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성전 (3)
“사망자 둘. 중상자 셋.”
전투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항상 전원이 살아남을 순 없는 법이었다.
이름은 꽃밭이지만, 이곳도 이세계.
화이트 홀을 통해 넘어온 남의 땅이다.
“위험한 곳은 불멸자부터 보내라고 했잖아.”
난 사납게 말했다. 절로 말이 그렇게 나왔다.
보고한 우미호는 차갑고 도도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파악한 대로 이곳은 사람의 감정을 더 북돋아. 그 원인은 감각의 극대화고. 결론만 말하자면 대원 하나가 흥분했고 넷이 구하려고 덤볐어.”
인베이더와의 싸움이다.
가장 만만하게 보는 눈먼 개조차 맨몸의 인간과 붙으면 압승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들에게는 인간에게 없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고 발달한 후각이 있다.
상대가 될 리 없다.
죽지 말라고 장비에 돈을 수십억을 쏟아부었는데, 사람이 죽었다.
더 위험한 전투에서 살아남아 놓고.
마지막 정리만 하면 되는 전투에서 죽었다.
“눈먼 개 두 마리를 단분자 나이프로 가르고 흥분해서 헬멧을 벗고 고함을 내질렀어.”
우미호가 상황을 나열했다.
“이후, 특이종 ‘기척을 죽인 개’가 목을 물어뜯었다.”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흥분한 대원, 단숨에 인베이더 두 마리를 죽인 일반인.
훈련의 성과, 어려운 전투를 이겨 냈다는 성취감.
이세계는 지구와 같지 않다.
어떤 곳은 중력이 다르고.
어떤 곳은 아침저녁으로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진흙으로 이뤄진 사막도 있고.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꽃밭은 사람의 감각을 극대화했다.
감각의 극대화는 곧 감정의 변화를 극적으로 몰아친다.
흥분한 사람은 더 흥분하게.
우울한 사람은 더 우울하게.
흥분한 대원은 그렇게 죽었다.
“전원 정신 단련시켜. 쉽사리 흥분하지 않게, 불멸자의 단련 방식으로.”
말하며 일어섰다.
“어디 가?”
우미호가 물었다.
“사과는 해야지.”
회사를 믿고 사람을 보냈는데 죽었다. 그들의 가족에게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
“네 책임이 아니야. 전부 서약하고 들어왔어.”
“난 내 가족이 죽었다면 계약이고 뭐고 뒤집어엎을 거야.”
계약과는 별개로, 사과는 해야 한다.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니겠나.
우미호는 날 더 말리지 않았다.
꽃밭에 들어간 난 딱 한 번 나왔다.
죽은 사람의 부모를 찾았고 자매를 찾았다.
부모는 보상금 대신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그건 진리다.
“원하는 대로 다 줘.”
난 돈을 퍼 담아 줬다.
욕을 먹었고 비난받았다.
날 평생 저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돌아가는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평소에는 비 내리는 게 끔찍하게 싫었는데 말이야.
오늘은 차라리 비라도 내리는 게 나았다.
“굳이 직접 하십니까?”
잡일 전문, 아저씨 비서가 물었다.
“그럼 누굴 시켜요. 이런 일은 대표가 해야지. 난 평소에 놀고먹으니까.”
내 말에 비서 아저씨가 잠시 내리는 비를 보더니 말했다.
“제가 회사는 잘 들어온 것 같습니다.”
“연봉이 짭짤하죠?”
“넉넉하지요.”
난 비서 아저씨와 웃고 꽃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계 탐험에 나섰다.
위험은 내가 가장 먼저 앞장선다.
그래야 다치는 사람이 적다.
언제나 난 선두였다.
“여긴 불멸자라도 버틸 수 없어. 그런 구조다.”
팬더 형이 이런 말을 전했다.
감각의 극대화는 곧 감정의 변화.
