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어, 아니네?
부러진 코를 억지로 끼워 맞추니 짜릿한 통증이 뇌를 자극했다.
“끄음. 이 맛이지.”
통증은 살아 있다는 방증.
오랜 시간 전장에서 살아온 불멸자에게 이 정도 통증은 쾌감에 가깝다.
주일호는 질끔 흘린 눈물을 닦고 발밑에 널브러진 다중 능력자의 코를 걷어찼다.
어찌나 절묘하게 걷어찼는지, 맞은 놈의 콧대가 똑하고 부러졌다.
적절한 힘과 분배, 묘기에 가까운 발길질이었다.
“발 좀 쓰네.”
옆에서 장가희가 우둑우둑 목을 풀며 말하고.
주일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바닥에 쓰러진 놈이 쌕쌕하고 숨을 몰아쉰다. 맞았다고 비명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미 기절한 뒤였다.
“미친 새끼야, 넌 특별히 최미남 옆방에 넣어 주마.”
생포했다. 흔하지 않은 능력자이니, 세뇌 따위에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귀한 능력을 타고났으니, 고초를 많이 겪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보다 고문에 어울리는 남자는 없다.
소속은 더 라운드.
대외적으로 캘 만한 정보는 다 캤으니, 이제부터는 이 남자의 안에 있는 정보를 캐야 할 시간이다.
만약 이 작자가 더 라운드의 연구 시설을 안다면.
‘NS의 자산이 늘겠지.’
어둠의 세계에서 NS를 부르길 미친 모기 새끼라고 한다.
상대가 프로메테우스든, 아니면 미친 과학 집단이든 상관없이 빨대를 꽂아 그들의 연구 성과 따위를 쭉쭉 빨아먹어 버려 생긴 별명이다.
NS는 그들이 가진 연구, 실험, 기어, 소재 뭐든 씹어 삼킨다.
기업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주는 훌쩍 넘었지만, 현 상황에서 누가 NS를 말리겠나.
올드포스가? 한국 정부가?
엑스큐라시가? 아니면 단군 그룹이?
협회는 아예 보기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다.
특출나며 유일한 세력이 하나 남긴 했다. 마법 연맹이 그들인데.
‘직접 찾아간다고 했으니까.’
지금쯤 대표가 찾아가 연맹주랑 담소라도 나누고 있을 것이다.
“투명화에 염력에 눈으로 레이저도 쐈지?”
장가희가 관통된 어깨를 누른다. 부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주일호도 팔 하나가 없으니,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다.
끔찍한 상대였다.
광익을 만나기 전이였다면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정도로.
“레이저에 염력을 섞은 한 방이 제일 까다로웠지.”
주일호가 답한다. 그 한 방에 제 코가 부러졌다.
반사적으로 피해서 이 정도였지, 못 피했다면 머리가 터졌을 거다.
염력을 응축해서 공기 포탄처럼 쏘는 재주였다.
초능력을 타고난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니, 많을 수가 없었다.
제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반푼이가 태반이니까.
괜히 협회가 제 세력을 키우기 어려운 게 아니다.
불멸자와 변신족 단체는 군대를 꾸릴 수 있지만, 협회는 어렵다.
능력의 격차와 편중이 너무 심하니까.
‘정치 따위야, 내 알 바 아니고.’
현재 특수종 세상의 정세, 그로 인해 생긴 정치적 특수성 따위야.
주일호는 버릇처럼 이어지는 생각을 고이 접어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장가희가 말하며 웃었다. 앞니가 반쯤 깨져서 그 안으로 빛이 스며드는 게 보였다.
반쯤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지만.
주일호도 만족스러웠기에 그도 웃었다.
코가 부러지고 턱이 틀어졌기에 주일호의 미소도 만만치 않았다.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만족스러웠다.
상대는 특수종 세상 뒤편의 강자.
숨은 강자라 불리는 다중 능력자.
아는 사람만 아는 최강 중 하나라 불리는 특수종.
그런 놈을 이겼다.
둘이 힘을 합쳤다지만,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 아닌가.
“존나 보람차네.”
주일호가 담담히 감상을 내뱉었다.
장가희도 그 감상에 동의했다.
더 라운드에 다츠가 있다면.
마법 연맹 스위퍼에도 그렇게 키운 특수종이 있었다.
숨은 강자 중 하나.
주문을 외는 초원의 왕.
말 그대로 사자 변신족에 고위의 스펠 유저인 특수종이었다.
처음 내 앞을 막을 때부터 신나게 입을 털더라고.
“이런 상대를 기다렸다. 내 이름은…….”
굳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없기에 무시하고 달려들었고.
“이야기를 들어라! 내가 바로 주문을 외는 초원의 왕이자…….”
