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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74화 (374/488)

374. 함정 (3)

고우심의 본명은 램 더스트, 그녀는 긴 세월 살아온 요괴나 다름없었다.

프로메테우스 대가리를 가장 오래 차지한 위인이다.

테러 단체 인명록 상위 1%의 특수종.

아무리 숨기고 숨겨도 도는 정보는 있기 마련이었다.

이 정도 알아내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쨌든 내 생각에 그녀는 단순한 작전을 짰다.

테러로 몰아치고.

빈틈을 만들어 나와 1:1 구도를 만들고자 했다.

그럼 난 어떻게 했냐.

일부러 속아 주고 당해 주며 1:1 구도를 만드는 데 동의했다.

결국, 둘이 원한 건 같은 건데.

두뇌 싸움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 순 없었다.

수틀리면 서로 작정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들 테니까.

다만, 다행인 건, 저 미친 여자나 나나 생각이 같다는 것.

“우리 둘만 남으면 네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거니?”

테러에 미친 여자가 묻는다.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신 거 아닌가요?”

“할머니라니, 나 급우울하다.”

내 대답에 옆에서 요한이 울적한 말투로 말한다.

어, 그래, 좀 미안하게 생각한다. 저 나이 많은 여자를 미남계로 꼬시라고 보낸 게 나니까.

“재밌어, 아주 재밌어.”

장막 너머 목소리는 들리지만, 위치 파악이 안 된다. 재밌는 재주다.

나와 저 여자는 같은 결론을 내리고 함정을 팠다.

단둘이 남으면 살아남는 건 자신이라고.

“재밌겠네.”

진심으로 흥미가 동해 난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 장막이 펼쳐진 뒤로는 불멸자의 기감으로도 할머니 위치가 파악이 안 되거든.

“후우, 내 첫사랑.”

요한이 한숨과 함께 옆에서 중얼거렸다.

“나가 있어.”

“그래. 나도 내 손으로 죽이긴 좀 그렇네. 그래도 몸까지 섞은 사이인데.”

프로메테우스의 왕이 말했다.

“덕분에 회춘은 하셨고?”

내가 말하니, 왕이 깔깔 웃었다.

“힘은 좋더라.”

난 슬쩍 요한 형을 돌아보며 엄지를 세워 줬다.

예상치 못한 칭찬에 요한 형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욕설을 내뱉고 뒤로 빠졌다.

“재밌게 놀아 보자, 이름은 잊었고 외형은 수없이 바꿔, 이제는 의미가 없기에 난 그저 세상을 바꿀 변혁자이자 개혁가, 프로메테우스의 리더란다.”

말투 참 고깝네.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 소개할 시간인가 보다.

기감을 계속 날카로운 칼처럼 세우며 나도 답했다.

“지구에서 내 이름 모르면 외계인인 거 인정? 난 유광익, 테러범 조지는 거 전문인 회사의 대표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전히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

목소리가 들리는데 위치 파악이 안 된다.

위치 파악만 안 되는 게 아니었다.

뭐가 날아와 내 팔뚝을 스쳤다.

반사적으로 피하긴 했는데, 얇은 생채기가 생겼다.

이것도 안 느껴졌는데?

오감이 고장 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저쪽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거겠지.

자, 그럼 이제 어쩔까나.

불멸교의 주인과 마법 연맹주, 이시스의 수장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훔쳐볼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큰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왕과 세최특의 만남이 통성명만 하고 끝나진 않을 테니.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이시스의 수장이 묻는다. 검은 그을음 따위가 묻은 손만 내민 채다.

이들에게도 그 싸움은 중요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이긴다면 세상을 가르는 질서를 개편할 시기가 된 것이고.

반대라면 당분간 숨죽여 지내야 할 것이다.

청기사 슬레이어이자, 세최특은 당당하게 말했으니까.

“테러? 백 배로 갚습니다. 하지 마세요. 그런 거.”

그의 스탠스는 처음부터 한결같았다.

테러 단체는 적이라는 것.

“송사리였을 때 죽이지 못한 물고기가 고래가 되어 버렸군요.”

불멸교주가 빨간 장갑을 낀 손을 들어 턱을 감싸며 말했다.

다들 그의 말에 동감했다.

고래도 그냥 고래가 아니었다.

몸집이 집채만 한, 쉽게 손댈 수 없는 사나운 고래가 됐다.

“준비를 그렇게 했으니, 이길 겁니다.”

“마법사답지 않은 낙관론이군.”

“어떤 특수종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리고 세최특은 제 능력을 너무 많이 보여 줬죠.”

마법사, 주문쟁이는 탐구하는 이들.

그들은 세최특의 실수를 안다.

그는 자신을 너무 많이 보여 줬다.

세상에 제 모습을 너무 많이 드러냈다는 것.

청기사와의 전투뿐 아니라 이계 안에서 벌어진 전투 영상도 많이 퍼졌다.

황금을 두른 특이종과 싸우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긴 했으나.

‘약점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지.’

손가락에 빼곡히 채운 반지가 짤그락하는 소리를 내며 만난다.

주먹을 쥔 연맹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책임은 어차피 그녀의 몫 아니겠습니까.”

