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 모르면 맞아야지
‘상황 따위가 갑자기 심하게 변함’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있다.
그 단어를 격변이라 한다.
그 말 그대로, 상황이 변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리더가 죽었다.
특수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세상이 현 상태로 개편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테러 단체의 수장이 죽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일은 아무리 쉬쉬한다고 해도 금세 소문이 퍼지는 법이었다.
-프로메테우스 대가리 죽음. 목이 똑 떨어짐.
-직접 보심?
-우리 형이 NS 직원인데, 싸우는 거 봤다고 함. 대표님이 갑자기 팍, 휙 하더니 어떤 여자 목이 썩둑 잘렸다고 하더라.
-크, 이걸 또 NS가?
-크, 이걸 또 세최특이?
-크, 국뽕이 차고 넘쳐흘러. 다음 신청곡은 엠씨더맥스의 넘쳐흘러.
-윗댓 뭐냐, 아재 냄새가 넘쳐흐르네.
-응, 너도.
반쯤은 개소리가 섞였지만, 커뮤니티에서도 미친 듯이 떠들었고.
정부, 단군, 사이오닉 협회 각 계층의 요인도 전부 들은 이야기였다.
본 눈이 많아서 숨길 수가 없었다.
이동훈은 이걸 차라리 기회로 삼기로 했다.
“애들아, 프로메테우스 대가리 진짜 죽었다. 세최특이 죽인 거 맞다.”
철없는 애들 몇을 풀어서 작정하고 소문을 퍼트렸다.
테러 단체 하나를 제대로 박살 낸 위업이다.
NS의 이름은 이전에도 드높았지만, 이번 일로 극점을 찍었다.
소위 몇몇 특수종 세계를 탐구하는 학자는 이제 올드포스와 엑스큐라시, 사이오닉 협회, 마법연맹에 이어 NS를 특수종 세상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물론 나오기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달랑 회사 하나가 세계의 주축 기둥 중 하나는 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만한 위업을 쌓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했다.
‘서울 테러의 날’.
프로메테우스가 시작한 그 사건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끝났다.
그리고 이 사건은 NS를 주목하고 있던 이들에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불멸교주는 더 그랬다.
‘저거, 같은 특수종 맞아?’
절로 그런 소리가 나올 놈이다.
불멸교주는 어울리지 않게도 실리주의자다.
위험은 피하고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 단체를 꾸리는 걸 목표로 삼아 현재의 자리를 고수한 남자다.
그런 남자에게 세최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보였다.
‘나도 못 이기겠는데?’
불멸교주는 드론을 통해 송신된 홀로그램을 봤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 세최특과 목이 떨어진 그림자 마녀를.
프로메테우스의 주인, 램 더스트.
자신보다 배는 살아온 괴물 특수종이다.
단일 능력, 오롯이 하나의 초능뿐이지만, 그 능력의 범용성이 미친 존재였다.
‘나도 저렇게 이길 자신은 없는데.’
그림자 마녀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쪽도 못 썼다. 목이 썩둑 잘려 죽었다.
‘흑백 세계는 써 보지도 못했다.’
전장의 흔적만 봐도 알 수 있는 건 많다.
특히나 불멸교주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짚어 내는 걸 특기로 삼았다.
싸움의 향방을 짚어 본다.
반쯤은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하지만, 결과가 이미 정해진 일이라면 그 과정을 짚어 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돌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싸움의 방향을 한쪽으로 몬다.’
‘준비한 걸 꺼내 들게 한다.’
‘차분하게 하나씩 준비한 보따리를 푸는 건 그림자 마녀 쪽.’
‘세최특은 합의라도 본 듯 그 흐름에 따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펑, 기척을 죽여서 목을 치면 끝이다.
그림자 마녀는 대단한 초능 특수종이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전투에 나선 건 얼마 만일까?
1세대의 영웅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소문이 파다한 특수종이었다.
‘십 년? 이십 년?’
그에 반해 세최특은 자신의 커리어를 주먹으로 쌓아 올렸다.
‘전투 감각의 차이.’
승패를 가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영악함이다.
‘세최특은 머리가 좋다.’
그림자 마녀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다면, 흐름만 탔다면.
절대로 저렇게 쉽게 죽을 위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죽었다.
‘강해, 아주 강해.’
세최특의 무력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마주치면, 죽는다.
‘숨어야 하나?’
불멸교주는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진심으로 불멸의 신을 믿는다. 죽지 않는 신의 경지에 다다르길 바란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실리주의자였다.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숨자.’
