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95화 (395/488)

395. 네임드

정기남은 집중했다.

불멸족의 약과 비약을 먹고.

레일 저격총을 들고 갈겼다.

광학병기가 아닌 이상에야 이 거리에서 순간순간 보이는 방어막을 뚫을 순 없다.

그게 스펠 필드든, 사이오닉 쉴드든 말이다.

빈틈을 노리면 된다. 방어막이 없을 때 맞추면 되는 거다.

부서진 건물, 반쯤 조각나 아스팔트 위에 박힌 벽 뒤로 상대의 모습이 가려진다.

아군 둘과 인베이더 하나였다.

기남은 반사적으로 벽 뒤에 있던 이들의 움직임을 계산했고.

곧 방아쇠를 당겼다.

귀신같이 날아간 탄이 건물 잔해 사이를 넘어 인베이더의 무릎을 부쉈다.

인간과 모습이 닮았다면 관절의 구조도 비슷하다는 소리다.

인베이더의 무릎이 꺾인다.

스코프 너머에 있던 변신족이 허공에 몸을 띄워 종으로 회전하더니, 들고 있던 망치로 흡혈귀의 머리통을 빠갰다.

그러자 화염방사기를 든 다른 특수종이 다가와 인베이더를 태운다.

몸을 불사르면 아무리 고속 재생을 가졌다고 해도 쉽게 재생할 수 없다.

화상은 살을 엉겨 붙게 한다. 고속 재생이 가능하다면 아예 자르는 게 더 빠른 재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신이 다 타 버리면 그럴 수도 없으니, 화염방사기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화염 세례는 특수종 전쟁 때 불멸자를 잡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인간은 자기들끼리도 수 세기 동안 싸웠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무언가를 흉내 낸 인베이더를 잡는 건, 어렵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닮아서 까다롭지만.’

그만큼 익숙한 상대.

기남은 그대로 스코프를 돌렸다.

기계적으로 총알을 갈긴다.

약 덕분에 집중력이 솟구친다. 러너스 하이와 같은 쾌감이 차오른다.

저격을 이어 간다.

기남은 수차례 총구를 갈기다가 멈췄다.

묘한 위화감이 들어서다.

어째 보이는 인베이더 숫자가 확연히 줄어든다. 스코프 너머에서 푸른 에너지 탄이 만든 결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친.’

뭐, 저런 새끼가 다 있단 말인가.

홀로 떨어진 유광익이 하는 짓을 보라.

소음과 함께 그의 방전하는 라이플이 빛을 토해 낸다.

날아간 에너지 탄환은 쏘는 것과 동시에 상대의 머리통을 날렸다.

그걸 숨도 안 쉬고 반복한다.

뻐버버버버버버버버벙!

바로 옆에 연속으로 터지는 폭죽을 놔둔 것 같았다.

쉬지도 않고 방아쇠를 연신 당긴다.

그에 상응하는 반동은 몸으로 받아 내고 흘려 버린다. 몸을 쓰는 재주는 변신족의 그것이다.

마구잡이로 쏴 대서 언뜻 허공에 총알을 갈기는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다 맞춰?’

자신도 감히 할 수 없는 묘기였다.

불멸자의 재능 또한 탁월하다.

그러자, 인베이더도 반응한다. 윙 나이트 일곱 마리가 허공을 날았다.

단숨에 팡 하고 공기를 찢으며 속도를 배가한 놈들은 휠 나이트가 돌격하는 만큼 빨랐다.

그럼 날아오른 건 올바른 선택일까?

‘그건 아니지.’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 놈들의 방패는 인베이더 무리 그 자체였다.

그 방패를 벗어난 순간.

광익은 동시에 일곱 놈을 다 맞췄다.

뻐버버버벙!

한 번에 일곱을 조준하고 호흡 한 번 내뱉을 틈 없이 갈겼다.

“……석양이 진다.”

바로 옆에 있던 다른 대원이 중얼거렸다.

기남이 사납게 답하자.

대원은 곧 제 할 일에 집중했다.

기남도 그렇게 했다.

어쨌든 그들의 역할은 분명하니까.

저격으로 아군의 피해를 줄인다.

총 한 자루로 전황을 바꿀 순 없으므로.

이게 맞다. 이게 맞는데.

