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87화 (387/488)

387. 룰루랄라

서울로 돌아오는 건 금방이었다.

오자마자 간부 회의를 열었다.

아니, 이미 회의 중이었고 내가 늦게 참여한 셈이 됐다.

회의 주체자는 팬더 형.

일 하나는 참 잘하는 양반이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착착 진행 중이잖나.

그게 무슨 일이든 말이다.

전부 모인 건 아니었는지, 기남이를 비롯해 몇 명이 안 보였다.

“정기남이랑 도안결은 외부 임무 중.”

우미호가 내 눈빛만 보고 말했다.

눈치 하나는 정말 여우 귀신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정확히는 정기남의 불멸자 팀 일부.

도안결의 변신족 팀.

정아 누나의 저격 팀이 자리를 비웠다.

어머니도 강릉에 남았다.

아버지의 부탁이 반, 강릉에 생길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게 반이었다.

딱히 어머니 걱정을 하진 않았다.

내가 상대해 본 결과다.

까다로운 상대이긴 했지만, 무리다 싶을 때 몸 빼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강슬혜 여사께서는 아니다 싶으면 몸을 빼실 것이고.

목숨 걸고 사람 구하는 취미는 없으시니까.

“빌어먹을 일이 발생했습니다.”

팬더 형이 회의실 중앙에 섰다.

둥글게 만든 테이블에 날 포함한 간부가 다 모였다.

강릉에서 나온 언노운 인베이더를 상대한 게 대략 4시간 전이었다.

4시간,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반대로 꽤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인류는 그동안 수차례 인베이더와 싸웠다.

처음에 인베이더를 마주했을 때는, 눈먼 개부터 해서 모든 개체가 전부 언노운이었다.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온 거니까.

이후 하나씩 숫자를 매겨 가며 적의 정체를 규정지었다.

그 경험, 피와 땀, 삶과 죽음을 팔아 산 경험이 있기에.

4시간이면 상대를 규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현 시간을 기준으로 4시간 8분 전, 전라남도 해남에서 언노운 인베이더가 출현했습니다.”

팬더 형의 말투는 급하지 않았다.

열을 팍팍 내며 얘기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담담한 말투였다.

“언노운 인베이더는 크게 네 개의 분류로 보입니다. 해남에서 시작한 이후, 전부 5분 이내로 언노운 인베이더가 출현, 현 시간까지 다른 종류는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새로운 개체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선 그 가능성은 저조합니다.”

열린 게이트의 숫자, 나온 인베이더의 규모, 생성된 홀의 빈도, 판독기로 확인한 에너지 총량.

모든 걸 종합해서 내린 결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현재 판단으로 총 네 종류의 인베이더가 새로이 나타났다는 것.

첫 번째 종류, 대강 흡혈귀라 칭하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상대했던 종류였다.

나체로 나온 개체가 있고, 망토를 두르고 나온 개체가 있는데.

나체가 더 하위 버전이었다.

특징은 고속 재생과 주문을 사용하며 인육을 씹고 피를 마신다는 점.

여기서 놀랄 점은 인베이더가 마법을 쓴다는 것이다.

뭐, 몹시 놀랄 일이지만, 겨우 이 정도에 놀라긴 일렀다.

두 번째 타입.

솔져 류다.

이 개 같은 인베이더는 투사체를 쏜다.

왼손이 있어야 할 부위에 총구 비슷한 게 달렸고.

거기서 총탄을 갈겼다.

왼손이 총구라면. 오른팔에는 초진동 블레이드가 달렸다.

신박한 무장이었다.

마치 NS의 레일건·단분자 커터 무장과 비슷하지 않나.

신기하긴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대강 이유는 짐작 가니까.

하위 개체는 솔져.

그보다 상위 개체는 제너럴.

이렇게 이름 지었단다.

그리고 제너럴 급은 몇 가지 타입으로 또 나누긴 했는데, 이들은 초능력을 썼다.

쉽게 말해서 총 쏘고 칼을 휘두르며 초능력까지 쓰는 인베이더라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야수형이라고 보면 편합니다. 이쪽은 키메라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올드 포스, 엑스큐라시, 협회, 연맹.

모두가 단숨에 뭉쳐서 인베이더를 규정했고.

지침이 내려왔다. 그걸 토대로 팬더 형은 설명을 이어 가는 중이었다.

세 번째 타입은 키메라.

말 대가리에 뱀 꼬리 따위가 달린 놈들도 있고.

뱀 대가리에 말 몸뚱이가 달린 놈도 있다.

몸통도 물론 자유분방하다.

비늘이 달린 놈.

근육이 불거진 놈.

이쪽은 하위, 상위 개체를 딱히 나누지 않았다.

형태가 너무 제각각이었으니까.

네 번째 타입은 휠 나이트의 진화형으로 보였다.

기본 타입은 아이언 쏜즈, 가시 철갑병이다.

그보다 상위 개체는 윙 나이트.

날개 달린 갑주의 인베이더다.

