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89화 (389/488)

389. 스카이 게이트.

“이제 간다.”

혜민이 말했다. 등 뒤에서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러시아에서도 언노운 인베이더가 나타났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덕분에 혜민도 여기서 싸워야 했다.

당장 자신의 안위가 위험했고.

알게 모르게 정이 든 인간들도 있었다.

마리아는 그런 혜민을 보고 생긋 웃었다.

“으음. 나 너 꽤 마음에 들었는데, 정말 생각 없어?”

“없어, 가까이 오지 마. 머리통에 불꽃 화살을 꽂아 버린다.”

마리아란 마스터는 미친년이었다.

처음에는 광익이 좋다고 그러더니.

“흐응, 우리의 뜨거운 밤을 잊은 거야?”

“미쳤나, 진짜.”

혜민도 살면서 이런 타입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자신이 좋다고 달려드는 건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정말 뜨거운 밤을 보냈다는 건 아니었다.

이 여자와는 새벽이고 낮이고 밤이고 안 가리고 뒹굴긴 했지만.

지금 마리아가 말한 의미는 아니었다.

주문과 전투.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 초능 특수종을 상대하는 법.

불멸자 죽이기, 변신족 죽이기 등.

미치도록 배우고 익히기만 했다.

훈련만 했다.

연맹이 숨어서 뭐 하나 했더니, 다른 특수종 죽이는 법만 연구했다.

그렇다고 인베이더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한 건 아니지만.

과학자 무리가 아니라면 특수종 세상에서 가장 연구에 미친 직종이 마법사 아닌가.

그런 마법사가 모인 곳이 연맹이고.

그중에서 싸우는 시인은 러시아에서 시작한 최대 최강 규모의 연맹이다.

유럽의 일루미나티나 미국의 갤럭시도 이들과의 전면전은 한 수 접어준다는 그런 집단이다.

“아쉽네. 혜민.”

전용기를 타는 곳까지 배웅 와서 하는 말이다.

후우우웅.

바람이 불어와 혜민이 쓴 모자를 흔들었다.

혜민은 모자를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보고 싶으면 보러 오면 되잖아.”

연맹의 마스터가 그런 눈치도 보나?

“여기도 바빠질 것 같은데?”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지.

“러시아가 바보도 아니고 그냥 당하겠어?”

혜민이 긍정론을 뱉었다.

“너도 그거 봤잖아. 인류 멸망 예언.”

비행기 타야 하는데 자꾸 말 걸기는.

탑승용 계단을 앞에 둔 혜민은 픽 코웃음을 쳤다.

“그걸 믿어?”

“그럼 안 믿니?”

“근거는?”

“내 서방이 안 믿으니까.”

혜민은 당당했다.

혜민이 마리아를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만큼 마리아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마인드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강혜민의 몸은 그 자체로 보물인데.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욕심을 내서 안 된다.

세최특의 무력을 적으로 삼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니까.

‘아무리 뛰어난 주문쟁이라고 해도.’

불멸과 변신의 혼혈, 현존하는 최고의 이레귤러를 잡을 순 없다.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가 공멸이다.

그것도 강혜민을 꼭두각시 삼아 싸우는 시인에 있는 모든 스펠 기어를 쓴다는 가정에서다.

‘괴물이지 괴물.’

그러니 그의 여자가 되면 그것만큼 좋은 시나리오가 없을 텐데.

‘쉽지 않아.’

하다가 안 되면 세최특의 여자라도 차지하려고 했더니.

“씁.”

정말 쉽지 않다.

허술해 보이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는 둘이다.

부우우웅.

비행기가 주행을 시작한다.

전용기를 타고 강혜민이 돌아간다.

마리아는 당분간 강혜민도 세최특도 신경 쓸 틈이 없을 터였다.

“인류 멸망이라.”

그녀는 비행기를 향해 등을 돌렸다.

“마스터?”

“그 예언가의 말을 믿든 안 믿든 대비는 해야 하잖아?”

“당연한 말씀을. 그 세최특도 대비를 했잖습니까.”

