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1일 차
꽃밭.
NS가 찾은 이세계다.
광익을 포함한 모두는 그곳에서 독특한 경험을 했다.
“이거 뭐야?”
처음 당한 건 정직이었다.
한창 싸우던 중 자신을 향해서 손을 뻗는 인베이더가 있었으니까.
챔피언이란 인베이더다.
이 새끼는 본래 근접전을 하는 놈인데 갑자기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후.
꿍 하고 얼굴에 타격이 있었다. 대단한 충격은 아니다.
‘안 보이는 펀치?’
이게 염력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뿐.
초능을 쓰는 인베이더.
NS는 그걸 먼저 경험했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뭐, 특이종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정확히는 특이종이 좀 많이 나온 거로 생각했다.
“양산형 특이종?”
이런 결론으로 끝난 일이니까.
그래도 훈련은 했다.
이런 상황이든, 저런 상황이든 모두 대비하는 게 훈련의 목적이니까.
“뒈지고 나서 그때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하면 늦어. 그러니까 뛰어라.”
대표의 취지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 취지에 맞춰 직접 움직이는 쪽이 되면 말이 되지 않는다.
정직은 인베이더가 아니라 훈련 때문에 지옥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렇기에 언노운 인베이더를 보고서도 상대적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과격한 훈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인베이더가 뭐가 튀어나오든 버틸 만했다.
다만, 버티는 것과 저렇게 나서는 건 좀 다른 얘기이긴 했다.
‘그래도 저건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모두의 선두.
가장 앞에 선 특수종의 등이 보였다.
그는 미친 인간이었다.
정직 또한 그의 별명을 부르짖었다.
“세최또오오오오오옷!”
저 인간은 정말 이 세계 최고의 또라이였다.
두근.
심장이 뛴다.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 손발이 절로 움직였다.
아, 이러면 안 되지.
너무 흥분해서는 곤란하다.
깊게 심호흡을 하는데 뒤에서 정아 누나가 날 불렀다.
“유광익?”
“안 되겠다. 저 인사 좀 하고 올게요.”
“인사?”
그 말만 하고 난 빌딩에서 뛰어내렸다.
무식하게 다이빙한 건 아니고, 나이프를 꺼내 벽에 꽂고 부드럽게 벽을 그으며 내려갔다.
물론 누가 본다면 벽을 가르면서 내려가는 거니까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겠지만.
변신족은 본래 이런 짓도 가능하다.
양손에 나이프를 들고 빌딩을 타고 내려오는 기술로, 나이프 레펠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난 나이프 한 자루로만 레펠했다.
칼날로 적당히 벽을 찍으며 내려오는 속도를 조절하는 거다.
땅에 내려와서도 그리 서두르진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서 주둔한 부대를 지나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 세최특?”
중간에 날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길래, 여유를 부리며 인사도 해 줬다.
“세최특 눈깔이 왜 저래?”
“어릴 때 딱 한 번 저런 눈빛을 본 적 있는데.”
“동네에 미친개가 딱 저랬지.”
“미친 새끼, 지금 누구랑 개를 비교하는 거냐?”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내 눈깔이 어때서?
그중에 하나는 내 팬으로 보였다.
버럭 화를 내는 걸 보니.
“호랑잇과니까 미친 고양이쯤으로 해야지.”
내 팬으로 추정되는 놈의 마지막 말을 듣고 흘렸다.
마음껏 떠들어라.
난 지금 이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단다.
두근, 심장은 뛰고 피가 전신을 빠르게 휘돈다.
난 전방 부대를 가로지르며 저기 앞에 열린 홀을 바라봤다.
균열이 깨지며 홀이 열린다.
내 예민한 감각은 이미 열리는 홀 너머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꼈다.
오감이 관여한 건 아니지만, 육감이 반응했다.
저 홀 안에는 정말 무지막지한 놈이 있을 거라는 거.
사실 육감이 아니더라도 하늘이 쪼개지며 열리는 홀이다.