그 외 거신병이라 부를 만큼 덩치 큰 갑옷 덩어리도 있었다.

이쪽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윙 나이트는 전술적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아이언 쏜즈를 통제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건 뭐, 어느 하나 쉽게 상대할 놈들이 없네.

물론 이게 전부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중봉 팀장님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는데.”

팬더 형이 말을 끊었다. 숨을 짧게 몰아쉰다. 난 팔짱을 끼며 경청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입을 다물고 팬더 형만 바라봤다.

테이블 중앙에 몇 가지 홀로그램을 띄우며 설명하던 팬더 형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홀로그램 영상이 사라지고 잔상으로 인해 남은 빛이 팬더 형의 얼굴을 스쳤다.

파랗게 빛나는 얼굴로, 팬더 형이 마저 말했다.

“인지 능력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습니다. 즉, 이들은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종류가 다양하든 말든.

인류는 언노운 인베이더를 상대해 봤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다른 얘기지.

인베이더가 말을 한다. 충격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게 음, 우리 쪽 사람이 충격받을 일은 또 아니긴 하다.

경험이 이래서 중요하다니까.

“결국, 이렇게 됐다는 거니까.”

우미호가 말했다.

“우린 우리 할 일을 해야지.”

이중봉 팀장이 일어나며 말을 잇는다.

그렇다.

상대가 언노운이든, 주둥이 대신 의념을 전하든 말든.

알 게 뭐람.

그런다고 그 새끼들이 사람 안 죽이고 악수나 청하는 것도 아니고.

“할 일 합시다.”

내가 회의의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어디까지나 정보 전달의 의도로 모인 회의였다.

할 일은 이미 정해뒀다.

뭐, 장비나 기타 보급 정비를 위해 모일 필요도 있었고.

이미 나간 세 개 팀은 본사에 있다가 정비를 끝내고 ‘먼저’ 나간 거지.

안 돌아온 게 아니었다.

“……퇴사 고프다.”

뒤에서 정직이가 희미하게 속삭였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내 귀에 그 목소리가 걸렸다.

난 반쯤 장난으로 말했다.

“한정직, 네가 퇴사할 때는 시체가 됐을 때뿐이다.”

진짜 농담이었다.

이런 걸 진담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런데 왜 다들 웃질 않는 건지.

“후.”

한숨 푹 내쉬고 나간 요한 형을 시작으로 다들 자리를 비웠다.

“……다른 팀과 공조로 움직일 거니까 호흡 천천히 가져갑시다.”

팬더 형이 날 힐끗 보며 말하고 돌아섰다.

아니, 웃으라고 한 얘기라니까?

“독한 새끼.”

우미호는 그 말만 남기고 나섰다.

진정한 일류는 힘들 때 웃어야 하는 법인데.

여기서 일류는 나뿐이었다.

“하하하하하!”

그래서 나 혼자만 웃었다.

그나저나 혜민이는 괜찮으려나?

할아버지가 같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현 사태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러시아도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텐데.

걱정은 접어 뒀다.

그 강혜민이다. 할아버지가 없더라도 쉽게 당할 애가 아니었다.

마리아도 같이 있지 않나.

그래도 연락은 하나 남겨 뒀다.

[나] 살아 있으면 점이라도 찍어서 보내라.

40분 뒤, 점 하나만 찍은 답장이 왔다.

그걸 보며 난 혜민이가 참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이게 점만 찍어서 보내라고 했더니, 정말 점만 찍어서 보내?

하, 강혜민.

거기서 다른 남자라도 만난 거냐?

그럼 너 진짜, 내가 몹시.

축복해 준다.

룰루랄라.

“피해애애애!”

판독기를 통해 터진 경보음.

그걸 토대로 움직인 경로,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소리가 먼저 들렸다.

단숨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리니, 열린 홀이 보였다.

터진 연막, 그 밑으로 이어진 긴 핏자국.

핏자국의 끝, 목소리의 주인이 보였다.

불멸자다.

연막 안에서 우웅 하는 떨림과 함께 크헝 하는 괴성이 들렸다.

적은 키메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얼마나 급하면 불멸자가 저렇게 큰 목소리로 외쳤을까 하는 생각도.

불멸자는 조용함을 미덕으로 삼는 법인데.

이해할 만했다.

양다리를 잘린 채, 바닥을 기는 중이었으니.

“거기, 피하라고.”

날 발견했는지 희미해진 목소리로 쓰러진 불멸자가 말한다.

난 그 앞에서 그의 양다리 부근을 와이어를 풀어 꽉 묶었다.

일단 피라도 덜 흘리면 좀 낫겠지.

불멸자니까 뒈지진 않을 거 아닌가.

“누, 누, 구?”

기절하기 전까지 이리 입을 터는 걸 보니, 수다쟁이가 분명했다.

“지나가던 회사 대표.”

목을 좌우로 꺾고 앞을 바라봤다.

연막 사이로 길게 늘어진 큰 그림자가 보였다.

당최 그림자만 보면 그 모습을 추측조차 할 수 없을 괴이한 형태였다.

