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 성전 (2)
‘불길하네.’
김주희는 점을 쳤다.
날마다 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감각과 시기가 맞을 때, 잘해야 1년에 한 번, 못하면 3~4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게 그녀의 점괘였다.
자신은 전문 점쟁이도 예언가도 아니니까.
어쨌든 오늘이 그때였다.
사무용 의자에 등을 묻은 채, 김주희는 눈앞에 놓인 카드를 바라봤다.
빛이 있음에 어둠이 있다.
그림자가 있음에 빛이 존재한다.
돌아섰기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앞으로 걸어 뒤로 간다.
점괘의 의미는 모호했다.
해석하자면 흉(凶)과 길(吉)이 함께다.
똑똑.
“확인해 주셔야 할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부하 직원이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
암시장도 이제는 체계를 갖추고 운영 중이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일이 직원 손에서 끝났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안목이 필요한 순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있다.
‘감정사를 더 키워야겠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시기다.
김주희는 책상 위를 손으로 쓸어, 카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 번 사용한 점괘 카드는 두 번 쓸 수 없었다.
부정이 타므로 썼던 카드도 버려야 했다.
그녀는 점괘를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점괘가 전부 맞지는 않으니까.’
시기와 느낌이 충만해야 맞는 게 점이다. 오늘 같은 경우는 반반쯤이었다.
아니, 조금 묘한 점괘이긴 했다.
반은 위험을 말하고.
나머지 반은 위험 속에 내미는 빛줄기를 담았다.
위험하지만, 위험하지 않다.
개똥 같은 점괘였다.
김주희는 자신의 점이 전부 맞지 않는다는 걸 안다.
때로는 길거리에서 보는 타로만도 못한 게 점이다.
그녀는 오늘의 점을 무시하기로 하고 답했다.
“네, 알겠어요.”
곧 그녀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물류 창고 중 특급으로 분류된 물건은 다시 철저한 보안 창고로 모인다.
그곳까지 도착하자, 앞쪽에 무장한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김주희 자신이 설치한 몇 가지 기어가 발동했다.
과학과 마법으로 보호되는 곳이었다.
암시장의 슈퍼리치를 매혹할 상품이 가득한 곳이니 당연했다.
슈퍼리치라는 이들은 작은 부적 하나에도 수십억 원을 쏟아붓는 이들이다.
요새는 스포츠카 대신 부적이 유행을 타고 있다던데.
고가의 시계 안쪽에 붙이는 새끼손톱만 한 부적이 특히 인기다.
부적의 효용은 딱 하나, ‘보호’다.
순식간에 몇 겹의 장막을 쳐 주는 고가의 상품.
그걸 만들 수 있는 건 4대 연맹이 아니라면 김주희뿐이었다.
그만한 실력과 안목을 갖춘 사람이 흔하진 않으니까.
덕분에 요즘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어떤 거죠?”
모든 보안 시스템을 통과한 뒤다.
홍채 인식부터, 형태변환자 체크도 끝났다.
보안 창고 안은 한산했다.
애초에 고가의 물건 몇 개만 보관하는 게 전부인 곳이었다.
“네, 감정사가 지금 상품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비서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안으로 두 걸음.
김주희는 걸음을 멈췄다. 불길한 직감이 마법사의 감각을 교란한다.
“끄어어.”
안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이전에 사람이었던 게 있었다.
비서 겸 직원이 인상을 쓰며 짧은 신음을 뱉었다.
김주희는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펠 크리에이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펠 유저 재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왼 손목에 찬 팔찌 형태의 기어가 발동한다.
지-잉.
만약 누군가 공격한다면 곧바로 방호주문이 발동하는 형태의 기어였다.
“사장님, 이건…….”
비서가 드물게 당황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 어지간한 저주라면 발동조차 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형태로 주문 방어를 해 둔 곳이다. 저주 들린 물건이 들어와도 발동조차 되지 않을 만큼 공들인 곳이다.
그런데 물건을 체크하는 감정사의 피부에 팡팡 터지는 기포가 생기는 게 보였다.
볼살이 흐물흐물 해지며 밑으로 축 처지더니, 피부 전체가 녹황색으로 변한다.
“구울.”
김주희가 말했다.
식인 괴물이다.
타락한 주문쟁이가 만들어 내는 크리쳐이기도 했다.
사람을 단숨에 괴물로 만든다?
그런 물건이 흔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이곳을 뚫고 만드는 건 더 흔치 않고.
수십 겹의 방호주문, 저주 해소 기어를 뚫고 발동하는 물건.
김주희의 지식 속에서 그런 물건은 하나뿐이었다.
고대의 저주가 담긴 물건.
“미쳤군.”
그녀가 짐작을 끝내고 혀를 내둘렀다.
고대의 저주가 담긴 물건은 4대 연맹 급이 아니라면 나오지 않는다.
고로 이만한 물건이 나왔다는 건 그들이 이곳을 노렸다는 말과 다를 게 없으니.
