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00화 (400/488)

400. 푸른 전광

꽈르르르릉!

갑자기 하늘 위로 벼락이 쳤다.

실제로 내려친 건 아니었다.

땅 위에서 싸우는 모두의 눈에 전장을 가로지르는 푸른 번개가 보였을 뿐.

사실상 실제 번개도 아니었다.

펑! 펑! 펑! 펑!

그가 지나간 자리로 인베이더의 몸이 풍선 터지듯 터져 나갔다.

고속 재생이 가능한 흡혈 인베이더의 몸은 무슨 물풍선이라도 된 듯 바닥에 피를 흠뻑 흩뿌렸다.

윙 나이트가 아이언 쏜즈를 뭉쳐 만든 진형 가운데로 지나가자, 쇳덩이로 만든 사지 일부가 허공을 날았다.

푸른 번개는 그렇게 전장을 종횡무진 가로질렀고.

사람들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파지직!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자신의 앞에 있던 인베이더가 펑 하고 터지는 걸 보거나.

죽음의 위기에 처한 순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푸른 섬광이 지나가자 인베이더가 그대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남명진도 그걸 봤다.

막 메두사의 눈을 쓰는 키메라의 목을 자른 직후였다.

“사장님?”

전신을 피로 물들인 비서가 물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 사장의 전신에도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그들의 피는 아니었다. 아니, 그들의 피도 일부 섞였지만, 이미 재생한 뒤다.

둘 다 일류 그 이상의 순혈 불멸자 아닌가.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맞는 것 같습니다.”

남 사장의 질문에 비서가 답한다.

“청기사처럼 보이는데.”

“그럴 리는 없을 테니. 네, 세최특이군요.”

이전의 청기사를 퇴치한 후 전리품은 NS에서 거둬 갔다.

그럼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게 누구겠나.

“미친 새끼로군.”

남 사장은 호쾌하게 그를 평가했다.

비서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처음 봤을 때는 꿈에도 몰랐는데, 어느새 자신은 넘볼 수도 없을 만큼 커진 존재감이 전장 전체를 아우른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지금 저 특수종은 물리적인 의미로 전장 전체를 아우르는 중이었다.

이 둘만 놀란 건 아니었다.

모두가 봤고 알 사람은 알았다.

김요한과 방귀태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싸우는 중에 푸른 에테르 에너지가 방전하며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걸 봤다.

“……광익이지?”

“그럼 누구겠어.”

둘은 힘겨운 한숨 대신 피식 웃어 버렸다.

“누군데?”

불멸특수대 오리엔테이션 당시, 흰둥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여자 불멸자의 물음이다.

어쩌다 보니 요한과 귀태는 이쪽에 합류해서 싸우는 중이었다.

“누구긴. 세최특, 유광익이지.”

대답은 다른 쪽에서 했다. 허벅다리 밑이 잘려서 블러드 젝을 꽂고 버티던 다른 불멸자다.

이쪽은 오티 때 복슬이라 불리던 친구였다.

강아지를 닮은 불멸자로.

분석팀의 누구와 형제가 아니냐는 루머가 떠돌던 대원이었다.

“끝내주네.”

그가 광익이 만든 광경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묵직한 감동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다른 셋도 같은 심정이었다.

아니, 주변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전투에 합류했던 박다람은 능히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한계란 있는 법이었다.

그녀는 흡혈 인베이더에게 어깨를 물렸고.

이놈들에게 물려 피를 다 빨리면 미라처럼 말라 죽는다는 걸 알았다.

재생력이 먹히지 않는다는 거다.

박다람은 무릎을 찍어 올려 찼으나, 놈은 근거리에서 헥사곤 필드를 구현, 공격을 막아 냈다.

‘젠장, 힘이.’

힘이 빠진다.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일부러 위험한 곳을 자초해서 들어온 거다.

대신 그녀는 오늘 여럿을 구했다.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남지 않을 그런 삶.

‘그런 삶은 개뿔.’

여한이 안 남는 삶이 어디 있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살고 싶은 게 사람이다.

“염병! 도와줘!”

박다람은 외쳤고.

그 외침은 보답받았다.

짧은 뇌전의 흔들림, 방전되는 전류와 비슷한 에너지 집합체.

그 집합체가 그녀 앞에서 잠시 멈춰서는 듯했다.

“오랜만이네요.”

그 에너지 방전체가 말한다. 박다람은 순간 상대를 못 알아봤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상대는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물던 인베이더도.

주변에 득실거리던 놈들도 태반이 사라졌다.

놈들이 있던 자리에 까맣게 탄 자국만 남았을 뿐.

박다람은 기억을 더듬어 혼잣말로 이름을 뱉었다.

이장모와 김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뭐 빠지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 푸른 전광이 스쳐 가는 경험.

뇌전이라 생각했지만, 근거리에서 마주하고 나니 아니라는 건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그저 에너지 집합체, 방전되는 건 집약된 에너지의 양이 방대한 것뿐이었다.

