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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83화 (383/488)

383. 사이비 예언가

“그럼 아야세 씨의 말씀은?”

“네? 그, 네, 뭐라고 하셨죠?”

여자는 순수라는 단어와 퍽 잘 어울리는 표정과 태도를 보였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말했다.

“미래를 보신다고요?”

“아, 네, 맞아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자가 수줍게 고개를 숙인다.

“사실 예언이 불가능하다는 건 이제까지 수많은 마법사와 과학자가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관측된 미래는 누군가가 아는 순간부터 가변성을 지닌다는 거죠.”

“네? 말이 너무 어려워요.”

여자가 난감해하며 울상을 지었다.

“미래는 항상 변한다는 거죠.”

진행자는 훌륭했다.

당황하는 법 없이 대수롭지 않게 풀어 설명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변해요.”

“그럼 예언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겠군요?”

미래를 말하는 건, 곧 누가 그걸 듣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 미래를 아는 순간, 변한다.

이게 미래 가변성 법칙이었다.

운명이란 없다는 말과 같은 그런 법칙.

“아니요. 돼요.”

“그러니까 그, 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모든 예언가는 초능 특수종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초능 특수종의 자신의 능력 발현 프로세스를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아랫배에 힘주고 집중하면 되는데요?”

가령 한정직에게 광변환의 요령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할 것이고.

“살기 같은 걸 담아서 노려보면 돼.”

로즈에게 메두사의 눈 작동 방식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연한 거다.

초능이란 본능의 일부다.

변신족이 변신하는 걸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저런 질문은.

‘똑똑한 척만 하는 머저리.’

이런 평가를 받을 만했다.

홀로그램 너머, 우미호는 큰 눈을 깜빡이는 일본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홀로그램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래도 몇 가지 눈에 띄는 건 있었다.

“그러니까 음, 전부 다 알 수는 없고요오, 고정된 건 있거든요오. 그걸 계속 쫓다 보면 보여요오.”

일단 하나는 저 여자가 매우 뛰어난 연기자거나, 진짜 초능 특수종이라는 것.

말투 하나, 손짓하나.

모든 건 단서고 증거가 된다.

우미호는 그걸 전부 쪼개서 확인했고 살폈다.

그런데도 어색함을 찾을 수 없었다.

하물며 말끝을 늘리며 눈치를 보는 태도라니.

‘연기자라면.’

연기력 자체를 초능이라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불멸자의 눈을 속이는 연기자는 흔치 않으므로.

하물며 이리 작정하고 빈틈을 찾는 판에야.

우미호는 광익과의 대련으로 부러진 오른팔 대신 왼손을 들어 홀로그램을 뒤로 돌렸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여자는.

아야세 히카리.

최근 광익만큼이나 유명해진 여자였다.

별명은 순수의 예언가.

1년에 한 번 폭설이 내리면 집 밖에 나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시골 마을 출신.

이제까지 그녀가 능력을 발휘했던 건 천재지변에 관한 게 대부분이었다.

‘폭설, 폭우, 지진 예측.’

그녀는 마을에서 무녀 취급을 받았다.

이후 그녀의 능력이 주목받게 된 건, 올드 포스 출신 공군 비행사가 불시착하게 되면서부터다.

비행사를 극진히 간호했고, 그러면서 마을 사정을 들은 정부 출신 특수종은 그녀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안.

그렇게 이 여자는 도시에 나타났다.

‘드라마로 만들어도 되겠어.’

너무 작위적이다.

차라리 일본 정부가 숨겨둔 비밀 병기라고 하는 쪽이 더 와닿을 정도로.

하지만 그 작위적인 상황이 오히려 믿음을 더 부추기는 상황이었다.

윗선에 멍청한 새끼들만 모아 놓은 것도 아닌데, 과연 저런 스토리를 짰을까 하는 거다.

‘그럴듯하긴 해.’

거기에 말하는 걸 보니 능력의 범주도 명확했다.

사소한 예언은 할 수 없다.

그녀의 능력을 정확히 분류하자면 두 가지다.

“아, 미래가 눈앞에 바로 보이기도 해요. 물컵 조심하세요.”

홀로그램 속 여자가 불현듯 던진 한마디에 진행자가 고개를 갸웃하기도 전이다.

카메라 바깥에서 튀어나온 손이 뭔가를 전해 주다가 컵을 쳤다.

진행자의 바지에 물이 쏟아졌다.

여자가 말한 뒤, 겨우 10초 내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기 예지.’

장기 예지는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단기 예지는 가능하다.

가끔 일부 과학자 무리가 주장하기를 통찰력을 타고나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확실히 차이가 있지.’

바지가 젖은 진행자는 난감하게 웃었다.

“미래에 인류는, 음, 멸망해요.”

그리고 여자가 말을 끝맺는다.