새끼, 말 참 많더라고.
발을 걸고 목을 움켜쥐려는데 허리를 활줄처럼 튕기며 입을 터는 걸 보니, 수다에 진심인 사자였다.
“크헝, 이노옴! 내가 바로…….”
거기까지였다. 발끝에 놈의 정강이가 걸렸다.
괴력의 발길질에 맞은 놈이 꺽 하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고.
놈이 다리를 절뚝이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가 바짝 붙었다.
종으로 회전하는 힘을 이용한 올려 친 주먹에 턱이 들리고.
몸을 회전하며 왼팔만 흑호의 팔로 부분 변신.
변신한 손톱으로 놈의 가슴팍을 뚫어서 옆으로 그었다.
스커억!
자랑은 아니지만, 내 손톱은 어지간한 이세계 금속도 갈라 버린다.
강체도 아니고 스펠 따위로 육체 강도를 올린 것 따위로 막을 순 없다.
“끄어억.”
스위퍼의 수문장이라는 놈이 그렇게 쓰러졌다.
“끄르르, 이 치사한.”
사자가 말한다. 난 진심으로 얘들 머리통 안에 뭐가 들었나 궁금했다.
프로메테우스 수장이란 애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무슨 독특한 능력만 타고나면 다인 줄 아는 것 같다.
노력을 해야지. 노오오오력을.
수없이 싸우고 경험하고 훈련하고.
미흡하다.
최소한 정기남처럼은 굴러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목숨 걸고 싸우는 데 치사한 게 어디 있고 당당한 게 어디 있나.
입털 시간에 주먹 한 번 더 놀리는 게 이득이지.
“멍청이.”
혜민이 뒤따라오면 사자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스위퍼의 본부를 찾는 건 무척 어려웠다.
전뇌공주가 며칠을 끙끙 앓아야 할 정도로 인터넷 세계 전반을 뒤졌음에도 열두 군데로 좁혔을 뿐이다.
그 열두 군데 중 아홉 번째에 잭팟이 뽑히긴 했다.
아니, 이게 당연한 거였으려나?
스위퍼의 기지를 보이는 족족 반파시키긴 했다.
빼갈 수 있는 자료나 기어는 빼내고.
못 빼갈 것 같은 건 불태웠다. 부쉈다. 박살 냈다. 재건 따윈 꿈도 못 꾸게 만들어 놓고 왔다.
덤비는 놈은 반쯤 쥐어 팼고.
올드 포스의 인도 아래 얌전히 범죄의 올가미를 씌웠다.
인프라와 맨파워를 동시에 소거했다.
딱히 작전을 짜고 간 건 아니고.
하다 보니까 이게 효율적인 듯해서 그렇게 했는데.
“통쾌해.”
혜민이 옆에서 말했었다. 그래, 통쾌했다.
감히 누굴 노리고 개수작을 부리나.
그동안 개수작을 부린 업보라 할 수 있었다.
그리 호쾌한 파괴와 진격의 길.
그 앞을 막아선 게 말 많은 사자 수인이었고.
지금 난 스위퍼의 맹주라는 놈을 만나고 싶었다.
“……우린 테러 단체가 아니오.”
스위퍼의 주문쟁이 여럿이 앞길을 막았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였다.
말이 지하지, 깨끗하고 말끔한 건물이었다.
위치는 인도네시아 발리.
이 새끼들 휴양지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
겉으로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호핑 투어 따위를 하더라고.
“그런데 왜 이러는 거요.”
“이건 우리를 적으로 삼는 행위요!”
“말이 안 통하는군!”
“덤빌 거지?”
말하며 쑥하고 손톱을 세웠다. 흑호의 팔을 본 주문쟁이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연맹주 데려와.”
그들을 보며 난 숨도 안 쉬고 말했다.
야생의 살기, 불멸의 언령을 섞었다.
“……끔찍하군.”
주문쟁이 하나가 혀를 내둘렀다.
난 곧 스위퍼의 맹주를 만났다.
지하로 내려간 응접실 따위로 보이는 곳이었다.
올백으로 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
단숨에 내달린 난 상대의 안면을 어루만져 줬다.
“꾸웩!”
“이게 무슨!”
놀란 호위가 덤비려다가 멈췄다.
그 목에 혜민이 총구를 겨눴다.
“스펠 기어라서, 못 피해.”
혜민이 속삭였다. 호위로 나선 여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얘기를 시작해 보자. 너지?”
의심은 좋은 무기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스위퍼의 연맹주는 눈물과 코피가 섞인 콧물, 피와 침을 섞어 흘리며 답했다.
“뭘!”
억울해 보였다.
그래서 몇 대 더 팼다.
“나 아니야!”
그는 자신을 증명했다. 물론 중간에 처절한 과정이 있긴 했다.
