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마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1)
이동훈은 불멸특수대에 들어온 이후 번 돈을 대부분 버려진 변신족을 위해 썼다.
“올해 변신족 사생아 숫자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툭하면 뉴스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어떻게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냔 말이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올 일이었다.
본능을 주체 못 하는 변신족은 아이를 쉽게 낳는다.
제대로 아이를 키울 생각도 없으면서 일을 만든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갈 곳이 얼마나 있겠나.
보통은 열여덟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다가 각성하고 똑같이 사고 치는 변신족이 되고 만다.
그나마 이건 성공한 경우다.
‘감옥에 수감 되는 게 성공적이라니.’
그 전에 변신족 핏줄이 밝혀진 경우, 미친 과학자 무리에게 잡혀가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동훈의 삶이 그러했으니까.
‘그냥 보긴 좀 그러니까.’
일종의 사회봉사나 기부 같은 개념이었다.
동훈 혼자 나서서 뭔가를 바꿀 순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될 리가 있나.
‘당장 내 앞길도 막막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실험체 변신족과 사생아 변신족 일부를 조직으로 만드는 것뿐.
그들 스스로 자신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의 복지 정책 중 하나로 감방에 다녀온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긴 했다.
퍽이나 잘 돌아가겠다.
동훈은 회의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열여덟 이후의 아이들이다. 돌봐 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 대규모 ‘우리’를 만들어 가둬야 했다.
정부가 정한 명칭은 ‘기다림의 집’이라지만.
그건 우리였다. 축사였다. 변신족이란 짐승을 가둔 철창이었다.
감옥에서 나와 또 우리에 갇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는 짐승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저따위 정책이 통용될 리가 없었다.
본능 컨트롤이 되지 않는 변신족은 사고뭉치가 맞다.
그러니 복지 정책 따위로 그들을 규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축사를 뛰쳐나와 야생의 도시로 뛰어들었다.
달을 불빛 삼아 도시의 밤을 틈탔다.
동훈은 그 틈을 노렸다.
아이들을 규합했다. 카리스마가 있는 아이를 리더로 키웠다.
리더를 중심으로 범죄 조직을 이뤄, 선을 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동훈의 최선이었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 거다.
갱생 아카데미에서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안전모를 눌러쓴 덩치 큰 남자였다.
어깨에 묻은 회색 가루 따위를 털어 내며 그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자신이 범죄 조직의 리더로 삼은 아이다.
그리고 동훈은 이 친구를 내심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이 차이 많은 나는 동생이나 조카 비슷한 포지션이다.
조직의 리더로 키운 아이.
말없이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동훈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약 따위에 손 안 대고 의뢰 같은 거 안 해도 일만 하면 돈을 준다길래, 나 잘 못 한 거예요?”
아이가 눈치를 보다 말했다.
동훈이 답했다.
“그럼 해도 되는 거죠? 이게 맞는 거라고 그랬는데.”
누가?
아이의 시선이 광익에게 머물렀다.
“싸우기 싫다잖아. 공사장 인부로 일단 썼어. 손이 노는 데 놀릴 필요는 없으니까. 다 지어지면 얘가 첫 번째 교사야.”
광익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그 말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어요. 저 형이.”
벌써 형이냐?
동훈은 피식 웃음이 나와 버렸다.
“그래, 잘했다.”
처음부터 싸움 따위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본능에 굴복해 날뛴 뒤에는 자괴감에 우울해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리더로 삼았다.
선을 넘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게 가혹한 일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만 웁시다.”
광익이 동훈의 어깨를 툭 쳤다.
“못 본 척해.”
김정아가 말하며 돌아섰다. 그녀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본래 그렇다.
정아는 슬프면 오히려 무표정이 된다. 그걸 모를까.
동훈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꿈이 눈앞에 있었으므로.
눈앞에서 그저 스러지는 가련한 변신족의 쉼터가 눈앞에 있으므로.