정신이 죽어 버린 불멸자의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고통조차도 몇 배는 심했다.
“고통 감내 훈련하기 딱 좋네.”
난 그 말을 이렇게 알아들었다.
내가 나서니, 정기남과 도안결이 붙었다.
그 뒤로 우미호를 비롯한 특수종 무리가 붙는다.
“전 뒤에서 구경해도 됩니다.”
정직이가 은근히 발을 빼다가 로즈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뺀질대지 마.”
로즈가 정직이는 참 잘 잡는다.
나는, 우리는 이계를 헤집었다.
그리고 헤집던 어느 날, 난 감각이 몰아치는 경험을 했다.
보이지 않는 폭풍 같았다.
어느 순간 모든 오감이 바늘 끝처럼 뾰족 섰다.
꽃을 보면 그 꽃 내부가 보였고.
귀로는 저 멀리, 보이지도 않고 인지하지도 않는 세상의 소리가 들렸으며.
몸에 부딪히는 바람에서는 냄새를 느꼈다.
맡은 게 아니라, 느꼈다.
촉각이 곤두서자, 모든 감각이 뒤섞였다.
그 와중에 변신족의 후각이 극점을 찍었다.
처음 맡아 보는 냄새가 코안으로 스며든 순간.
난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으나, 보였고.
들리지 않으나, 들렸다.
난 미래 일부를 엿봤다.
이미지로 머릿속에 들어온 건 없다.
나에게 남은 건 감각뿐.
불멸자의 감각이 새로운 세계로 날 이끈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난 불길한 예감을 확신에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예지라고 해도 좋았고.
그저 불길함을 느낀 육감의 일종이라고 해도 좋았으나.
무시할 순 없는 그런 형태의 스며듦이었다.
고작 특수종이나, 인베이더 한두 마리 따위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아니었다.
“지쳤으면 내가 선두로 나간다.”
기남의 말에 정신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가다가 뒈지고 싶어서?”
기남에게 친절하게 물러나라 말하며 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불길한 예지가 느껴졌다면.
보이는 족족 때려 부수면 될 일이다.
개꿈, 개꿈, 개꿈 같으니라고.
이제 날 구한 등판이 안 나오니까 꽃밭이 나오네.
꿈속에서 느꼈던 감각이 떠오르며 온몸에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물론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긴 했다.
변신족의 바디 컨트롤은 언제나 일품이다.
“테러로 서울이 난리인데, 낮잠이 자고 싶냐?”
이중봉 팀장의 목소리다.
이 사람은 여긴 내 집무실인데 왜 막 들어오나.
“피에스타 몰라요? 문화 차이 존중해 주시죠.”
“피에스타 아니고 시에스타고, 그건 유럽 문화고.”
아, 피에스타 아니었어?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고.
“아직도 여기서 뭐 하십니까? 테러 난리가 났으면 나가서 막아야지.”
“나가는 길이다.”
“그러니까 여긴 왜 오셨냐고요.”
“……괜한 짓이다. 괜한 짓이야.”
이중봉 팀장은 날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나갔다.
저 양반 왜 저래.
그 뒤를 연이어 팬더 형이 들어왔다.
“중봉이 형 왜 저래요?”
“왜 그러겠냐?”
“아니, 작전 다 설명했고 그대로 하면 되잖아. 하여간 성격 유별나.”
“혹시 네가 뒈질까 봐 보러 온 거잖아.”
“내가?”
“걱정하는 거라고.”
“저 양반이?”
“……말을 말자. 말을.”
팬더 형도 그 말만 하고 돌아서 나갔다.
아니, 그게 걱정할 거리가 되는 건가?
손목에서 홀로그램 폰이 운다.
아버지였다.
[피닉스 팀장] 무리하지 마라. 아빠가 지켜봐 주랴?
걱정도 팔자시네.
답장을 써 줬다. 피닉스 팀장님은 약속한 일이나 처리해 주시라고.