프로메테우스를 탈탈 털다 보면 불멸교의 턱 밑까지 놈들의 칼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건곤일척의 승부 따위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불멸교는 초대 때부터 핍박을 받은 종교.
그들에겐 초대 시절부터 숨겨 둔 은신처가 많았다.
교주는 그날을 기점으로, 주요 전력만 데리고 잠적했다.
물 밑으로 테러 단체를 배척한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했다.
올드 포스의 새로운 스탠스였으니까.
엑스큐라시도 그랬다.
그렇다고 테러 단체로부터 몰래 뒷돈 받아 처먹은 이들을 다 쳐 내진 않았다.
그랬으면 내분이 먼저 일어났을 테니.
그들은 포용했다.
“봐줄 테니까, 이제부터 잘하자?”
이런 뉘앙스로 테러 단체 관련자들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중에는 테러 단체의 손이 직접 닿은 이들도 있었고, 그들은 별개였다.
프로메테우스가 털렸다.
덕분에 각 단체에 숨은 스파이도 언제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순 없는 법.
전면에 보이는 세상은 고요하다.
아니, 테러 단체의 장을 죽임으로써 축제가 일어날 판이었다.
이 축제가 종이의 앞장이라면 뒷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대규모 숙청, 숙청의 시간이었다.
“내가 곱게 갈 것 같아?”
미합중국 대통령 경호 팀원 중 하나.
그는 불멸교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은 몰랐다.
아니, 멀쩡하던 불멸교가 왜 갑자기 잠적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분위기가 흉흉하기에 윗선과 연락을 시도하다가 딱 걸렸다.
“이 개자식아. 나 원래 너 의심했다.”
평소에 사이가 나쁜 동료가 그를 보며 도금된 치아를 드러냈다.
“의심은.”
분명 몇 번이고 술집에 가서 여자 꾀는 일에 실패해서 그런 거다.
저 새끼는 번번이 자신을 좋다고 하는 여자를 보며 패배감을 느끼는 머저리였다.
“전부 지옥에 데려가 주마.”
스파이는 각오했다. 얌전히 잡히지도, 죽어 주지도 않을 거라고.
동료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그게 테러범의 마지막 기억이자, 잔상이었다.
아마도 평생 되새기게 될 장면이 되리라.
저격수가 그의 머리통을 터트렸으니까.
하지만 그는 불멸자, 쉬이 죽지 않는 존재.
“새끼야. 이제부터 연애는 범고래랑 해야 할 거다.”
동료는 그를 특수 제작된 1인 감옥에 넣었다.
그리고 심해 깊은 곳에 던져 버릴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 부식되지 않은 이세계 금속으로 만든 관이 그의 감옥.
심해 깊은 곳에 빠진 채, 깨어나면 질식사를 반복하는 삶.
불멸자를 죽이는 법이다.
정신을 죽이는 것.
동료는 낄낄 웃으며 스파이를 거뒀다.
비슷한 일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각지에서 NS에 다양한 의뢰와 요청을 넣었다.
그중에는 세최특과 그저 5분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연예인도 있었다.
“광익이 알면 서운하겠는데.”
동훈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가슴이 웅장한데 얼굴은 청순하고, 다소곳하지만 농담을 받아칠 줄 아는 여자.
동훈이 봐도 정말 괜찮은, 평소 광익이 말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의 인터뷰 요청이었다.
하물며 매체를 통한 것도 아니고 그저 팬이라고 팬심을 전하며 한 말이다.
“엄청 서운하겠죠.”
“아니. 미호보다 못한데 왜?”
우미호의 말을 귀태가 받았다.
“……방귀태 양심을 갖춰.”
“사랑에 실패한 남자, 김요한. 미안하다. 네 속을 돌보지 못했다.”
이 시발 새끼가?
김요한은 귀태의 말에 절로 욕이 나올 뻔한 입을 다물었다.
이 새끼는 말하는 게 나날이 재수가 없어졌다.
우미호와 어울려서 그런 것인가.
유광익과 어울려서 그런 것인가.
“진짜로 마음 주고 그런 거 아닙니다. 다 작전이었어요.”
괜한 침묵에 요한이 말했다.
다들 답은 없었다. 요한은 그게 더 불쾌했다.
“……일하자.”
동훈이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들은 일에 매진했다.
그중에 중요한 일도 몇 개 있었다.
요한이 담당한 것도 그중 하나다.
“찾았네?”
동훈이 묻는다. 회의실 중앙에 띄운 홀로그램 맵 중앙이다.
그중 한 점이 확대되며 일대 지형이 들어왔다.
