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전장 조성
따-앙.
제 도끼를 엇갈려 때린 워 로드가 눈을 빛낸다.
곧 놈의 입에서 무지막지한 하울링이 뿜어졌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짐승의 울음소리에 담긴 초저주파가 몇 배는 증폭되어 주변을 덮친다.
네임드쯤 되면 제 성대조차도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뱃심에서 우러나온 워 로드의 괴성이 공기를 울렸다.
살기에서 비롯된 공포감이 인간의 신체를 파고든다.
기세가 남달랐다.
도끼 두 자루에서 흐르는 붉은 생체 에너지.
그걸 기반으로 전신에서 패기를 뿜는다.
감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 위세다.
그대로 이곳에 모인 모든 특수종을, 모든 인류를 상대할 것처럼 굴었고.
그게 허세로 보이지도 않았다.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기세였지만.
우습게도 인류는 그러지 않았다.
“갈겨!”
하울링이 지상을 강타했지만.
인류는 바보가 아니기에, 대처를 했다.
스카이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네임드의 존재를 염두에 둔 것도 당연했다.
준비된 시간이었다.
각자의 페이스 가드에는 하울링에 대처할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휴즈 게이트 이후, 각 기관 단체에서 준비한 것이다.
특수 소재로 만든 청각 보호구다.
하울링은 무용했다.
이후 인류의 반격이 시작됐다.
상가 건물이든, 아파트든, 1층에서 바리케이드로 삼을 만한 건 모조리 바리케이드로 삼고.
그게 없는 곳에는 기관총 진지처럼 구조물을 만든 곳만 수십 곳이 넘었다.
그 각 진지에서 유탄과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인간의 육신 따위는 단숨에 걸레로 만들 화력이 중앙에 있는 워 로드에게 집중된다.
화력을 집중하는 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제아무리 하울링으로 인한 몸의 마비를 막았다곤 해도.
워 로드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그들의 심리를 움직인다.
기관총 사수와 일대의 지휘관 모두, 저 대형 오크 괴물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판단한 거다.
꽈르르르르릉!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박격포, 기관총, 유탄, 대물저격총을 비롯한 소형 전술 병기가 불을 뿜는다.
네임드가 나왔다는 가정하에 준비된 화력이 집중됐다.
인류가 아는 네임드를 잡는 방법 이론은 현재까지 둘.
하나는 소수 정예로 멱을 따는 것.
둘은 화력을 집중해 죽이는 것.
그중 두 번째 이론은 현실성을 잃었다.
한순간 집중된 화력은 워 로드의 몸에 생채기를 남겼지만, 그 이외의 것은 남지 않았다.
워 로드의 몸 위로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그 곁에는 전신을 꼼꼼하게 가린 흡혈 인베이더가 자리 잡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기묘한 재질의 천과 망토를 두른 놈이다.
어떻게 보면 전신 타이즈를 입고 망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우습게 보일 순 있지만, 우스운 상대는 아니었다.
고속 재생과 주문을 써 대는 인베이더다.
다섯 마리의 인베이더는 오 중첩 갤럭시 필드를 형성했고.
화력을 무용케 했다.
애초에 이 정도로 잡을 수 있었다면.
특수종이 일반 인류에게 끌려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불멸과 변신, 초능과 마법이 참으로 비이성적인 무력이 되었기에.
그래서 특수종 세상이 도래한 것 아니겠나.
“워 로드를 막아 주셔야겠어요.”
강슬혜는 그런 상황에서 우미호의 연락을 받았다.
간단한 내용이었다.
워 로드를 막아 달라는 것.
물론 내용은 간단하지만, 그 실현은 어렵다.
상대는 네임드.
하물며 준네임드 급이라는 인베이더가 주변에서 마력의 결계를 펼치는 중이었다.
골치 아픈 상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또한 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기에.
“우리 아들 손 하나 덜어 줘야겠네.”
강슬혜는 그렇게 말하고 변신했다. 어설픈 변신족의 변신은 몸의 피부를 찢고, 변신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변신족은 한순간에 변한다.
한때는 변신에 걸리는 소요 시간과 과정을 두고 변신족의 능력을 측정하기도 했다.
물론 변신이 변신족이 가진 모든 능력을 대체해 주진 않는다.
간단한 예로 광익조차 변신하는 데 시간을 소요하는 편이었다.
‘초고속 변신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능숙함이 필요하다. 단기 훈련으로 이걸 해내려 했다간 몸뚱이가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훈련이기도 했다.
한때는 변신족을 대표하는 특수종.
화랑 제일을 말하던 그녀다.
경험과 실력을 겸비했기에, 그녀는 완벽에 가까운 변신족이었다.
크허허헝!
호랑이가 운다.
강슬혜는 워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이 개새끼들이?”
난 진심으로 황당했다.
네임드는 인베이더의 자존심 그런 거 아니었나?
가진 무력의 최종 병기쯤 아니었냐고.
그렇다면 나오자마자 자웅을 겨뤄야지.