그런데 저 새끼는 뭔가.

기남은 질려 버렸다.

총 한 자루, 아무리 커스터마이징 무기에 청기사의 에너지를 품은 거라지만.

그 한 자루가 전황을 뒤엎었다.

인베이더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뒤로 훌쩍 물러갔다.

거, 내가 총을 좀 거하게 쏘긴 했나 보다.

사람들이 날 보고 다 너무 반기더라고.

다 쏘고 엎드린 자세로 턱을 바닥에 댄 채 쉬고 있자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청기사의 에테르 에너지는 곧 내 생체 에너지를 기반으로 발현되는 것.

거기에 내 무기는 웨어러블 기어.

기생석을 기본 형태로 삼는다.

내 에너지를 쪽쪽 빨아 간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맨몸으로 돌격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체력 소모가 컸다.

그래도 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우오오오오!

세최트으으윽!

여전히 날 향한 환호가 현재 진행형이다.

“좋아?”

환호하는 외침을 감상하는 중에 혜민이 말했다.

혜민은 바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아까 한 말은 뭐야?”

“들은 그대로지.”

못 믿겠다는 눈치다.

“응. 가짜.”

농담을 건네니, 볼을 부들부들 떤다.

그게 또 퍽 귀여워 보이긴 했다.

“나랑 동훈이 오빠보고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지 않니?”

정아 누나가 핀잔을 준다.

그러던 중 옆으로 기남이가 다가왔다.

“넌.”

기남이가 뭐라고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정기남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팩 앞으로 돌렸다.

나 또한 긴장을 풀었던 몸을 바로 하고 앞을 바라봤다.

환호 사이, 홀 너머에서 불길한 직감이 뒤통수를 후린다.

동시에 기남이도 느꼈는지 고개를 팩 돌렸다.

원래 4시간 단위로 나오던 놈들인데 말이야.

이번에는 연이어 나왔다.

하긴 4시간은 누가 정한 건가.

저 새끼들이 정한 거니, 저 새끼들이 바꿀 수도 있는 거지.

“네임드다.”

기남이 말한다.

그래, 네임드였다.

인베이더 무리가 숨겨 둔 칼날을 꺼내 들었다.

근데 한 마리가 아니네?

한 마리가 얼굴을 드러내자마자 다음 놈이 홀 너머에서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쿠오오오오오!”

처음은 워 로드였다.

특출난 재생력과 완력을 갖춘 네임드.

넘버링 12에서 파생된 놈이다.

오크와 비슷하나 체고가 4m에 가깝다.

양손에 든 도끼의 날이 붉다. 놈의 전신에서 붉은 오라 같은 게 뿜어져 나오면 도끼날을 감는다.

생체 에너지의 가시화, 청기사와 버금가는 에테르 에너지 소유자란 소리다.

에테르를 다른 연구자는 포스라든지 부른다. 하여간 고밀도 에너지를 방사할 수 있는 괴물이란 거다.

인간에게 장비가 있다면 인베이더는 그걸 제 몸으로 실현한다.

끔찍한 괴물이란 말과 같다.

하물며 저 도끼 소재가 아다만티움이다.

무게와 질량이 깡패인 무기에 생체 에너지를 덧씌운 거란 거다.

저 한 마리만 해도 혀를 내두를 판인데 말이야.

“한 마리 더?”

정아 누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왜 여기만 두 마리란 말인가.

두 번째는 광검사다.

한 손에 나무 막대 따위를 들고 있었다.

겉만 보면 빛을 뿜는 옷을 입은 괴인처럼 보인다.

눈에도 빛이 흘러나오고 코와 입에서도 빛이 스며 나온다.

창백한 피부 위로 빛의 문자가 타투처럼 새겨져 빛났다.

곧 놈이 지닌 막대가 웅 하고 떨리더니 그 위로 빛의 칼이 솟았다.

저 칼은 인류의 최종병기인 광학병기 이상의 절삭력을 지녔으며.

잘 늘어나기도 한다.

거기에 놈의 검 솜씨는 어지간한 변신족 이상이고.

괜히 이름을 광검사라고 지은 게 아니다.

“세 번째?”

이번에는 혜민이다.

두 마리가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 세 번째 네임드도 꾸물거리며 나왔다.

