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그래, 그러자
“나온다.”
네 번째 웨이브다.
인베이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전위에 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눈앞을 까맣게 채우는 침략자 새끼를 죽이는 것뿐.
선두에 선 특수종이 뭉친다.
각 기관과 단체에서는 몇 개로 부대를 나누고 순차적으로 적을 막는 로테이션을 짰다.
별개로 움직이는 건 세최특과 NS 소속 일부, 그리고 각 단체에서 손꼽는 강자 몇 명뿐이었다.
그들을 제외하면 전부 로테이션에 참가했다.
이곳은 전장, 이들이 지키는 건 전선이었다.
여기가 뚫리면 인류의 미래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 탓에 앞을 지키고 선 이들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웠다.
“우오오오오오오!”
변신족 하나가 하울링을 터트렸다.
싸우기 전 투지를 일깨우는 외침이었다.
불멸자 몇이 미간을 찌푸린다.
하지만 그 외 모든 특수종, 하물며 불멸자 중 일부도 그걸 탓하지 않았다.
밀려오는 흡혈귀, 아이언 쏜즈, 솔져, 키메라 무리.
이전 웨이브까지는 장난이라도 되었다는 듯, 까만 물결처럼 홀 너머에서 대기하는 게 보였다.
무지막지했다.
저걸 보고 투지를 올리자는데 뭐라고 할 건 뭔가.
응원의 하울링이었으다.
전위 지휘관 중 하나는 인베이더 무리가 달려들기 직전, 세 번의 대규모 웨이브가 일어난 상황을 곱씹었다.
‘묘해, 너무 묘해.’
첫 번째 웨이브와 두 번째 웨이브는 세최특 때문에 침략자 무리의 진열이 흐트러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인베이더 대군의 위용은 위협적이었다.
턱 바로 밑에 서늘한 칼날을 겨눈 듯했다.
보는 순간 사기가 와르르 무너지는 건 당연했다.
그대로 싸웠다면?
필패까지는 아니더라도 피해가 막심했을 것이다.
그걸 막은 건 세최특이다.
두 번째 웨이브는 첫 번째와는 또 달랐다.
진열을 갖춘 건 동일하나, 눈에 띄게 두드러진 놈들이 보였다.
레벨이 다른 소수의 인베이더였다.
놈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인류 쪽에 있던 소수 정예를 노렸다.
물론 그 또한 시작도 전에 세최특이 무참하게 발랐다.
지휘관도 직접 봤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봤을 터였다.
윙 나이트 셋이 허공에서 반으로 쪼개졌고.
제너럴이라 불리는 초능을 부리는 인베이더 다섯은 머리통에 임팩트를 한 발씩 맞았다.
‘끔찍한 무기지.’
에너지를 축적해 방사 형태 또는 밀집 형태로 쏘는 출력기라니.
세최특의 무기는 도저히 샷 건이라 부를 레벨이 아니었다.
그게 끝이던가, 대형 괴수로 보이는 키메라도 두 마리는 아예 몸으로 돌진해서 뚫어 버렸다.
양팔에 손톱을 앞세워 그어 버리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장면이었다.
세최특만 활약한 건 아니다.
각 단체에서 숨겨 둔 칼도 제 일을 했고.
NS의 간부도 움직였다.
그중 피닉스 팀장은 어땠는가.
초능 특수종도 아니면서 공중에 있는 발판을 밟고 뛰더니, 채찍 같은 걸 휘둘러 인베이더의 목을 서슴없이 잘라 냈다.
광익의 어머니란 사람도 대단했다.
변신족이란 으레 달려들어 찢어발기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필요한 만큼만 움직여 타격을 준다.
거창한 움직임은 없지만, 괴력이 여실한 주먹질이었다.
눈앞에 달려들던 솔져의 몸통이 바스러지듯 구겨져 날아갔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괜찮아요?”
그녀의 도움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대단했지.’
유부녀에, 세최특의 모친이란 걸 알면서도 반할 뻔했다.
그 듬직한 등이라니.
본래 이상형은 작고 가녀린 여자였지만, 한순간에 머슬걸로 변했다.
어쨌든 세최특과 일부 특수종의 활약으로 인베이더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거듭 실패만 했다.’
근데 과연 그게 실패일까.
모르지.
이론 하나가 자연스레 머릿속을 스친다.
‘네 시간 간격, 매번 나올 때마다 전략 수정.’
그럼 이번에도 다를 것이다.
멀리서 전장의 형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전장을 비울 순 없다.
자신은 말단 전투 지휘관이다.
자기가 이렇게 머리를 굴린다고 변하는 게 있을까.
“모르겠다. 나도.”
“뭐가?”
바로 옆에 붙은 동기가 묻는다.
불멸특수대 동기다.
“그냥, 참 개 같다고.”
“시벌, 그걸 말이라고.”
둘은 손이 엇갈리도록 손목끼리 툭 치곤 전면을 향해 몸을 돌렸다.