저 여자가 유명해진 이유다.

인류멸망설.

어떤 예언자도 말할 수 없는 걸 말하니까.

미래가 보인다고 해도 저런 말을 하는 미친 인간은 없다.

“지금 말했으니까 그 예언은 변하는 건 아닐까요? 미래는 가변적이니까.”

“아니요. 이건 안 변해요.”

딱히 설명은 없다. 그저 담담한 눈으로 할 말을 할 뿐.

저게 저 여자의 두 번째 능력.

고정된 미래를 예언하는 것.

우미호는 홀로그램을 멈추고 생각을 이어 갔다.

‘나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고.’

일단 초능 특수종끼리 보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지 모르니.

회의 안건으로 삼고 얘기를 나눠 볼 일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미친 예언가가 일본이 만든 종이 인형인지.

‘진짜 예언가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고정형 미래라.

그것도 암울한 예언이라.

이게 진짜라면 사회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겠지만.

올드 포스나 엑스큐라시가 그걸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단숨에 질서가 무너질 일은 없다.

하지만 서서히 갉아 먹힐 순 있었다.

평화가 내려앉은 도시가 끼기긱 하는 불쾌한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너! 왜! 미호! 팔!”

귀태 형은 서서히 한국어를 잃어가는 중이다.

머리통 몇 대 맞으면 원래대로 돌아오곤 하니까.

요한 형이 때려 주면 좋겠지만, 진즉에 저 한쪽에 찌그러진 캔처럼 구겨져 누워 있었으니.

아, 그럼 누가 하리.

나밖에 남은 사람이 없다.

달려드는 귀태 형의 움직임에 맞춰 나아가고.

그사이 번쩍하고 나타난 정직이의 칼을 피한다.

또 그 틈에 로즈가 나한테 메두사의 눈으로 수작을 걸기에.

“핫!”

기합으로 날려 줬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복합적인 이유라 하겠다.

불멸자의 감으로 사이오닉 에너지를 느끼고.

언령을 익힌 감각으로 야성의 기세를 뿜는다.

메두사의 눈은 초능.

초능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만드는 능력이다.

그 결과는 근육 경직.

걸리자마자 기합 내지르면서 기세로 풀면 되는 거다.

변신족은 근성이지.

“역시 내 아들.”

어머니가 한쪽에 서서 감탄했다.

이 근성은 어머니에게 배웠다.

방해를 물리치고 귀태 형의 앞에 도달한 난 발을 쭉 뻗어서 올렸다.

기척을 감추고 속인 뒤 뻗는, 강각의 앞차기다.

최근 수련하는 종류의 기술이었다.

당연하지만, 귀태 형은 피하지 못했다.

왼 주먹으로 훅을 날릴 것처럼 기척을 흘렸거든.

턱주가리를 맞은 귀태 형이 허공을 난다.

그사이 왼 주먹을 휘둘러 정직이 뒤통수도 콩하고 때려 줬다.

내 딱밤에 정직이 머리에 쓴 보호장구가 깨졌다.

그래도 다치진 않을 거다.

저 보호구에 무려 트라이앵글 필드가 걸려 있으니까.

로즈는 덤비지 않으니.

오늘도 내가 이겼다.

기쁨을 담아, 난 외쳤다.

“내가 챔피언이다!”

그야말로 본능의 변신족다운 외침이다.

“……변신족이라고 다 저러진 않는다.”

내 외침을 들은 도안결이 중얼거렸다.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 그건?

“자랑스럽다. 내 아들!”

역시 어머니뿐이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내 아들!”

어머니 말이 조금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않은’이 빠졌어요.

별일은 아니었다. 일상이다.

“미이친 새애끼.”

앞니가 털린 기남이는 아까부터 욕을 내뱉고 있다.

발음을 똑바로 하려고 되게 길게 말을 늘이면서.

마리가 심각한 얼굴로 그 옆에 서서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고.

쟤네 둘이 진짜 연애하나.

안 되지,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연애 반대다.

“앞니 없어도 괜찮네요.”

그사이 마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괜찮다는 거냐.

반병신을 만들어 놨는데.

‘다시 잘 날 거다’라는 의미로 말한 거라면 그래, 괜찮다.

정기남이는 최근에 재생력이 크게 늘었다. 이게 다 내 덕 아니겠나.

나와 한 대련 덕분이잖아.

“무슨 미친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미호 호출이야.”

로즈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말했다.

본능의 변신족에서 회사의 대표가 될 시간이었다.

“회의실에서 보자고요.”

오늘 회의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예언가 얘기다.

난 반쯤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중인데, 다들 심각하게 바라보는 중이다.

그 단기 예지 몇 번 맞았다고 고정된 미래가 있다는 말을 믿어?

이거 순수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하여간 이건 이거고.

난 뜨끈한 물로 씻으며 오늘 대련을 곱씹었다.

