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성전 (1)
“그러니까 거기서 주인공이 그 말을 한 건 형사 때문이라니까?”
요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아니지, 그건 개연성에 어긋나는 표현이었어. 굳이 거기서? 왜?”
그의 애인인 고우심은 목에도 비슷하게 혈관이 굵어져 툭 튀어나왔다.
“와, 말 안 통해.”
“내가 할 말이다.”
“……때리고 싶다. 진짜.”
“난 남녀 평등주의자다.”
“내가 때리면 너도 때리시겠다?”
오빠한테 ‘너’란다. 요한은 피식 웃을 뻔한 걸 참았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뭐가 아니야, 때리겠다는 것 맞고만. 이 가정 폭력범.”
“아직 우리가 가정을 이룬 건 아닌데?”
“아씨.”
고우심과 하는 말장난은 재미있었다.
세상일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
책 한 권을 두고 하는 소모적인 논쟁.
누가 이겨도 상관없는 싸움.
결국에는 지든 이기든 웃음으로 끝나는 경쟁.
전부 다,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복에 겨울만큼 즐거웠다.
요한은 낯부끄럽지만, 이걸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우심도 같은 마음이라고 믿었다.
책을 읽고 얘기를 하고 카페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같은 타이밍에 들어가려던 남자와 요한의 어깨가 부딪혔다.
어깨가 옆으로 밀리며 요한이 고개를 돌렸다.
‘으음?’
흐릿한 기운을 가진 남자였다.
후드를 눌러 쓰고 눈 밑은 검었다.
며칠 밤이라도 샌 것 같았다.
퀴퀴한 냄새가 났고 입술 주변은 하얗게 텄다.
노숙자 테크트리 초기 레벨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생기가 없어서야.’
걸어 다니는 시체 같다.
부딪쳐 놓고 일언반구 말도 없이 들어서는 남자다. 그 남자의 등을 보며 요한은 씁쓸함을 느꼈다.
‘기척을 놓치다니.’
아무리 긴장을 풀었고 근래 정신을 반쯤 놓고 일반인 코스프레를 했다지만, 요한도 불멸특수대 출신의 엘리트다.
혼혈 불멸자로서는 최고위 부대에서 손에 꼽히는 능력을 선보였던 몸이다.
지금에서야 세최특이나, 정기남이니 하는 괴물이 하도 튀어나와서 다 옛말이 됐지만, 박호순 같은 일반 요원 출신이 보기에는 요한도 그만한 능력자다.
꼭 호순이 아니더라도, NS 밖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요한은 능력자로 남을 수 있었다.
차라리 이직이 답일지도 몰랐다.
“저기요,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하셔야죠.”
짧은 순간, 별의별 상념이 다 지나갔다. 요한은 금세 상념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왔다.
우심이 나서서 노숙자 비슷한 사람에게 한마디 하는 게 보였다.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니, 이봐요!”
우심의 목소리가 커졌다. 요한이 뒤에서 우심의 팔꿈치를 잡았다.
“그만해. 사람들 쳐다본다.”
“사람을 쳤잖아요. 근데 왜 사과를 안 해요.”
“못 본 내 잘못도 있어.”
“아니요. 전 똑똑히 봤거든요. 오빠가 먼저 들어간 거고 저 남자가 뒤에서 친 거예요.”
요한은 그 말에 더 인상이 굳었다. 뒤에서 밀고 들어왔는데, 기척을 놓쳤다?
제 감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니, 이 정도면.’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에 관한 의심도 든다.
“저기.”
요한이 입을 열었다. 남자는 그 모든 걸 무시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성수역 부근의 공장을 개조한 카페였다. 딸기 라떼가 맛있는 곳이었다.
평일 점심에도 사람이 북적거릴 만큼 장사가 잘되기도 했다.
우심이 나중에 같이 카페 차려서 둘이 운영하자는 농담을 할 정도로.
지금도 거의 모든 테이블에 자리가 차 있었다.
카페 벽에 전시된 아마추어의 미술 작품을 보며 웃고 떠들던 여자 둘의 등을 노숙자 차림의 남자가 치고 지나갔다.
“어머?”
“저기요?”
남자는 그 또한 무시했다.
여자 중 하나가 발끈해서 손을 뻗으려다가 차림을 보고 멈춘다.
무서운 건 겁내지 않을 수 있어도 더러운 걸 피하지 않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여자는 손을 움츠렸다.
요한의 눈에 그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
남자는 카페 중앙, 회색 시멘트로 만든 바닥에서 똑바로 서서 멈췄다.
종아리까지 덮는 코트가 에어컨 바람에 흔들렸다.
‘날씨가 더워.’
때는 늦여름, 한낮에 바바리코트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긴 코트를 입었다.
요한은 허리춤에 손을 댔다. 아무리 넋을 반쯤 놓고 다녀도 호신 무기는 챙기고 다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 레일건이었다.