싸울 시간이었다. 물론 그전에 작전대로 한 방 먹일 것이니.
당장은 구경할 시간이었다.
인베이더 출현 이후, 어지간한 도심의 고층 빌딩 옥상에는 대규모 미사일 장비를 설비했다.
지대지 미사일부터, 지대공 미사일까지.
전략 병기 수준의 대규모 미사일 다발이 빌딩 옥상에 있다는 거였다.
당연하게도 그중 일부는 이번 전투에서 활용해야 했다.
가령, 첫 번째 웨이브와 두 번째 웨이브에 세최특이 앞에 있는 바람에 하지 못했던 전략도 가능했다.
“카운트해도 되나?”
유일부대장이 말한다.
공식적으로 이곳, 고층 빌딩에 비치된 전략 병기는 유일부대장이 일부 권한을 갖는다.
나머지 일부는 당연하게도 불멸특수대가 일부.
또 그중 일부는 엑스큐라시도 가졌다.
방위 미사일을 직접 만들었다는 명목이다.
그렇게 따지면 서울 시내와 대도심에 있는 미사일 중 엑스큐라시의 것이 아닌 게 없을 테지만.
언제나 대외적인 명분은 중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건 정부였다.
올드 포스.
그 모든 권한을 지금은 유일부대장에게 넘긴 상태였다.
누가 뭐라 해도 1세대 영웅 중 하나 아닌가.
그라면 제대로 쓸 수 있었다.
사령관의 물음에 부관이 답했다.
“시작하지, 셋.”
둘, 하나.
인베이더 무리가 움직이고, 아군은 제 자리에서 받아칠 준비를 한다.
후폭풍은 미치겠지만, 큰 부상은 없을 것이다.
미사일의 목표는 인베이더가 뛰쳐나오는 경계선 바로 너머다.
홀이 미사일의 폭발과 물리적인 충격을 다 잡아먹는다면.
홀을 넘어선 순간 때리면 될 일 아닌가.
유일부대장은 그렇게 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침략자 무리가 경계선을 넘는 순간, 서울 시내에 있는 고층 빌딩 위에서 미사일 폭죽이 솟았다.
밤의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로켓 수십 대가 동시에 쏘아지는 것 같았다.
미사일은 곧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허공이 빨간 불빛으로 수놓아지자마자.
인베이더 무리 선두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진형이 좌우로 갈리며 몇 마리의 인베이더가 튀어나왔다.
망토를 두르고 그 안에 옷까지 갖춘 흡혈 인베이더 무리였다.
‘역시나.’
숲을 가까이에서 보면 나무만 보일 뿐이다.
멀리서 봐야 숲이지, 가까이서 보면 그냥 나무만 빽빽한 곳이다.
하지만 경험이 있다면 그 빽빽한 나무 사이에서도 이곳이 숲이란 걸 알 수 있지 않나.
두 번의 인사를 통해 난 의심했다.
여기가 숲은 아닐까 하는 의심.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느라 제대로 못 보긴 했지만, 불멸자의 직감이 움직였다.
‘이 새끼들 봐라?’
내가 인사하듯 인베이더 새끼들도 인사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이다.
두 번의 웨이브는 시험 같았다.
이것도 막아 보고, 저것도 막아 봐라.
현재 인류가 가진 전력을 시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는 진형으로 사기를 떨어뜨리고.
두 번째는 소수 특수종을 노렸다.
물론 두 번 다 머리통을 빠개 줬다.
그럼 세 번째는?
멀리서 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상대 머리통을 터트릴 수 있다면 그게 맞았고.
여기에 이유를 더 추가하자면.
“미사일 좀 쏘고 싶단다. 아들.”
아버지를 필두로 한 지휘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하겠다.
서울 도심 빌딩 옥상에 비치해 둔 미사일을 쏠 타이밍이란다.
미사일이 별 대신에 서울 밤하늘을 수놓았다.
분사된 불꽃이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장관이었다.
“프러포즈만 받으면 딱인데.”
이런 순간에 그런 말이 하고 싶냐?
난 스코프를 조정할 것도 없어서 자리를 잡은 채 엎드려 있었다.
뭐, 저게 미사일이고 목표가 인베이더 학살이 아니라면.
봐 줄 만한 광경은 맞았다.
“……그렇다는데?”
무심히 혜민이 말을 씹고 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말에 반응했다.
팬더 형?
저 양반은 왜 저래.
뒤를 슬쩍 보니, 바로 옆에 정아 누나가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참.”
슈슈슈슝.
지금 미사일이 상승 중이다.
십 초 내외로 지상에 폭격을 가할 것이다.
“나랑 살자.”
아니, 그런데 정아 누나 남자 친구가 팬더 형이었습니까?
“나 애 못 낳아. 알잖아. 몸이 이미…….”
“그만, 그 얘긴 지겨워. 딩크족으로 평생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면 되지.”
허, 이 타이밍에 사랑놀음? 이게 맞아?
