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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94화 (394/488)

394. 집중

“이 씹!”

솔져는 머리통 반이 부서지고 투사체가 달렸던 팔뚝은 팔꿈치 아래가 싹둑 잘린 채로 달려들었다.

고통을 모르는 인베이더는 사지 결손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팔에 붙은 칼을 앞세워 돌진할 뿐이다.

속도가 매섭다.

칼과 제 몸이 하나라도 된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팔 대신 칼이 달렸으니 한 몸인 건 맞다.

전위에 서 있던 남자는 욕설을 뱉으며 들고 있던 칼을 위로 올려쳤다.

따-앙!

쇳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남자는 집중했다. 순간의 틈을 찾아 눈을 부릅떴다.

‘넘어져라.’

속으로 되뇌었다.

그의 초능이 발동했다.

발목을 채는 손.

오롯이 하나의 동작에만 제한된 무형의 힘이 발현된다.

인베이더 솔져는 입이 없다. 비명이나 신음 따위도 없이 놈이 쓰러진다. 발목이 접질린 것처럼 쿵 하고 넘어졌다.

넘어진 놈은 바닥을 디딜 손이 없기에 머리를 지지대로 삼아 버텼다.

바짝 독이 오른 뱀 같은 목 근육이 보였다.

“아디오스다. 씹쌔야.”

입이 걸걸한 초능 특수종은 놈의 머리통에 특수 제작된 탄을 박아 넣었다.

빠-앙!

개조한 자동권총이 탄알을 쏜다.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발사된 탄이 놈의 머리통에 구멍을 만들었다.

“후우, 시발. 개 씹.”

인베이더 한 마리를 죽인 남자는 참 지랄 맞다고 생각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초능력 남발의 부작용이었다.

혼자서 잡은 인베이더만 벌써 세 마리가 넘는다.

문제라면.

“떴다!”

저런 거지.

아군 무리 앞, 모세라도 나타난 것 같았다.

한순간에 양옆으로 쫙 갈라진다.

그곳에 있는 건, 솔져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개체의 인베이더였다.

두개골 형태가 어떻게 된 건지 머리통이 원반을 닮은 놈.

정수리는 삐죽 올라와 있고 머리통 자체는 은색 질감을 보인다.

은색의 머리통이 어지간히도 단단해 보였다.

눈이 두 개인 놈이었다.

제너럴은 개체마다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다.

눈이 하나인 놈도 있었다.

다만, 그게 능력의 고하를 나누는 기준은 되지 않았다.

제너럴이 양손을 펼치자, 허공에 빙글빙글 도는 광륜이 생겼다.

빛의 원반이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다가서도 방검방탄복 따위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불멸자 중 하나가 중얼거리며 거리를 벌린다. 뒤로 훌쩍 뛰는데 공중에서 휘리릭 돌던 광륜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였다.

아까 솔져가 달려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번쩍하는 순간, 광륜이 긴 궤적을 그린다.

지켜보던 초능 특수종의 눈에는 꼬리가 긴 잔상만이 남았다.

찰나의 순간이다.

퉁, 투두두두두두둥!

장구나 북 따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허?”

놀란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눈앞에 양손에 도끼를 든 변신족 여자가 보였다.

등이 참, 멋져 보이는 여자다.

“마리가 왔습니다.”

그녀가 입을 연다.

박마리.

도끼를 휘두르는 성녀.

제 이름을 3인칭으로 말하는 NS 전투원.

묘한 소리의 정체는 그녀가 도끼로 광륜을 위로 쳐 내면서 난 소리였다.

도끼날이 달궈진 듯, 빨갛다.

광륜이 솟고 박마리가 나타나고.

제너럴은 지휘자라도 된 듯 곧장 양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팡! 뻑!

공기 터지는 소리와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휘류류류륙!

남자는 돌아가는 상황을 한눈에 담기 어려웠다.

‘뭐가 어떻게 된…….’

어느새 제너럴의 머리에는 도끼날이 박혀 있었다.

원반으로 된 머리통이 깔끔하게 갈라져 있고, 끄트머리에 도끼가 달랑거린다.

그리고 박마리의 머리 위에는 빛의 입자 따위가 떨어져 내린다.

남자는 제 망막에 남은 걸 재조립해서 이해했다.

한손에 든 도끼를 던진 뒤.

떨어지는 광륜을 향해.

부부부부붕.

한 손에 남은 도끼를 휘젓는다. 곧 파창파창 하고 허공에 뜬 광륜이 깨졌다.

‘저게 저렇게 되네?’

광륜은 초능력이다. 열기와 절삭력을 갖춘 능력인데.

그걸 힘으로 부딪쳐서 부쉈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묘기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고맙습니다.”

바로 뒤에 있던 불멸자가 말한다.

박마리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빈손을 허공에 뻗었고.

제너럴의 머리통에 박힌 도끼가 휘리릭하고 그녀의 손에 돌아왔다.

탁하고 도끼를 잡아챈 그녀의 앞에 제너럴 다섯이 더 왔다.