“어, 아니네?”
스위퍼는 아는 것도 몇 개 없었다. 최근에 사업 확장에 실패해 이모저모로 타격을 입어서 힘든 상황이라고 했고.
“그럴 여력도 없어!”
애가 자꾸 악을 쓰는 건 탓할 생각이 없었다.
손가락 두 개만 남기고 역방향으로 꺾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난 아량이 넓으니까.
스위퍼 이 자식들 테러 단체와 손을 끊는 건 더럽게 빨랐다.
이건 증거도 없더라고.
난 그렇게 스위퍼 연맹주를 반쯤 패 죽인 뒤, 멋쩍은 미소와 함께 경고했다.
“수작 부리다 걸리면 다시 온다.”
응. 또 보자.
그 뒤로 향한 곳은 연맹 ‘싸우는 시인’.
러시아에 본거지를 둔 그러니까 떳떳한 마법 연맹이다.
공식적으로 만나길 요청하니, 곧바로 약속이 잡혔다.
“나한테 관심 보인 쪽은 여기가 제일이었지. 엄마가 학을 뗐으니까.”
잠깐 기다리는 사이, 혜민이 중얼거렸다.
그랬었구나. 알겠다.
“여기요.”
싸우는 시인은 모스크바에서 20km 떨어진 동토에 기지를 지었다.
둥근 원형의 기지였다.
난 그 입구에서 안내인을 만났고.
“NS의 유광익.”
실시간 통역기, 통역사가 붙은 채로 이동했다.
안으로 가는 중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고요한 이동이다.
침묵과 함께하는 발걸음의 끝, 방호 주문이 떡칠 된 방에 들어섰다.
그 앞에 러시아 미녀가 보였다.
금발의 푸른 눈, 하지만 몸만큼은 야수의 그것과 닮은, 장가희 선생의 서양 버전이었다.
“내가 싸우는 시인의 맹주다.”
그리고 난 그걸 듣자마자 덤볐다.
“미친 개자식이!”
호위 중 하나가 나섰다. 수십 개의 주문 따위가 허공을 채웠고.
난 몸뚱이를 믿고 주문을 뚫었다.
그렇게 한 손에 서양 근육질 미녀의 목을 쥐었다.
날이 선 흑호의 발톱이 그녀의 목을 콕하고 찌르자 피가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너야?”
물었다.
그녀는 알아듣지 못했다. 혜민이 통역사를 보며 고갯짓을 했다.
곧 통역이 시작됐다.
“너냐고.”
“뭘 묻는 거냐?”
“이번에 프로메테우스랑 손잡고 쎄쎄쎄 한 거 누구냐?”
통역사가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그는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난 답을 얻었다.
대뜸 맞다고 할 놈이 어디 있을까.
자, 찜질을 시작해 보자.
“완전 또라이 아니야!”
이런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긴 하네.
“실수야.”
싸우는 시인도 아니네.
그럼 다음은?
“일루미나티?”
“가자.”
싸우는 시인 연맹은 제 결백을 증명했다.
그 결백을 위해 맹주가 고생하긴 했는데, 스위퍼의 맹주에 비하면 뭐, 약과다.
그사이 덤빈 호위 오십 명이 나가떨어지는 일이 있긴 했다.
어설프게 들고 덤빈 기어 수십 개가 부서지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어디 내 탓인가.
다 프로메테우스랑 손잡은 놈들 탓이지.
다음 목적지는 유럽의 일루미나티, 유구한 역사의 마법 연맹이었다.
“뭐 하자는 겁니까? 이게 무차별 테러와 뭐가 다른 겁니까?”
일루미나티의 맹주는 올드 포스 윗선과 연락했다.
그리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미친 세최특이 하는 짓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 그게 우리가 시킨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올드 포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안 시켰다고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후 대화는 짧게 요약할 수 있었다.
일루미나티가 한 말은 딱 하나였다.
‘니들 이거 안 말리냐?’
올드포스의 입장도 딱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린 몰라.’
“퍽커!”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틀 전에 NS에서 공식 면담 요청이 왔다.
직전에 싸우는 시인이 그 면담을 받아들여 생긴 일을 안다.
일루미나티 연맹주는 손이 떨렸다.
‘어떻게 하지?’
프로메테우스에 고대의 저주를 판 건 그들이었다.
스위퍼와 싸우는 시인은 죄도 안 짓고 쥐어 터졌다.
덜덜덜.
쥐고 있던 잔이 흔들린다. 잔 안에 있던 홍차가 바닥에 흘렀다.
‘걸리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옆에는 스펠 유저 깡패 강혜민도 함께다.
주문으로는 무엇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연맹주는 머리를 굴려 합당한 행동을 취했다.
증거인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