‘어떤 괴물이?’

이장모는 상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움직이는 전광을 포착해서 보는 건 어떤 특수종이라고 해도 어렵다.

멀리서 저격 스코프로 전장을 보던 김정아는 방아쇠에서 손을 뗐다.

지금은 그저 저 전광의 흐름을 지켜보고 싶었다.

잘도 달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변수근 대리, 박광로 과장, 심무용 대리, 박필로 팀장, 강희모 대리, 김동철 이사.

많은 사람이 그 전광의 움직임을 우두커니 서서 봤다.

저건 숫제 혼자 모든 인베이더를 태우고 터트리고 찢어 죽이는 것 같지 않나.

그들 모두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기에.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정호남은 쓰러진 동생의 안위를 살폈다.

동생은 불멸자다. 쉬이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도 푸른 전광의 궤적은 남았다.

‘저런 괴물을 따라잡겠다는 거냐?’

호남은 동생의 안위보다 정신 건강을 걱정했다.

진흙 사막에 근무 중이었던 불멸특수대 개척탐사팀, 이제성 과장을 비롯한 모두가 푸른 에테르 덩어리가 질주하는 걸 봤다.

그가 지나는 길에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절로 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가 지난 뒤에 길이 생긴 거지만, 어쨌든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모세냐?”

과장이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김유미와 이순창이 킥킥 웃었다.

적절한 비유였다.

엑스큐라시 산하, 화랑 팀을 이끄는 팀장 강호응.

그의 변신족 팀은 피 칠갑을 하며 싸웠다.

그들의 앞에도 전광은 머물렀다.

아니, 이걸 머물렀다고 할 수 있을까.

1초 내외.

그 짧은 순간.

“삼촌 안녕.”

인사만 남기고 떠난 특수종이 있었을 뿐.

“나한테 인사한 거 보면 애가 예의는 아는 거지.”

옆에서 긍낙이 말한다. 강호응은 코웃음을 쳤다.

“나보고 한 거다.”

“와, 야, 광익이는 내가 먼저 알고 지냈거든.”

“알고 지낸 것보다 중요한 건 깊이지.”

“내가 더 깊거든?”

둘은 투덕거렸다. 걱정할 거리는 아니다. 겉으로는 사이가 나빠 보여도 꽤 정이 깊은 둘이니.

주일호는 장가희와 합을 맞춰 제너럴 무리를 견제하다가 가슴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고속 재생이라도 가능하면 좋겠지만,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렇게 전장에서 아웃이라니?’

물론 그는 활약했다. 영웅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잘 싸웠다.

하지만 그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다.

괜히 헛되이 보낸 세월이 아쉽다.

“염병, 나도 다쳤어.”

옆에서 장가희가 구멍 난 허벅지를 보인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파낸 흔적이 보였다.

“뭐에 당했냐?”

“무슨 키메라 새끼 손에 주둥이가 달렸더라고.”

그랬나.

둘은 동시에 눈을 돌렸다. 푸른 전광, 그 주인이 전장을 질주하는 장면이 보였음에.

“이제 더 가르칠 게 없겠지?”

“진작부터 없었어.”

광익은 이미 스승을 옛 저녁에 뛰어넘었다.

박호는 행안부 안쪽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받는 중이었다.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받은 피해가 중요하지.

무엇보다 이 전장에는 변수가 남았다.

‘이기긴 이기려나?’

그의 눈에 홀에서 반쯤 나온 진홍의 악몽이 보였다.

‘용이라니.’

봐도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위압적이고.

절로 두려움도 인다.

대통령에게 대피하라고 하니, 나라 망하면 어차피 남는 것도 없다고 남겠단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남았다.

그런 그의 눈에 전장 전체에 번쩍이는 전구 같은 게 보였다.

파란 전구다.

그건 어디서든 번쩍였고 어디서든 나타났다.

선을 그렸다가 점이 되기도 했으며 점이 되기도 면이 되기도 했다.

저건 뭔가 싶어서 보는데.

그 파란 전구가 전장을 휘몰아칠 때마다.

인베이더의 숫자가 퍽퍽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이기겠네.”

왜일까. 갑자기 저걸 보는데 퍽 안심이 되는 건.

정수라는 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게 설령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라 해도.

“우리도 싸운다. 우리가 가혹하다고 했던가? 우리가 비정하다고 했던가? 그 가혹함과 비정함의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키기 위해 싸운다.”

순혈 정가의 가주.

이제는 실권을 잃은 가주.

그가 마지막으로 일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 합당한 이유로 정가의 힘을 끌어냈다.

그들은 움직였다.

순혈 정가의 특전대다.

정수라도 그 일원이었다.

그녀는 한 치 앞을 보는 예언가.

위험에 직면하면서도 끊임없이 싸웠으며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당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위협이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아직 눈앞에 인베이더가 버젓이 있는데?

번쩍.

아니다. 없다.