“이런 시발.”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놈들의 머리 위로 조금 전 봤던 광륜이 수십 개는 떠 있었다.

“마리가 막아요. 피하세요.”

그녀가 말한다.

본래 작전 형태가 이렇긴 했다.

제너럴을 비롯한 망토를 두른 흡혈귀, 윙 나이트와 변형 키메라는 소수 정예가 막기로.

하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세최특은 어디서 뭘 하고?’

남자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빵!

제너럴 중 하나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목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다.

저격이었다.

물론 그 한 방으로 제너럴이 죽진 않는다.

그래도 상황은 변했다.

빠바바바바방!

폭죽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리며 제너럴 앞으로 탄환이 쏟아진다.

놈들 중 일부가 염력 방패를 만들었고.

그걸 본 마리가 미소를 보였다.

누구 작품인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새끼가.

기남이 라이플을 들고 갈기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이 마리 쪽이다.

내가 먼저 쏘려고 했는데.

“한눈팔 시간 있어?”

“없네요. 네.”

정아 누나가 나무란다. 난 호흡을 조절하고 입에 농축 영양제를 한 알 넣었다.

꿀꺽 삼킨다.

그 뒤, 기어를 발동했다.

강푸름은 청기사를 이리저리 뜯어 연구했고.

그 연구의 총화는 나한테 있다.

내 맨몸에 전류가 흐른다. 과한 에너지가 모이며 생긴 방전 현상이다.

손톱으로 왼손 중지를 그어 피 한 방울을 만든다. 그것은 곧 내 몸에 잠든 기생 기어를 꺼내는 명령어다.

본래는 완갑 형태였던 걸 팔에 찰싹 달라붙는 얇은 금속의 보호대로 바꿨다.

곧 보호대가 변한다.

투드드득.

어깨부터 시작되는 기생 라이플이 나타난다.

스코프와 작은 선이 불쑥 솟고, 내 팔뚝과 연결된 라이플이 파지직 하고 뇌전을 방전하며 구현된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

“신기하기만 한 건 아닐 겁니다.”

정아 누나의 말에 답하며 스코프에 눈을 댔다.

청기사의 에테르 에너지를 머금은 라이플이다.

웨어러블 기어의 제2형태.

저격이야말로 불멸자의 특기였다.

그걸 못하는 불멸자는 없다.

그런데도 정아 누나를 굳이 옆에 뒀다.

“한번 보자.”

그녀의 말에 따라 겨누고 쐈다.

피 한 방울이 탄환 하나다.

응축된 에테르 에너지를 탄환 형태로 만들어 안에 집적.

집적된 탄이 라이플의 강선을 따라 폭발하듯 날아간다.

“다른 건 다 잡았는데 반동은 못 잡았다.”

강푸름이 기어를 설명하며 한 말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반동이 오는 걸 몸으로 받아 낸다.

발 뒤쪽의 받침대가 묵직하게 몸이 밀리는 걸 막아 줬다.

그리고 내 탄이 만들어 낸 광경이 보였다.

휘이익.

혜민이 휘파람을 불었다.

내가 봐도 죽여주긴 했다.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가 심한데? 결국 준네임드 급은 하나도 안 죽었어.”

정아 누나가 말했다.

거, 냉정하긴.

일단 보기에는 좋지 않나.

내 탄은 인베이더 사이를 가로질렀다.

과연 이걸 저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포격이라도 떨어진 듯 일자로 쭉 에테르 에너지에 녹고 터져 버린 인베이더 시신 더미가 생겼다.

내가 한 짓인데, 이게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

“와.”

전면에 선 특수종 무리는 말을 잃었다.

막 저 뒤로 몰려오는 인베이더 무리를 보고 혀를 내두르던 중인데.

어디선가 벼락이 치더니 파란빛이 번쩍였고.

뒤에서 몰려오던 인베이더 무리가 깡그리 사라졌다.

미사일? 그런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럼?

“마법인가?”

“아니, 세최특의 저격팀이다.”

지휘관 중 하나가 뒤에서 말했다.

“……저격 총으로 이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좌측 앞, 내 위치를 바꿀 필요가 없다면 적의 위치를 찾는 게 우선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 쓸데없이 자잘한 놈들 노리지 말고.”

아니, 거, 위험에 빠진 아군부터 안 구하고?

슬쩍 묻자.

“그건 정기남이 한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기남과 저격팀의 총으로도 아이언 쏜즈 따위의 머리는 터트릴 수 있다.

하지만 준네임드 급은 다르지.

“찾고, 당겨. 호흡은 짧게 치고.”

난 그 말대로 했다.

스코프를 돌린다. 목표는 제너럴과 키메라.

찾는 순간 방아쇠를 당긴다.

반동과 함께 탄이 시공간을 쪼갠 듯, 적의 머리통을 부순다.

후앙- 하고 내 뒤로 후폭풍이 일었다.

“죽여주는군.”

이번에는 정아 누나도 감탄을 보탰다.

인류가 준비한 정예 부대보다 상대가 쏟아 낸 준네임드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상대가 개수작을 부렸다.

