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 스펠 브레이커
워 로드와의 전투는 무한궤도에 갇힌 것처럼 도돌이표를 반복했다.
“네-퓨르, 라한디-칼-만-차-우!”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외치는 워 로드가 덤비면.
반대쪽에서 강슬혜와 장가희가 덤빈다. 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상대는 전신에서 붉은 오라를 줄기줄기 뿜어 대는 괴물 중의 괴물 아닌가.
그에 맞춰, 이쪽은 단군 그룹의 화랑팀 에이스가 전부 모였다.
이 무식한 네임드를 상대할 땐 변신족 외에는 근접전을 펼칠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저격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투사체가 허공에 둥둥 뜬 다섯의 주문쟁이 인베이더 덕에 막힌다.
그 다섯도 네임드라 불려도 무방할 것 같은데.
워 로드에 비교하자면 희미한 빛일 따름이었다.
워 로드의 도끼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진다. 붉은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후-앙! 꽈-릉!
도끼질에 땅에 크레이터가 생긴다.
펑 하고 상수도관이 터지면 물을 뿌리고.
바로 옆에서 뱀처럼 삐죽 튀어나온 전선의 끝에서 파직하고 전류가 튄다.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무지막지한 압력이 사방을 짓눌렀다. 주변 공기가 밀려나며 충격파 따위를 만든다.
이러니 변신족이 아니면 거리를 좁힐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거리를 둔 특수종 정예가 저격을 시도했다.
맞기만 하면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겠지만.
미사일도 막는 갤럭시 필드를 뚫을 탄은 없다.
워 로드는 제 주변을 떠도는 변신족 무리를 노리며 연신 발로 차고 도끼를 휘둘렀다.
변신족 무리는 모든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피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강슬혜와 장가희가 막아 냈다.
기가 막힌 묘기의 연속이다.
무식한 도끼질을 맞이해 땅을 박차고 공중에서 몸을 틀어, 발로 도끼 면을 찬다.
쩌-엉!
굉음과 함께 도끼날이 옆으로 밀리며 본래 목표했던 곳을 벗어나 찍힌다.
물론 위력도 반감된 채로.
카가가각!
붉은 오라에 휩싸인 도끼가 바닥을 길게 긁자, 아스팔트가 흙더미라도 된 양 깨지고 터졌다.
그런 묘기를 몇 번이나 보이며 전장을 유지 중이었다.
그럼에도 도돌이표였고.
“마법사는 멀었나?”
그 전장 한가운데에서 변신한 호랑이, 강슬혜가 중얼거렸다.
“왔는데, 다 죽었다.”
장가희가 답한다.
강슬혜가 뒤쪽을 슬쩍 보니, 연맹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 다섯이 눈에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진 게 보였다.
저것들은 또 왜 저러나?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슬혜가 마법에 대해 조예가 깊거나, 아는 게 많은 건 아니었지만.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
‘주문의 위력 자체가 다르잖아.’
갤럭시 필드를 펼치는 다섯 놈이 문제였다.
저 다섯만 아니면 어떻게 해 볼 법한데.
번번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묘한 기운이 자신을 덮친다.
불멸자가 아니기에 주문 따위를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다. 강슬혜는 어지간한 건 몸을 때웠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강체와 철완의 팔로 날아오는 얼음송곳 따위를 부숴서 쳐 내고.
발밑에서 불길이 일면 옆으로 뛰고.
그런 상황에서도 빈틈은 수없이 노렸다.
조금 전에도 워 로드의 무릎에 일격을 가할 기회였는데 갤럭시 필드가 앞을 막았다. 이러다 보니 슬슬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얻은 기회도 아니고 화랑 팀이 다 달려들어서 앞을 열지 않았나.
강슬혜는 씁쓸함을 느꼈다.
인베이더 무리가 무식하게 덤볐다면 승산은 이쪽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을 끌고 전투 양상을 지구전으로 만들었다.
우습게도 이곳은 인류의 땅이요, 앞마당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이러다 애 아빠 홀아비 만들겠네.’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
강슬혜는 그렇게 되면 유연호가 과연 새장가를 갈 것인가에 관해 고민했다.
‘새장가 가려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낙뢰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또 몸으로 견딘다.
털이 그을리고, 몸에 찌릿한 충격이 남는다.
몸이 굳는다. 낙뢰에 담긴 전류가 전신을 관통했다.
이제까지 안 보이던 패턴이었다.
당할 법도 했다.
시작부터 상대가 유리한 싸움이었다.
‘이건 당하겠는데.’
그런 강슬혜의 눈앞으로 이제까지 무식하게 위에서 밑으로 내려찍기만 하던 도끼가 바닥을 훑으며 날아오는 게 보였다.
이건 맞는다. 피할 수 없다.
확신이 든 순간, 강슬혜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날아온 도끼가 몸을 후리기 직전, 강슬혜의 눈에 몸을 낮춰 도끼를 휘두르는 워 로드의 낯짝이 얼핏 보였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저들도 표정을 짓는다는 가정하에, 지금 워 로드의 표정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이 개자식이?’
절로 짜증이 확 올라온다.