이런 개수작을 부려?
시선은 워 로드가 다 끌었다.
하울링을 통해 인류의 화력을 자신에게 다 끌어당긴다.
갤럭시 필드가 그 폭격을 막았다.
여기까지는 그래, 예상 범위 안이다.
문제는 그 뒤였다.
화려하게 전투기를 가른 광검사가 모습을 감춘다.
불멸자의 특기라도 발휘하는 것처럼 기척을 감춘 채, 어느새 시야에서 벗어났다.
불가사리는 어떤가.
놈의 몸이 단숨에 쭉 하고 줄어들더니, 길게 늘어져선 인간의 형태로 변했고.
그대로 바닥에서 꾸물거리곤 사라졌다.
미친 새끼들인가, 진짜.
달리면서 오감과 시력을 통해 파악한 정보를 되새긴다.
결론은 금세 나왔다.
네임드가 머리를 쓰네?
워 로드가 어그로를 끌고 나머지가 흩어진다.
네임드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략 병기 이상의 위력을 가졌으므로.
이대로 놓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전략이다.
인베이더가 전략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그런 징조를 수도 없이 풍기지 않았나.
이런 상황을 예측조차 못 한다면.
퇴사해라, 우미호.
그녀의 두뇌는 다른 불멸자와는 다르다.
생각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그러하기에 믿었다.
“전황 확인!”
무전기를 통해 우미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웃었다.
내 예상과 더없이 잘 맞아떨어졌으므로.
이후 그녀의 지시는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났지만, 불만은 없었다.
“그게 그렇게도 되네.”
무전기를 통해 말하자.
“그러니까 네가 대표를 해야 한다.”
우미호는 나에게 딱 하나를 요구했다.
“압도적으로 죽이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어.”
우미호의 말을 끝으로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혜민아, 들었지? 넌 가라.”
폭격과 인베이더 습격으로 엉망이 된 도심을 가로지른 참이었다.
막 뒤따라온 혜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알았다고.”
표정과 달리 말은 잘 듣는다.
당연하지.
내가 쟤랑 결혼하면 지금 네가 도우러 가는 사람이 시어머니가 되는 법인데.
점수를 딸 기회를 버릴 순 없지 않나.
네임드가 끝이 아니다.
팬더 형과 우미호는 같은 걸 예상했다.
그렇다고 네임드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디스트로이어, 크림슨 나이트메어, 저 파충류를 죽여야 해.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제 홀에서 반쯤 머리를 끄집어낸 괴물이 보인다.
침략자의 끝판왕, 그러니까 휴즈 게이트 시절에는 저 괴물이 끝판왕이었다.
그나저나, 네임드가 다 여기로 몰렸으니, 다른 나라는 살판나겠는데?
이 위기를 넘어선다면.
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 올드포스, 글로벌 기업 연합, 초능 협회 단체 등에 따질 것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셨으면 대가를 내놓으라고 말이다.
“인류는 멸망해요.”
예언가는 그리 말했고.
난 그걸 전면 부인했다.
정말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한 말이다.
현재 보이는 워 로드도, 광검사도, 불가사리도, 하물며 디스트로이어도.
그 어떤 네임드의 기세도.
나한테는 하나도 위협이 되지 않았으니까.
할 만하다 정도가 아니다.
가진 걸 쏟아 내면 압도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짧은 답을 우미호에게 들려준다.
무전기 너머의 머리 좋고 싹수없던 불멸자 동기가 답했다.
“믿는다. 유광익.”
난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오리엔테이션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났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나도 모르고 얘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우미호가 짠 판이다.
그녀는 전장의 구도를 잡았고, 판을 짰다.
전면에서 시끄러운 워 로드는 엄마가.
거기에 강혜민과 기타 다른 인원이 지원할 것이고.
광검사는 기척을 죽이고 다니니, 그걸 우선 잡아채야 했다.
추적과 전투 양쪽 면에서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므로.
정기남이 간다.
이쪽에는 도안결이 붙었다.
팬텀이라 불리던 이중봉 팀장도 이쪽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가사리를 상대.
디스트로이어는 나 홀로 상대한다.
크림슨 나이트메어라.
내가 누군가의 악몽이 된 적은 많아도, 누가 내 악몽이 된 적은 참 흔치 않은데 말이야.
변신족의 본능이 전투에 앞서 몸을 달군다.
반대로 불멸자의 피는 인베이더가 홀에서 나오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 사이에 워 로드 쪽에서 폭음이 터졌다.
네임드와 인류, 인류와 네임드.
긴 시간 이어진 인베이더와 인류의 전쟁은 종반에 다다랐다.
‘본격적이군.’
‘모습을 감추는 게 능숙하고.’
‘절제할 줄 알고.’
‘목적은?’
‘혼란 가중, 무엇을 위해?’
기남은 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중간에 우미호의 연락을 받은 그는 목표를 특정했다.
네임드 인베이더 광검사가 그가 상대해야 할 놈이다.
물론 시키지 않아도 할 작정이었다.