그는 머리가 좋았다.
한눈에 광익의 의도를 읽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모든 변신족을 전부 집어삼킬 작정일 터였다.
‘이 아카데미 안에 변신족이 가득 차겠지.’
어설픈 일은 안 하는 놈이다.
제가 조카 삼은 아이와 나이도 몇 살 차이 안 나는 놈이 하는 짓은 언제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랄까.
생각의 범위가 넓고 크고 깊다.
두뇌의 문제가 아니라, 배포와 개념의 문제다. 시야의 넓이가 다르다.
“남자는 태어나 세 번 울지.”
뒤에서 이중봉이 입을 열었다.
짧은 침묵을 반주 삼아 그가 노래하듯 말했다.
“복권에 당첨됐을 때,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위할 때.”
“……당신은 변신족이었으면 개가 됐을 거야.”
광익이 그런 중봉을 향해 말했다.
중봉이 어깨를 으쓱했다.
“개소리를 잘하니까요.”
광익이 그리 말하고 맞지 않냐고 김정아에게 거듭 대답을 강요했다.
김정아는 답하지 않았다.
동훈은 지어진 변신족을 위한 쉼터를 바라봤다.
“아, 그거 다음 달쯤 문 열 겁니다.”
광익의 목소리다.
거, 빨리도 여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그저 기부, 그저 봉사 활동.
그리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 삶의 이유가 된 건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인가.
이제는 그 아이들을 진짜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집에 와서 홀로그램 작업에 열중했다.
몰래 팬더 형이 우는 걸 찍은 거다.
그때는 감동적이었다.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 이게 또 지나고 보면 놀리기 딱 좋지 않을까 해서.
아니면 추억이 되겠지.
초대 이사장은 어머니가 맡아 주시기로 했다.
이미 팬더 형이 만들었던 범죄 조직 따위를 통해 모아둔 애들은 어머니가 교육에 들어갔다.
“요새 살맛이 난다. 아들.”
어머니는 최근에 손맛이 살아났다면 아주 신이 나셨다.
그걸 보던 장가희 선생이 속삭이는 게 떠올랐다.
“네 엄마 사람 패는 거 너무 좋아하는 거 같지 않니?”
네, 그래 보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만 아니면 되거든요.
그러는 장가희 선생도 신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찰져. 살이 덜 여물었어.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배워. 그게 마음에 든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워야 신이 나는 게 아니고?”
“그런 새끼 너무 싫어. 가르치는 맛이 없잖아. 재수 없어. 떨어지는 주식보다 더 싫어.”
최악의 욕이 나왔다.
“거, 사람을 앞에 두고.”
“찔리니?”
재능이 특출 나면 이런 취급을 당할 수도 있는 법이다.
어쨌든 그 둘은 최근 변신족 훈련에 열중하는 중이다.
조교로는 마리가 나섰다.
애들이 처음에 반항했다고 하던데, 마리가 반항하는 애들을 쥐어 팼다는 소식도 들렸다.
변신해서 덤비는 애들을 맨발 하이킥으로 머리통을 흔들어 버렸다고 했던가.
그것도 세 명을 홀로 상대했다.
하, 아무리 내 여동생이라지만, 너무 매력적이잖아.
이러니 주변에 남자가 끊이질 않지.
최근에 마리를 향해 구애를 보내는 직원이 늘었다.
그걸 본 난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마리한테 고백 비슷한 거 하려면 나한테 결재받으라고.
이거로 시스터 콤플렉스냐고 아버지한테 사흘 밤낮을 놀림당했다.
“아들, 설마 마리를 여자로 보는 거냐?”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아버지 너무하시네.
나 그렇게 여자에 굶주린 그런 놈 아닙니다.
하물며 지금 눈앞에 있는 애가 사사건건 어떻게든 방해도 합니다.
“왜? 새삼 내 미모에 반하는 중?”