그 규모는 역대 최고고.
당연히 무지막지한 인베이더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쿵, 쿵, 쿵, 쿵.
비트도 없는데 심장이 비트에 맞춘 것처럼 뛴다.
홀이 열린다. 그걸 보면서 난 뛰쳐나가고 싶은 걸 참았다.
난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아직은 아니다.
균열이 쪼개지고 홀이 완전히 열렸다.
음, 좋아.
많다. 아주 많았다. 인베이더가.
그것도 이번에 새로 출고된 놈들로 가득했다.
앞을 막은 사람을 헤치며 나아간다.
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말 거는 사람을 대충 물린 뒤, 쿵 하고 뛰는 심장에 맞춰 발목을 비틀며 땅을 찬다.
엄지발가락부터 시작해 땅을 누르고 발목의 탄력을 위로 전달, 반쯤 굽혔던 무릎을 펴자 허벅지 근육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변신도 안 했는데 몸이 소리로 만든 막을 뚫고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소리가 뒤로 밀리고 압력이 폐를 누른다. 그걸 뱃속에 숨을 잔뜩 밀어 넣어 복압으로 밀어낸다.
공기를 찢고 바닥을 부수며 몸을 날린다.
몇 번의 뜀박질 끝, 홀 안에서부터 나오는 놈들을 맞이했다.
내가 선 곳은 경계였다.
열린 홀과 이쪽의 경계.
그 경계선에 선 채로.
“인사하러 왔다아아!”
시원하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먼저 보인 건, 가시 달린 갑옷 인베이더였다.
아이언 쏜즈, 가시 갑옷.
아이언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전신이 탁한 은회색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쇳덩이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쇳덩이보다 더 단단한 가시지만.
분석팀이 말하길.
아이언 쏜즈는 마치 챔피언과 하트리스를 합쳐 둔 놈이라고 했던가?
전신에 가시가 돋은 격하게 잘 싸우는 특수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고 했는데.
압도적 속도와 힘이 있다면-
상대가 무술의 고수라고 해도 상관없다.
공기를 찢는다. 한계 속도를 단숨에 깬다. 인간이 정해 둔 규격은 무시한다.
왼손에 들린 건 임팩트.
몽둥이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시 달린 머저리가 손을 허우적대는 모습이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난 그 손길을 무시한 채, 임팩트로 놈의 몸통을 때렸다.
놈이 느려진 만큼 내 손도 느리게 보였다.
임팩트의 외장이 가시를 부순다.
드득, 드득, 드드드득.
하나둘, 돌기처럼 나온 것을 깨며 나아간다.
이후, 임팩트와 놈의 몸통이 맞닿는 순간,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꽈-앙! 펑!
물리적인 압력을 이겨 내지 못한 아이언 쏜즈의 몸이 터졌다.
우에서 좌로.
임팩트가 휘두른 방향에 맞춰 놈의 피가 옆으로 분사됐다.
왼쪽으로 보낸 임팩트를 당긴다.
긴 실선만 남긴 채, 임팩트가 반대쪽 놈의 머리통을 때렸다.
어김없이 터진다.
이후,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반쯤 회전하자, 내가 있던 자리를 가시 돋친 발로 걷어차는 놈이 보였다.
도는 김에 마저 돌아서 팔꿈치로 놈의 머리통을 때렸다.
빡! 우두두둑!
빗맞으며 머리통이 터지진 않았다.
상관없었다.
대신 목이 부러졌으니까.
목 피부가 쭉 늘어나며 놈의 머리가 대롱대롱 왼쪽 어깨 밑으로 늘어졌다.
그때, 밑에서 위로 아이언 쏜즈 한 마리가 솟구치며 양손을 모아 찔렀다.
그대로 있으면 항문 말고 새로운 구멍이 생길 판이었다.
난 발바닥으로 그걸 막았다.
부츠가 적절하게 삐죽한 송곳으로 변한 놈의 팔을 막았다.