“마리는!”
쩡-!
“쉽게 당하지 않아요.”
변신한 마리, 잠정적 연인이 공격당했으니까.
그냥 놔둘 생각은 없다.
기남은 내달렸고 도착하자마자 광검사의 머리통에 세 발의 탄을 쐈다.
아니, 단순히 탄이라고 할 순 없는 무기였다.
레이저를 세 발 갈긴 거니까.
광검사는 제 검을 정확히 세 번 멈춰, 레이저를 튕겨 냈다.
지-잉! 쭝!
빛의 칼날과 맞닿은 레이저가 분사되며, 하늘 위로 크게 꺾이면서 사라졌다.
세 발의 탄은 견제였다.
거리를 좁힌 기남이 커스터마이징 무기를 꺼낼 때, 워 로드의 괴성이 터졌다.
아찔한 수준의 하울링이다.
기남은 그 순간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정도쯤은.’
이쪽에도 괴물은 있다. 세최특의 살기는 고작 이 정도 하울링과 비교할 수 없으니.
순간의 틈을 쪼개서 무기를 꺼낸다.
그리고 광검사는 그 짧은 틈에 사라졌다.
정기남의 육감과 오감이 이미 사라진 상대의 움직임을 쫓았다.
하울링이 터지기 직전부터 놈은 몸을 빼려고 했다.
한쪽 발로 땅을 찬다.
무지막지한 힘은 필요 없다. 날아오는 모든 공격의 맹점으로 사라지면 되니까.
몸을 바짝 낮춘 뒤, 시야 밖으로 사라지면 된다.
그 상태에서 뒤로 쭉 내달린다.
그야말로 귀신같은 몸놀림이었다.
어떤 인간이 바닥에 몸을 바짝 붙여 놓고, 그것도 등이 닿을 듯한 자세로 속도를 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는 인베이더였다.
놈은 그렇게 했다.
변신족인 마리도 상대를 놓치지 않고 쫓았다.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안광이 긴 호선을 그리며 잔상을 남겼다.
도끼가 그 잔상 위에 선을 덧댄다.
공기 터지는 소리가 뒤늦게 따라왔다.
변신체 상태가 되어 초고속으로 내달려 찍는 도끼다.
마리의 도끼가 땅을 때린 순간, 쪼갠 먼지와 연기가 눈을 가렸다.
워 로드에게 꽂힌 무수히 많은 탄과 폭탄이 폭연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틈에 광검사는 기척을 숨겼다.
“당했군.”
기남은 그렇게만 말하고 오감을 집중했다.
흔적을 쫓고 미세한 기척을 쫓는다. 곧 기남이 발을 뗐다.
“마리도 같이 가요.”
“넌 여기 있어.”
마리가 빠지면 지금도 쏟아지는 인베이더 무리에 아군이 무너질 것이다.
그녀의 무기, 무력은 일대 다수를 상대하는 데 빛을 발한다.
“꼭 돌아올게.”
기남은 답지 않게 이어 말하고 내달렸다.
이후는 술래잡기다.
쫓으며 기남은 미호에게 연락받았고.
처음 했던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
제 욕구를 절제하며 내달리는 광검사는 기다리는 중이었다.
네임드 넷이 모이기를?
그건 아니다. 육감이 말한다. 단기 예지가 발동할 정도로 예민해진 감각이 말한다.
‘그 너머의 새로운 무언가.’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상대의 움직임을 몇 번이고 예측해 잡을 타이밍이 왔다.
기남은 생각을 접고 허공에 와이어를 날리며 당겼다.
공중에서 휜 와이어가 십여 가닥으로 나뉘더니 사방팔방으로 흔들리며 떨어졌다.
와이어에서 전류가 튄다.
맞는 순간, 기척을 숨긴 적은 자신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물론 광검사는 멍청하게 맞아 주지 않았다.
대신 놈은 칼을 휘둘렀다.
지-잉!
인간의 광학병기와 버금가는 칼.
빛의 검, 광검사의 무기가 허공에서 튀는 전류 와이어를 조각낸다.
“멈춰라. 개자식아. 죽을 시간이다.”
기남이 말하며 발을 멈췄다.
그 앞에서 광검사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심장 박동처럼 반짝였다.
대치 상황이 오자마자.
기남의 오른쪽으로 아는 변신족이 튀어나왔다.
팍! 팍! 하고 건물 벽을 땅처럼 박차고 날아오더니,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옆에 내려선다.
“같이 한다.”
도안결이다.
“이거 재수가 없는데, 후방을 맡으려고 했더니.”
왼쪽 뒤로는 팬텀 이중봉도 왔다.
최근까지 그에게 불멸의 기술을 가르쳐 준 장본인이었다.
“상대는 네임드, 무서우면 빠져도 돼.”
기남이 말했고.
뒤이어 온 둘은 코웃음을 쳤다.
아니, 정확히는 도안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이중봉은 정말 그래도 되냐며 웃었다.
그걸 지켜보던 광검사에게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군.”
유려한 한국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