나오는 걸 잠자코 구경만 할 생각은 없는지, 인류 쪽에서 선제공격을 가했다.

슈아아앙!

전투기 수십 대가 허공을 가르며 나타났다.

날아간 전투기에서 미사일 따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네임드를 타겟으로 삼은 폭격이다.

나타난 건 순식간이었지만, 타겟 지정 후 폭격도 순식간이었다.

두두두둥!

“괜한 짓을.”

워 로드는 나타난 전투기를 외면했다.

고함 한 번 내지른 놈은 묵묵히 제 도끼와 주변을 보고는 손을 늘어뜨리고 멈춘 채, 가슴만 오르락내리락했다. 적응이라도 하는 듯 천천히 숨만 쉬었다.

대신 광검사가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소리는 없다. 그저 하얗게 빛나는 칼날이 길게 늘어지더니 위로 쭉 늘어난다. 늘어난 칼날은 아지랑이처럼 휘어지곤 얇은 실로 변했다.

실로 변한 광검은 그대로 주변을 가득 채우는 촘촘한 그물이 되었다.

하늘 위를 새하얗게 수놓는 빛의 칼.

무지막지한 광역 공격기다.

뻗어나간 백광의 실이 날아오던 미사일을 허공에서 갈랐다.

뻐퍼퍼퍼퍼퍼펑!

공중 폭사다.

그 실의 끝이 전투기도 갈랐다.

무인 드론 전투기였는지, 사람이 죽은 것 같진 않다만.

괜한 짓이라니까.

폭음과 폭발, 폭연이 머리 위를 덮는다.

전투기와 미사일의 부산물이 회색 재가 되어 싸라기눈처럼 내렸다.

전투기가 출현하기 전부터 꾸물거리며 홀을 넘은 세 번째 네임드는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상관없다는 듯 제 몸을 움직였다.

검은 계단을 걸쳐 내려오는 괴이한 생명체.

이쪽은 구면이었다.

네임드 불가사리다.

예전 불멸특수대 시절 잠깐 마주했던 놈이었다.

넘버링 3 슬라임의 진화형.

슬라임이 가진 모든 특질을 쓰는 인베이더 네임드였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정말.

세 마리에서 끝이 아니었다.

하이라이트는 네 번째 네임드였다.

현존하는 네임드 중 가장 위험한 존재가 고개를 쑥 내민다.

파충류의 그것을 닮은 눈.

휴즈 게이트 당시, 미국 대학살의 주범.

“진홍의 악몽?”

팬더 형이 말한다. 어느새 뒤에 선 채로 홀이 열리며 나오는 놈들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공식 명칭은 디스트로이어.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게 분명한 네임드까지.

풍년이로다.

전신에 어린 진홍의 비늘.

네 장의 날개.

입에서 뿜어지는 숨결은 그 자체가 마법의 불길이다.

용 대가리가 홀 너머에서 슬쩍 나오는 것까지 확인한 난 준비된 약과 고칼로리 영양제를 씹어 삼켰다.

더 나오든 말든, 지금은 먹을 때다.

한 번에 씹어 삼키자 순간적으로 간에 부담이 된다. 심장이 쿵쿵 뛰며 혈류가 돌다 못해 몸 안을 휘도는 피가 혈관을 찢고 튀어 나갈 것 같다.

“킁.”

콧김을 뿜자, 실제로 김이 나왔다.

체온이 훌쩍 올라갔다. 전신에서 뜨끈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고열량의 에너지를 한 번에 소화해서 그렇다.

심장 어림에 묵직한 통증을 삼키며 에테르 라이플을 겨눈다.

조준에 시간을 끌 것도 없기에.

쐈다.

앉아 쏴 자세로 로드의 대가를 노렸다.

쭉 몸이 밀려나려는 걸 팬더 형이 무릎으로 받쳐 줬다.

“우워!.”

워 로드 놈은 탄환이 발사되자마자 비스듬히 도끼를 들어 도끼 면으로 얼굴 앞을 막았다.

막는 순간, 순간적으로 무릎을 굽혀 탄이 주는 충격과 에너지를 흘려낸다.

어지간히 몸 다루는 것에 자신 있는 변신족도 못 할 묘기다.

저 몸뚱이로 무술의 고수라니.

이건 사기지.

