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함정 (2)
혜민은 아버지가 자신과 왜 얘기를 나누려 했는지, 창고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딸, 조금 늦었다.”
그 안에서 어머니의 몸이 반쯤 괴물로 변해 있었으니까.
고대의 저주.
어머니가 욱여넣은 지식 중에는 저주에 관한 것도 있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저주를 해소하려면?
타고난 재능은 곧 직관으로 변형된다.
혜민의 눈은 사방을 훑었고 코로는 냄새를 맡고 귀로는 소리를 들었다.
곧 모든 감각을 동원해 답을 찾으며 육감이 깨어나며 상황을 전달한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의도가 여실히 느껴졌다.
‘얘기로 시간을 끌어 엄마를 암살하려 했구나.’
이혼한 옛 아내를 죽이는 아버지라니.
참 대단한 집안이다.
“혼돈의 모래시계, 갈망하는 부적, 해주의 지팡이, 삼키는 조개껍데기, 가져와요.”
창고 안으로 들어선 건 혜민 혼자다. 뒤쪽 문틈을 통해 말했고 비서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혜민이 말한 건 전부 다 돈을 쏟아부어 구한 물건 목록이었다.
“엄마는 늦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만한 기어를 소모할 가치가 있을까?”
전부 일회성 기어다.
쓰고 나면 없어질 것들.
그래서 더 가치가 있는 것들.
“엄마는 딸을 잘 키웠어.”
“안 늦었다고.”
아버지와 만난 뒤 잡담 몇 마디만 더 했다면.
보자마자 주먹이 아니라 혀를 썼다면.
정말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혜민은 그러지 않았다.
평소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수틀리면 일단 그 상황을 빠져나오는 게 최선이라 했던 그 말대로 했을 뿐이다.
상황을 변화시키고 빠져나온 결과가 이거였으니.
더없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어머니는 늦었다고 했지만, 혜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나 강혜민이야, 김주희의 딸이자, 최고의 스펠 유저. 한다면 해.”
“딸, 잘 컸네.”
김주희는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마지막에 딸 얼굴이나 한 번 더 보려고 견뎠을 뿐이었다.
하지만 딸이 눈으로 말한다.
안 늦었다고, 할 수 있다고.
그럼 어떻게 어미로서 딸보다 먼저 포기할 수 있을까.
김주희는 마지막 숨을 골랐다.
“어떻게 돼도 네 탓은 아니다.”
노파심에 한 마디를 남길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내심 딸을 믿었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딸은 자신감을 보였다. 딸이라고 불안하지 않을까. 하지만 자신감을 보이는 거다. 일부러 저러는 거다.
그래야 스펠에 더 힘이 깃드니까.
보고 있는 자신을 안도하게 만드니까.
딸은 성장했다.
코흘리개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시절이 훌쩍 지나, 시집가도 될 나이가 됐다.
“일 다 끝나면 광익이 확 자빠뜨려 버려.”
“……그게 딸에게 엄마가 할 소리야?”
평소에 이런 농담을 입에 달고 살면서 진지하게 말하면 꼭 저런다.
“아니면 뺏긴다. 너.”
“안 뺏겨.”
답하는 혜민의 눈에 파란 불이 타올랐다. 귀화의 눈이다.
그녀는 광익을 뺏기지 않을 것이다.
그럴 거면 NS에 남지도 않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쪽.
“가져왔습니다!”
비서의 외침에 혜민이 문을 열고 손을 뻗어 물건을 챙겼다.
고대의 저주를 해결할 시간이었다.
NS 건물 앞을 막은 테러범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모든 건 세최특이 뿌린 죄악이요, 그의 원죄다!”
개소리가 주였지만, 목소리는 더럽게 컸다.
그걸 들으며 김근육은 4층 창문 위에서 몸을 날렸다.
묵직한 몸이 중력에 따라 밑으로 떨어진다. 긴 녹색 수조 따위를 쥔 놈이 고개를 위로 올린 건 몇 초 뒤였다.
김근육의 주먹이 놈의 머리통에 닿기 직전이었다.
놈의 반응은 빨랐다. 고개를 옆으로 휙 꺾었다.
반쯤은 운이요, 반사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게 놈을 살렸다.
머리 대신 그의 어깨가 터졌다.
폭탄 주먹.
퓨어 골든, 이세계의 금으로 만든 기어를 통해 투사된 초능이 그의 어깨를 찍었다.
놈은 녹색 수조를 놓쳤고 쿵 하고 땅에 내려선 김근육은 무릎을 굽히며 낙하 충격을 해소하며 손을 뻗었다.
턱하고 그녀의 손에 녹색 수조가 잡혔다.
“이런 미친년이.”
상대가 분노를 터트렸다.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찢어진 근육이 드러났다.