이번 일에 총대를 멘 건 그들이 아니다.

전폭적인 도움을 주긴 했지만, 총을 쥔 것도 프로메테우스,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프로메테우스였다.

램 더스트, 특수종은 아무 생각 없이 이 자리에 선 게 아니었다.

적은 세최특.

‘불멸자이며 변신족.’

그 두 개의 피를 이은 최고의 혼혈.

거기에 상대는 주문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고 초능 따윈 무시할 몸을 지녔다.

세최특에 대해 아는 걸 나열하다 보면 아찔함이 먼저 느껴졌다.

‘숫제 괴물이구나.’

전투 감각이라도 미련했으면 좋겠으나, 세최특을 맞이한 사람은 백이면 백 같은 말을 한다.

고속재생? 괴력? 그딴 것보다 무서운 건 판단력이라고.

전투 시에 세최특은 그저 아는 것 이상의 괴물이 된다.

‘천재 중의 천재.’

램은 아랫배부터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감각을 느꼈다.

‘얼마 만이지?’

승패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나선 것이?

흥분이 전신을 치달린다. 그녀는 승리를 점치며 이 자리에 섰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다.

시험 삼아 던진 그림자 화살이 세최특의 팔을 스친다.

그 모습을 봤으면서도 안도감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전신에서 나온 검은 장막은 그림자의 힘이다.

그림자는 모든 걸 차단한다.

감각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숨기고 감출 수 있다.

그러니까 상대는 지금 평범한 인간 수준의 인지력만 갖췄을 것이다.

그런데 날린 화살을 피했다.

팔뚝에 꽂으려고 날린 걸 피했다는 거다.

그래도 괜찮다.

그녀의 능력은 ‘그림자’.

태어날 때부터 그녀와 함께한 친구다.

지금 펼친 그림자 초능은 불멸자의 감각을 차단한다.

불멸을 잡는 건 주문.

변신을 잡는 건 초능.

그녀의 초능은 주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특이하니.

세최특을 상대함에 이보다 적합한 특수종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몸뚱이와 능력 하나만 믿고 온 게 아니었다.

왼쪽 새끼를 까닥이자, 장막 일부가 걷혔다.

그 안에 자신이 준비한 두 번째 안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참 골치 아프네.

안 보인다. 안 느껴진다. 답답했다.

한 평짜리 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관속에 들어가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팔뚝을 스친 건 검은 덩어리 같은 거였다.

굳이 모양을 보자면 긴 막대?

맞는 순간 인지했고 촉감이 반응한 순간, 변신족의 반응 속도로 피했다.

화살을 날렸으면 날린 곳이 느껴질 법도 한데.

안 느껴진다.

기감뿐 아니라, 후각과 모든 걸 동원하는데도 이렇다.

그 순간,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감각이 갑자기 또렷해지자 현기증이 올 뻔했다.

난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에 전신을 바위로 두른 특수종이 보인다.

그 특수종이 날 보더니 말했다.

바위로 만들어진 입술이 움직이는 게 참 진귀한 광경이었다.

“날 기억하겠지?”

……침묵이 내려앉았다.

싸늘한 감각이 볼을 스쳤다.

난 신중하게 답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누구?”

바위가 전신을 떨었다.

“날 잊어! 감히 날!”

누구지, 농담이 아니라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형씨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내가 낯을 가려서 사람을 잘 기억하는데, 모르겠거든.”

바위 인간의 눈에서 물빛 비슷한 게 보였다.

그는 분노를 토했다. 포효했다.

“크어어어! 날 잊다니!”

아니, 진짜 모르겠다니까?

너 누구냐, 진짜.

“내 이름은 하종훈이다!”

확신한다.

모르는 놈이다.

“그게 누군데!”

나도 빽 소리를 지르자, 자신의 이름을 밝힌 놈은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했다.

놈은 내 약점을 파악해 팔아먹음으로 테러 단체에 몸을 의탁했다고 했다.

나 때문에 평생 대머리로 살아야 한다고도 했다.

초능력의 부작용으로 머리에 돌기가 나는데 덕분에 모근이 사라졌단다.

원래 주문쟁이가 해결해 주기로 했는데,

그 주문쟁이를 내가 죽였단다.

들어보니, 혜민이 납치했을 때 만났던 놈이다.

근데 너무 엑스트라라 기억에 없었다.

자식아, 그게 주문으로 해결이 되겠냐?

없는 모근은 주문으로도 못 살려.

탈모를 살리는 약의 원리도 있는 모근을 복제하고 늘리는 거다.

없는 걸 만드는 건 신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안 된다.

“다 너 때문이다!”

더 말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사실 진즉부터 그래도 됐는데, 딱 한 영역만 장막이 걷힌 걸 보고 그걸 토대로 숨은 프로메테우스 수장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안 된다. 그러므로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공기가 터진다. 땅을 박차고 달리는 것만으로 소닉붐이 터졌다.

내 몸은 순간 음속의 세계를 넘어섰다.

아까부터 전신에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근육이 폭발하듯 내 몸을 밀어냈고.

난 단숨에 피해망상이 심한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바위 변환?