“네, 의도는 파악할 수 없지만, 현재 서울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쓰읍, 좋은 의도는 아닐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겠죠. 찾으러 갈 시간 줄어서 좋네요.”
“뭐 타고 들어왔다는데?”
“암시장이 운영하는 밀항선이요.”
대부분의 사람은 잘나가는 회사가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 맹점을 이용한 함정 같은 거였다.
NS는 암시장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밀항선을 관리했다.
최근 밀항을 담당하는 조직이 천하통일을 이뤘으니까.
그 주인공은 ‘부산 큰 손’이란 사람이었다.
일전 혜민 납치 사건 때 광익에게 탈탈 털렸다가 이제는 NS 소속이 된 의리 있는 건달이다.
대부분 사람은 모르지만, 물론 암시장 휘하였다.
준비된 장소에 깔아 둔 덫.
암시장이 관리하는 밀항선이 그러했다.
“둘 다 갔어?”
“그런다고 하네요.”
회의실 안, 무료한 말 몇 마디가 오간다. 그 말의 주인공인 ‘둘’은 막 밀항선을 타고 들어온 친구를 만나는 중이었다.
다츠는 자존심이 상했다.
‘졌다.’
세최특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전신에 가득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요동쳤다.
그는 다중 능력자.
단 한 번도 이렇게 져 본 적이 없건만.
불멸교의 비밀 병기와 함께였는데 제대로 손도 못 썼다.
그는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해야 했다.
그건 그의 능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 와중에 프로메테우스의 잔당에게서 선불로 의뢰가 들어왔다.
“마지막 의뢰를 맡깁니다. NS의 누구라도 열 명만 죽여 주시오.”
요인 열.
쉬운 일은 아니다. NS는 마굴이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다츠는 할 수 있었다
그는 일전에 NS 본사를 습격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특수종 둘을 데리고 놀다 간 적이 있었다.
‘세최특만 아니라면.’
그의 상대가 될 특수종이 몇이나 있을까.
한때는 은연중 자신이 특수종 최강이라 믿었다.
다츠는 그렇게 서울로 밀항했고.
준비된 차를 몰고 달리는 중이었다.
평일 낮, 한적한 2차선 국도를 달려 서울로 들어가는 길.
몇 가지 작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얼추 작전의 얼개를 짤 때였다.
부웅.
도로 위로 불쑥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미친?’
다츠는 핸들을 꺾거나 하지 않았다.
옆 도로는 논밭이다. 잘못 떨어지면 자신이 더 다친다.
순간의 판단이었다. 다츠는 사람을 치기로 했다.
어설프게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았다.
한적했기에 작정하고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속도계는 140km를 찍었고, 브레이크를 밟을 타이밍은 지났다.
“과속이야, 개새끼야아아!”
부-웅.
짧은 순간, 다츠는 시간이 느려지는 경험을 했다.
차 앞을 막은 여자가 외치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덩치가 큰 여자였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느려진 시간 속, 다츠는 부유감을 느꼈다.
꽈, 아, 아, 아, 아-앙!
소리가 끊어지며 뒤늦게 귀를 때렸다.
‘무슨?’
일어난 일을 파악하는 건 금방이었다.
길을 막은 여자가 차의 보닛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니까 140km로 달려오는 차를 주먹으로 깠는데.
우두두두두두둑!
차가 사람 하나를 밀어내지 못하고 전면부부터 찌그러지더니 옆으로 튕겨 나갔다.
차 안에 있던 다츠는 염동력을 발동했다.
차를 멈춰 세우는 건 무용하다.
그는 차 천장을 날렸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다츠는 비행 능력으로 위로 솟았다.
허공에 둥둥 뜬 다츠의 이마 위로 땀이 흘렀다.
“오랜만이다. 개새끼야?”
여자가 물었다. 다츠는 상대의 얼굴이 낯익었다.
“기억 못 하는 눈치다.”
이번에는 뒤쪽이다. 논밭 한쪽에서 검정과 녹색이 배합된 반바지를 입고 올라오는 남자가 보였다.
입에 담배 하나를 꼬나문 채였는데, 그게 퍽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기억이 안 나? 너 하향 곡선 주먹 좀 맛볼래?”
장가희가 콧김을 뿜었다.
“모르면 맞아야지. 그게 인생의 진리다.”
주일호가 말했다.
다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아, 너희.”
그제야 기억의 궁전이 제 할 일을 했다.
뇌세포가 움직이며 그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때 깨진 둘?”
다츠가 입을 연다. 그 말에 장가희와 주일호가 미소를 보였다.
작정하고 저 새끼를 조지러 온 길이었으니, 그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