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72화 (372/488)

372. 함정 (1)

테러범은 기폭 장치에서 손가락을 떼려 했다.

엄지에 힘만 빼면 이 일대가 몽땅 날아갈 것이다.

서울 최악의 날.

자신이 입은 폭탄 조끼가 그런 일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엄지를 떼기 직전이었다. 테러범은 군중 사이로 멀뚱한 표정을 짓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갈색 피부의 이국적인 외모, 한국인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의 눈에서 빛이 번쩍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멈췄다.

‘왜?’

입도 막혔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염력 따위가 아니었다. 제 몸을 억지로 잡아 누르는 압력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냥 몸이 멈췄다. 돌이라도 된 것 같았다.

“알아. 무슨 마음인지. 근데 맹목적인 믿음이 꼭 답은 아니야.”

눈이 마주쳤던 까무잡잡한 여자다. 그녀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흘렀다.

형형한 빛을 뿌리는 눈.

까무잡잡한 피부.

테러범이 제 몸이 멈춘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메두사의 눈.’

생각은 짧았고, 결론은 금방이다. 프로메테우스를 버린 배신자, 로즈다.

터졌다면 사상자가 무지막지하게 나왔을 포인트, 광화문 한복판의 추모비 앞이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로즈는 그렇게 말하며 남자의 앞에 섰다.

곧 그녀의 뒤로 경찰 특공대가 달려들었다.

“폭탄 제거하겠습니다.”

테러는 실패했다.

“영화가 아니었네?”

“뭔 일이냐, 이거, 나 오줌 쌀 뻔했어.”

겁을 집어먹거나, 안도한 시민들이 떠들었다.

경찰 특공대가 몰려들어 테러범의 폭탄을 해제한다.

로즈는 그들의 말을 귀 뒤로 흘리며 특공대를 바라봤다.

안전은 확보했다.

할 일은 했다.

이런 일이 여기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병들고 죽어라, 그리하여 인류의 앞날에 참된 거름이 돼라!”

프로메테우스의 일원은 때로는 미친 광신도와 같다.

대형 쇼핑몰 안이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사이에 나타난 놈은 전신에 겹겹이 스펠 기어를 두르고 나타났다.

고대의 저주 수준은 아니지만 1급으로 분류되는, 병마의 저주를 품은 기어였다.

놔두면 끔찍한 참상이 일어나기 직전.

남자의 외침이 막 끝났을 때였다.

짧은 순간의 틈, 그 시간을 사람들은 찰나라 한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남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반응할 수 없었다.

그의 인지를 넘어선 속도였다.

그저 뭔가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느낀 게 전부일 뿐.

“싫어요. 마리는 늙어 죽는 게 소원인걸요.”

얼마나 빨리 목이 잘렸는지, 잘린 뒤에도 그는 바로 죽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을 죽인 사람의 말을 듣고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앳돼 보이는 여자였다.

그는 제 목을 친 무기까지 볼 수 있었다.

도끼였다.

스펠 기어는 마법을 다룰 줄 알아야 발동시킬 수 있다.

스펠 유저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 말인즉슨, 기폭 장치가 사람이란 것이다.

고로 사람을 죽이면 끝이었다.

마리는 배우고 훈련받은 대로 했다.

그 결과 테러범은 목이 잘려 죽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몇몇은 비명을 내질렀다.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사람도 보였다.

마리는 딱히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목이 잘린 걸 보고 기절하는 정도면 다행이었으니까.

자신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있는 사람 수십은 죽었다.

또는 죽기 직전까지 주변에 병마를 흩뿌리는 전염병의 주체가 됐을 것이다.

“저기, 감사합니다.”

그중 침착해 보이는 중년 남자 하나가 슬쩍 입을 열었다.

“별말씀을. NS는 테러를 배척합니다.”

마리는 말했다. 그제야 고맙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내려온 구원이었다.

로즈와 마리가 활약 비슷한 걸 할 때.

다른 NS 대원도 마찬가지로 움직였다.

“주저해라.”

우미호는 자신의 말에 실린 힘을 느꼈다.

예민한 불멸자의 감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걸 훈련으로 깨닫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던가.

자신의 가치를 무력으로만 증명하는 건 어린아이의 치기 같은 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무력을 증명해야 했다.

머리로만 버티고 살기에 특수종 세상은 너무 험하다.

“누나는 너무 딱딱해, 뭐든지 전부 혼자 하려고 하는 것 같아.”

살아난 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랬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면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좀 다르다. 아니, 달라졌다.

언령의 힘이 테러범의 손발을 주춤하게 했다.

“고민해라.”

이마에 핏대가 선다. 언령의 힘을 끌어 쓰는 건 묘하게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한다.

막을 건 막아야 하므로.

우미호가 언령으로 재주를 부리는 동안, 기척을 죽인 대원 둘이 테러범의 양팔을 잡았고 그녀의 뒤로는 방귀태가 섰다.

“크르르르!”

