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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92화 (392/488)

392. 흥칫흥칫

전투가 길어질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뭐긴 뭐겠나.

보급이다.

인간은 먹고 자고 싸야 움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아무리 잘 싸워도 부상자는 나오기 마련이니, 의료 지원도 필수다.

하물며 인베이더가 저렇게 득실거리는데.

처음 내 인사 이후, 놈들은 4시간 터울로 진군을 시도했다.

그게 총 세 번.

난 두 번째까지 인사를 나갔고.

세 번째는 안 나갔다.

아군은 홀 앞에서 놈들을 막았는데, 꽤 잘 막더라고.

“아예 서울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낫겠네.”

“이대로 홀 위에서 격추하듯 없애면 그게 베스트 시나리오가 되겠군.”

지휘관이 모인 회의가 있었고.

난 적당히 얼굴만 비췄다가 빠졌다.

일단 화끈한 인사는 끝났으니까.

좀 쉬자고.

신나서 몸을 막 굴렸더니, 배가 엄청 고팠다.

보급로와 보급선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게이트가 열린 곳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고.

이곳은 아스팔트와 인프라가 가득한 곳이다.

애초에 먹고 자고 쉬는 걸 걱정할 게 없었다.

“고생했다.”

NS의 전투 부대가 모인 곳으로 가니, 어머니가 보였다.

“인사만 했는데요, 뭐.”

“인사 두 번 하면 뒈지겠군. 아니, 두 번째는 살았으니까 세 번 하면 뒈지려나? 세 번째 인사나 나가라.”

기남이다. 이 새끼는 또 뭐가 이렇게 불만인지.

볼에 심통이 가득하다.

다른 사람은 못 알아보겠지만, 난 한눈에 알아보겠다.

“그만해라.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다.”

도안결이 옆에서 말렸다.

뭔데.

“같이 싸우고 싶은데 너 혼자 나가서 삐짐.”

어느새 다가온 요한 형이 적절한 해설을 해 줬다.

“누가 삐져?”

기남이 살벌한 기세를 흘리자, 요한 형이 내 뒤로 숨었다.

“다음에 같이 가면 된다.”

그렇게 말하는 도안결의 눈이 파랗게 빛나는 것 같았다.

눈만 변신하는 것도 가능한 건가.

눈에서 빛이 나오네, 저 친구.

근데 기남아, 여기 우리 어머니도 계시는데 그렇게 폭언을 해도 되겠냐?

슬쩍 어머니를 보자 흐뭇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우리 광익이는 참 재밌는 친구가 많아.”

이게 재밌나요? 전 아니라고 보는데.

근데 세 번째 인사는 안 나갈 건데.

계획이 그렇다.

싸워 보니까 알겠는데.

네임드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조금 더 유용한 방법으로 싸워야겠더라고.

앞에서 두 번이나 날뛰었더니 흥분도 가라앉았고.

내 체력이 무한정인 건 아니다.

물론 기남이처럼 허약한 애들이 보기에는 내 체력이 괴물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뭐, 내가 죽인 인베이더 숫자가 세 자리가 넘었다고 하던데.

임팩트를 연사해 놓고 이 정도니까.

지금 나오는 인베이더가 얼마나 튼튼하고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간다 이거지.

“정기남이, 나랑 함께하고 싶나?”

그럼 얘도 필요하긴 하니까.

“누가? 내가? 하.”

입꼬리를 한껏 틀어 올려 비웃는 표정을 짓는데, 이것도 잘생겼다.

그래서 난 너에게 생물학적으로 거리감을 느낀다.

이성을 상대로 겨루면 반드시 내가 지는 쪽에 설 것 같은 외모 아닌가.

“싫으면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돕지.”

기남이 마지못해 답했다.

이 새끼는 가끔 귀여운 짓을 한다.

엄청 붙어 있고 싶으면서 저렇게 답을 하다니.

솔직하지 못한 자식.