공무에 소홀하면 정부에 항의할 거란 말을 덧붙였더니, 답이 없다.
“할애비가 뒤에서 지켜볼 거다.”
유무인, 할아버지다. 뒤에서 하는 말이다. 이 양반은 할 일이 없다는 핑계로 내 곁에서 안 떨어진다. 특히나 호위를 겸한다는데.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거지.
“손 모자라요. 가세요.”
“난 다른 일에는 관심 없다.”
“제가 관심 있으니까 나가서 애들이나 지켜줘요.”
할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기척만 쏙 하고 사라지는 거 보면 저 양반이 전직 불멸자 교주라는 게 새삼 실감 난다.
거의 아버지 수준으로 기척 죽이기가 자연스럽다.
사실 나니까 느끼는 거지, 다른 사람이라면 뭣도 모르고 당할 거다.
불멸교가 아끼고 키운 암살자보다 더 깔끔하다.
음, 정기남이 저걸 배우면 골치가 좀 아프겠는데?
“개꿈 너무 싫고.”
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들도 일하니, 나도 일할 차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1층에서 폭음이 울리며 건물이 흔들렸다.
“사장님.”
비서 아저씨가 집무실 문밖에서 날 불렀다.
이 아저씨는 이 상황에서도 차분하네.
“네. 나가요. 안 무서우세요?”
나가며 물으니.
“무섭습니다.”
“근데 되게 멀쩡해 보이네요.”
“겉보기만 그렇습니다.”
“그게 신기하다는 건데요.”
“어차피 해결하실 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믿는 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지요. 그리고 수틀리면 도망가려고 낙하산 사 뒀습니다.”
아, 위험하면 건물에서 뛰어내리시게?
“낙하산 말고 몸에 줄을 달고 건물 벽을 타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그것도 아니면 아예 비행 슈트를 차지 그래요?”
반쯤 농담 삼아 한 말인데, 비서 아저씨가 생긋 웃는다.
“물론 그것도 다 준비했습니다.”
철저하다. 철저해.
그래서 믿을 만하고.
“1층은요?”
“레디 완료입니다.”
난 건물 밑으로 내려갔다.
그 밑에는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 수십이 난잡한 상황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건물 밖에서 폭탄이 터졌다.
안에서 터진 건 아니다. 1층 전면 유리 밖으로 불꽃이 타오른다.
그 앞, 녹색의 기다란 수조처럼 보이는 걸 세워서 손으로 받친 남자가 보였다.
“오늘,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은 전부 죽는다.”
흑인이네. 아시아 출신은 아니고 아프리카 계열 출신으로 보였다.
주문을 썼는지, 말이 건물 안으로 울려 퍼졌다.
확성기라도 쓴 것 같았다.
방송 기술 오지네.
“꺄아아아악!”
“우아아아아!”
“꺄아아악!”
잠깐, 타임.
끄아아악은 아파서 내는 소리지. 지금 낼 소리가 아니잖아.
그리고 다들 비명만 지르면 어떻게 하냐고.
“너무 무서워요. 살려 주세요.”
국어 책 읽는 여자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자기가 잘한 줄 알았는지, 눈을 깜빡인다.
왜 저러는 거야 대체.
“꺄악, 무서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난 무서워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걸?”
이지혜 팀장 누나다. 건물 카페테리아의 바리스타 복장을 한 채로 말하는 중이었다.
누가 저 누나한테 저 배역 맡겼냐?
이건 아니지.
어색함을 넘어서 누가 보면 딱 걸리겠다.
다행히도 나머지 배우가 열연했다.
“젠장, 전투 요원 전부 모여! 막아!”
“다들 어디 간 거냐고!”
“전부 올라가! 올라가아아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불멸자는 진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줘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전부 대피이이이이!”
다들 연기에 재능이 있는데?
1층에 모인 이들은 전부 꽃밭에서 정신까지 단련한 NS의 주 병력이다.