폭탄 조끼를 두른 변신족이다.

어지간한 충격만 줘도 몸이 날아갈 것이다.

필요한 건 짧은 순간뿐, 적을 죽이는 건, 우미호의 몫이 아니었다.

언령으로 주저하게 하고 양팔을 붙들어 움직임을 제한한 순간.

놈의 머리가 터졌다. 한쪽 두개골이 부서지며 피와 뇌수가 흩뿌려졌다.

핀포인트 저격이다.

김정아의 솜씨였다.

우미호는 여기까지 각본을 짜고 움직였을 뿐이다.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조정하고.

놈은 무릎부터 땅에 대고 쓰러졌다.

머리 없는 시신이 가슴부터 바닥에 쓰러졌다.

홍대입구역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변에 사람은 몇 없었다.

이미 사이렌 소리에 사방으로 도망간 뒤다.

놈은 변신한 직후 주변 사람을 헤치려 했지만.

어딜 감히. 그걸 두고 볼 이유가 없었다.

진즉부터 쫓던 놈들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자마자 반응하면 그만이었다.

곧바로 대원 여럿이 나섰다.

테러범 무리는 자신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정기남도 비슷한 상황에서 테러범 둘을 잡았고.

도안결은 끝내 반항하는 특수종 테러범 여럿을 죽였다.

PWAT팀은 곳곳에서 열린 블랙홀을 통제했다.

이걸 협회가 도왔다.

단군 그룹은 무력을 행사하는 테러범을 찾아 막았다.

그룹이 자랑하는 무력 부대, 화랑의 기동력은 가히 서울 최고였다.

“마커 Z-11 2분대가 갑니다.”

각 부대가 맡은 지역을 통제한다.

정체가 발각된 테러범 중 일부는 성전이니, 세최특이니 하는 개소리마저 시작도 못 하고 잡혔다.

불특대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남명진과 정호남은 설표를 잡았다.

나머지 불특대는 테러범을 쫓았다.

본래 테러범을 조지는 건 불특대의 특기 중 하나였다.

“저격 포인트 확인, 잡습니다.”

보이는 족족 쏴 죽인다.

그 와중에 터지는 폭탄도 있지만, 사상자는 전무했다.

애초에 놈들이 향하는 길을 다 비웠다.

이걸 계획한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피닉스팀은 별개의 임무를 맡았다.

강호응과 더불어 화랑, 피닉스팀은 서울 곳곳에 놓인 대교를 점검했다.

“지독한 새끼들, 몰래 별걸 다 붙여 놨네.”

유연호는 말하며 손을 까닥였다.

곧 피닉스팀 전원이 감각의 칼날을 세운다.

그들은 어색함이 느껴지는 포인트를 쫓았다.

곧 폭탄이 묻히거나 붙은 곳을 찾아 해제.

피닉스팀은 본래 일당백의 요원이다.

가진 바 재능이 넘쳐흘러 이곳에 있는 이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은 요원은 폭탄을 만드는 것부터 해제하는 것까지 완벽한 솜씨를 보였다.

본래 그는 범죄자 출신이었다.

‘유 팀장 덕분에 별걸 다 해 본다니까.’

그는 그리 생각하며 프로메테우스가 심은 폭탄을 해제했다.

강호응의 화랑팀도 마찬가지다.

“찾아.”

그들은 코를 씰룩였다.

훈련받은 화랑은 수십 개의 냄새 중 특정한 향을 분류한다.

화약 냄새, 고무 냄새 따위다.

그들은 곧 주문으로 이뤄진 폭탄과 이세계 소재를 섞어 만든 고폭탄 등을 찾았다.

“해제팀 확인 요망.”

찾는 건 화랑, 해제는 별도의 팀을 운영했다.

모든 건 동 시간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혜민은 자신의 앞을 막은 남자를 꼼꼼히 살폈다.

눈, 코, 입, 분위기, 체형 따위를.

전체적으로 훑은 혜민은 생각했다.

‘안 닮았네.’

자기는 외탁했다고.

“정말 제가 딸 맞아요?”

“이런 거로 장난치고 싶진 않다. 거짓말할 일도 아니고.”

“어머니가 말하길, 아버지는 쓰레기에 개새끼라는데?”

“그렇게 말했겠지. 하지만 모든 사정을 전부 설명하진 않았을 거다.”

아빠라는 작자의 말이 맞았다.

어머니는 전부 말하는 법이 없다.

오랫동안 숨어 살며 붙은 버릇인지, 신비주의를 딸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항상 숨기는 게 있었다.

혜민은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눈만큼은 아버지를 닮은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눈빛이 닮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래 맞다. 딸을 희생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려 했지. 하지만 이후 곧바로 후회했고, 그래서 다시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지만 네 엄마가, ……왜?”

지이이이잉.

스펠 기어를 발동한다.

혜민은 양손에 빛나는 주먹을 들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얼굴에 주먹을 꽂았을 것이다.