김근육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의 기세가 너무 약했다. 빈틈이 많았다. 몇몇 잔챙이가 더 보이긴 하나, 겨우 이 정도 병력으로 NS를 치자는 건 너무 어설펐다.
그래서 물으니.
“이 년이? 그래, 싱글이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눈깔이 정상이 아니다. 그 덕분에 대답도 정상이 아니었다.
핑 돈 눈, 약에 취한 거다.
이건 주력일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등신만 모인 게 아니라면 NS 본사에 이런 놈을 보낼 리 없었다.
“죽어라!”
대뜸 달려드는 데 몸이 세 개로 갈라진다. 환영을 만드는 능력?
아니었다. 셋 다 실체가 느껴졌다. 분신을 만드는 초능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끔찍한 능력.
동일한 능력을 갖춘 능력자 둘을 더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모든 건 상대적인 거다.
김근육은 상대가 셋이 아니라 열이라도 상대할 만했다.
왼발을 한 걸음 앞으로.
그렇게 나아간 왼발을 축으로 속도를 높인다.
힘은 속도에 비례하며.
속도는 힘에 비례한다.
그리고 속도란 상대적이다.
상대가 셋이든 넷이든, 상대보다 빠를 수 있다면 한순간 일어나는 전투는 전부 1:1이다.
김근육이 그렇게 했다.
왼발 뒤꿈치를 든 순간, 종아리 근육이 응축.
발끝을 뗀 순간, 허벅지 근육이 폭발.
꽝하고 보도블록이 깨지며 그녀의 몸이 질주했다.
변신족 버금가는 괴력에 훈련으로 만들어진 동체 시력이 상대를 정확히 잡아챘다.
그녀의 몸은 훌륭히 역할을 수행했다.
땅을 박차고 주먹으로 상대의 머리통을 후렸다.
꽝! 펑!
폭발의 주먹이 머리통을 분쇄하고 까맣게 그을리게 했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되진 않았다.
분신이었는지, 상대의 몸이 흐릿해지며 훅하고 촛불의 연기처럼 사라졌으니까.
“하나님, 어느 것을 고를까요.”
멈춘 김근육이 남은 둘을 보고 말했다.
곧 분신 둘이 똑같이 파랗게 안색이 질렸다.
“둘 다 골라야지.”
말하며 김근육이 땅을 박찼다.
전투력의 차이가 명확했다. 김근육이 우위였다.
단숨에 그녀가 이기는 것도 당연했다.
건물 위에서 떨어져 내리고 전투가 벌어지는 것까지.
전부 다 해서 5분 내외였다.
그 5분 사이, 김근육은 여기에 무슨 수작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수작의 결과가 그녀의 뒤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화악.
갑자기 건물 1층 창문이 까맣게 물든 거다.
반쯤 피떡으로 만든 상대의 멱살을 쥐고 오른 주먹을 뒤로 당기는 중이었던 김근육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끅끅, 우리가아, 이겨따아으.”
앞니 몇 개, 어금니 몇 개가 빠지고 얼굴이 반쯤 뭉개진 상대가 말했다.
김근육이 주먹을 든 채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망가진 얼굴로 놈이 낄낄 웃었다.
웃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여기저기 터진 얼굴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반쯤 시체가 된 놈을 보며 김근육은 피식 웃었다.
“아니야.”
남자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김근육이 마저 주먹으로 놈의 안면을 함몰시켰다. 생각할 머리가 날아갔다.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놓자, 테러범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걸 일견하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겼어.”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상대방이 계획이 있다면 이쪽도 계획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초능을 타고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초능은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근육과 같았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영양소’가 투입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 중 하나다.
때로는 능력의 주체가 되는 특수종의 감정.
때로는 지나간 시간.
때로는 타인의 희생.
초능력이 강화되는 건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우연과 행운의 결과로 특수종 하나가 태어날 때부터 능력을 달고 태어났다.
그 능력의 강화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사용하는 빈도수.
쓰면 쓸수록 초능이 강해지는 건 정설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의 공포였다.
“……내 아이가 아니야.”
갓 태어났을 때부터 주위 모든 걸 인지하는 건 축복이 아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능력을 갖춘 특수종은 주변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부정했으며.
“저주다!”
그를 받은 의사는 형편없는 새끼였다.
“정신 차려, 우리 아이야.”
아버지란 작자가 공포에 질려 말했다.
후일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된 특수종은 숨 쉬듯 자연스레 능력을 터득했다.
자신이 왜 저주라는 말을 들었는지 깨닫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능력을 회수.’
곧 갓 태어난 아기 몸을 둘렀던 까만 장막이 사라졌다.
장막을 두르고 태어난 아이.
검은 축복을 받은 아이.
