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궁극의 전투 부대
문신남은 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부식과 송곳, 초진동 커터, 솔져 확인.”
정기남뿐 아니라 자신을 스쳐 가는 다른 불멸자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이들은 전부 독특했다.
‘아니, 불멸자는 불멸자인데.’
“형씨? 놀러 왔수? 놀러 온 거면 뒤로 빠져서 돗자리나 까시든가.”
말투가 왜 이러지?
남명진 사장은 화림을 운영하면서 불멸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에도 신경을 썼다.
월급에 품위 유지비라는 항목이 따로 있기까지 했다.
순혈 정가의 불멸자는 또 어떤가.
그들은 자신들만의 규칙을 세워 가문의 불멸자를 통제했고.
통제당한 불멸자는 심히 조용했다.
불멸자가 아니면 못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소곤거리며 얘기하는 건 정가의 전통 중 하나였다.
엿을 박스 단위로 처먹을 순혈주의자들이니까.
그런데 이건 뭔가.
‘가벼워.’
태도가 그렇다. 행동도 문신남이 아는 불멸자와는 조금 다르다.
“갈겨, 다 죽이자.”
“휘이이익.”
“내가 죽일 거니까, 넌 옆으로 빠져서 땅콩이나 까고 있어.”
“네 거나 먼저 까 줄까?”
뭐지, 이 품위 없는 대화는.
분명 전부 불멸자다.
하지만 이제까지 봐 왔던 그런 불멸자 부대와는 냄새와 색, 분위기까지 다 달랐다.
하는 짓도 그랬다.
언노운 인베이더가 나왔을 때는 보통 대응 지침이 있었다.
이번에 각 부서에 고지가 내려오기도 했고.
그건 행정부 소속이든, 화림이든, 크게 봐서 단군그룹이나 협회도 같을 것이다.
언노운을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력한 압박 대신, 느슨한 포위.’
당연한 조치다. 민간 피해를 감수하고 전투 부대의 피해를 줄이는 건, 모든 기관이 알게 모르게 하는 짓이므로.
느슨한 포위로 상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두 번째.
‘압도적 화력으로 원거리 공격으로 대응할 것.’
인베이더의 투사체 무기는 형편없으므로 이것도 맞다.
이번에만 다른 경우다. 새로 나온 놈은 초능과 총탄 비슷한 걸 쏘는 인베이더니까.
어쨌든 요지는 이거였다.
근접전을 최대한 피할 것.
‘허.’
문신남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기남이 데려온 불멸자 부대는 그 모든 걸 무시했다.
포위는 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압박을 넣었다.
그들은 인베이더를 보고 달려들어 싸웠다.
쐐기 형태로 달려들더니, 흩어져 싸우는 통에 금세 난전이 됐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더 미친 짓이었다.
총을 쏘다가 근접거리에 붙어 버리는 거다.
“끅! 시이발 내 팔!”
팔이 잘리는 부대원이 나온다. 초진동 커터는 방검복 따위를 무시한 채 갈라 버렸다.
“닥치고.”
다른 부대원은 동료의 팔이 잘린 틈에, 인베이더의 머리에 길쭉한 니들 형태의 무기를 꽂았다.
지이잉.
머리통에 박힌 니들을 뽑자, 푸각 소리가 나며 머리통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인베이더 솔져의 피다.
팔이 잘린 놈은 뭐라 욕을 내뱉더니, 블러드 젝을 팔뚝에 꽂고.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흐흐이.”
얼마나 독한 건지, 금세 아픔도 잊은 채 신음 비슷한 웃음을 흘렸다.
‘다 미친 새끼들인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문신남은 나설 수도 없었고,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그들은 불성실해 보였고 말투가 거칠었다.
대신 전투 능력이 그 모든 걸 씹어 삼켰다.
처음 솔져 여섯 마리를 죽인 건 정기남이지만, 이후 나오는 인베이더는 새로이 온 부대가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었으니까.
“NS의 지원입니까?”
직속 부하가 와서 물었다. 머리통이 깨져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더럽게 잘 싸우네요.”