상대의 전술은 단순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성전이라는 테러를 앞세우고 이곳을 치는 것.
“광익아!”
1층 구석, 주연 배우가 보였다.
진정한 남우주연상 후보, 요한이었다.
호남은 터져 버린 한쪽 안구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반대쪽 그의 눈에는 오망성이 떴고 파랗게 빛났다.
“눈에 무슨 짓을 한 건가?”
남명진 사장이 물었다.
“컬러 렌즈 대신 주문 안구를 꼈습니다.”
“……그게 농담인가? 컬러 렌즈 대신이?”
“농담에는 재주가 없어서.”
“다른 일에 재주가 뛰어나서 괜찮네.”
남명진 사장과 정호남의 앞에는 이제는 고깃덩이가 된 다와가 있었다.
1세대의 영웅이자, 프로메테우스의 수뇌 중 하나.
프로메테우스는 그동안 힘을 많이 소진했다.
여기저기서 인재를 잃었다. 대표 무력 삼인방도 전부 죽었고.
자잘하게는 노필두를 비롯한 이름 있는 테러범도 꽤 죽었다.
주 전력이 많이 상했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설표가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이거였고.
“준비를 이렇게 했는데도.”
호남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접전이었다. 혈투였다.
물론 이쪽이 월등히 유리했다.
상대는 동시다발적 테러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고.
이쪽은 그걸 노리고 시위를 당긴 채였으니까.
남명진은 피가 흐르는 이마를 손수건을 길게 만들어 묶었다.
붕대를 쓰면 될 걸, 굳이 의무병에게 신세 지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상대는 그 설표야. 죽였다는 거에 의의를 두는 게 맞을 걸세. 이 친구는 현상금조차 걸리지 않은 놈이었어.”
바운티 헌터가 기피하기에 현상금이 의미 없는 강자다.
그런 이들이 테러 집단에는 꽤 있었다.
설표도 그런 놈 중 하나였고.
“나머지 작전 지역으로 합류하겠습니다.”
호남은 말하며 삐걱대는 몸을 움직였다.
쉴 시간은 없다. 자신이 한발 먼저 움직이면 그만큼 피해가 줄 것이다.
물론 그를 움직이는 건 오롯한 사명감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명감보다는 계산이 먼저였다.
‘순혈 정가의 이미지는 나쁘다.’
세최특 덕분이다.
그리고 불멸특수대의 이미지도 그리 좋지 않다.
이번 일에 피를 흘릴수록 상쇄되는 게 많을 것이다. 얻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움직여야 한다.
“역시 자네는 머리가 좋아. 맞다. 움직일 때지. 얼굴만 내밀면 되는 일이니까.”
남명진이 말한다. 호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살 난 빌라 벽을 손으로 밀친 호남은 저 멀리서 꽈-앙 하는 폭발음을 감지했다.
상대는 프로메테우스의 전력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 테러로 얻어 낼 건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 아무것도 내주지 않을 것이므로.
“왜 제가 여러분을 다 모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다 머리 좀 쓰세요. 정부, 그룹, 협회가 다 모였는데 고작 테러 단체 하나 못 막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네? 여러분은 자존심도 없어요?”
세최특의 막말이 떠올랐다.
호남은 회의실에서 웃을 뻔하다가 참았다.
나중에 기남이 저 새끼는 만날 저런다고 하는 말에 세차게 웃어 버렸지.
수비는 공격보다 어렵다.
하지만 애초에 상대하는 전력이 다르다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어려워도 해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상대는, 한국 특수종 세계 전체다.
정부, 그룹, 협회.
거기에 NS가 얹어졌다.
네 개 단체가 모였다. 창사 이래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불특대를 포함한 이들은 이미 테러범을 전부 특정 지은 뒤였다.
고로 프로메테우스가 부르짖는 성전은 시작부터 뒤틀렸다고 봐야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