그래, 너 알아서 해라.

지금은 배가 무척 고프단다.

“밥 줘, 미호야.”

“우리 미호가 네 식모냐?”

“보급을 담당했지, 내 식모는 아니고.”

중간에 귀태 형의 태클을 가볍게 받아넘기고.

끼니를 챙겨 먹었다.

든든하게 먹었다. 배가 터지도록.

메뉴는 돼지, 소, 닭을 섞었다.

닭볶음탕에 항정살과 목살을 굽고.

소고기를 잔뜩 넣고 끓인 미역국을 대접째로 먹었다.

그리고 잤다.

숙소는 서울 시내에 널린 게 호텔이었기에 5성급 호텔 하나를 골라서 들어갔다.

딱 3시간 반.

놈들이 다시 진입하기 전에 일어났다.

눈곱을 대강 떼고 마른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가니, 막 해가 진 참이었다.

낮 동안 달궈진 건물에서 복사열이 후끈후끈하게 올라왔다.

여기저기서 위이잉 하고 에어컨 실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적으로 높은 고지에 있는 호텔이다 보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민간인 대피시킨다고 난리였던 도시가 조용했다.

곳곳에서 갖가지 소음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건 작디작은 소리일 뿐이다.

본래 서울이란 도시와 비교하자면 지금은 숨죽이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서울이 이렇게 조용한 도시일 수도 있었나.

어차피 좁다란 땅에 사람을 모아 둔 거라 피난길이 괴로울 일은 없었다.

이런 걸 대비해서 곳곳에 대피소도 만들어 놨다.

이쪽으로 한 해에 들어가는 예산이 얼만데.

이런 걸 대충하겠나.

자기는 도시에 남아야 한다고 난리 피우는 사람도 없다.

인베이더 앞에서 인류는 대동단결이니까.

정돈된 도시 위로 내려앉은 스카이 게이트는 달빛조차 막았다.

그 예언가가 보여 준 거랑 비슷한 그런 모습이다.

아무리 잘 막았다고 하더라도 도시 일부가 부서지는 건 막을 수 없었으니까.

게이트 입구는 지나치게 넓었고.

곳곳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무너진 빌딩이나 전복되고 부서진 차량 같은 게 바닥에 굴러다녔다.

“서방.”

그리 서울 시내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내 입으로 내 마음대로 말도 못 해?”

응, 못 해. 상대한테 피해를 주는 거면 생각을 하고 말해야지, 이 자식아.

혜민이였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더라?

1년 조금 안 됐나?

그게 마리아의 핑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리아는 중간에 수련에 방해된다고 휴가 따윈 없다고 말했었다.

뭐, 할아버지를 통해서 계속 연락을 받기도 했고.

홀로그램으로 연락도 간간이 하긴 했으니까.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혜민이가 톡톡 달려오더니, 품에 폭 하고 안겼다.

처음에는 피하려고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와 씨, 너무 반가워.”

말투는 좀 어떻게 고쳐 봐라. 나중에 얘가 애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 남편이랑 애한테는 너무 끔찍한 거 아닌가 싶다.

애가 엄마의 말투를 따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하여간 오랜만이긴 해서 머리나 쓰다듬어 줬다.

“우.”

혜민이 내 품에서 얼굴을 비볐다.

얘 봐라, 놔뒀더니 아주 제대로 즐기네.

뭐, 인간의 온기가 나도 포근하게 만들었으니.

썩 나쁘진 않았다.

어쨌든 타이밍 참 기가 막히네.

마침 잘 왔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니.

“많이 배워 왔냐?”

안고 물으니.

“이제 마리아는 덤비면 반으로 접어 버릴 수 있지.”

“앞으로 접으면 그냥 유연성이 뛰어난 거 아니냐?”

“뒤로도 접어 줄 수 있지. 물론.”

그래, 뒤로 접으면 그건 좀 아프겠지.