작지만 강한 친구, 쏘기만 하면 당장 저 남자의 머리통을 날릴 수 있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무기에 손을 대고 뽑아 올리려는 순간, 남자가 제 코트를 벗었다.
“꺄악!”
근처에 있던 여성 하나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이 미친 새끼.’
어린 시절 여고 앞에 나타난다는 바바리맨 같았다.
바바리 안쪽은 알몸이었다. 몸을 가릴 수단을 남겨 두지 않았다.
전신에 칭칭 끈을 둘렀다. 그 끈에는 녹색의 불길한 액체가 흐르는 중이었다.
끈이 아니라 액체가 흐르는 관 같은 걸 몸에 두른 거다.
몸통에만 조끼 비슷한 걸 둘렀는데 그 안에 납작한 통이 있었고 몸에 두른 관에서 흐르는 녹색 액체와 같은 게 투명한 통에 가득했다.
그리고 손에는 기폭 장치 비슷한 스위치가 들렸다.
남자의 엄지가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떼면 터진다.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봤다.
‘쏘면 안 돼.’
저 남자가 몸에 두른 게 뭔지는 몰라도 몸에 좋은 건 아닐 것이다.
어딜 쏴도 충격에 트리거가 발동할 것이다.
‘필요한 건 시간.’
짧은 순간, 요한은 자신이 할 일을 정리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가 제 할 일을 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이다.
그렇다면 일단 대피가 우선이다.
“나가, 고우심.”
자신이 나갈 순 없다. 그렇다면 일행이라도 내보내야 했다.
남자가 아직 뭘 하기 전에 나가면 터트리겠다거나 무슨 난리를 치겠다거나 하기 전에.
하지만 우심은 말을 듣지 않았다.
“같이 나가요. 혼자는 안 가.”
이 빌어먹을 고집불통.
부모님이 미치도록 반대해도 지금과 같은 차림을 하고 다닌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의 고집은 대단했다.
“젠장, 말 좀 들어라.”
“절대로 안 돼. 같이 나가요.”
요한과 우심은 입구 쪽이었다. 뒤로 돌아서서 뛰면 될 것이다.
그럼 자신과 우심은 살 수 있었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요한은 그럴 수 없었다.
“이것은 성전(聖戰)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온 신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할 것이다. 이게 그 시작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희생은 곧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의 재료가 될 것이니…….”
남자의 말은 장황했다.
요한을 제외한 주변 사람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로.
“경찰 불러요. 뭐 해요.”
“나가자.”
“영화 촬영인가? 카메라 안 보이는데 이거 설마 몰카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위가 좀 과하잖아.”
아랫도리를 덜렁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나올 말이다.
그중 하나다.
“시발, 이 미친 새끼가. 돌았냐?”
팔뚝에 문신을 두르고 배가 넉넉히 나온 스포츠 웨어 차림의 남자였다.
건들거리며 나선 남자가 발가벗은 남자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야, 이 시발 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요한에게도, 남자에게도 알 바는 아니었을 거다.
남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납작한 유리 케이스 안, 그러니까 배 쪽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총을 꺼냈다.
그의 동작에는 불필요함이 없었다.
주저 없이 겨누고 쏜다. 단순한 동작의 파장이 건물 내부를 울렸다.
탕!
총성이 터졌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울렸다.
문신 돼지가 허벅지를 쥐고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연신 토해 냈다.
“꾸에엑!”
“그만, 조용히 하지 않으면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겠다.”
총 맞은 사람보다 다른 이들이 더 놀라 비명과 괴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우어어, 뭐야, 시발 진짜 총이야?”
“뭐냐고 이거.”
“몰카 아니잖아!”
탕탕탕!
남자는 머리 위로 총을 세 발 쐈다.
총성은 크다. 사람의 비명을 삼키기 충분했다.
금세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자는 침묵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냈다.
“내 몸에 두른 건 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축복이다. 이 축복을 두른 자는 누구보다 먼저 천국에 닿을 것이다.”
누군가 침을 삼켰다.
요한은 얼떨결에 문을 지키는 모양새가 됐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가 문을 막는 바람에 나가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조용히 문 앞에 있는 요한을 슬쩍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도 나가려고 한다면 이걸 터트리겠다. 먼저 나가려고 한 놈 머리통에 총알부터 박을 것이고.”
덤덤한 말투, 담담한 태도.
요한은 그 말투와 태도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감정 변화가 없다.’
모든 걸 각오하고 왔다는 거였다.
당장은 작전 따위를 짤 때가 아니었다.
‘시간을 끌고 나머지는 임기응변으로.’
“전부 모여라. 할 말이 있다.”
남자의 말에 주춤거리던 사람이 카페 중앙에 모이기 시작했다.
“카운터 뒤에 숨은 사람도 나와라. 계속 숨어 있다면 축복을 먼저 내려 주겠다.”
미친 새끼가 귀도 밝군.
‘불멸자구나.’
생기를 없애는 재주가 있고 감각이 발달했다.
달리 어떤 특수종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너무 안일했다.’
