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괴물 대 괴물
투둑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해가 떨어질 시간은 아니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홀은 녹아 없어졌지만, 그을음처럼 흔적이 남아 하늘을 가렸다.
대신 인간이 만든 조명이 주변을 대낮처럼 밝혔다.
그중 일부 핀포인트 조명이 중앙에 나타난 괴생명체를 비췄다.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
빼쭉하게 옆으로 누운 타원형의 눈.
흰자위만 가득하고 검은 눈동자 따윈 없다.
늘어뜨린 팔은 몸에 비해 길었고.
손가락 따윈 없다.
뭉툭한 주머니 따위가 달린 모양새였다.
발도 마찬가지다.
발가락 따윈 없는 대신, 아래에 넓적한 판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피부는 검지만 윤기가 났다.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지만, 매끈한 몸체다.
우락부락하진 않았지만, 몸집 자체는 큰 편이었다.
신장이 2m가 넘는다.
인간이 되다 만 실험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저 괴물이 겨우 실험체일 리가 없다.
낮은 콧대 밑으로 가로로 찢어진 입이 벌어진다. 입안 가득 송곳니가 두 겹으로 나 있는 게 보였다.
“아-”
벌어진 입 밖으로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소리에 영혼이, 힘이, 의념이, 기세가 담겼다.
겨우 아- 한마디로 사람들의 몸이 굳는다.
물론 난 좀 달랐다.
놈을 보는 순간 짜릿한 감각이 전신을 치다른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쿵-쿵-쿵. 쿵쿵쿵쿵쿵.
느리지만 힘차게 뛰던 심장이 거세게 피치를 높인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세혈관 끝에서 돌기 시작한 피가 혈관이란 통로를 타고 전신을 휘돈다.
그 기세가 놀라울 정도로 매서웠다.
너무 빨라서 몸이 후끈 데워질 정도였다.
숨을 한 번 내쉴 동안 피가 수십 바퀴는 돈 것 같았다.
변신족의 본능이 멋대로 발동해 근육이 꿈틀거린다.
신경이 곤두선다. 몸에 있는 모든 털이 바짝 섰다. 실제로 털이 섰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토록 바라던 이상형을 만난 기분이 이럴까?
로또 1등 용지를 손에 쥔 직장인의 기분이 이럴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저건 내 거라는 것.
내 상대다. 내 적이다.
“염도옹!”
뒤쪽에서 터진 외침이다.
유일부대장이다.
선수 필승, 방심한 상대의 뒤통수에 총알을 꽂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는 1세대의 영웅.
그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게 행동했다.
곧바로 염동력자 수십이 제 능력을 뿜어 낸다.
끼이이이이잉!
무형의 압력이 대기를 짓눌러 소음을 터트린다.
막중한 압력이 인베이더 개체 하나에게 집중되었다.
기척을 숨긴 불멸자 하나가 놈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흐릿한 그림자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남명진 사장이었다.
그 또한 1세대의 영웅.
남 사장의 손에서 레이저 와이어가 흘러나와 인베이더를 감싼다.
곧 놈의 몸 위로 레이저 다발이 떨어진다.
그걸 보는 찰나,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남 사장이 나선 건 왜일까.
아마도 욕심.
인베이더의 신이란 놈을 잡으면 얻을 막대한 이득을 계산하진 않았을까.
저 양반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는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레이저 와이어는 채찍처럼 파고들었지만, 인베이더의 신이란 놈의 몸 주변에는 무형의 장막이 존재했다.
그 장막이 레이저 와이어를 막고 튕겨 낸다.
티디디디디딩!
놈은 그 빛을 감상이라도 하듯 바라보다가 왼손을 위로 휘저었다.
뭉툭한 주머니 같은 손이 위로 솟는다.
남 사장도 막히자마자 품에서 총을 꺼내 쐈다.
레이저 피스톨이다.
쭝!
날아간 빛은 또 장막을 뚫지 못했고.
동시에 터진 굉음이 귀를 후려쳤다.
머리 위를 덮치던 남명진 사장의 몸 반쪽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손장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휘저은 게 전부였는데.
그 결과, 남 사장은 반쪽이 됐다.
당분간 다이어트는 필요 없는 몸이 된 거다.
오감과 육감을 통해 상대를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몸을 막은 것도, 손을 위로 뻗은 것도.
전부 사이오닉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힘이다.
다만, 이제까지 보던 것과 그 궤가 다를 정도로 두꺼울 뿐.
그렇게 남명진 사장은 몸의 반이 날아가 한쪽으로 널브러졌다.