그게 수장이 처음 받은 별명이었다.
유년 시절은 험악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인 인간이 되었고.
어머니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 가정을 외면했다.
그 상황에서 수장은 가까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친구가 있었으니까.
“괜찮아. 별일 아니야.”
검은 장막으로 만들어진 친구는 언제나 어깨를 두드려줬고.
결국, 아버지까지 대신 죽여 줬다.
정당방위였다.
공포에 질린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를 먼저 죽이려 했으니까.
그 친구는 곧 자신이었고 자신이 곧 그 친구였다.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죽인 뒤, 싸늘한 한 마디를 남긴 게 전부였다.
슬픔은 없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여기 지금 악마가 내려앉았나이다.”
어머니는 진즉에 미쳐 버린 상태였다.
꾸득.
친구가 그녀의 목을 꺾었다.
수장은 부모를 죽인 일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로 수장은 십 년을 넘게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때로는 용병으로 때로는 사이비 종교의 수장으로 때로는 정의의 편을 흉내 내며.
수장은 자신의 눈으로 많은 걸 봤다.
이후 다짐했다.
‘세상은 약해.’
‘인간은 더 약하고.’
‘인류는 왜 약하지?’
일반인과 특수종의 차이가 그 변화를 만든다면.
그 변화를 줄이는 건 어떨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을 없애면 어떨까.
세상은 불공평하다. 안다.
그러니 불공평한 그 세상을 뒤집자.
‘세상이 불을 가져온 것처럼.’
수장은 프로메테우스 사상에 심취했다.
후일, 그 사상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기도 했지만.
‘이게 최선이야.’
이미 뇌까지 사상에 절여진 뒤였다.
수장은 자신이 믿는 바가 곧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뿐.
인류는 진화해야 한다.
사람은 약하다.
자신의 자식을 버리는 건 약해서 그런 것이다.
애인을 죽이고 배우자를 배반하는 것 또한 같다.
인간은 약하다. 약하기에 문제가 생긴다.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되었을 때.
검은 장막의 뒤로 숨은 프로메테우스의 왕은 결심했다.
‘인류의 진화.’
단순히 사상으로만 남은 그 무언가를 자신이 이뤄야 한다고.
짧은 삶으로는 불가능했다.
장막의 왕은 영생을 꿈꾸지는 않았으나, 지금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수장은 그렇게 했다.
장막을 품은 초능 특수종의 천재는 그렇게 가장 오랫동안 왕좌를 지킨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되었다.
NS에 사람은 남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연기에 필요한 인원을 제하고는 전부 내보냈다.
“위로.”
연구실도 비어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의무실로 요한이 한 여자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그 뒤를 나도 따라 들어갔다.
“저주 비슷한 것 같아. 고대의 저주 같기도 하고.”
으흠, 이거 어디 마법 연맹이 끼어들었나 보네.
이 새끼들 이 일 끝나고 드잡이질 한번 해야겠다.
하여간 놔두면 더럽게 덤빈다.
때로는 물리적 공포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난 태어나 지금까지 어머니의 주먹을 통해 그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두고 보자고. 마법 연맹 나부랭이 자식들.
“강푸름은? 혜민이는?”
“저주 아니고 화학 질병이야.”
“어?”
“내가 어지간한 의사보다 나아.”
빈말이 아니었다.
자기 몸에 고통을 주며 견디는 감내 훈련의 최고 수료자로서 말하는 건데.
난 인간의 신체 구조와 반응을 필요 이상으로 깨우친 불멸자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의사보다 낫다.
꽃밭에서 주야장천 당하고 회복하기도 했고.
“돌팔이 같은데?”
어벙한 표정을 지은 요한의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돌팔이는 맞다.
“지금 당장은 다른 수가 없잖아.”
그럼 돌팔이를 믿어야지.
의무실 한쪽에서 주사기를 꺼내 약을 쭉 빨아들였다.
수직으로 들어 몇 번 압력을 주자, 허공에 쭉 하고 약물이 튀어나왔다.
치사량에 가까운 약물이 든 주사기였다.
“내가 할게.”
요한이 내 손에서 주사기를 뺏었다.
난 얌전히 넘겼고.
요한은 서슴없이 주사기를 내리꽂았다.
그 순간, 요한이 안고 온 여자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푹.
주사기는 허무하게 침대를 찔렀고.
까만 연기와 장막 뒤.
“알았어?”
여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요한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사랑했었다. 고우심.”
고우심, 본명은 아닐 것이다.
요한은 긴 프로젝트이자,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여자였어?”
내가 물었다.
“놀랐니? 꼬마야?”
장막 너머, 목소리가 울린다.
“놀랄 것까지야.”
상대는 함정을 팠다.
그리고 나도 함정을 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