부하의 말대로였다. 불멸자답지 않게, 이들은 더럽게 잘 싸웠다.
정기남은 유광익을 안다.
그와 수없이 대련했고 겨뤘다.
불멸자임에도 몇 번은 죽을 뻔하기도 했다.
“넌 불멸자라며 몸을 왜 이렇게 사리냐?”
“꺼져라, 잡종의 힘만 믿고 덤비는 놈.”
“좋아. 변신족 힘 빼고 한번 해보자.”
이런 말을 나눈 적도 있었다.
놈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불멸자의 특징만 갖고 덤볐다.
덕분에 자존심에 더 큰 상처가 생겼고.
“……밥 먹을래요?”
그런 기남을 위로한 건 광익의 호적상 여동생이다.
실제로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니, 호적 시스터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녀의 위로는 힘이 됐다.
“맛있죠?”
특히나 아무 말도 안 하고 음식만 줄곧 싸 오고 먹이는 게 힘이 됐다.
광익은 변신족이 아닌 불멸자의 피 하나만으로도 강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기고 싶다면 일단 베껴.”
이중봉 팀장의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답은 직접 찾아야 했다
기남은 그렇게 했다.
‘불멸자라고 해서 고상한 척하는 거.’
어릴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는 자신의 전투 방식을 바꾸면서 팀원도 그런 이들만 뽑았다.
소위 말하는 반쯤 나사가 빠진 미친 불멸자들.
“팔? 어차피 다시 자라는데요. 뭐.”
신체 절단에 두려움이 없는 놈.
“NS는 돈 많으니까 약 많이 주죠?”
불멸자면서 약에 취한 놈.
“저랑 한번 자면 안 돼요? 잘생겼네, 우리 팀장님.”
남자에 미친 여자.
“NS 마크 달고 있으면 클럽에서 제가 바로 그날의 세최특입니다. 여자가 줄을 선다, 이겁니다.”
말하는 게 더럽게 마음에 안 드는, 여자에 미친 놈.
다양하다.
그 다양한 놈의 위에 자신이 있었다.
‘나도 정상이 아니라고 할 것 같군.’
이들을 이끌면 그런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 중에는 순혈도 있었고 혼혈도 있었다.
기남은 그들을 차별 없이 대했다.
“악마 새끼.”
훈련하다가 손가락이 잘린 부대원이 하는 말이 그 방증이었으니.
그는 차별 없이 모두를 반씩 죽였다.
불멸자와 불멸자의 싸움에서 승패를 가르는 건 한순간의 투쟁심.
결국, 기남이 이들을 뽑은 이유는 하나였다.
투쟁심.
변신족이 아님에도 그들만큼 욕심 있고 투쟁심이 가득한 불멸의 피를 이은 또라이들.
“이 씹쌔가 내 발가락을!”
솔져한테 발가락을 잘린 부대원이 놈의 주둥이에 총구를 쑤셔 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 보였다.
훌륭한 전법이었다.
피하고 쏘면 더 좋았겠지만, 솔져란 무리도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주둥이에서 산탄총이 폭사한다. 총구에서 터진 탄이 솔져의 뒤통수를 갈기갈기 찢었다.
아예 머리통이 날아갔다.
불멸특수대는 쥐어 터졌지만, NS는 압도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이쪽에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대비.’
도안결은 자신에게 말하던 광익의 얼굴을 떠올렸다.
더없이 진지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로 예상한 거지?’
아니, 확신한 건 아닐 것이다.
“안 일어나면? 그럼 좋은 거지 뭐. 하지만 불안하잖아? 그러니까 준비는 해 보자는 거지.”
전혀 불안한 얼굴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안결은 그리 생각하며 부대를 움직였다.
그가 이끄는 부대는 모두 변신족이다.
다만 일반적인 변신족과는 다르다.
“앞쪽에 홀이 열렸습니다. 에너지 수치가 증가합니다. 사천, 오천, 칠천, 구천, 만이천, 이 근방에서 최고 수치입니다.”
“전투 방식은 원거리 요격으로 시작하는 게 유리할 것 같습니다.”
