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68화 (368/488)

368. 마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2)

“대련 요청이다. 덤벼라.”

안결이 손을 까닥거렸다.

이 새끼는 태도가 왜 이럴까.

도전자는 매일 지면서도 저렇게 받아 주겠다는 듯 가슴을 쫙 펴고 덤빈다.

“너 지금 눈탱이 밤탱이인데 괜찮겠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안결의 눈두덩이가 부어올라 눈동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저거 앞은 보이는 거 맞나?

“맞는 게 취미야?”

일 때문에 날 찾아온 로즈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전 그런 취미 없습니다.”

정직이가 로즈 바로 곁에 서서 입을 털었다.

“오늘은 다를 거다.”

도안결이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 각오가 느껴진다. 의지가 충만하다. 오늘에야말로 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서슬 퍼런 기세가 불타올랐다.

그래, 좋다.

나도 반쯤은 진심을 담았다.

양팔 근육이 부풀며 파란 빛줄기를 머금은 검은 털이 자랐다.

부분 변신이다.

그에 하나 더 섞는다.

“넌 진다.”

언령을 담는다. 도안결은 호흡을 길게 마시고 내뱉더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밤탱이가 된 눈두덩이 사이로 눈과 눈이 마주쳤다.

팍.

먼저 뛰어든 건 안결이다.

달려들며 완전 변신.

늑대로 변한 그의 손이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라온다. 동시 왼발로 정강이를 걷어찬다.

그 타이밍이 몹시 절묘했다.

통나무 선생에게 배운 게 틀림없다.

이건 암사자로 변한 장가희 선생의 특기다.

위와 아래를 동시에 공격하면 어딜 막을 것인가.

전부 막으면 된다.

막고 튕겨 낸다. 손을 뻗으며 손톱을 세웠다. 그거로 늑대의 주먹을 할퀴고 발을 반쯤 들어 뻗어 안결의 발차기에 힘이 다 실리기도 전에 차단한다.

그 순간 안결의 몸이 무섭게 휘돌았다. 제자리에서 돌면 그의 품에서 빛줄기가 튀어나왔다.

썽!

손톱 하나를 늘려 내 머리 쪽을 벴다.

난 피하며 순간적으로 기척을 흘리고 속이고 흩뿌렸다.

무수히 많은 공격 페인팅은 하나라도 막지 못하면 전부 유효타가 될 수 있었다.

안결은 입을 쩍 벌려 내 빗장뼈 부근을 물려고 덤볐다.

난 그가 무는 타이밍에 손톱을 세워 위로 찔러 목을 뚫고 머리통을 꿰뚫었다.

피와 뇌수가 튄다. 이건 죽음이다. 죽음을 선사하는 손길이다.

“후어어억.”

안결이 숨을 내뱉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처음 내 앞에 섰을 때와 달라진 건 두 가지.

하나는 변신체가 된 거고.

둘은 왼발을 한 발 앞으로 뺀 것뿐이다.

환상이었다. 환영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숨을 몰아쉬던 놈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물었다.

물론 늑대로 변한 상태였기에 하얀 안색이란 건 관용적 표현일 뿐이다.

눈가가 떨리고 근육이 긴장했으며, 조금만 방심하면 침을 흘릴지도 모를 만큼 주둥이도 열렸다.

그 모든 걸 불멸자의 감각으로 보고 직관적으로 하얗게 질린 안색이란 결론을 내린 거지.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 도안결.”

난 필요한 말만 해 줬다.

그나마 머리 쓰는 변신족이라는 놈이 왜 나랑만 싸우면 이렇게 무식하게 덤비는지.

“아니, 지금 한 게 뭔지 물은 거다.”

그래도 심장은 튼튼하다. 조금 전 그는 상상으로 한 번 죽었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서 있지 않나.

보통이라면 꺽꺽대며 바닥을 구르던데.

“그거 했군요. 나도 당했어!”

정직이가 불현듯 외치듯 말했다.

그래. 너도 당했지. 넌 오줌을 지렸잖아.

불멸자와 달리 변신족은 다치면 오래 간다.

그래서 만든 대련 방법이었다.

꽤 어려운 작업이긴 한데, 할아버지의 언령은 상대의 인식을 뒤흔든다. 거기에 야생의 살기를 섞고 기세를 드높인다.

기척을 섞어 손과 발을 까닥이면 상대는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공격으로 판단한다.

서로의 머릿속에서 이미지만으로 싸우는 거다.

도안결이 바라는 건 피가 튀고 목숨을 건 싸움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1년 365일 내내 병원 침대 신세다. 자식아.

물론 나 말고 쟤가.

할 일도 많은 놈을 그렇게 보낼 수 없어서 이미지만으로 찍어 누른 거다.

물론 이것도 부작용은 있었다.

“전에 했을 때 심장 멈출 뻔했다고요.”

정직이는 오줌을 지린 뒤, 아주 잠깐이지만 심정지가 왔었다.