“섞었어!”

누군가가 외쳤다.

그 말대로다.

인베이더 무리 사이로 준네임드가 몸을 숨긴 채, 덤볐다.

이걸 하나하나 받아치면서 대응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는 거다.

망토를 두른 흡혈귀.

창백한 피부와 날카로운 송곳니, 인간을 닮은 인베이더가 다가와 양손을 휘두르자.

허공에서 불길이 일어 양쪽으로 퍼진다.

스펠이었다.

초능 특수종 둘이 든 총열이 불길 끝에 걸려 녹았다.

후끈한 열기다.

그대로 있으면 불길에 타죽지 않더라도 열기에 몸이 익을 것 같았다.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인베이더의 반응이 더 빨랐다.

망토를 두른 흡혈귀가 재차 손을 앞으로 내민다. 아차 하는 순간, 숯 더미가 되리라.

그 순간이다.

흡혈귀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생겼다.

죽기 일보 직전, 제너럴의 머리통이 사라지고.

하늘에서 내리꽂히던 윙 나이트는 가슴 위가 날아갔다.

그 위로 파지직 하는 잔류 에너지가 남아 방전한다.

막 윙 나이트의 하강 공격을 받아 내던 강슬혜가 피식 웃었다.

“아들 열심히 일하네.”

“성실해. 네 아들.”

“그건 나도 알지.”

“겸양의 말은 없니?”

“가희야, 너도 애 낳아 봐.”

“이 나이에 무슨.”

“변신족 가임기는 길단다.”

“아우, 됐어.”

장가희의 반응이 재밌다.

이미 주일호와 동거까지 하면서 부끄러워하기는.

“그나저나, 이거 좀 쉬운데?”

강슬혜가 제 손을 털며 말했다. 그 손에 묻은 인베이더의 피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당연히 이게 끝은 아니겠지.”

장가희가 답했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순간만큼은 신이 강림해 인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았다.

저 뒤쪽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면 준네임드 인베이더가 한 마리가 죽는다.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시이이이이바아아알! 존나 좋아아아아!”

누군가 외쳤다.

탄성의 외침이었다.

싸우면서 저러는 걸 보면 분명 변신족이리라.

난 집중했다.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멀리서 정아 누나의 목소리가 남는다.

“집중해. 할 수 있으면 더 빨리, 불필요한 곳 노리지 마, 머리만 쪼개.”

집중력을 높이자, 불멸자의 감각이 새로운 눈을 뜬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아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육감과 직감의 영역이 넓어진다. 전장 전체를 둘러본다.

우미호의 특기를 훔쳐 온 기분이었다.

전장 전체를 둘러보는 눈이다.

감각의 눈으로 보자, 숨은 놈들이 보인다.

준네임드라 불리는 특이종.

노리고 쏜다.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는다.

응축, 집적, 발사.

모든 과정을 찰나에 구현.

여전히 과격한 에너지가 총구 끝에서 터지듯 발사되지만.

실제 발사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첫 발은 임팩트의 그것을 흉내 낸 것뿐.

웨어러블 기어는 내 피를 머금은 무기.

원한다면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하다.

청기사의 에테르 에너지를 몽땅 집약하는 것도 가능했으며.

재장전도 필요 없는 라이플이다.

정아 누나의 목소리를 흘리며.

다시금 응축, 집적, 발사.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몇 발째 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쏘고 또 쏜다.

스코프 너머로 아군의 머리통을 쪼개려는 아이언 쏜즈가 보인다.

쏜다.

다음은 날개 달린 말이다. 페가수스와는 생김새가 너무 다르다.

뿔이 달린 코뿔소 머리에 꼬리는 세 갈래였고, 전갈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쏘고 스코프를 돌린다.

감각이 시키는 대로.

모든 걸 쏘고 또 쏜다.

흡혈귀는 고속 재생을 하지만 머리통과 심장이 동시에 날아가면 재생하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그렇게만 해도 남은 이들이 해결할 수 있다.

짧은 상념을 뒤로한 뒤, 다 잊었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뭘 하는지.

상대가 무엇인지.

그저 보이면 쏘고 또 쏘고 또 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신에 힘이 쪽 빠졌다.

“먹어.”

혜민이 옆에서 고농축 칼로리가 담긴 약을 줬다.

그걸 씹어 삼켰다.

“어.”

“볼이 홀쭉해졌어.”

그럴 것이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들 여러 약과 비약을 한 사발씩 빨며 총을 쏴 재끼고 있을 테니.

기남이 날 보더니 입을 열었다.

쟤는 또 왜 저래?

“그만해도 될 것 같아.”

혜민이 말한다.

뭘?

와아아아아아!

혜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밑에서 환호가 터졌다.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해서 밑을 보니.

“세최트으으으으으으윽!”

사람들이 또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유광이이이익! 날 가져라!”

응. 남자 목소리. 안 가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니.

정아 누나가 피식 웃었다.

“죽여줬다.”

그녀가 칭찬을 건넨다.

그래, 뭐가 뭔지 몰라도 내가 잘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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