“나오는 건 키메라, 그 형태를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날개 달린 놈도 나옵니다. 위쪽에 드론 배치합니다.”
안결은 변신족과 변신족의 싸움에서 승패를 가르는 건 냉정함이라 봤다.
‘아무리 잘 싸워도 결국 제 피와 살을 내주면, 끝에 가선 진다.’
그런 싸움은 피한다.
대신 차가운 심장을 갖춘 이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모은 이들이다.
“드론 띄우고 요격 시작한다.”
이들은 전면이 아니라 후위에 있었다.
그 와중에 상대적으로 높은 고지인 8층짜리 빌딩 옥상을 차지했다.
앞쪽 협회 소속 초능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이발, 하필 키메라냐고!”
“화력, 화력으로 상대한다. 모든 화기 발동해!”
화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키메라 중에는 폭발이나 화염을 견디는 피부를 가진 놈도 많다.
대신 반대로 피부가 쉽게 얼어붙는 놈도 있지만.
“1차, 폭염. 2차, 결빙. 실시.”
안결이 입을 연다. 곧 그의 명령에 맞춰 기어를 다루는 변신족 부대가 움직였다.
커다란 홀, 휴즈 게이트보다는 조금 작은 홀 곳에서 까마귀 대가리가 불쑥 나왔다.
까마귀가 입을 벌리자, 혀가 쑥 나왔다.
뱀을 닮은 혀였다.
몸통은 악어였고 날개도 달렸다.
그로테스크하다.
그게 상관있나?
없다.
“쏴.”
준비한 드론이 폭발물을 떨어뜨렸다.
곳곳에서 뇌전이 일고 폭염이 치솟고 땅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걸 본 협회 팀도 호응했다.
“맞춰, 맞춰서 싸우자!”
뒤로 물러나는 그들을 보며 안결은 빌딩 난간에 발을 반쯤 내밀었다.
저 폭격에도 살아남은 놈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원거리를 넘어서 중거리 사격으로 상대해야 했고.
결국, 근접전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가상의 전투를 그린 다음 그대로 진행하는 거다.
안결은 그렇게 했다.
근접전이든 뭐든 걱정은 없었다.
아무리 냉정함을 무기로 삼는다고 해도 이들은 변신족이니까.
그는 자신의 부대야말로 궁극의 변신족 부대라 생각했다.
물론, 이건 기남의 생각도 같았다.
비약을 오래 복용한 덕일까.
김정아는 이전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마치 초능 특수종 같았다.
신체 능력 특화 쪽 특수종이라면.
이런 것도 가능할 테니까.
물론 그녀의 저격 실력의 반은 기계의 힘이었다.
먼 곳을 보는 기어와 레이저 라이플을 무기의 기본으로 삼으니까.
그래도 그녀 능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안정된 포지션, 기어, 몸 상태만 괜찮다면.
그녀는 국내 최고의 스나이퍼라 불릴 만했으니까.
“원호 저격 실시.”
그녀는 말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둥-
레이저 라이플은 쏘는 느낌이 엿 같았다.
반동도 없고, 방아쇠에 걸리는 맛도 없다.
다만, 위력만큼은 월등히 뛰어나다.
저 멀리.
엑스큐라시 본대와 피닉스 팀 등 주 전력이 모인 곳.
김정아는 그 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베이더 무리의 머리통을 맞춰 깨는 중이었다.
듀얼 웨이브.
두 종류의 인베이더가 나오는 중이었다.
하나는 전신에 가시를 두른 철갑병과 윙 나이트고.
다른 하나는 고속 재생과 주문을 쓰며 인간의 피와 살을 씹는 식인 흡혈귀 인베이더다.
“날파리 출현.”
무전기를 통해 통신이 들렸다.
당연하게도 이곳에 그녀 혼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그녀 외에 열 명의 저격수가 대기 중이었다.
연습 삼아 몇 발 쏜 뒤, 대기 중인 저격팀이다.
전부 광학 라이플을 든 채로.
자신이 훈련시킨 이들이었다.
일반인은 없다.
전부 신체 능력 특화 쪽 초능 특수종이다.