뒤통수와 발뒤꿈치가 만나는 장면을 상상한 나는 피식 웃은 다음 혜민의 이마를 뗐다.

미안한데, 온기 나누기는 여기까지다.

“일해야 한다.”

“두 번이나 나갔다며? 또?”

들을 건 또 다 들었네.

“아, 이번에는 뒤에서 할 거라 구경하러 와. 배운 주문 있으면 자랑도 좀 하고.”

“좋아. 그럼 나도 준비 좀 하고, 이제 막 와서.”

혜민을 보내고 난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자기 전에 미리 세팅시켜 둔 곳이다.

“왔냐?”

팬더 형이다.

근처에 있는 빌딩 중, 한 층을 통째로 비우고 벽과 창문을 아예 다 뜯어내 버렸다.

집기나 기구도 당연히 치웠다.

덕분에 덩그러니 기둥과 바닥만 존재하는 저격 탑이 됐다.

이렇게 하면 이게 바로 훌륭한 저격 포인트가 되니.

시야 확보도 필요 없었다.

딱 정면이었으니까.

대충 가장 가까운 인베이더 출입로까지 700m쯤 되려나.

이 정도면 된다.

일렬로 쫙 늘어선 발 받침대와 총기 받침대.

까맣게 칠한 받침대가 일렬로 쫙 깔린 걸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전부 새것이다.

새 기어 특유의 향이 물씬 풍겼다.

금속과 어우러진 새것의 향이다.

변신족의 후각이 절로 반응했다.

크, 이거지.

“이 미친 새끼, 같이 싸우자며?”

팬더 형이 데리고 온, 내 명령을 기다리던 기남이 또 불퉁스럽게 나온다.

“그래, 같이.”

“이건, 좀 다르지 않냐?”

다르지.

그런데 꼭 전면에 나서서 싸워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난 효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NS에서 개발한 레일건은 압도적인 저격 병기가 될 수 있다.

거기에 정기남과 불멸자 특수부대.

나도 있고.

광학병기가 아닌 건 아쉽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광학병기는 최고의 살상 무기지만.

비거리가 짧다.

비거리가 늘어날수록 손실된 에너지가 커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제대로 쓸 수 없다.

레이저 저격총이 없는 이유다.

뭐, 다른 방식으로 쓰면 되지만, 그건 또 돈이 엄청나게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어쨌든 레일 저격총은 현존하는 최고의 원거리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다.

난 다른 무기를 쓰겠지만, 그렇다는 거다.

“이건 다르잖아.”

“다르면 어때서? 지금 여기 네가 필요하다. 일하자고.”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내가 필요해?”

기남이 혼자 중얼거리더니 흥칫흥칫거리더니 자리를 잡았다.

쟤 요새 힙합 하나? 아니 국악인가?

흥칫흥칫은 대체 어떤 가락이냐?

그걸 보며 난 옆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시락은?”

“완벽하지.”

“약도?”

“말해 뭐 하겠냐.”

팬더 형이 주변 부대와 조율하며 잡아 준 자리다.

자원이야 전부 NS에서 가져왔지만.

내 회사는 부자다.

엄청 부자.

그러니까 아무 문제 없다.

하물며 저 멀리 초능국의 왕자께서도 구호품을 보낸다고 난리라던가.

그 나라에는 스카이 게이트가 안 열려서 다행이다.

열렸으면 얼마나 곤란했겠나.

준비는 하는 사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고 돌아오는 데 김근육이 길을 막았다.

그러더니 팔을 활짝 벌린다.

“전 안기는 거 말고 안아 주는 것도 가능해요.”

……어째 이 공주님도 점점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 같단 말이지.

“봤구나.”

아마도 혜민이 안아 주는 걸 봐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안기는 건, 변신 풀면 제가 더 아담함.”

“일합시다. 우리가 놀면 죽는 사람이 늘어, 알잖아?”

“흥칫.”

정기남한테 이상한 게 물들었다.

