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부르짖다.
내가 만약 인베이더를 총괄하는 군단장? 뭐, 그런 위치에 있다면.
어설프게 찔러 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가진 모든 총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자, 그럼 인베이더의 적이 인류라 쳤을 때, 놈들의 노림수는 무엇이겠나.
인류 멸살이다.
침략자들은 왜 저딴 목적을 갖고 덤빌까.
저들은 그저 인류와 싸울 뿐이다.
이곳에서 뭔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침략하고 죽이고 죽일 뿐.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저 새끼들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모른다.
뭐, 추측은 몇 개 있었는데 다 개소리 같더라고.
그러니까 인류는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지금까지 싸워 왔다.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있나?
나 죽이러 덤비는 놈이 있는데 얌전히 목을 내주면 그게 바로 미친놈이지.
덤비니까 싸우는 거다.
여기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럼 내가 이렇게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창한 이유가 있겠냐고.”
쏟아지는 비, 열리는 게이트.
그걸 바라보면 난 혼잣말을 뱉었다.
“무슨 소리야?”
후방에 있던 정아 누나가 어느새 내가 있던 곳까지 올라왔다.
물론 진즉에 알아챘다.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감각이 소리와 기척을 느꼈다.
“그냥요.”
인류 구원? 영웅이 되고 싶은 욕구?
그딴 건 아주 조금이다.
인기를 끌고 싶은 건 당연한 욕망이고.
그러면서 돈도 많았으면 싶었고.
기왕이면 예쁜 여자 친구와 몰디브에 가서 모히또를 마시든,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마시든, 탱자탱자 놀 수 있는 평화도 원했다.
그렇다고 싸움이 싫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이상하게도, 정말 참 이상하게도.
하늘을 반으로 쪼갠 듯한 게이트를 보면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으니까.
긴장보다는 흥분.
흥분보다는 기대.
거참, 나 왜 기대되냐?
“눈빛이 이상하다. 광익.”
“괜찮아요. 지금 딱 좋아요.”
투쟁의 본능.
불멸과 변신은 비슷한 본능을 지녔다.
변신은 조금 더 선명하고 두드러지게 외면적으로 나타나고.
불멸은 내면에 숨어 있는 편이지만.
두 종 다 투쟁의 본능만큼은 여실히 지녔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내 투쟁 욕구는 그 어떤 특수종보다 지독한 수준이었다.
싫은 건 아니다.
다만, 이게 이유가 아니라는 걸 내가 알 뿐.
날 구해 준 아저씨가 했듯이.
그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할 뿐이다.
가령 지금 열린 문에서 뭐가 튀어나오든 싸울 수 있으니까 싸우는 거다.
역시나 거창한 이유는 없다.
“도망가고 싶게 생긴 하늘이네.”
정아 누나의 말에 난 미소를 보였다.
“그럼 도망가요.”
“싫어.”
“왜요? 누나가 도망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안 합니다.”
뭐라고 하는 새끼 있으면 그 새끼 뚝배기부터 깨 준다.
이제까지 정아 누나 덕분에 살아난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내 가족도, 내 지인도, 내 남자도 전부 여기에 있어. 나는 여기에 속해 있을 때만 의미가 있어. 그러니까 도망가면 난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겠지. 그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니까.”
“……감동적인데요.”
삶의 의미가 모두 이곳에 있기에 남는다.
이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지못해 남은 이들도 있을 것이고.
명령을 따라 남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제가 따르는 사람을 위해 이곳에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 욕망과 바람을 위해 이 전투를 감내할 것이다.
전부 이유는 다 제각각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 남자?”
정아 누나가 남자 친구가 있었나?
“……그건 못 들은 거로 해라.”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내가 살아남으면 그때 알려 주지.”
“반드시 살려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 후방 맡아요. 전선에 다가오지 말고.”
내 말에 정아 누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전면에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고맙다.”
그건 아닌 듯싶었다.
정아 누나의 저격은 훌륭하지만, 근접전에 돌입하는 순간, 종잇장처럼 찢어질 몸뚱이다.
한계는 명확하다.
그러니 후방이다.
전방이 털리면 지는 싸움이 되는 거로.
그렇게 하자고.
“전원 대기.”
무전을 통해 명령을 전달한다.
NS 전 부대, 전투 요원 전부는 지금 내 명령에만 따른다.
투쟁 본능과는 별개의 짜릿한 감각이 치솟았다.