멍청했다. 긴장을 너무 풀었다.
“이 성전은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났다.”
여전한 태도로 남자는 말했다.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장황했으나, 핵심은 어렵지 않았다.
“세최특은 인류의 배반자요, 제 이득을 위해 위험을 전가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었다.
‘광익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너무 황당한 얘기다. 논리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무조건 세최특 탓이라는 일방적인 비난이다.
사람들도 안다. 이건 세최특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이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누구도 그렇게 믿지 않아도.’
죽은 사람의 가족은 뭐라고 생각하겠나.
왜 테러 단체를 들쑤셔서 이런 경우를 만들었냐고 원망하겠지.
지금도 광화문 앞에 세워진 거대한 추모비 앞에서는 원망을 가슴에 품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들의 말이 사리에 맞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
사람 중 몇몇은 희생의 책임 일부를 광익에게 전가할 것이다.
본래 사람이 악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겠지.’
집단이 뭉치면 더욱 그 문제가 커질 것이다.
‘막아야 한다.’
요한은 머리를 굴렸다.
“이 중에서 반은 나간다. 지금부터 나갈 사람을 정하겠다.”
남자가 말한다. 반을 내보낸다는 건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전하라는 것일 터.
요한은 이 일을 계획한 새끼의 낯짝을 보고 싶었다.
옆에서 우심이 팔을 떨었다. 아니, 전신을 떨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이 보였다.
그래, 겁이 나겠지.
이런 상황을 처음 겪었을 것이다.
요한은 속삭이면서도 눈은 남자한테서 떼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가진 무장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최선은 무엇인가?
저 장치는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 건가?
저 액체는 염산 종류인가?
무수히 많은 질문의 합은 결론 비슷한 걸 만들어 내는 과정 중 하나다.
요한은 자신에게 수차례 질문하고 답을 꺼냈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대쪽 손으로 우심의 어깨를 누르고 앞으로 한 걸음.
“멈춰라.”
“반은 어떻게 뽑는 겁니까? 전 꼭 나가야 합니다.”
“……그건 세상에 빛을 가져온 하늘의 뜻에 따라…….”
“돈 필요하면 돈을 드리죠. 아니면 여자가 필요한 겁니까? 여자를 줄 수도 있습니다. 얘는 어떤가요?”
요한이 우심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무표정, 감정의 절제.
불멸자의 특기다.
하지만 참는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리라.
순간, 남자의 눈에서 경멸의 감정이 떠올랐다.
“참고로 난 불멸자입니다. 혼혈이죠. 돈도 많고 잘 나갑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재원이라고 할 수 있죠.”
요한은 순간적으로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래서 그에 맞는 태도를 고수했다.
요한은 순혈주의자에게 쥐어 터진 혼혈 중 일부가 주장하는 일반인 차별론을 꺼냈다.
특수종이 더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말.
남자의 눈에 경멸의 감정이 더 크게 비췄다. 곧 입가까지 비틀린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와라. 방법을 알려 주겠다.”
그러면서도 말투는 여전하다. 훈련을 잘 받은 놈이었다.
요한은 그와 거리를 좁혔다.
불멸자와 불멸자의 싸움은 서로의 기척을 얼마나 잘 숨기냐의 싸움.
‘그 지겨운 훈련이 참.’
여기서 도움이 됐다. 기척을 감추고 숨기고 속내를 완벽하게 포장한다.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고.
요한의 작전은 성공했다.
푸쉭.
남자가 기폭 장치로 보이는 버튼을 순식간에 뗐다가 눌렀다.
그러자, 어깨 위에 놓인 관이 비틀리며 녹색 안개를 뿜어냈다.
“마셔라. 이걸 마시면 내보내 주겠다.”
보기만 해도 불길했다. 아마도 독극물, 그보다 안 좋으면 화학 테러가 되겠지.
이게 터지면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사태가 도심 한복판에서 생화학 테러다.
요한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솜사탕처럼 보이는 연기에 다가갔다.
그러며 왼손을 움직였다.
완벽하게 기척을 숨긴 왼손이 손잡이를 쥔다.
상대는 눈치채지 못한다. 요한의 손이 부드럽게 위로 올라갔다.
할 말이 있어서 손이라도 든 모양새였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다만, 그 손에는 원형 막대가.
원형 막대 끝에는 빛으로 이뤄진 채찍이 있었을 뿐.
채찍은 부드럽게 상대의 손목을 가르고 뱀처럼 휘어지며 목을 꿰뚫었다.
모든 건 1초 내외로 일어난 일.
요한은 급히 버튼부터 잡았다.
‘막았다.’
안심하기 직전이다.
“오빠!”
우심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요한을 안다. 걱정했고 본심이 아닌 걸 눈치챘다.
쿼터 이하의 불멸자라더니, 자신을 구하려고 했나 보다.
그녀가 달려들다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테러범은 죽였지만, 짧은 틈에 녹색 안개가 몇 개 퍼졌다.
그중 하나가 우심의 팔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