“전부 나가요. 이 창고는 봉인합니다.”
“넵!”
비서가 재빠르게 뒤로 뛰었다.
평소에 잘 가르쳐 두긴 했다.
무슨 일 생기면 제 몸부터 챙기라고.
‘그래도 나도 좀 챙겨야지.’
은근히 서운하다.
물론 그녀는 이 정도 저주로 단숨에 무너지지 않는다.
시간을 버는 정도야 문제도 아니었다.
파사삭.
그녀의 오른 손목에 찬 팔찌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안 좋은데.”
저주는 그 강도에 따라 몇 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5급부터 시작해서 1급, 특급까지.
그중에서 고대의 저주, 피라미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저주의 등급은 규격 외였다.
규격 외 등급의 저주.
그녀의 저주 방호 기어가 다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젖었던 마른 신문지처럼 말라서 조각났다.
곧 오른손등부터 푸른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대의 저주, ‘식인의 유혹’.
구울로 변한 감정사 뒤, 작은 철제 상자의 윗부분이 뜯겨 나갔다.
저주의 실체화다. 일종의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이다.
특급 저주부터 보이는 이상 현상이다.
뜯긴 철제 상자 안에 그 형체가 보였다.
가죽과 뼈만 남은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비쩍 마른 팔뚝과 손가락이 보였다.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피부는 파랬다.
식인의 유혹이 담긴 저주의 집결체다.
“쿠르르르.”
구울로 변한 감정사가 자세를 낮춘다. 단숨에 뛰어들 기세였다.
딱!
김주희는 왼손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팔찌가 발동하며 몇 겹의 방호주문을 역으로 발동.
곧 방호주문은 감옥 주문이 되어 구울 하나를 감쌌다.
“꾸에에에!”
놈은 발악했다. 몸을 버둥거렸다.
“사장님!”
뒤에서 비서가 외친다.
“혜민이 불러 줘요. 길어야 하루에요.”
김주희는 변한 오른손을 보며 답했다.
지금부터 그녀는 저주를 막는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놔둘 수도 없다.
놔두면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구울이 되어 버릴 것이다.
고대의 저주란 그런 무기다.
쓰지 말아야 할 금술이었다.
“빠를수록 좋겠네요.”
김주희가 말하며 보안 창고의 문 밑을 발바닥을 들어 밀었다.
끼이이잉.
문이 닫힌다.
“네, 반드시!”
비서가 문틈으로 외쳤다.
텅.
문을 닫은 김주희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저주에 먹히지 않고 버티면 혜민이가 올 것이다.
딸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동시에 그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저주 방호 부적을 만들면 불티나게 팔리겠다는 거였고.
둘은 이 정도 준비를 하고 금술까지 동원할 놈이라면 혜민이도 그냥 두지 않았으리란 생각이었다.
강혜민은 같은 골목길을 세 바퀴째 돈 뒤에야 이상한 술수에 갇혔다는 걸 깨달았다.
‘진인가?’
모든 걸 감으로 해결하는 스펠 유저지만, 지식도 필요한 법이다.
어머니의 강요로 배운 것들이 많았다.
공부는 광익에게.
마법은 어머니에게.
그녀의 일상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마법에 열중하다 보니, 공부가 뒤처진 건 어쩔 수 없었고.
‘핑계라고 뭐라고 하려나?’
분명 광익이 들으면 그리 말할 것이다.
자신한테는 참 가혹한 인간이다.
‘다른 여자한테는 그렇게 잘해 주면서 말이야.’
특히나 적으로 만나는 여자한테는 친절하다.
최미남을 잡아 온 뒤에도 그랬다.
“고문은 필요 없어요. 제가 말하면 돼요.”
신사 납셨네.
혜민은 잡생각을 하면서도 진의 빈틈을 찾았다.
그녀에게 마법으로 이뤄진 무언가는 답이 뻔한 문제다.
문제는 그다음이겠지.
혜민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이라도 주문만으로 자신을 막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변신족을 필두로 한 무력.’
그게 아니라면.
‘불멸자 부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특이 초능을 이용한 발 묶기.’
어떤 것도 전부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노린 거다. 그것만은 명백했다. 혜민은 호흡을 고르고 싸움을 준비했다.
전투는 기정사실, 나오는 놈이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개인 전술 중 최고봉이라 꼽히는 전술을 쓸 작정이었다.
‘선빵 필승이다.’
그리 준비가 끝난 그녀의 앞.
골목길 끝, 가로등이 깜빡거리며 점멸했다. 점멸한 빛 사이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조금 전에 면도라도 했는지 얼굴이 깔끔했다.
옷차림도 마찬가지고.
맵시 있게 입은 정장과 딱 어울리는 옥스퍼드 구두, 넥타이까지 맸다.
그는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혜민을 보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 숨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그가 말했다. 선빵 필승을 준비한 혜민은 기묘한 느낌에 손을 멈췄다.
“누구?”