자식아, 이게 바로 아다만티움제 압축 경화 부츠다.
그걸 발판 삼아, 오른발등으로 놈의 머리를 찬다.
팔꿈치로는 안 돼도 발로는 머리통을 터트릴 수 있다.
강각의 발차기다.
그대로 몸을 회전하며 임팩트를 쌩하니 돌렸다.
바보가 아닌지 놈들이 뒤로 물러나며 원형의 공간을 만든다.
순간적인 판단? 아니다.
그 정도로 똑똑해 보이지 않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뭔가가 내 몸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무형의 압력, 수차례 당해봐서 이제는 익숙해진 염력이다.
수준은? 그래도 꽤 괜찮다.
대충 협회에서도 중간 이상급은 되겠는걸?
오감이 확장된다. 순식간에 사방에 감각의 그물을 편다.
치달린 감각의 끝, 염력을 부린 놈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임팩트를 휘두르며 거리를 훌쩍 좁힌다.
중간에 가로막는 놈은 그대로 머리통을 부수고 다가가자, 놈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제너럴, 대갈통에 달린 눈이 하나다.
대머리에 조형된 인간처럼 보였다.
겉모습은 비슷하나 마주하면 누가 봐도 인간임이 아닌 걸 알 수 있을 만큼 위화감이 드는 존재.
물러나며 중간을 아이언 쏜즈가 채운다.
어딜.
겨누고 쏜다.
임팩트에 응축된 에너지가 방사형으로 퍼지며 내 앞쪽을 쓸었다.
도망가던 제너럴의 몸 반쪽이 임팩트 충격파에 걸레가 됐다.
달려가 머리를 걷어찼다.
타이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터졌다.
한참 그렇게 때리고 충전된 임팩트를 난사하며 싸우다 보니.
“크아아아앙!”
어느새 바로 옆 키메라 부대 근처까지 왔다.
기괴하게 생긴 생물이 덤빈다.
임팩트에 충격에도 머리통이 한 번에 터지지 않는다.
단단했다.
변신족의 강체와 같았다. 전신에 솟은 비늘이 촤르륵하며 푸른 빛을 내비쳤다.
비늘 자랑하는 것 같길래, 자세히 보려고 단숨에 거리를 바짝 좁혔다.
그러자 키메라의 가슴에서 나온 뱀 대가리가 날 물려고 덤볐다.
가슴에 털 대신 뱀이 자라는 놈이다.
임팩트는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허리춤을 치고 긋는다.
허리 한쪽에 걸린 나이프가 허공에 반월의 궤적을 그렸다.
쓰커커커컥!
꽤 단단한 비늘을 가진 뱀의 목이 거친 단면을 보이며 잘렸다.
응, 이거 단분자 커터.
아다만티움 덩어리에 칼집 제대로 내는 그런 나이프.
잘린 뱀의 목에서 피가 터져 흘렸다.
그걸 보며 난 놈의 비늘에 칼을 꽂았다.
콰드득!
비늘이 어찌나 단단한지 단숨에 안 잘린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힘이지.
있는 힘껏 나이프를 당겼다.
콰드드드드드드득!
갈랐다.
비늘과 동시에, 안에 든 살도.
배가 반쪽으로 쪼개져 안에서 내장 비슷한 것과 보라색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난 죽인 키메라의 머리를 발판삼아 차고 공중제비를 돌고 내려섰다.
임팩트는 왼손, 오른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허공에 돌린다.
나이프에 묻은 피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근데 이 바닥은 뭐로 만든 걸까.
검고 투명한 계단 같아 보인다.
주문의 일종 같아 보이긴 했다.
뭐, 이것도 알 바 아니다.
그저 내 앞에 인베이더가 가득하고.
난 이걸 죽이는 일에 심히 재미를 느낀다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아주 잠깐이지만, 진형을 가로지른 덕분인지.
아니면 이렇게 덤빌 인간이 있다는 걸 이 새끼들도 상상할 수 없던 건지.