김근육도 흥칫하더니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쟤는 방어 부대 쪽이니,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니 여유가 생겨서 저러는 거겠지.

근데 또 그건 언제 봤대.

이거 참.

혜민이가 마음대로 안긴 건데 말이야.

“인기남, 난 일부다처제에 동의해.”

다른 사람도 내 앞길을 막았다.

이번에는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이다.

비스듬히 등을 기댄 여자다.

이쪽도 방어 부대에 속해 있다.

치안 부대장 이지혜.

평소에는 NS 초능 부대원 훈련 담당.

작전 시에는 시내 인베이더 처리.

그리고 지금은 방어 부대 휘하 일부 구역 팀장.

게이트 사이사이 뛰쳐나오는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게 주목적인 방위대가 필요했기에 각 단체에서도 일부 팀원을 돌렸고.

나도 그랬다.

그 중추가 이지혜 팀장이었다.

“봤어요?”

“눈이 있으니까.”

“하필이면 딱 그 순간에 거기 있었다고?”

“대표가 깨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내가 갔다는 생각은 안 들고?”

아, 나 만나러 오는 길이었으면 가능한 일이지.

김근육도 마찬가지겠고.

둘은 거기서 마주쳤을 거고.

혜민이 안기는 걸 보고 물러난 거려나.

“전 일부일처제에 동의합니다.”

“첩도 괜찮아. 내가 나이가 좀 있잖아.”

“장난 좀 그만 쳐요. 일합시다. 일.”

뒤에서 이지혜 팀장 누나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난 얼른 다시 원래 있던 자리도 돌아왔다.

그러자 전위대에 속했기에 앞쪽에 있어야 할 마리가 기남이 옆에 선 게 보였다.

“다음에는 나도 거기에 있을 거다.”

“괜찮아요. 마리는 지금도 좋아요.”

어이, 여기가 어디라고 연애질이냐?

하물며 오라비가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뭐라고 하진 못했다.

둘이 손을 잡은 것도 아니고 말만 나눴다.

그걸 보며 부러워하는 대원 몇이 보였다.

전부 여자였다.

허, 참 말세다. 말세야.

아니, 진짜 말세긴 하구나.

게이트에서 인베이더 튀어나오는 거 보니까 말세는 맞다.

“마리는 가야겠어요. 에, 오빠도 힘내요.”

마지막 인사는 내 쪽을 향해서 했다.

난 곁가지냐? 그렇게 툭 인사만 하면 그만인 거냐?

딸자식 키워 봤자 다 헛거라더니.

내가 쟤를 구하면서 했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어머니한테 쟤를 맡기려고 했던 고생이 물거품이 되었다.

아, 인어는 육지로 나오면 거품이 되나니.

여동생을 멀쩡하게 만들었더니, 딴 남자 품으로 거품처럼 사라지는구나.

“또라이 같은 생각 그만해라.”

“얼굴만 봐도 알겠다.”

정기남, 이 날카로운 새끼.

그래, 잡생각은 잡생각이었다.

“전원 대기, 준비 끝났습니다.”

기남 바로 밑의 대원이 말했다.

레일 저격총에 특수 제작된 스코프.

발 받침대의 용도는 반동 제어용.

그 외에 중요한 준비물이 하나 더 있다.

“나옵니다.”

“전원 복용.”

대원의 말에 기남이 말했다.

그 말에 다들 약을 먹었다.

불멸자의 삼대 무기 중 하나인 약.

그걸 거듭 개량해서 만든 비약이다.

반은 정아 누나의 몸이 만든 거고.

나머지 반은 박병준 박사의 공이다.

그리고 비약 탄생 설화의 주인공이 느지막이 나타나 내 옆으로 붙는다.

“또 널 가르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단순히 맞추는 것 말고 배울 게 더 있지 않나 싶어서.”

내가 아는 최고의 저격수는 김정아다.

“가르쳐요. 속성으로.”

이번 웨이브에서 난, 저격수가 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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