그딴 건 괴력의 변신족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콰직, 우득, 펑!

세 가지 종류의 소음이 동시에 울렸다.

첫 번째는 소리보다 먼저 도착한 내 주먹과 놈의 이마가 만들어 낸 소리.

이후 그 충격에 목뼈가 뒤틀리는 소리.

마지막 소음은 주먹에 실린 운동 에너지가 맞닿아 터진 이마에서 났다.

그래도 단단하긴 하네.

그냥 돌덩이는 아니었다.

“끄르륵.”

대신 피거품은 물었다.

한 방을 견딘 것만으로도 놈은 대단한 거였다.

꽃밭에서 이거 못 견디고 터진 인베이더가 한둘이 아니었다.

근데 네가 말해서 그러려니 하긴 했는데.

“나 너 기억 안 나.”

난 바르고 정직한 사람.

솔직하게 말했다.

피거품을 물던 놈은 괴성을 질렀다.

난 주저하지 않고 놈의 팔을 꺾고 오금을 차며 무릎을 바깥으로 걷어찼다.

우득, 펑! 펑!

바위로 이뤄진 몸이 시원하게 터졌다. 돌조각이 바깥쪽으로 흩날렸다.

장막 쪽으로 날아간 돌조각은 그대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감각이 허용하는 범위는 딱 장막이 걷힌 정도.

요한 형의 전 여친이 허락한 부분뿐이다.

사지가 부서지고 터지고 바위로 만들어진 내장 조각이 흩어져 내려온다.

놈은 그런 상황에서도 날 노려봤다.

“널 저주한다. 세최특.”

그 정도로 내가 미운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눈을 보니까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이번 일을 위해 준비한 한 수.

육감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곧 놈의 몸에서 빨간빛이 터졌다.

열기도 냉기도 없는 빛이 터지더니, 내 몸에 휩싸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물리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내가 가진 육감은 내 몸의 이상을 알렸다.

‘저주?’

적어도 그에 준하는 주문이 내 몸에 들어왔다.

피하고 말고 할 수 없는 종류였다.

“내가 이겼다.”

요한 형 전 여친은 너무 연상이었다.

“노망났어요?”

노망이 나도 열두 번은 더 났어도 날 나이다.

후후후훅.

이전과 같다.

감각을 벗어난 화살이 내 몸을 스쳤다.

어지간한 건 다 피했는데, 두 개가 허벅지를 스쳤다.

생채기가 생겼다.

얇디얇은 실선 같은 상처.

본래라면 금세 나아야 할 얇은 실금 같은 상처다.

그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피가 흘러?

재생이 안 되네?

“그 친구가 기폭제였거든.”

노망 난 할망구의 목소리가 연신 들렸다.

“고대의 저주야, 그걸 위해 희생된 제물이 수십이야. 못 피했지? 재생하지 못하는 불멸자야? 이제 어쩔래?”

어쩌긴.

“잡히면 죽어요. 나 잡아 보라, 하고 튄다고 다가 아니야.”

잡아서 족쳐야지.

“오만한 꼬맹이.”

“노망난 할망구.”

우리는 정겹게 말을 나눴다.

이러다 정들겠다 싶을 정도로 서로를 애칭을 불렀다.

그리고 검은 막대기를 닮은 투사체가 미친 듯이 날아왔다.

내가 이 작전을 짤 때, 사람들한테 뭐라고 했더라.

나만 믿으라고, 나 못 믿냐고.

내가 세최특이라고 큰소리 땅땅 쳤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하지만 넌 안 돼. 내 손에 쥐어 터지기 전에 지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

이게 정기남.

“이렇게 보면 딱 철없는 꼬맹인데.”

이건 중봉이 형.

“알아서 하게 놔두시죠.”

팬더 형.

“그러려고 했어요.”

우미호.

“우리 요한이 다치게 하지 마라.”

우미호를 가졌더니, 이제야 다른 사람도 신경 쓰는 방귀태.

“제가 도울 일은요?”

헌신적인 김근육 공주님.

“괜찮아. 우리 신랑은 할 수 있어.”

누가 네 신랑이냐. 혜민아.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나한테 말했다.

다들 걱정 반 믿음 반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들, 변신을 잡는 건 초능이라고 그러잖니? 그게 개소리인 걸 알려 주렴.”

규격 외란, 일정 기준을 넘어선 걸 말한다.

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장막 안에서 할 일을 찾았다.

오롯이 선 전투 감각이 본능과 규합된다.

할 일은 명확했다.

발을 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우르르르르.

발 구르기 한 번에 건물이 울었다.

꽈-앙! 꽈-앙!

난 연신 땅을 발로 내리찍었다.

곧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막도 같이 흔들렸다.

어떤 능력도 빈틈은 있다.

지금 펼쳐진 장막도 마찬가지다.

이건 일정 구역을 틀어막는, 그러니까 사방이 막힌 공간을 막아 내는 구조다.

그냥 안다. 굴러 보니까 자연스럽게 안다. 일어서 걷는 법을 배우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꼬맹아, 넌 괴물이야.”

조금은 당황한 듯한 노망난 할망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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