곧이어 충격파가 몸을 덮친다. 하지만 그녀가 상상했던 통증도, 충격도 없다.
그 대신이다.
반짝, 밤하늘에 있어야 할 그런 빛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슬혜의 눈앞에서 은하수가 빛난다.
갤럭시 필드다.
그 위로 무지개가 오색찬란한 빛을 뿌리고 덮으며 주변을 물들였다.
도끼의 충격을 오롯이 막으며 챙- 하고 깨지는 필드.
그 틈에 경직이 풀린 강슬혜는 도끼질을 피했다.
땅을 훑으며 올라간 도끼를 따라 용권풍이 생기고 자잘한 먼지 따위가 돌개바람에 휘말려 날아갔다.
그리고 저 머리 위, 정확히는 워 로드보다도 더 높은 곳에 선 여자애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맑고 명료했으며 그 태도는 더없이 당찼다.
“너 지금 누구한테 삿대질한 건지는 알지? 그리고 너 쪼갰니? 표정 참 엿 같은 새끼네.”
그나마 욕설을 자제한 강혜민이었다.
보통 주문은 총 네 가지 계열로 나눈다.
하나는 강화 계열.
셀프 주문으로 제 몸의 반사 속도나 운동 능력을 높이고 육체 강도를 변하게 하는 주문이다.
혜민의 특기이기도 했다.
둘은 구현 계열.
불꽃 공을 만들어 던지고 고드름 송곳, 뇌전 따위를 일으키는 주문이다.
보통 마법을 상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세 번째는 기어 계열이다.
기어에 인스톨된 주문을 읽어 내고 활용하는 건데, 이쪽으로는 혜민은 더 배울 것도 없었다.
보는 순간 알았고, 잡는 순간 기어 주문을 쓸 수준이니.
마리아는 혜민이 잘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가 중점을 두어 가르치고 훈련한 건 네 번째 계열이었다.
마더스 스펠.
본질의 주문, 본연의 주문이자 스펠 언어라는 걸 배워야 했고, 그걸 읊어야 실현되는 주문.
네 가지 계열이라고 했지만, 본디 모든 주문은 이 네 번째 계열에서 파생되는 것이라 봐도 좋았다.
모든 주문의 어머니라 하여 ‘마더스 스펠’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혜민이 주로 배운 건 이쪽이었다.
마더스 스펠은 효율은 최악이고 배우는 것에도 품이 많이 들며.
정작 실전에서 쓰려면 시간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배우는 이유?
“응용, 네가 배워야 할 건 딱 하나야. 응용법.”
모든 것의 기초, 기본기의 습득이다.
이 수련과 훈련은 혜민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할 수 있다고, 마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마리아의 스펠 습득력은 혜민보다 떨어진다.
그렇다고 몸을 쓰는 능력이 뛰어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혜민은 번번이 그녀에게 밀렸다.
대련이든 스펠 겨루기든 마찬가지다.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혜민의 주문은 정해진 공식이었다.
그녀의 생각이나, 전투 방식에 맞춰 만든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주먹만 한 불꽃 고리 주문을 외운다고 할 때, 혜민은 누구보다 빨리 그 주문을 익힐 수 있었지만, 그 고리를 갑자기 풀어내 채찍처럼 쓸 수는 없었다.
주문의 변형과 응용.
그건 고유의 스펠 언어를 터득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이걸 할 줄 알면 당당한 마법사라 불리게 된다.
보통 주문 세계의 문을 열었다고 해서, 스펠 오프너라고 부르는 단계다.
혜민은 그 주문을 배웠고.
응용했으며.
스스로 깨우쳐 나아갔다.
마리아의 가르침은 초반의 잠깐이면 충분했다. 이후에는 홀로 연 세계를 유영하는 여행자였다.
그녀는 그렇게 했고.
긴 주문 세계를 여행한 끝에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다.
그 덕에 주문을 쓰는 행위나 수법 자체도 능숙해진 건 당연했고.
강슬혜가 당하자마자 보인 마법이 구현 계열의 필드 보호 주문이었다.
갤럭시 필드 위로 일곱 장의 필드를 겹치는 것. 색으로 구분한 필드이기에 레인보우 필드라 불렀다.
은하수에 뜬 무지개.
스펠에 붙인 이름이다.
도끼질을 무지개와 은하수가 견디며 막고.
그 틈에 시어머니가 자리를 피한다.
혜민은 스펠 기어를 신고 입고 꼈다.
그녀는 그걸 십분 활용해 공중을 유영하며 위로 솟았다.
그렇게 자리 잡은 곳이 워 로드의 머리 위다.
광익이 매일 놀려 댔지만, 혜민은 바보가 아니었다.
스펠 유저로서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전투 감각만큼은 광익 못지않았다.
타고난 감각은 상황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문제가 되는 건 날파리 다섯.’
연맹에서 파견한 마법사 수십을 말려 죽인 인베이더 다섯이 문제였다.
이 새끼 때문에 워 로드를 상대함에 불리한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그렇다면 해답은 쉽다.
다섯 마리 날파리를 죽이면 된다.
“키앗.”