그만한 타격이 있다던가.

나야 당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

“여전히 미친 짓을 일삼는군. 다음에 또 하자.”

안결은 몸을 돌렸다. 낭패한 얼굴은 아니다. 조금 전 싸움을 복기하는지 곧바로 혼자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다음에 또?

참 이상한 새끼지 저거도.

“안 가?”

로즈가 재촉했다.

“간다.”

땀 한 방울 안 흘려서 몸만 가면 그만이었다.

대련장으로 쓰는 방에서 나왔다.

최근에 훈련장 규모를 늘렸다.

다들 기남이나 안결의 훈련을 보면 혀를 내두르니,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간을 분리했다.

따로 놔둔 공간을 이용하는 건 보통 소수 정예라 불릴 인원뿐이었다.

거기에 요한만 없었다.

이 형 요새 진짜 여자에 푹 빠졌네.

가끔 단톡방에 제 여자 친구 사진을 올렸는데.

난 그, 뭐랄까 이 형의 취향을 모르겠다.

몹시 어려 보이는 얼굴 하얀 여자가 까만 머리칼에 해골 귀걸이를 한 모습을 보고 뭐라 해야 하는가.

내가 보수적인 인간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예쁘지?’라고 묻는 말에 난 곧이곧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그 뒤로 삐졌는지 말이 없다.

이 형 진짜 상태 이상하다니까.

차라리 귀태 형이 멀쩡해 보였다.

해골 귀걸이 사진에 우미호 사진을 올려서 받아치는 걸 보라.

그러고는 ‘미호가 낫지?’라고 물어보더라고.

에라이, 미친 새끼들.

누구 염장 지르나.

난 올릴 사진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그걸 하겠다고?”

나란히 걷는 로즈가 묻는다.

“하겠죠. 대표 형님이 하겠다고 하는 거면 전부 하지 않습니까.”

“협회에서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은데.”

로즈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전직 테러리스트치고는 참 잔걱정이 많은 타입이다.

“넌 그래서 테러범은 어떻게 했냐?”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봤다.

“개새.”

로즈는 날 흘겨보더니, 중얼거렸다.

아니,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왜 욕을 하냐.

하여간 애가 성격이 별나다.

“넌 시집가긴 글렀다.”

앞날이 걱정돼서 한 마디 더 보태니.

“형, 그만 해요. 왜 그래요. 진짜.”

정직이가 옷 소매를 잡았다.

내가 뭘 잘못했니?

마법사 부대를 창설했고 변신족 부대의 근간을 마련했다.

남은 건 초능 쪽이었다.

그 기반을 마련할 사람을 모으는 게 일이었는데, 그건 이 누님이 해결해 줬다.

경찰청 출신 초능 특수종 이지혜.

연상 여인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이 작자는 발도 넓고 능력도 훌륭했다.

전직 테러리스트 로즈와 같은 특이 능력 보유자다.

싱글 능력자로 경찰청 요직에 앉은 게 우연은 아니라는 거다.

내가 인복은 있는 편이지.

넘어오라고 냉큼 넘어오는 거 봐라.

인복이 아니라 여복일까.

매력 있는 남자의 숙명일까?

“왜 그렇게 재수 없는 표정을 짓는 거야?”

지혜 누나가 물었다.

“쓰레기 같은 망상이나 했겠지.”

로즈가 거들었다.

“쓰레기?”

“넘어가요. 형, 일해야죠, 일.”

정직이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로즈가 날 보더니, 혀를 쭉 내밀었다.

내가 온 곳은 최근 훈련장을 늘리면서 산 옆 건물이다.

이런저런 사업으로 수익은 늘고 돈은 남으니, 이런 데에 쓰는 거다.

이중 보안으로 만든 문을 지나자, 안쪽에서 중고 형이 나왔다.

“내 인맥에 더해 주호 씨가 괜찮다는 초능 특수종은 다 모았다. 능력보다 인성 맞지?”

중고 형은 마당발이다. 특히 초능 프리랜서 업계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사람이었단다. 본인 피셜이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발 넓은 동네 아저씨다.

여기서 포인트는 신주호다.

특이 능력 박쥐귀로 이런저런 능력자의 뒤를 캐고 정보를 모았다.

그 사이사이 필요한 부가적인 정보는 진짜로 제 이름을 전뇌 공주라 붙인 인터넷 중독자 여자애가 찾아 줬고.

그러니 준비는 끝났다.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눈으로 얼추 세보니 이백 명이 넘었다.

사방 벽에는 방탄은 물론이고 특수 처리된 방벽을 둘러쳤고.

안에는 덩그러니 공터처럼 넓힌 공간이다.

탁 트인 100평이 넘는 거실에 창문조차 없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곳은 중력 조절까지 가능했다.

사람 괴롭히기 딱 좋은 시스템이었다.

그 안에 모인 사람 숫자가 이백이 넘으니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팠다.

“조용, 조용. 대표님 오셨습니다.”