화림에서 구른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때의 팀장이 내 밑에 있고.
손에 꼽히는 특수종이 내 명령을 따른다.
하물며 내 밑에서 힘을 쓰는 전투 부대는 어떻고.
인류 최강이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곳에 합류한 NS의 무력 부대가 각 단체가 숨긴 칼만큼이나 매서운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 먼저 말하는데, 뒈지지 맙시다.”
뒈지지 말고 잘 싸워 보자고.
하늘 위에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큰 균열이 생긴 뒤 2시간.
누군가는 가장 선두에 서야 했다.
그중 하나였다.
이름은 안필요.
유일부대 소속이다.
평소에 악과 깡이야말로 군인의 기본기라 부르짖는 불멸자다.
불멸자임에도 햇볕에 하도 그을려 갈색의 피부를 가졌다.
피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지독한 훈련 중독자이기도 했으며.
유일부대장이 믿는 돌격대장이기도 했다.
“열립니다.”
안필요는 직위와 지위를 떠나서 한 명의 인간으로 묻고 싶었다.
‘저게 맞나?’
어지간한 일에는 두말하지 않고 나선다.
게이트 선두에 서야 한다기에 섰다.
근데 보는 순간 오금이 저린다. 그럴 만했다.
딱 5분 전이다.
쩌저저적.
균열이 쪼개지기 시작하며 그 위로 은하수가 내려온 듯 빛이 어우러졌고.
곧 균열이 좌우로 벌어지며 홀이 열렸다.
그걸 보는 사이 안필요는 호흡을 몰아쉬었다.
“후, 후, 후.”
전투가 코앞이니까.
인베이더가, 그것도 끔찍하게 강화된 인베이더가 몰려올 테니까.
‘인베이더가 마법을 써?’
초능도 쓴단다. 야수 형태의 키메라는 또 어떻고.
그 와중에 아이언 쏜즈와 윙 나이트까지.
‘멸망의 전조인가.’
안필요는 겁을 먹지 않았다.
그저 나서서 싸우면 될 일이니까.
그게 이제까지 그가 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이므로.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적당히 약을 흡입한 뒤는 그야말로 전투의 연속이리라.
생각할 겨를도 없으니, 겁을 집어먹을 일도 없다.
그가 전장에서 버티는 노하우다.
그런데 지금 그는 발이 묶였다. 순간적이지만, 공포가 그를 잠식했다.
그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홀이 열렸다.
인베이더가 보였다.
하지만 달려들진 않았다. 마치 계단이라도 되는 듯, 홀에서 뻗어 나온 검은 그을음이 밑으로 이어졌고.
인베이더는 줄을 맞춰 대기했다.
움직이지 않고 멈췄다.
그렇다고 인형 따위가 아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푸쉭푸쉭하고 아이언 쏜즈가 모인 곳에서 기묘한 소음이 울렸다.
그르륵 그르륵 하는 짐승의 울음도 간간이 귀를 쑤셨다.
안필요는 홀 너머를 보는 순간 알았다.
‘달라.’
본래 그가 아는 인베이더는 머리 나쁜 짐승에 가깝다.
나름 영리한 짓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멍청하게 덤비는 괴물.
그게 안필요가 아는 인베이더다.
그럼 지금의 인베이더는 어떤가.
전혀 달랐다.
묘한 위화감과 불쾌감이 동시에 들었다.
도열과 사열.
인간에게 허락된 질서를 뺏긴 기분이었다.
짧지만, 체감하기로는 긴 시간이 지났다.
“몇 분이나 됐나?”
안필요가 물었다. 직속 부하가 시간을 확인했다.
“5분 지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달려들어?
그럴 순 없다.
덤비는 걸 전제로 짠 대형이다.
‘그렇다고 저게 덤비는 걸 기다려?’
저렇게 잘 정돈된 부대를?
당황은 패닉을 불러온다. 안필요는 필요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는 달려들어야 했다.
인베이더 무리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미사일 따위를 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놈들은 아직 홀 안쪽이었다.
경계선을 알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미사일이든, 폭탄이든 홀 너머의 에너지 파장은 뚫을 수 없다.
그 무엇 하나 이제까지 없던 패턴이다.
안필요 뿐 아니라 누구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타이밍이었다.
물론 잠깐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멍청하게 구경만 할 거냐?”
유일부대장을 비롯한 지휘부가 움직였을 테니.
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잠시만요. 좀 지나갈게요.”