일반인이 견딜 만한 훈련 코스는 아니었으니까.
“시야 확보했으면 떨궈.”
처음 일반인이라고 그녀를 무시했던 부대원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녀의 능력을 옆에서 봐 온 이들이라면 그럴 수밖에.
일반인이면서 초능 특수종을 씹어먹는 실력이었으니.
렌즈를 통해 보니, 김정아의 시야에도 날파리가 잡혔다.
아이언 쏜즈를 통제하는 개체, 윙 나이트였다.
그녀는 방아쇠를 당겼다.
여전히 느낌은 엿 같았지만, 그래도 만족감은 있었다.
‘확실히 위력은 쩔긴 하지.’
이 거리에서 곡사도 아니고 직사로 맞출 수 있는 무기라니.
인재가 NS에만 있다는 건, 그동안 특수종 세상의 기득권층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들도 숨겨 둔 한 수쯤은 있었다.
행안부도, 불특대도, 엑스큐라시와 협회까지도.
행안부의 숨겨 둔 힘이라기에는 이미 많이 드러났지만, 그래도 능력 하나만큼은 월등한 팀의 팀장도 이곳에 있었고.
‘아무렴.’
피닉스 팀장 유연호는 그리 생각하며 전장을 살폈다.
그가 온 곳은 한국에서 가장 큰 게이트가 열린 곳이다.
블랙홀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이 중에서 이들의 출현 여부를 두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인구 밀도와 어스 블랙홀의 연관성이란 논문이 제기한 가설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면 홀이 커지고 더 많아진다는 거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표본이 있었기에 이건 정설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없는 곳에 홀이 열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저것들이 생각이란 걸 하고 움직인다면.’
그리고 이 전투에 힘을 쏟았다면, 자신이라도 대도시에 문을 열 것이다.
인간을 경험했다면 그리할 것이다.
대도시 한복판이라면 수틀린다고 핵무기를 쏠 수는 없지 않나.
아니, 새로 개발했다는 전략 병기를 쓸 수도 없다.
피닉스 팀장이란 지위는 이런저런 정보가 자연스레 들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연호는 새로 개발한 병기를 알았다.
지우개라고 불렀던가.
그리 부를 만했다. 광학 에너지를 한데 모아서 휘발시키는 종류의 무기인데.
방사능 걱정 없이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말 그대로 지워 버릴 수 있었다.
대신 그 안에 있는 게 사람이건 말건, 다 죽는 게 문제지.
도시 내에 홀이 열리면 일단 막고 봐야 하니, 레이저 지우개를 비로 쓸 수는 없다.
대피하고 쏘려고 하면 인베이더가 이미 사방으로 흩어진 뒤겠지.
‘영리하긴 하네.’
인베이더는 멍청하지 않았다.
“윙 나이트도 나오는데, 구경만 하십니까?”
홀로그램과 육안, 감각을 통해 전장을 구경하는데 옆으로 누가 바짝 붙는다.
강호응이었다.
처남이자, 엑스큐라시 화랑의 팀장.
연호와 하는 일의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레벨의 특수종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안 나서도 뭐.”
피닉스 팀 저격수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무전이 울리기 시작했고.
퍽- 하고 윙 나이트가 떨어졌다.
“제가 대기시켜 둔…….”
말하다 말고 유연호는 입을 다물었다.
“저 아닙니다.”
팀원의 말 때문이다.
“하하, 사실 변신족에도 저격 훈련을…….”
강호응도 준비한 한 수를 자랑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또한 비슷한 연락을 받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NS로군요.”
호응이 먼저 말했다.
“아들놈이 너무 잘나다 보니. 흠.”
헛기침한 유연호는 묵묵히 전장을 바라봤다.
강호응도 마찬가지다.
뻘쭘한 공기가 둘 사이를 지나쳤다.
이 전투, 이 전장, 질 싸움은 아니었으니까.
둘 다 지금이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언노운이고 뭐고 간에, 네임드가 다발로 나오지 않는 이상.
이 정도는 감당할 만했으니까.
문제는 이다음이지.
그 예언자가.
‘인류 멸망을 부르짖었다면.’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