뭐, 네임드는 전부 사기다.

저격으로 하나 잡고 시작해 보고 싶었는데.

안 될 것 같더라.

그래도 시도는 할 만하지 않았나.

전투기보다는 이쪽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인류는 네임드를 경험했다.

하지만 네 마리를 한 번에 경험하진 않았다.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소수 정예로 맞서서 죽여야 한다.

그건 기본 철칙이다.

“한 마리는 내가 맡는다.”

정기남이 말하고 나이프를 뽑더니 건물 벽에 찍고 나이프 레펠을 하며 밑으로 떨어졌다.

“……한 마리는 뭐?”

쟤 뭐라는 거야.

망원경으로 상황을 보던 정아 누나가 입을 연다.

“광검사가 움직였다. 빨라, 아, 마리 쪽으로 갔어.”

아, 나보다 정기남이 그걸 먼저 본 거구나.

“워 로드도 움직인다. 그 앞을 누가 막는데?”

각자 알아서 할 일에 매진한다.

그럼 나도 해야지.

“같이 가.”

뛰어서 나가려고 하자, 혜민이 날 붙든다.

“어디겠어?”

얘는 마법사다.

몸은 일반인과 같다. 충격파에도 내장이 망가질 거다.

“원격으로 지원만 할 거야. 나 바보 아니다.”

“그랬구나. 우리 혜민이가 바보가 아니었구나. 그래서 수능 점수가 그랬구나.”

“그건 별개지!”

“그래, 그럼 따라와라.”

짧은 농담을 하고 몸을 돌렸다. 오지 말라고 해도 쫓아올 애 아닌가.

그렇다면.

‘애초에 시야에 두는 게 낫지.’

우미호는 후방 보급로를 정리한 뒤, 전선 앞에 섰다.

홀로그램 수십 개가 그녀의 눈앞에 뜬다.

손을 들어 수십 개의 홀로그램을 정리했고.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걸 분류한 다음.

현 상황을 인지한다.

네임드가 나오기 전까지 그녀는 압승을 확신했다.

‘유광익, 넌 정말.’

남자로서 매력은 별로지만, 특수종으로서의 무력만큼은 정말 가공하다.

인류가 낳은 네임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네임드가 있다면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그만큼 막강하다.

전면에서 날뛸 때도 그랬지만, 후방으로 빠져서 저격 라이플을 갈기니, 이건 뭐.

‘내가 인베이더 쪽 지휘관이라면.’

당장 후퇴를 명할 것이다.

하지만 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볼썽사나운 침략자 무리는 강수를 뒀다.

네임드가 넷이 튀어나온다.

출현 중 전투기가 부서지는 홀로그램이 빠르게 눈앞을 스친다.

모든 걸 본 우미호는 당장 급한 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전원 후퇴, 당장 후퇴!”

답지 않게 목소리까지 드높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검사가 움직이고, 워 로드가 자신의 도끼 두 자루를 겹쳐 퉁- 하고 튕긴다.

그가 지닌 붉은 오라가 동심원처럼 퍼졌다.

지금부터 벌어질 살육을 즐기겠다는 표시 같다.

우미호의 뇌가 미친 듯이 회전한다. 세포 하나하나가 일어나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지식.

유무인에게 배웠던 언령의 기초.

혼혈임에도 감각을 일깨우는 요령.

모든 것이 섞이고 엉켜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기반이 되는 건 본래 우미호가 가지고 있던 전장을 보는 눈이다.

전장을 직시하고 분해하고 조립한다.

‘영리해.’

단숨에 내린 결론이다.

네임드의 지능이 그녀가 알던 어떤 인베이더보다 뛰어나다는 것.

“흡.”

숨을 짧고 굵게 들이킨 우미호는 뱃속에 공기를 넣어 복압을 만든 뒤, 천천히 호흡을 뱉어 냈다.

후우우.

하고 뱉어 내는 호흡과 함께 머릿속에 엉킨 생각을 정리한다.

여기까지 고작 10초 내외다.

그와 동시에 아군의 위치, 네임드의 위치 등, 모든 걸 머릿속에 때려 넣고.

숨을 다 내쉰 뒤에는 무전을 미친 듯이 치며 각 단체의 지휘부에 명령했다.

넋 놓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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