마리아도 안다. 세최특은 역시나랄까.

부대를 나누고 나오는 인베이더의 머리통을 족족 터트렸다.

어쨌든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겨우 이 정도로 인류 멸망을 논하진 않을 테니.

그녀의 눈에 시리도록 푸르고 높은 러시아의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이리 높고 푸른데.

입 안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가?

꼭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혜민이 떠난 자리가 은근히 허전했다.

‘조카라도 생긴 것 같았지.’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마리아는 혜민의 모친과 꽤 오랜 시간 거래를 해 온 사이였으니까.

그녀는 씁쓸함도 허전함도 단숨에 털어 냈다.

“가자, 마법사는 본래 제 욕심을 위해 싸우는 법이니, 우리도 욕망 껏 싸우자.”

마리아의 말에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언노운 인베이더의 분류를 나눈 이후부터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사상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반 러쉬에 당한 것뿐이었다.

“새로운 인베이더는 안 나옵니다.”

계속된 전투, 열린 블랙홀.

그 안에서 일어난 연속된 전장.

죽고 다친 숫자만큼이나 단시간에 경험이 농후하게 쌓였다.

인류는 적응했다.

“재생한다. 태우고 녹이고 조져.”

이제는 흡혈귀라 이름 붙인 놈들을 상대함에 백린탄을 뿌리고.

강화된 화염방사기를 비치해 둔다.

푸른 불길을 뿜는 방사 장치가 고속 재생하는 살과 뼈를 태우고 피를 기화시켰다.

불멸자를 죽이는 법 중 하나다.

불사르기.

특수종 세상은 전쟁의 연속, 이들은 싸움에 익숙했다.

“총질한다! 막아!”

솔져를 상대로는 방어막을 구축.

특수 제작된 방패로 탄을 막았다.

단시간 내 저 방패 개발한다고 각 단체 연구팀장의 머리털이 한 움큼은 빠졌을 것이다.

부식탄과 송곳탄을 막고 이후 상대 쪽에 수류탄을 까 넣는다.

변신족이 핸드 불릿 삼아 던진 투사 폭발물이 놈들의 머리 위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터진 폭발물은 가는 실 같은 걸 바닥에 흩뿌렸다.

저건 화염도 아니고 백린도 아니다.

몸에 엉키게 만드는 그물이었다.

솔져가 위험한 건 총칼이 아니라 그들의 기동력에 있었으니.

실그물 폭탄은 유용했다.

키메라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이쪽은 화력을 집중하는 거로 해결해야 했다.

에너지 소모를 감수하고 광학 병기가 쫙 깔렸다.

인류가 만들어 낸 최종병기, 광학병기를 부르는 이름이다.

무기가 이름값을 했다.

키메라의 몸에 구멍을 숭숭 뚫어 냈으니.

다만, 광학 병기는 애초에 이세계에 있는 몇 가지 광석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그 안에는 희귀 금속이 꽤 들어갔다.

가령 축능석이나 아다만티움 같은 것.

무한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란 거다.

모든 자원은 고갈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지금만큼은 즐길 만했다.

“진작에 좀 이러지.”

엑스큐라시와 올드 포스, 협회가 나선 걸 보며 정직이가 툴툴거렸다.

전신이 피투성이라고 할 순 없지만, 지쳐 보이긴 했다.

“빠져 가지고 어디서 입술을 내미냐?”

“아니, 형님 전 평범한 인간이거든요.”

누가 평범하다는 거야.

광변환으로 키메라 사이에 들어가서 폭탄을 두고 빠져나오는 네가?

솔져가 쏘는 탄을 피하며 그들의 머리에 칼을 꽂는 네가?

고속재생하는 흡혈귀 인베이더 목을 썩둑 베고 그 안에 수류탄을 던지는 네가?

정아 누나가 들으면 코웃음 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네.

“아닙니다. 아니에요.”

내 눈빛을 본 정직이가 튀었다.

저거 요새 빠졌다.

날 잡고 잡도리 한 번 해야지.

