘껏 후린 덕분에 난 소리지, 방어막을 뚫은 건 아니니까.
대신 맞은 그대로 놈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 쓰러졌다.
쓰러진 인베이더의 머리 위로 발뒤꿈치를 꽂아 넣으니.
방어막이 더 두껍게 발동한다.
아무래도 방귀태식 전법은 안 통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면 된다.
이번에는 난타전이다.
불멸자의 난타전은 살을 주고 살을 취하고, 뼈를 주고 뼈를 취할 수 있다.
“해 볼래?”
중간중간 틈날 때마다 도발 겸 말을 걸자, 놈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앞니를 부딪치는 건 좋다는 의미 같단 말이지.
공방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줄 건 줬다.
가슴뼈가 함몰되어도 고속 재생이 가능하다.
기동성을 뺏기면 안 되기에 기본으로 돌아갔다.
최초 불멸자의 전투를 배울 때 작대기 선생이 뭐라고 했던가.
“머리를 원하면 팔을 내줘라. 다리를 원해도 팔을 내줘라. 불멸자의 팔은 방패다.”
그렇게 했다.
팔을 내주고 난타전을 이어 간다.
기동성을 빼앗기지 않았고, 머리통도 얻어맞지 않는다.
갈비뼈가 몇 대 부러졌다가 회복하기도 했고.
폐 쪽을 맞아 내장이 부서지기도 했지만.
큰 파장이 일 만한 공격은 전부 팔로 막았다.
다쳐도 괜찮다.
경미한 부상은 재생할 때까지 버티면 그만이다.
그렇게 난타전을 이어 가자, 놈의 방어막에도 빈틈이 생겼다.
그러면서 깨달은 점 하나.
‘의식하지 않으면 막지 못한다.’
놈의 방어막은 의지에 따라 구현된다.
마구잡이 난타전으로 들어가자, 공격 전부가 막히진 않았다.
‘고속 재생까지 하는 건 반칙이지.’
기껏 팔뚝을 반쯤 갈라 버렸는데 도로 아물었다.
그래도 얻은 건 있다.
정보다.
놈의 피부는 강체화된 변신족만큼 단단하다는 것.
미끄러웠고, 고무처럼 탄력적이기도 하다는 것.
근접 전투를 이어 가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게 또 있었다.
‘힘이.’
나와 버금간다.
아니 조금은 내가 우위에 있는 것 같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손과 발, 주먹과 발.
순간적으로 뽑아 내는 에테르 블레이드.
놈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가시 돌기.
피하고 때리고 맞고 때리고 때리고 맞고, 다시 피한다.
모든 오감과 육감.
주문을 보고 초능을 느낄 정도로 예민해진 감각 덕분에 또 깨닫는다.
기본적으로 놈의 형태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내장이 있는 건 아니다. 저 몸통 안은 오롯이 근육으로 채워졌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약점은 존재한다.
머리다.
‘인베이더의 신이라기보다는.’
맞붙어 봤기에 알겠다.
‘기계 생명체에 가깝다.’
고도의 전산 능력과 육체를 지닌 기계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머리가 약점이라고 했지만, 더 명확한 부위가 있다.
‘목 뒤.’
놈의 목 바로 뒤로 검은 액체 따위가 흐르는 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빛이 번쩍이며 빛이 흐른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혈류가 아니라 광류라고 해야 하나.
놈의 팔을 갈라 봤을 때 피가 빛처럼 흘러나오는 걸 봤다.
어쨌든 목 뒤, 약점이다.
그걸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놈이 지닌 방어막은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므로.
변신족의 괴력, 불멸자의 재생력, 거기에 초능력이라.
현재 내 능력에 초능을 더한 것 같다.
감각 또한 예민하다. 가진 수단을 모두 동원해 속여도 놈은 내 공격을 파악하고 느낀다.
절로 위험에 이르는 일격은 막고 피한다.
거기에 놈은 점점 제 능력에 익숙해지는 것 같고.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다.
삶이 있음에 죽음이 있고.
시작이 있기에 끝이 있다.
출발선에 섰다면 결승선이 존재한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을 싸웠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오롯이 전심전력으로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난 머리통을 맞았고.
순간 시야가 까맣게 암전됐다.
뇌가 흔들렸다. 구역질이 치솟는다.
동시에 몸이 한쪽으로 날아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놈이 무섭게 쫓아와 내 배를 쑤시는 것도.
뾰족해진 손이 푹푹 배를 쑤신다.
그럴 때마다 펑펑 소리와 함께 블루 스케일이 부서지고, 강체의 피부가 갈라져 뚫린다. 내장이 찢어지는 통증이 전신을 치달리고.
마지막으로 놈은 날 걷어찼다.
기절은 하지 않았다. 통증 속에서 난 허공을 나는 걸 느꼈다.
I believe I can fly.
노래나 중얼거릴 때가 아니긴 하지.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몇 번의 공격으로 몸이 망가졌다.
고속 재생을 뒷받침하는 본연의 에너지를 너무 소모했다.
나를 완전히 끝내기 위해 다가온다. 또렷하게 놈의 기세가 느껴졌다.
육감이 경고한다. 당장 이 자리를 피하라고.
알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인베이더의 신이란 놈은 앞니를 부딪치며 내 위에 떴다.
놈의 손과 발, 눈과 입.
모든 걸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이기는 건 글렀다고.
그럼 다음 방법은?
혹시 살아나게 되면 써먹을 방법은 있을까?
모르겠다. 아무도 영원히 모를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 미안요.
아들이 먼저 갈 것 같네요.
혜민아, 미안하다. 괜히 바람만 불어넣고 간 것 같네.
놈의 손이 다가온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인베이더의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다.
“쿨럭!”
난 기침과 피를 울컥 토하며 시선을 돌렸다.
인베이더의 좌측에 흐릿한 모습이 눈에 잡혔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아는 목소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