곧 놈이 연막을 뚫고 나왔다.

말의 몸통에 사자 머리를 단 키메라가 크르릉 하며 콧김을 뿜는다.

콧김에 연기가 섞여 나왔다.

브레스를 뿜는 키메라가 상대였다.

뭐, 위기감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봤자 짐승 새끼지 뭐.

“씹, 부식탄?”

인류는 수없이 인베이더를 상대했다.

아무리 언노운이 상대라도 지침은 금방 만들어졌다.

나온 상대는 솔져.

가진 무기는 투사체와 근접 무기.

단순한 무장 형태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되려 위협적인 적.

위협적이다.

상대는 총을 쏠 줄 알았고 칼을 다룰 줄 알았으며.

전략적 움직임을 보인다.

무엇보다 왼손에 달린 총구는 두 개의 탄을 번갈아 쏜다.

하나는 부식탄.

마치 인간의 옥토퍼스탄을 흉내 낸 것 같았다.

부식은 맞는 순간 터지며 염산처럼 몸을 태운다. 방검방탄복 따위로 막을 수 없었다.

방화복도 무용지물이었다.

또 하나의 탄은 송곳탄.

이건 부식탄의 반대로, 관통에 특화되어 있다.

끝이 뾰족한 작은 화살과도 같은 탄알인데.

이 또한 방검방탄복이 무용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법에 익숙해졌다곤 해도.

그 익숙함 뒤에는 희생이 있었다.

희생 덕에 익숙함과 안전한 지침이 만들어진 거다.

고로 언노운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건 위험을 동반한다.

‘재수 오지게 없네.’

어릴 때 했던 문신이 현재까지 남아, 문신쟁이란 별명의 불멸자였다.

어찌어찌 화림에서 괜찮은 지위에 올랐고 여자친구도 생겼는데.

‘여기서 조지네.’

인생의 끝자락이 보인다.

저 부식탄은 불멸자의 몸이고 뭐고 간에 녹인다.

전신이 녹아 없어지면 불멸자의 재생력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저 인베이더는 자신이 불멸자인 걸 아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까지 앞을 막던 변신족의 머리통을 노리고 쏘던 송곳탄 대신 부식탄을 갈길 리가 없었다.

“시이발.”

문신남은 욕설과 함께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반쯤 깨진 페이스 가드 너머로 솔져로 지칭한 인베이더가 왼손 총구를 든다.

오른손에 든 초진동 나이프가 지이잉 하고 떨리는 게 보였다.

모든 게 느려졌다.

죽음이 다가온다. 죽음은 명확한 모습으로 도래했다.

눈깔은 가운데 하나, 귀는 납작하게 붙었고 머리는 동그랗다.

기계를 인간 형태로 변형시킨 것 같았다.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진다면 저런 형태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만한 그런 모습.

좌우 다리는 관절 부위에 복잡한 기계 장치 따위가 달렸다.

그 장치 덕분에 놈은 고속 이동이 가능했다.

변신족 대쉬만큼은 아니어도 불멸자의 육체 능력은 상회하는 수준이니.

‘희연아 미안.’

죽음 직전, 약혼자에게 속으로 사과한 문신남은 최후의 발악을 준비했다.

문신남은 수류탄 하나를 쥐고 당겼다.

마지막 순간, 그냥 당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놈들의 안면에 폭죽이라도 터트려 줄 요량이었다.

늘어진 상념이 끝나며 인베이더가 총구를 겨누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한 놈이 쏘는 건 어찌어찌 피하겠지만, 상대는 여섯이다. 그들이 화망을 구성한다.

인베이더가 화망이라니.

황당했다.

그 탓에 죽은 동료가 셋이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그리 생각하며 수류탄을 쥔 손에 힘을 주는데, 여섯의 인베이더 머리 위에서 빛이 흘렀다.

스르륵.

얇은 선이었다. 소리는 없으나 빛은 뿌려진, 그 빛이 고작 눈이 부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그런 빛줄기.

‘언제?’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조용했고 은밀했다.

솔져 여섯의 머리 위.

누군가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중이었다.

손에는 긴 막대를 쥐었고. 그 막대 끝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긴 채찍이 이어져 내려왔다.

빛의 채찍은 휘어지며 여섯의 인베이더를 전부 스쳤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찌-이잉!

인류가 만들어 낸 최강의 병기는 무엇인가.

누구라도 이것을 이름 첫 줄에 올릴 것이다.

광학병기.

레이저 채찍이 인베이더 여섯을 썰었다.

부조리한 광경이었다.

이쪽은 발악하며 싸워서 죽음을 목전에 뒀는데.

그 여섯의 인베이더를 홀로 단숨에 썰어버리다니.

문신남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내려선 이는 불멸자다.

“상황 확인.”

회사 때부터 느꼈지만, 성격 지랄 맞기로는 세최특 이상인 개또라이 불멸자.

“NS 정기남, 전투 합류한다.”

순혈의 정기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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