뭐, 그럴 여유가 있을까 싶긴 하다.

서울에 열린 게이트 숫자가 세 자리다.

그중 휴즈 게이트 급은 둘.

네임드는 없지만, 언노운 인베이더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그중 윙 나이트가 다섯.

망토 두른 흡혈귀가 다섯.

초능을 쓰는 제너럴이 다섯.

머리통에 갈기 대신 뱀이 달린 사자 키메라를 비롯한 특이종 급 키메라가 다섯.

너희 약속이라도 했니?

왜 전부 다섯 마리씩 튀어나오고 그러니?

그러니까 네임드 급은 아니지만, 준 네임드 급은 겨우 열다섯이 전부였단 거다.

쉽게 설명하자면.

주문 쓰는 인베이더 다섯.

초능 쓰는 인베이더 다섯.

몸뚱이가 비상식적으로 단단한 인베이더 다섯이다.

이 정도 병력만으로 서울 특수종 연합은 가진 힘의 태반을 쏟아부어야 했다.

나도 NS 전투 부대를 거의 다 보냈단 말이지.

그중에 NS가 아니지만, 눈에 띄는 이들도 몇 있었다.

“제가 갑니다.”

얇지만, 단단한 목소리의 주인이다.

올드 포스가 숨겨 둔 인재다.

아버지도 몰랐던 행안부의 숨겨 둔 칼.

이름이 정바람이라고 했던가.

그는 불멸자였고.

전신을 감싸는 전투 아머를 입었으며.

그가 입은 아머에는 갖가지 사이오닉 기어가 달려 있었다.

그렇다고 장비빨이라고 치부할 수준은 아니었다.

보는 순간 알았다.

더없이 예민한 감각.

그 감각을 토대로 내리는 순간적인 상황 판단.

전투 감각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과 같다.

눈에 띈다.

순혈 정가 사람인 것 같은데 용케 행안부 사람이 된 듯했다.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전류를 뿜어내는 채찍으로 솔져의 목을 감싸 자르고.

재생하는 흡혈귀의 몸통에 인젝션 애로우를 꽂아 역으로 피를 뽑아냈다.

“병력을 물리시지요.”

불멸자답게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냉정했다.

인재가 이쪽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라아앗!”

엑스큐라시도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에, 음, 정확히 말하자면 내 사촌쯤 되는 인간 둘이 비장의 무기였다.

강호응 삼촌의 아들과.

긍낙 삼촌의 딸이다.

당연하게도 둘 다 변신족이며, 순혈이었다.

“내가!”

“바로!”

“화랑 제일!”

호응 삼촌의 아들은 본능을 마음껏 쏟아 내는 타입이었다.

변신 타입은 표범.

일반 표범으로 보이진 않았다.

벌크업이 심하게 된 표범이다.

어떤 훈련을 했는지 눈에 선하다.

기본 훈련은 내 코스를 모티브로 삼았겠지.

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만들면 변신에도 영향을 끼치는 법이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기본기다.

전투 방식은 말 그대로 본능에 몸을 내맡기는 수준이지만, 그 본능이란 게 무섭게 발달했고.

그 기저에는 기본기가 촘촘하게 깔렸다.

긍낙이 삼촌 딸은 조금 달랐다.

이쪽은 변신족이면서 기어를 애용하는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전투 아머를 입는 건 아니고.

레일 건과 단분자 커터, 로켓 런쳐, 수류탄, 섬광탄, 연막탄, 폭발 나이프 등.

개조된 전투 조끼 위에 갖가지 무기를 쌓아 뒀다.

그것도 변신한 이후 쓰려고 작정해서 개조한 무기들로.

변신 형태는 코뿔소.

코 대신 이마에 뿔이 하나 솟았는데.

그 뿔이 가끔 파지직 거리며 전류를 흘리곤 했다.

자연스레 감각을 열어 상대를 살피게 됐는데.

저 여자 사촌은 주문에도 일가견이 있는 거로 보였다.

당연하게도 협회도 한 수를 보였다.