“얘기하자고 온 거다.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인자한 말투다. 덤덤한 말투이기도 하고.

“미안, 나 아빠 없어.”

어릴 때는 궁금했다. 아버지란 존재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혜민은 마법사 특유의 감으로 알았다.

이자는 진짜 아버지라는 걸.

다만, 눈앞의 남자는 위험한 스펠 유저고.

어머니 홀로 키웠다고 해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적은 없었다.

호기심과 그리움은 다르니까.

호기심은 뜨거운 물을 만난 얼음처럼 녹았다.

우습게도 눈앞에 진짜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깔끔해졌다.

“뒈지기 싫으면 가드 올려요.”

혜민이 말한 순간, 아버지의 뒤로 검은 칼날이 튕겨 올랐다.

사람 몸통만큼 커다란 칼날이다.

몰래 발동한 주문이었다.

아버지는 손을 저었다. 그러자 가슴을 중심으로 전신에 헥사곤 필드가 일어나 마법을 막았다.

카가가가각!

검은 칼날이 필드를 긋는다. 필드가 갈리며 검은 불똥이 튀었다.

“성질머리가 제 어미를 똑 닮았구나.”

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키우지도 않았으면서 아빠 노릇 하게? 그건 좀 그렇지.”

“얘기를 들어 보지도 않아? 대체 어떻게 돼먹은 성질머리냐?”

“뭐래, 내 성질머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저씨는 뒈질 준비나 하셔.”

“그게 태어나 처음 보는 아비한테 할 말이냐?”

“자꾸 아빠 노릇 하려고 하는데, 나 아빠 없어.”

패륜적인 말이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혜민은 달려들었다.

그녀의 재능은 스펠 유저.

하지만 특기는 육탄전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조합인가.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전신이 무기다.

변신족의 전투법이 턱없이 잘 어울리는 육탄전을 즐기는 스펠 유저.

아버지는 당황했다.

제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전투법과 더불어 복잡한 스펠이 연속으로 튀어나왔으니까.

그는 물러나야 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빛의 감옥 따위로 혜민을 가둔 뒤, 그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또 보자. 딸.”

“다음에는 입 안 털고 바로 주먹 꽂습니다. 생물학적 아버지.”

“……김주희 이 미친 여자. 딸을 어떻게 키운 건지.”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를 향해 혜민이 빙그레 웃으며 빛의 감옥을 양손으로 뜯었다.

“어이쿠.”

아버지는 그걸 보며 놀라 금세 꽁무니를 뺐다.

도망가는 아버지를 보며 혜민은 중얼거렸다.

“어떻게 키우긴, 겁나게 잘 키웠지.”

번듯하게 잘만 키웠다.

또한 혜민은 깨달았다.

‘손속에 사정을 뒀어.’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 그랬다. 아무리 막 나간다고 해도 당장 머리통을 발등으로 걷어차기에는 마음이 쓰였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능력의 반도 쓰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

그녀는 자신을 가둔 진을 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생각할 틈이 많진 않았다.

사방이 난리였다. 자신이 얼마나 갇혔는지도 몰랐다.

나오자마자 홀로그램 폰이 미친 듯이 울었을 뿐.

난리통에 통신 전파가 먹통이 됐지만, 그녀가 가진 건 NS의 물건.

비상시 전파를 따로 쓴다.

그 폰에 연락이 왔다.

[어머니, 위급, 당장 귀환 요망.]

혜민은 땅을 박찼다. 곧 그녀의 등 뒤로 두 장의 날개가 펼쳐졌다.

빛으로 이뤄진 천사의 날개 비슷한 거였다.

스펠로 만든 날개를 타고 혜민이 날았다.

요한은 당장 쓰러진 우심을 살릴 수 없었다.

그는 의사가 아니다.

‘가까운 병원으로?’

아니, 그곳도 이미 난리일 거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테러다.

하물며 일반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니지 않나.

팔뚝부터 시작된 병은 곧 그녀의 몸을 잠식할 것이다.

그걸 그냥 두고 볼 순 없다.

요한은 이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을 했다.

우심을 안고 일어나 본사로 달리는 것.

“오빠, 나 이상해.”

반쯤 정신이 나간 우심이 중얼거렸다.

“괜찮아. 오빠 믿지?”

“……아, 대답하기 되게 묘하다.”

우심이 배시시 웃는다.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하는 말이었다.

요한은 전력으로 뛰었다. 품에 안은 우심의 몸무게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본사에 도착해 들어가자마자, 타이밍 좋게 뒤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흩어지는 것도 봤다.

‘급한데.’

당장 우심의 상태를 보여 줘야 한다.

스펠 종류 같으니, 암시장의 지배지가 최선일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요한의 눈에 광익이 보였다.

요한은 불멸자답지 않게 크게 외쳤다.

그리고 요한의 품에 안긴 우심은 아주 잠깐 눈을 떴다가 곧 다시 눈을 감았고, 잠이 든 듯 고요히 안겨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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