걸레짝이 된 몸뚱이 반쪽 라인을 따라 내장과 피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쓰러졌다.
눈에 어렸던 빛이 스러진다.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회복하는 데 몇 달은 걸리겠네.
남 사장만 망가진 건 아니었다.
“우웩!”
“컥!”
염동력을 발휘한 초능 특수종 대다수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코피와 각혈이면 경미한 수준이었고.
심한 쪽은 눈과 귀에서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강력한 염동력 포착, 사이오닉 에너지를 반사합니다.”
그나마 멀쩡한 염동력자가 말한다.
기습이었다.
수십의 염동 능력자와 일류 불멸자의 기척 죽이기가 가미된 그런 기습.
반면에 상대가 한 짓은 그저 손짓 한 번.
그럼에도 결과는 극명했다.
“시발, 저건 뭔데.”
누군가 중얼거린다. 목소리에 깃든 두려움이 느껴졌다.
난 가만히 놈을 바라봤다.
특수종 세상에서 인베이더와의 싸움에 목숨을 잃은 숫자는 몇이나 될까.
여기에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의 숫자는 또 얼마나 되고.
젤라틴에서 사람 형태로 변한 저 인베이더의 존재가.
지금 그 수많은 사람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달리 말하면 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목숨을 걸고 싸운 원인, 인베이더의 총화가 눈앞의 존재라고 해도 좋았다.
홀이 녹고.
모든 인베이더가 녹아 없어진 뒤, 나타난 놈.
인베이더라는 종의 최후이자 최강의 적.
그들이 신이라 부르짖는 존재.
이러니 내가 어떻게 짜릿해지지 않을 수가 있나.
변신족의 본능도.
불멸자의 육감도.
전부 가느다란 칼날처럼 날을 세운다.
싸운다. 저 개자식과 싸우고야 만다.
“에너지 측정 불가.”
누군가 또 입을 열어 말했다.
판독기를 들고 있던 특수종 중 하나였다.
“……규격 외.”
무전기를 통해 우미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규격 외의 인베이더라 이거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발과 손이 굳었다.
그저 놈이 손을 들고 제 몸을 관찰하는 걸 구경할 뿐.
이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놈이 ‘아-’라는 외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는 걸 보았다.
눈앞에서 봤으니, 흉내 정도야.
요령은 야생의 살기로.
방식은 할아버지에게 배운 언령으로.
“저건 내 겁니다.”
목소리가 울린다. 주변에 퍼져 나간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타고 사람들의 귀에 안착한다.
난 무전기를 켜 둔 채 말을 이었다.
“일단 하나는 내가 이미 이겼네요.”
“……뭐?”
무전기 너머 우미호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얼굴은 내가 훨씬 나은 듯.”
그래, 그건 확실하지.
그동안 정기남과 강푸름 등등에게 핍박받은 세월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무렴.
내가 생긴 건 확실히 이겼다.
우미호가 진심을 담아 감탄하고.
“넌 정말.”
정아 누나까지 한마디를 보탰다.
넌 정말 잘생겼다고 말하려다 만 것 같다.
“또라이.”
팬더 형도 말한다.
이 형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확실히 알지.
질투다.
“내 아들이지만 진짜.”
어머니까지 말을 보태신다.
네, 자랑스러우신 거군요.
저 같아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나 같은 아들 낳으면 어떤 기분일까.
행복하겠지?
부디 날 닮길 바란다. 강혜민 닮으면 그건 자식이 아니라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어, 음, 그럼 세계 최강 미남?”
그리고 내 목소리에 굳었던 다리가 풀린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그걸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외쳤다
“세최얼!”
세계 최강 얼굴, 나쁘지 않다.
“그래 너 다 해 먹어라! 네가 최고 미남이다!”
“세최특!”
“세최또!”
“우리도 괴물이 있다!”
“우어어! 죽여 버렷!”
흥분한 이들의 외침이 등을 떠민다.
난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흰자위밖에 없는 놈과 마주 섰다.
시답잖은 농담 한마디에 굳었던 사람들의 다리가 풀렸다.
분위기가 변한다. 그걸 위한 퍼포먼스다.
그러면서 남명진 사장 쪽에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니.
오랜만에 보는 남 사장의 비서 형이 반시체가 된 남 사장의 몸을 빼 냈다.
상황 정리 끝, 내 눈은 여전히 적을 주시한다.
적도 나를 주시한다.
서로의 존재를 여실히 느낀다.
내가 널 보는 만큼, 너도 날 보고 있는 거겠지?
눈깔에 점 좀 찍지, 흰자위만 있어서 어딜 보는지 못 알아보겠다. 새끼야.