무슨? 붐비는 지하철에서 내릴 때나 할 만한 톤의 말이었다.
안필요는 그렇게 뒤쪽에서 선두 부대의 앞까지 나온 사람을 봤다.
모를 수가 없는 특수종이었다.
“팬이에요? 사인은 나중에 해 줄게요.”
팬은 아니었다.
안필요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세최특의 등을 바라봤다.
“자, 보자.”
그는 홀에서 꾸물꾸물 나오는 놈들을 보더니, 몸의 각 관절을 꺾었다.
우둑, 우둑, 우둑.
그리고는 햄스트링을 비롯해 골반까지 스트레칭을 했다.
관절을 풀고 스트레칭까지 1분도 안 걸렸다.
순식간이었다.
각 동작을 한 번씩 취하고 말았다.
그거로 몸이 풀리나?
“준비운동 끝!”
통통. 줄넘기하듯 제자리에서 몇 번 뛴 세최특이 말한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후폭풍과 충격파만 남았다.
안필요는 자신의 앞에 순간적으로 폭풍이 몰아친 줄 생긴 줄 알았다.
강풍이 그의 몸을 밀었다.
덕분에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야 했다.
“……와.”
폭풍 따윈 아니었다.
그저 어떤 기준이나 규격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무식할 정도로 강한 특수종 하나가 땅을 박찼을 뿐.
그가 찬 바닥이 으깨지고 깨진 게 보였다.
아스팔트가 됐든, 보도블록이 됐든.
그의 발이 닿는 곳은 다 터졌다.
인류의 도로 인프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아스팔트 조각, 보도블록, 모래와 흙.
가리지 않고 앞으로 펑펑펑 줄지어 터지며 분수처럼 솟는다.
안필요의 눈에는 세최특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흐릿한 검은 그림자가 그대로 짓쳐 들어가는 것만 보였을 뿐.
그리고 곧 그는 홀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저길?’
무작정 쳐들어간다고?
이 무슨 미친 짓인가 싶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도착한 세최특은 인베이더 앞에서 세차게 몽둥이 같은 걸 휘둘렀다.
퍼-엉!
폭음이 터진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아이언 쏜즈 몇 마리가 조각나 깨지고 터졌다.
누가 보면 가스 폭발이라도 일어난 줄 알겠다.
그게 아니라면 지향성 폭약이라도 터트렸든지.
군인다운 비유를 떠올리며 안필요는 그저 입만 벌렸다.
돌격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다.
“대기.”
“저 미친 새끼 좀 놀고 올 테니까, 대기하시면 됩니다.”
뒤쪽에서 말을 건다. 둘이었다.
하나는 불멸자로 보였는데, 불멸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엄청난 미남이었다.
오뚝 선 코와 입술의 선이 보는 순간, 사람의 눈을 현혹한다.
순혈 중에서도 피가 아주 진한 불멸자였다.
반대쪽 친절하게 설명한 쪽은 변신족으로 보였다.
장비도 그랬고 생김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침착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와, 시발.”
“와, 지랄.”
“오, 하나님.”
제 부하 무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감탄사만 터트리는데?
“신나서 저러는 겁니다. 선두 돌격 부대였죠? 오늘만 양보해 주시죠.”
양보는 무슨.
세최특이 아니었다면 돌격이고 뭐고 선두부터 썰려서 갈렸을 건데.
근데 참 이상하게도.
“어흥!”
저 앞에서 장난스럽게 짐승의 울음을 토해 내는 세최특을 보니, 두려움이 가셨다.
정렬된 인베이더 부대가 지금 한 명의 특수종 덕에 탈탈 털리는 중이었다.
그걸 보고 감동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씹.”
안필요는 혀를 씹을 뻔하다가 크게 외쳤다.
“세최트으으으윽!”
이걸 보고도 저 특수종의 이름을 부르짖지 않을 수 있는가.
인류의 가장 선두에 선 싸움꾼을 보고 소름 돋지 않는 이가 있는가.
“우아아아아아아!”
“세최트으으윽!”
“청기사!”
“슬레이어!”
부르짖는 사람 사이로 호흡까지 맞춰서 외치는 이들도 나온 판이다.
갑자기 열린 하늘 위 홀은 대규모 전쟁을 예견했다.
그것도 인류 멸망이 걸린 그런 전쟁.
그리고 그 전투의 시작은.
“잘 생겼다!”
“내 남자!”
응원의 울림으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