최근 난 불멸과 변신의 콜라보레이션에 관해 연구 중이었다.

대단한 연구라기보다는.

불멸의 감각을 유지하며 변신의 능력을 쓰는 걸 연습 중이다.

이전에도 하긴 했는데.

그걸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본능을 앞세워 몸으로 덤빈다고 해서 내 재생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만.

불멸의 장점은 재생보다는 감각에 있으니까.

그걸 십분 살릴 수 있다면 더 효율적이란 거다.

효율적인 방식은 곧 더 높은 수준의 전투력이 될 수 있다.

내가 정말 회사 내 동료를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란 거다.

다 뜻이 있어서 이런 거지.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다 씻고 드라이어로 머리까지 말린 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로션도 착착 발랐다.

회의실에 도착하니, 나 빼고 다 있었다.

어머니까지 계셨으니,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거다.

오른팔이 부러진 우미호와.

왼 다리가 부러진 팬더 형이 좌우로 서서 홀로그램을 조작 중이었다.

두 명의 부상은 사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본능을 십분 폭발시키며 불멸의 감각을 북돋다가 생긴 부작용 같은 거다.

그러니까 변신한 뒤, 손을 쓰다가 좀 과하게 썼다.

피할 줄 알았는데 못 피하더라고.

“이놈, 이놈, 유광익 이놈.”

깨어난 귀태 형이 날 애타게 불렀다.

미호 팔 부러뜨렸다고 우정은 잊은 채, 자꾸 덤빈다.

“응. 나 여기 있어.”

“그만해라. 그러다 진짜 죽어.”

구겨져 있던 요한 형도 일어나서 합류했다.

아니, 형 입가에 묻은 피는 닦고 와야지.

“홀로그램부터 보고 얘기하죠.”

다들 한마디씩 하면 여기가 곧 시장 바닥이 될 거다.

우미호는 귀태 형을 한번 노려보곤 곧바로 홀로그램을 켰다.

뻔한 영상이었다.

인류멸망을 말하는 예언가.

뭐, 이미 봤다.

뒤에 붙은 쿠키 영상은 처음이었다.

우미호가 회사 힘을 이용해 얻은 영상이었다.

별 건 아니었다.

사이비 예언가가 인류멸망을 말한 뒤, 단기 예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맞춘 거다.

방송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게, 긴 미래는 사흘 뒤까지 말하기도 했으니까.

사흘 뒤 미래는 변할 수 있다. 미래는 가변성이란 법칙이 존재함으로.

하지만 이후 저들의 미래는 전부 저 여자가 말한 대로 됐다고 한다.

“여기까지입니다. 이게 진짜라면, 그때 대표가 느꼈던 불길함 직감도 얽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 저딴 사이비랑 내 직감을 동급으로 보다니.

“차라리 연기나 장난이었다면 좋겠는데,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모았습니다.”

우미호가 말한다. 난 이 회의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으면 확인해 보면 되지 않나.

“가서 물어볼까?”

내가 손을 들고 말하자.

우미호의 눈이 번쩍였다.

“직접 가게?”

“뭐, 그럴 수도 있지.”

못 갈 건 없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지. 대표가 직접 가서 이 일의 진실을 파헤치는 거로 하면, 필요한 자원이나 인력은 없어도 되겠고. 이쪽도 멜팅 블랙홀 사건도 조사로 바쁘니까. 그 건으로 이중봉 팀장님이 계속 외부에 계시는 판이다.”

속사포다.

말을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표 혼자 가는 거로 결정. 다행히도 그녀가 내일 한국에 오겠다고 하니, 거기서 보면 될 것 같다.”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이다. 우미호는 그 찰나의 틈에 먼저 말했다.

“위치는 강릉, 직접 발로 뛰어가면 시간 딱 맞을 것 같다.”

뭔가 기분이.

“어머, 그럼 나랑 같이 갈까? 아들? 오랜만에 오붓하게 둘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사이, 어머니가 툭 끼어들었다.

“네, 뭐.”

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저 사이비 예언가의 정체를 확인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니까.

대표와 그 모친이 떠난 회의실.

우미호는 모두의 시선을 받았다.

“잘했다. 진짜 잘했어.”

욕구불만에 휩싸인 채로 미친 듯이 덤비는 대표를 내보냈다.

그게 이 회의의 핵심이었다.

강혜민이 없으니 어째 더 날뛰는 것 같은 대표다.

“흠.”

정기남조차 고개를 슬쩍 끄덕일 정도.

그만큼 대표란 새끼가 패악질을 부린 게 컸다.

도안결이 은근히 엄지를 들었다.

안 어울리는 행동이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튼튼한 변신족이란 이유로 수없이 맞아야 했으니.

자존심 덕에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 이제 좀 쉬죠.”

우미호가 말했다.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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