“네 어미가 내 얼굴도 보여 주지 않았구나. 몹쓸.”
남자는 말하고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그에게 공격할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숨겨 둔 초능이나, 주문 따위도 없다.
병력도 보이지 않았다.
“혜민아, 나다.”
남자가 말한다. 혜민은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휘도는 걸 느꼈다.
대답을 듣지 말아야 할 것 같은 느낌.
“아빠다.”
기습이라면 기습이었다.
무엇보다 유효한 기습.
무력이 아닌 핏줄 공격이었다.
강혜민은 공격 대신 손을 내렸다.
“아빠?”
어릴 때부터 궁금했었다. 과연 아버지란 어떤 사람인가.
어머니가 말한 게 아버지의 전부인가.
딸을 버리고 단체를 택한 비정한 인간, 개새끼, 쓰레기.
어머니가 쓰레기라 부른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얘기 좀 할까?”
아빠가 말했다.
“세최특은 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코엑스 한복판, 전신에 폭탄을 두른 남자가 외친다.
“NS의 존재는 인류를 멸망케 하리니!”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고함을 내지르는 남자도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각인 폭탄이 들렸다.
주문으로 발동하는 스펠 봄이다.
터지는 순간, 주변 모든 사람을 가사 상태로 몰아가는 특수종 전쟁의 유물이다.
금술, 금지된 물건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이 비행기는 지금부터 내가 관리한다. 불만 있으면 내리든가.”
비행기를 탈취하고.
열차를 탈취하고.
사방에서 세최특을 외친다. 프로메테우스의 모든 테러리스트가 서울에 모인 듯했다.
폭발이 일어난다.
“꺄아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그 와중에 터진 폭발 사이로 블랙홀이 열린다.
그 홀을 여는 것도 프로메테우스였다.
그들이 개발한 홀 촉진기다.
“세최특에게 묻노라! 과연 네가 한 일이 인류를 위한 것이었는가!”
광화문 중심에서 세최특을 외친다.
난리였다. 서울 시민에게는 종말이 찾아온 듯했다.
그 모든 걸 실시간으로 보고 받은 건,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아니라 그 부하였다.
‘성공이다.’
서울을 향한 테러 모의는 근 1년을 준비했다.
사람을 숨기고 곳곳에 심었다.
물론 중간에 경찰이나 정부에 꼬리가 잡혀 감옥에 들어가거나, 죽은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버틴 이들도 많았다.
언제나 수비보다 공격이 쉬운 법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일에 사활을 걸었다.
전력을 쏟아부었다.
수장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 모든 건 마지막 한 수를 위한 것.’
수장은 영리했다. 그는 이 모든 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불태웠다.
그걸 위해 테러 일시를 한순간에 알려야 했다.
부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너구나.”
그의 눈앞에 무장한 불멸자가 섰다.
1세대의 영웅이라 불리는 남자다.
“남명진.”
“늙은 괴물이 아직도 살아 있었나?”
둘에게는 케케묵은 원한이 있었다.
둘 다 1세대에 서로를 적으로 삼은 이들이었으니까.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라면 그래, 너 정도는 돼야지.”
그 말에 부하는 낄낄 웃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어도 상관없었다.
이 모든 건 인류에게 빛을 가져오기 위함이므로.
그걸 막는 건 전부 장애물이다. 치우면 그만이었다.
“틀렸다. 남명진.”
“뭐?”
“난 그의 한쪽 팔이면 족할 뿐.”
남명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작자가 누구인가.
1세대 변신족 중 이 남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몇 없었다.
설표 다와.
눈표범으로 변신족이자, 1세대 때 가장 많은 인베이더를 죽인 남자.
“일단 죽거나 잡혀 줘라. 사고를 쳤으면 책임을 져야지. 성인이라면 그래야 하잖아?”
남명진은 놀람을 표하지 않았다. 제 속을 감추는 건 불멸자의 특기다. 남명진은 어지간한 불멸자보다도 제 속을 더 잘 감추는 인간이었고.
“그래. 널 성전의 제물로 바쳐야겠다.”
“미친놈에겐 매가 약이라더라.”
우드드득.
곧 다와의 전신에 흰 털이 자라며 사이사이 검은 얼룩이 솟았다.
변신체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가 변신하는 찰나다.
그의 머리 위로 전류가 흐르는 그물이 떨어졌다.
누구라도 미처 반응할 수 없는 타이밍이다.
“내가 진짜 혼자 왔을 거라고 믿는 건 아니었지?”
남명진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 뒤로 정호남이 다가왔다.
“바깥쪽도 정리 중입니다.”
“잘했네, 부사장.”
정호남은 어느새 부사장이 되었다.
설표의 전신에 전류가 흐른다.
파지지지직!
“크르르르릉!”
그가 사납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곧 전류가 흐르는 그물 위로 그의 몸이 둥실 뜬다.
“……안 본 새에 강단이 좋아졌네.”
전신 털이 그을리는데도 설표는 손톱을 세워 그물을 뜯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