인베이더가 주춤했다.
주춤한 것도 잠시다.
우웅!
내 머리 위로 날개 달린 윙 나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휠 나이트 대신인 놈들.
놈들의 투구 안에서 빛이 번쩍번쩍했다.
난 그걸 보며 아까 죽였던 키메라의 팔뚝을 발로 톡 차서 공중에 띄운 채, 잡고 던졌다.
팡!
공기를 찢고 날아간 키메라 팔뚝 창이 윙 나이트의 날개 한쪽을 찢는다.
그걸 피하네?
몸통에 구멍을 내려고 던진 건데.
회피 기동이 훌륭하다.
난 그런 윙 나이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놈의 의지가 언어로 변해 나에게 전해진다.
이게 바로 이중봉 팀장이 겪은 인베이더의 의념?
뭐, 난 무시했다.
뭐라고 하는지 듣지도 않고 놈이 전하는 의념을 깨끗하게 거절했다.
초능을 거부하는 거랑 비슷한 요령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그러냐. 싸우러 왔으면 싸움이나 하지.
아우, 신나.
난 아직도 주변에 가득한 인베이더를 보며 본능의 울음을 터트렸다.
이대로 변신까지 해 버리고 싶은걸?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돌겨어어어억!”
아까부터 저 뒤에서 내 이름이나 별명을 외치던 이들이 진형이 흐트러진 인베이더를 보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도 마저 날뛰었다.
모든 전투가 그러하듯, 첫 총성이 울리면 진형 따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든 법이다.
하물며 이번에는 더 독특한 경우였다.
인베이더가 줄을 맞춰 덤볐으니까.
덕분에 아군 진형도 흔들렸지만.
그래도 다들 잘 싸우긴 했다.
“가아아알겨어어어!”
누군가의 외침에 변신족 무리가 산탄총을 냅다 쏜다.
옥토퍼스 산탄이다.
몸통에 제대로 맞은 키메라가 뒤로 밀렸다.
산탄 옥토퍼스는 비거리는 짧지만, 저지력만큼은 최고였다.
그 바로 옆에서 염동력을 발하는 초능력자 다섯이 뭉쳤다.
“포인트!”
한 명이 작은 기어를 조작해 아이언 쏜즈의 머리통에 표식을 남긴다.
그걸 본 다섯의 염동력자가 동시에 같은 걸 연상한다.
머리를 후려치는 망치.
다섯 개의 염동 망치가 곧 아이언 쏜즈의 머리통을 때렸다.
맞은 놈이 뒤로 물러난다.
균형을 잃고 비틀댄다.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지, 불멸자 하나가 놈의 목에 와이어를 감았다.
“당겨!”
그걸 본 염동력자 다섯이 이번에는 놈을 앞으로 당긴다.
질긴 목이 와이어를 삼킨다.
결국, 목에 파묻힌 와이어가 놈의 목을 잘랐다.
피가 바닥에 흐른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초능 특수종이 숨을 몰아쉰다.
그걸 보며 불멸자는 또다시 기척을 숨긴다.
불멸특공대의 역할은 빈틈을 보이는 인베이더의 제거다.
그들은 제 일을 하러 갔다.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그렇게 40분가량의 전투가 이어졌다.
홀은 닫히지 않았다.
대신 인베이더가 더 나오지 않았다.
홀 너머, 멈춘 놈들만 보일 뿐.
경계 너머, 안으로 들어설 수 없는 곳.
대기한 병력이 보인다.
“전초전이라도 치른 것 같군.”
그걸 본 유일부대장이 말했다.
어찌 됐든, 작은 승리라도 승리인 법.
“전원 경계 태세로 전장을 물린다.”
유일부대장을 비롯한 모두가 태세를 전환.
나오지 않은 지랄 맞은 침략자 무리를 보며 싸움을 멈췄다.
스카이 게이트, 또는 스카이 홀.
오픈 1일 차.
격전지 서울, 전투 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