그중 하나가 손을 뻗는다. 그 손에서부터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며 혜민은 구현될 마법의 잔상을 미리 봤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의 합치로 얻은 부가적인 능력이다.
한발 앞서 주문을 보는 예지자의 눈이다.
상대가 주문쟁이라면.
‘절대 안 지지.’
뻔히 보이는 공격에 당하는 바보는 없다.
하물며 속도와 힘도 자신보다 느리고 부족한 상대임에, 당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혜민은 상대의 주문이 발현되기 전, 부유 부츠에 가속화를 걸었다.
그녀의 몸이 곡선을 그리며 자리를 회피한다.
그러자 혜민이 있던 자리로 바람의 칼날이 교차하며 날아갔다.
피한 곳에서도 연신 주문이 날아온다.
구현 계열의, 맞으면 몸이 잘리고 타고 부서질 만한 그런 물리력을 동반한 주문이다.
혜민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감각을 통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계산한다.
그리고 곧 움직여 피하고 또 피한다.
아까와 같은 쳇바퀴가 시작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었다.
그리 움직이며 혜민의 몸에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크레우라-칸-나!”
밑에서 워 로드의 외침이 터진다.
살기 어린 하울링은 곧 몸 안에 직접 들어와 뇌와 심장을 후려치는 타격이다
물론 혜민에게 영향은 없다.
그녀는 이미 보호 주문만 열두 개를 걸고 이 자리에 있으니.
보호 주문이 끝도 아니었다.
“은하수가 내려와 내 몸을 덮고.”
“태양이 내 주먹에 머무르며.”
“시간만큼 빠른 바람이 내 발이 되노라.”
마더스 스펠은 고풍스럽다. 혜민의 입에서 나온 말도 그랬다.
강화 계열을 응용한 혜민의 고유 주문이었다.
문을 연 주문쟁이, 그 주체는 전무후무한 재능을 가진 괴물 마법사다.
“완성.”
혜민의 몸 위로 여러 가지 빛이 어린다.
주문의 이름은 ‘웨딩드레스’.
그녀의 작명 센스가 최악인 것도 광익 못지않았다.
“덤빌래?”
또한 마리아가 혜민이 두른 강화 주문에 이름 붙이길 ‘스펠 브레이커’.
그녀가 두른 건 마법사의 천적과도 같았다.
순간 혜민의 몸이 가속한다.
그야말로 변신족에 가까운 속도였다.
그 속도에 맞춰 인베이더도 반응했다.
다가온 혜민을 향해 제 손톱을 세운다. 쭉 자라난 손톱이 아래에서 위로 솟는다.
혜민은 인베이더의 손등을 살포시 그러쥐고 밀었다.
그러자, 화륵 지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흡혈 인베이더의 손목이 불에 타, 재가 되더니 손이 뚝 하고 떨어졌다.
혜민의 손에 달린 건 초고열을 뿜어 내는 주문의 장갑이다.
기어가 아닌 순수한 구현 마법, 즉 유지형 주문이다.
그녀는 기어 대신 주문을 손에 끼웠다.
“감히!”
어쭈 말을 하네?
혜민은 상대에게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발을 올려 찼다.
머리통이 터진다. 그 발의 위력은 변신족의 그것을 닮았다.
그녀가 몸에 두른 갑옷은 기본적으로 특수종의 무력을 기반으로 한 거니까.
주문을 익힌 건 금방이었다.
이걸 몸에 익히고 능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리고 지금은 완벽하게 몸에 익었다.
머리통이 사라진 놈의 양 가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타올라라. 주작이여.”
헛소리다.
하지만 위력은 여실하다.
화르르륵!
다섯 중 한 마리가 허공에서 타오른다.
재생 따위를 꿈도 못 꿀 위력이었으니.
그 위로 몇 가지 주문이 내려앉는다.
환영 주문, 정신을 침범하려는 시도다.
혼란을 가중하는 주문.
제 이상형이 보이게 하는 매혹 주문.
이지를 무너뜨리는 갖가지 주문들.
별의별 주문이 다 시현되지만, 혜민에게 영향은 없다.
스펠 브레이커라 붙은 강화 주문을 두른 순간, 혜민의 몸은 변신족만큼 빨라진다.
눈으로 마법의 흐름을 보고 피하면 그만이다. 오롯이 그녀만이 할 수 있는 특기다.
주문을 보고 피하는 짓이다.
혜민이 사라진다. 두 번째 인베이더가 타오른다.
회색의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니, 재생은 당연히 꿈도 못 꿀 일.
“으-라,-헤!”
워 로드가 그걸 보더니 격하게 분노해 외쳤다.
분노, 그래, 워 로드의 외침에는 그런 게 느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밑에서 그보다 큰 울음이 터졌다.
어흐흐흐흐흥!
호랑이 울음이다.
“네 상대는 나지, 이 새끼야.”
강슬혜가 오랜만에 처녀적 텐션으로 입을 열었다.
갱생 마녀 이전, 단군 그룹 최고의 말썽꾸러기였던 그 시절.
변신족의 마녀라 불리던 그 시절의 텐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