푸른 빛이 스치는 순간, 인베이더가 사라졌다.

그러니 당연히 위협은 없다.

그녀의 오감과 육감은 보이지 않은 영역까지 관측해서 이 순간을 미리 봤다.

그 푸른빛은 그대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어쩐지 그 뒷모습이 자기가 아는 사람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호순은 진즉에 불멸특수대를 퇴사했다.

그래서 예비 사단으로 편입, 후방에 있었다.

“내가 한때는 세최특의 동기였다고.”

그게 그의 자랑이었다.

물론 그 동기가 자신을 기억하는 줄은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세최특이 자신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실이 거짓이 되지는 않으니까.

후방에서 싸우던 호순은 아군이 밀리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겠다며 앞으로 튀어 나갔고.

그 덕분에 푸른 전광과 마주했다.

1초 내외, 아주 잠시 머문 전광이 말한다.

“나 너 아는데.”

반사적으로 목소리에 따라 이름이 떠오른다.

전광은 금세 사라졌다.

펑! 펑!

솟구치는 그래프처럼 위로 솟더니 윙 나이트를 뚫고 다시 고속으로 떨어져 내달린다.

“……박호순이다. 자식아.”

호순은 그런 광익을 보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어쨌든 세최특은 자신을 안다. 이름이야 뭐가 중요하다고.

운비와 소진은 전광의 주인이 누군지 금세 알아봤다.

“달리기하자고 하면 안 되겠다. 운비야.”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어.”

운비의 변신 형태는 청설모.

속도로만 치자면 변신족 제일이었다.

덕분에 최속의 변신족이란 타이틀을 가졌었지만, 이제는 넘겨야 했다.

저 푸른 전광만큼 빨리 움직일 자신은 없었으니까.

“씁, 쟤 애를 가졌어야 했는데.”

소진은 안타까운 듯 말하고.

운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미래의 네 남편이 불쌍하다.”

“어딜, 내 남편은 세상 제일 행복할 건데?”

둘이 시시덕거리며 일어났다.

운비는 이번 전투로 한쪽 팔을 잃었고.

소진은 눈 한쪽을 잃었다.

무사히 살아남으면 재생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운이 나쁘면 재생이 불가할 수도 있었다.

힘이 다 떨어져 변신도 풀렸다.

이 둘의 전투를 누군가 지켜봤다면 현대의 영웅을 찬양하는 시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한 투쟁이었다.

둘은 몸을 돌보지 않고 맞부딪쳤다.

변신족은 재생이 불가능하니까.

죽으면 끝이다.

주변 동료가, 친구가, 후배가, 선배가.

하나라도 덜 죽길 바랐다.

약해빠진 생각이라 해도.

그게 그들의 동기요, 신념이요, 길이었으니까.

“수고!”

그런 둘의 머리 위를 전광이 스친다.

한마디 말을 남긴 전광의 흔적을 보며 둘은 눈을 마주쳤다고 키득 웃었다.

이지혜는 전방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중상을 입은 경찰청장 박만추가 있었다.

“그러게 왜 일선에 나서요.”

“피가 끓었지.”

“죽고 나면 끓을 피도 없는 거 몰라요?”

“그래도 한 번쯤은 뭐, 그렇다는 거다.”

“네네, 이제는 몸 좀 사리시죠.”

“안 그래도 이제 은퇴하려고.”

“은퇴?”

이지혜가 푸른 전광의 흔적을 보며 물었다.

광익의 존재감이 전장에 내려앉는다.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박만추의 말이 놀랍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 복귀 안 할래?”

고액 연봉에 탄탄대로의 길이 예정된 사기업의 고위 인사.

이지혜가 가진 명함이다.

그런데 경찰로 돌아오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수도 없던 그곳에?

“사명감을 품은 사람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헐떡이면서도 말은 참 잘한다.

이지혜는 전광의 흔적을 눈으로 좇으며 말했다.

“차이면요.”

진심이었다.

협회의 모든 능력자도.

엑스큐라시의 변신족 무리도.

행안부를 비롯, 불멸특수대의 모두도.

그들은 전광을 바라봤다.

그 전광의 주인은 유광익이란 이름의 특수종이었고.

곧 홀에서 진홍의 악몽이란 용이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괴물을 상대할 때는 괴물이 어울린다.

그리고 이쪽 괴물이 더 강하다면 걱정할 게 없었다.

경천동지할 전투는 없었다.

위로 솟은 푸른 전광에 용이 불을 뿜었고.

그 불을 뚫고 내려온 푸른빛의 주인은 그대로 용의 머리통에 길쭉한 작대기를 꽂아 넣고 돌렸다.

머리통이 터진다.

인류 최악의 악몽.

그러하기에 이름 붙길 디스트로이어.

홀에서 나오자마자 즉사했다.

그러므로 진홍의 악몽이란 용은 모든 네임드를 통틀어 가장 적은 시간 활동한 네임드가 되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