하지만 이쪽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협회장은 놀았나! 왜 전이랑 같냐!”

라는 야유를 받았다.

물론 그 야유는 내가 했다.

다른 사람은 협회장 눈치를 보더라고.

그래서 속 시원하게 내가 대신했다.

그들은 사이오닉 아머를 들고 왔다.

네임드 청기사를 상대할 때 보여 준 그거다.

“전보다 업그레이드 많이 됐는데.”

그중 아머를 착용한 여자 하나가 말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부협회장이 분명했다.

그래, 보니까 업그레이드는 됐더라.

에너지 효율성도 달라졌고.

아머를 입은 협회 소속 초능 특수종 하나는 날아다니더라고.

저 친구가 아마 협회가 키운 인재겠지.

인류는 긴 세월 인베이더와 싸우며 깨달았다.

소수의 강자가 필요하다는 걸.

네임드를 상대로 인해전술을 펼치면 피해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

어쨌든 현 전투는 마무리되어가는 중이었다.

초반에는 당했고.

중반에는 얼추 막기 시작했으며.

싸움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는 압도했다.

인류의 승리였다.

“이야호!”

신이 나서 먼저 승리의 환호를 외치는 놈도 나왔다.

난 물론 안 그랬다.

이미 봤으니까.

그 예언이 가짜든 진짜든.

겨우 이거로 인류 멸망을 논할 순 없으므로.

콰르르릉.

타이밍 좋게 머리 위로 천둥이 쳤다.

곧 비가 쏴아아 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진 하늘은 어둑어둑했는데 비까지 내리니 더 컴컴해졌다.

그리고 그사이 어지간한 인베이더를 다 처리한 인류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난 고층 빌딩 위에서 감각을 열었다.

빗소리 사이로 승리의 외침이 들려온다.

“우오오오!”

“이겼다!”

“빌어먹을 인베이더 새끼들! 엿이나 처먹으라고!”

흥분한 이들을 외면하며 난 머리 위를 바라봤다.

불멸자의 감각이 경종을 울린다.

이제 시작이었다.

쩌저저적!

먹구름과 비가 쏟아지는 하늘 위, 천둥이 가로지른다.

하늘을 가른 천둥은 내려오지 않고 구름 사이에 흉터를 남겼다.

균열이었다.

“진짜가 온다.”

무전에 대고 말하자.

“아들, 어디니? 아빠도 보고 있다.”

아니, 아빠가 왜 이 주파수를 따서 들어왔데.

“위험하면 알아서 내빼라. 아들.”

근데 제가 위험하면 다 죽지 않을까요.

뭐, 다들 알아서 잘하겠지.

어쨌든 하늘이 쪼개지기 시작했고.

곧 대부분 머리 위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스카이 게이트.

휴즈 게이트 따위 씹어먹을 대형 홀의 전조였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 동시에 열렸던 자잘한 홀은 전부 닫혔다.

마치 가진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어 머리 위로 문을 여는 것 같았다.

아야세는 미래를 본다.

그녀는 인류의 미래를 봤다.

멸망, 암울함이 가득한 미래.

그리고 그녀는 지금 또다시 꿈을 꿨다. 짧은 꿈이었다.

그녀는 눈을 뜬 뒤 생각했다.

‘이건 예지일까?’

아야세는 몸을 일으켜 넓은 창문 앞에 섰다.

흐릿하게 자신의 몸이 반사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꽈르릉하고 천둥이 운다.

‘정말 미래가 변한다고 생각하나요?’

아야세는 속으로 물었다.

광익을 본 순간부터 그녀는 한 가지의 의심이 들었다.

고정된 미래를 변할 수 없다.

적어도 이제껏 그녀가 아는 세상은 그랬는데.

광익을 보고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의심이 싹을 틔웠다.

그는 진짜로 해낼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번 싸움에서 죽으면 말짱 끝일 텐데요.’

그녀의 짧은 꿈에서 광익은 죽었다. 처참하게 찢겨 조각나 흩어져 죽었다.

끔찍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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