시선은 그대로 둔 채로, 난 무전기 주파수를 바꿔 속삭였다.
우미호한테만 들리도록 한마디를 했다.
“전원 대피시켜.”
솔직히 이길 자신은 없다.
흥분된 만큼이나 몸도 덜덜 떨리거든, 지금.
그렇다고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자리에 선 나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어쭙잖은 영웅 심리나, 사명감 때문에 나선 건 아니다.
지금 내 뒤에는.
내 연인이 있고 내 가족, 내 친구가 있다.
여기서 내가 버티고 막아,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어릴 때 날 위해서 등을 보였던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내가 등을 보일 차례라고 생각했고.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이길 자신은 없지만.
꼭 진다는 보장도 없다.
확률로 따질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할 뿐이지.
네임드를 처음 봤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한테 말하지 않았어도, 네임드라는 걸 혼자서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모든 자신감을 한순간 무너뜨리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
어쨌든 그 불확실성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거 아닌가.
상대는 인베이더의 신이다.
그러니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날 구했던 아저씨의 등판을 본 그날부터.
난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인베이더가 있다.
세최특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어지간한 불멸자의 눈에도 그 움직임이 다 보일 정도였다.
왼발을 땅을 찍고 발목, 무릎, 허리를 비틀어 오른 주먹을 앞으로 뻗는다.
시작은 주먹.
그걸 본 인베이더의 신이란 놈도 똑같이 주먹을 내지른다.
둘의 주먹이 거울처럼 서로를 향한다.
피부와 피부가 닿기도 전인데, 둘 사이 공간이 찌그러져 보이는 것 같았다.
“엎드려.”
순혈 정가의 부대 쪽에서 나온 소리다.
정수라였다.
그녀는 곧이어 일어날 일을 예측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북소리 비슷한 걸 들었다.
그리고 둘을 중심으로 공간이 휘어지는 것도 봤다.
공간이 휘어지고 접히며, 세최특과 인베이더의 주먹이 맞닿는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둘을 중심으로 바깥으로 퍼졌다.
압력이 뭉쳐 충격파가 되어 파문이 일었다.
사방으로 빗물이 비산한다.
드드드드드드.
땅이 떨렸다.
“전원 대피합니다.”
곧 지휘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첫 주먹 한 방만으로 근처에 있던 대다수 특수종의 귀에 피가 흘렀다.
압력이 주변을 할퀸다.
둘의 전장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근처에 있는 어설픈 특수종은 그 여파만으로 죽음을 목전에 둘 것이다.
“뒤로! 뒤로 빠져!”
변신족의 우렁찬 외침에 맞춰.
비행 능력을 소유한 초능 특수종 몇이 부상자를 안고 날아갔다.
그리 뒤로 대피하는 사람들의 눈에 검고 푸른 선이 엉키는 게 보였다.
서로 경쟁하듯 꼬인 두 개의 선이 아래에서 위로 솟는다.
공중에서 한순간 멈춘 푸른 빛에서는 세최특이.
검은빛에서는 인베이더가 튀어나왔다.
허공에서 둘이 발과 주먹을 교환한다.
둥! 둥! 둥!
하늘을 덮을 만큼 커다란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 충격파에 땅이 울리고 간신히 버티던 구조물이 부서졌다.
“새우 등 터지겠네.”
도안결이 그걸 보며 읊조렸다.
과연 이 싸움에 낄 수 있는 특수종이 있기나 할까?
일단 자신은 불가능했다.
어설프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겠지만.
방해가 될지 도움이 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감히 누구도 끼어들지 못할 그런 폭력의 향연이다.
저게 특수종 혼자의 힘으로 보일 만한 재주인가.
그런 의문이 절로 든다.
푸른 섬광처럼 움직이다가 멈춰 블루혼을 내지르면.
인베이더는 방어막으로 그걸 내친다.
도안결은 지금까지의 전투로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안 뚫려.’
상대가 가진 방어막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
도안결이 전투를 지켜보는 것만큼 다른 곳에서도 그걸 지켜보는 눈은 있다.
아니, 모두가 눈에 담고 같은 생각을 했다.
‘괴물이잖아.’
인베이더를 향한 말만은 아니다.
광익도 같은 취급이다.
괴물 대 괴물.
규격 외 대 규격 외다.
가늠할 수 있는 척도와 규격을 무시하고 부수는 괴물의 싸움.
가히 아무도 끼어들 수 없었다.
그렇게 6시간.
동이 틀 때까지, 둘은 싸웠고.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둘을 중심으로 사방이 초토화가 되었다.
그런데도 푸른 전광과 검은 그림자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