“멋있어.”
혜민이 중얼거리고.
난 핀잔을 내뱉었다.
“지금 꼭 그래야 하는 겁니까?”
“지금 아니면 언제 하냐.”
인류 멸망이니 뭐니 떠들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좋아.”
정아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답한 순간.
꽈과과과과과과과광!
앞쪽에서 폭발과 함께 폭음이 귀를 울렸다.
난 반사적으로 감각을 조절해 청각을 보호했다.
그냥 있어도 변신족의 튼튼한 고막이 망가지진 않겠지만.
거슬리는 걸 굳이 참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 눈에는.
혜민이 간단한 주문을 걸어 귀를 막는 게 보였고.
팬더 형이 제 귀는 놔둔 채 두 손으로 정아 누나의 고막을 보호하는 게 보였다.
이런 순간에 이런 말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눈꼴시렷다.
후폭풍이 우리 쪽을 덮쳤다. 후아아앙- 하고 바람이 밀어닥쳤다.
이 정도면 폭심지에 가까운 쪽은 더한 충격을 받았을 거지만.
이걸 대비하고 전면에 사이오닉과 스펠 기어로 방어막 따위를 무진장 세웠다고 알고 있다.
폭격의 여파로 게이트 바로 밑 건물 몇 개가 무너졌다.
놈들이 만든 검은 계단도 쩍 하고 금이 갔다.
회색 먼지와 같은 연기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려 전부 다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후아아아악.
곧 회색 연기가 구름 마냥 중앙에 뭉치더니 위로 솟았다.
저게 먹구름이 될 수는 없지만, 무슨 연유인지 정말 구름처럼 머리 위를 덮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눅눅함이 공기 중에 자리 잡았다.
“미사일이 먹히면 이제까지 인베이더한테 시달리지도 않았지.”
이전 버전의 다양한 인베이더 중에는 미사일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놈도 있었고.
무식하게 몸뚱이로 버티는 놈도 있었다.
그럼 이번에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고효율 인베이더, 소수가 막아 내는 거다.
우우웅.
허공에 갤럭시 필드가 넓게 펼쳐져, 폭발의 여파를 너끈히 막아 냈다.
“주문 쓰는 인베이더라니, 끔찍하네.”
팬더 형이 중얼거렸다.
“저걸 보면서 프러포즈한 형이 더 끔찍하진 않고요?”
“……오빠는 성격이 좀 많이 삐뚤어진 것 같아.”
혜민이 팬더 형을 옹호하듯 지원 사격을 했다.
근데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정말 너무 치욕적이다. 자식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혜민한테 성격으로 한 소리를 듣다니.
“일이나 합시다.”
그 말에 정아 누나가 내 오른쪽에 바짝 붙어 앉았다.
팬더 형은 다시 이곳에 모인 저격수를 돌보러 갔고.
왼쪽에는 혜민이가 앉았다.
“이거 잘 끝나면 이제 나랑 같이 살자.”
팬더 형 말이 인상적이었는지, 혜민이 그런 말을 해 왔다.
얘는 언제쯤 애가 멀쩡해지려나.
“말투 고치면.”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 그 말에 혜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칠게. 다소곳해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육두문자 뱉는 건 내가 들어도 듣기 싫으니까.”
음? 애가 안 본 사이에 조금 변한 것 같은데?
“무모하게 굴지도 말고.”
기회다 싶어서 얘기하니, 혜민이 피식 웃는다.
“그거 알아?”
“스펠 기어를 다루는 재능 덕분에 내 뇌가 고장 났었다는 거.”
“그랬다고 하더라고.”
“마리아가.”
“그래서 고쳤고?”
“거의.”
얘기하는 사이, 자잘하게 남은 연기도 사라지고 미사일 대신 아군이 뛰어드는 게 보였다.
갤럭시 필드가 걷힌다.
기본적으로 주문으로 만든 필드 계열 방어막은 냉병기에 쉽게 깨지는 편이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지만.
하지만 미사일이나 폭발에는 더 없이 강하지.
그러므로 이제 미사일은 무용하다.
애초에 무용한 물건이다.
나도 알고 지휘부도 아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가 나쁜 건 아니다.
적어도 미사일로 적의 돌격 속도는 늦추지 않았나.
고작이라고 말할 부분이긴 하지만.
나쁜 건 아니다.
인베이더 무리가 물결이 되어 달려들고.
인류는 댐이 되어 놈들을 맞이했다.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비롯한 저격수의 시간이다.
갤럭시 필드 등, 모든 방어 주문은 근접전에서 펼칠 틈이 없으니.
인베이더 무리와 보병 전투가 이뤄지는 순간.
빈틈이 널린 거다.
“그래, 그러자.”
물결과 댐을 보며 내가 답했다.
혜민이 못 알아들었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시작.”
난 무시하고 말했다.
무리와 무리가 만나기 직전.
내가 노린 틈이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지금은 시답잖은 사랑놀음 대신 총을 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