중고 형이 확성기 대신 마이크를 쥐었다. 무선 형태로 소리를 증폭시키는 물건이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줄었다. 숨소리만 남았다. 이백이 넘는 사람들이 내뿜는 숨소리가 묘하게 청각을 자극했다.

말이 이백이지, 이렇게 모인 숫자를 보니, 바글바글한 느낌이었다.

“꽤 많이 모였네요?”

“조건이 허술했으니까.”

내 말에 중고 형이 마이크를 손으로 막고 말했다.

내가 내건 조건은 프리랜서 업계에서 제 밥그릇은 챙기면서 선을 넘지 않은 능력자.

범법은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테러와 관련되거나, 암살 의뢰 따위를 받은 거라면 탈락.

세차게 테러범을 죽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명분은 언제나 중요한 법이니까.

이런 세상에 살면서 살인을 죄라고 할 순 없다.

죽고 죽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미친 자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테러범 앞에서 어쭙잖게 생명 존중 따위를 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여기 모인 사람은 인성 테스트에 통과한 사람이다.

이중에서는 NS의 사원이었던 사람도 있고.

프리랜서 세계에서 노닐던 이도 있고.

소매치기 따위로 제 능력을 낭비하던 이도 있었다.

“정말 NS에 입사시켜 주는 겁니까?”

앞줄에 앉은 여자였다. 발음은 어눌했고 눈동자가 좌우로 퍼진 사시였다.

“봐서요.”

내 말에 또 앞줄에서 웅성웅성, 거참 더럽게 시끄럽네.

기본적으로 지원 방식으로 모은 사람이고 인성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능력이 안 되면 받을 순 없다.

2차 테스트가 필요했다.

준비한 건 이미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로 몇몇이 떠드는 말이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세최특이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사인받아야 하나.”

“실물보다는 홀로그램이 나은데?”

마지막 말 한 새끼 튀어나와.

내가 다 기억하고 있다.

내 얼굴이 홀로그램 빨이라는 거냐?

“조심하시죠. 불멸자는 다 들려요. 그리고 생각보다 소심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가 귀에 쏙 박혔다.

NS 직원 출신인 듯했다.

나름대로 조심히 입술을 달싹인 것 같지만.

난 그것도 주의 집중해서 들었다.

너도 기억해 둔다. 누가 소심하다는 거냐?

“돌려서 말할 필요 없겠죠? 굴러서 남은 사람만 뽑을 겁니다. 특히 저한테 홀로그램 빨이라고 했던 분이랑 소심하다고 했던 분, 기억해 두겠습니다.”

언령에 야생의 기세를 실어 말한다. 그것만으로 웅성거리는 소음이 걷혔다.

전부 내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한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말을 끝내며 살인 미소도 날려 줬다.

실제로 나한테 찍힌 둘은 아찔한 표정을 지어 보임으로 내 미소가 살인적이라는 걸 증명해 줬다.

초능력은 근력과 비슷하다.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과격한 훈련과 적당한 휴식이 있다면 단시간 내 가장 빨리 성장한다.

다만, 근육량을 키우는 게 어려운 일이듯.

이 또한 마찬가지다.

정직이의 말을 빌리자면 초능력 자체의 그릇을 키우는 건 전신 뼈가 다 갈리는 고통이라고 했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능력만 키우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초능이라는 건 범용성이 큰 능력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효용성이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훌륭한 조교가 될 것이다.

경찰청 출신 이지혜.

테러리스트 출신 로즈.

나한테 손수 배운 한정직.

다들 사람 굴리는 데는 이골이 난 위인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이들의 경험을 배움으로 이들은 능력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나는 예측한다.

“엄청 힘들 것 같은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당연히 힘들지, 그럼 이게 쉽겠나.

짧은 연설이 필요했기에 나선 길이었다.

그리 말하고 돌아서자, 지혜 누나가 바짝 옆으로 붙었다.

“과한 거 아냐?”

“뭐가요?”

“불멸자 부대도 만들고 변신족 아카데미에, 마법 부대, 초능 부대까지. 국가 전복이라도 꿈꾸는 거면 곤란해서.”

반쯤 농담으로 하는 말 같긴 한데.

그래, 원하면 국가 전복도 가능하긴 하겠다.

물론 그럴 마음은 요만큼도 없지만.

나라를 뒤엎어서 어디다 쓰게.

왕조라도 부활시킬까.

취미 없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 같아. 묘해.”

이 누나, 생각보다 감이 좋다.

“마지막인지는 모르겠는데, 준비는 맞아요.”

지혜 누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난 밖으로 나서며 꽃밭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난 화이트 홀 너머, 이세계의 비밀을 몇 개 엿봤다.

그저 예감, 그저 직관, 그저 육감.

오감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의 눈.

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니, 하나의 결론이 나왔을 뿐이다.

인류의 위기는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

아, 물론 빌어먹을 테러리스트 새끼들부터 족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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