시선을 느꼈는지 혜민이 말했다.
“오늘 약은 먹었니?”
“먹었지.”
“먹었는데 왜 그러냐?”
“영양제 먹었는데? 요새 햇빛을 별로 못 봐서 비타민 D가 부족해.”
우리 혜민이가 비타민이 부족하구나.
그럼 정신과에 입원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무리해서 피부도 좀 푸석해진 것 같고 미녀는 잠꾸러긴데, 나 자야 하는데.”
우리 혜민이 잠이 부족하구나.
“왜 자꾸 쳐다보냐고?”
“한가해지면 꼭 병원 다녀라.”
“……무슨 헛소리야?”
“아니다. 작업은 다 끝나가고?”
“그게 말처럼 뚝딱뚝딱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래, 고생했다. 끝나고 나면 초코 파르페 먹으러 가자.”
“스테이크 썰고 파르페 먹고 호텔까지.”
“호텔 빼고.”
“쳇.”
강혜민은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난 혜민을 지나쳐 정원을 가로질렀다.
암시장 내부에 지어 둔 저택이다. 으리으리한 빌라는 아니지만 50평이 훌쩍 넘고 정원까지 딸린 저택이었다.
정원에서 혜민이 날 반기던 걸 두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자 혜민의 모친이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김주희 여사가 말을 편히 하기 시작했다.
딱히 불편할 일은 아니었다.
“네, 일은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니.”
모전여전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람을 모았지.”
김주희 여사가 이어 말하더니, 생긋 웃는다. 참 넉넉한 웃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김주희 여사가 바라는 걸 안다. 그래서 적당히 도움만 줬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일을 과감하게 키운다.
뭐, 나쁜 건 아니었다.
길게는 십 년, 짧게는 오 년.
혜민의 모친은 새로운 마법 연맹을 만들 것이다.
그 시작이 이거였다.
마법에 재능 있는 아이를 모으는 것.
생긋 웃는 얼굴은 옆집 아줌마 같지만, 그 안에는 누구 못지않은 강단을 지닌 여자가 있다.
“좋아요.”
내 도움은 그저 손 하나 보탠 것뿐이었다.
아, 돈도 좀 보탰고.
무슨 마법 지망생 기르는 데 돈 참 수억 들더라.
혜민이 이 땅에서 사는 데 필요한 건.
김주희는 그게 뭔지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연맹이 건드리지 못할 무력.’
즉, 상대가 자신을 두려워해야 한다.
감히 덤빌 엄두가 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 미친 자들의 세상에서 가장 미친놈들을 꼽으라면 첫 손에 꼽히는 게 마법사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버금가게 겁대가리를 상실한 게 바로 주문쟁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겁먹게 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최소 연맹 급.’
단체에 소속되면 된다.
만약 연맹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비슷한 조건을 제안했다면 김주희는 흔들렸을 것이다.
안전을 보장하고 제 딸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연맹이 바라는 건 이지를 상실한 인간 무기고.
김주희는 제 딸을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도망자 신세였다.
‘유광익.’
광익의 존재는 모녀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특히나 김주희에게는 그의 존재는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 딸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안전장치, 무력으로서 자신을 증명한 특수종.
아무리 마법사가 겁을 상실했어도 덤비는 족족 머리통을 터트리는 무식한 혼혈을 상대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시적.’
마법사는 겁을 모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유광익은 마법사가 아니고 평생 그가 혜민의 곁에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었다.
‘연맹 창설.’
4대 연맹과 더불어 암흑가를 거니는 위스퍼를 포함, 마법 세계에 새로운 연맹으로 자리 잡는 것.
구상은 처음 도주한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끝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첫째는 시간, 둘째는 돈이었다.
시간은 광익 덕분에 벌었고.
돈도 광익 덕분에 벌었다.
“새삼 고마워.”
“간지럽네요. 눈을 똑바로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위만 되면 완벽한데.”
“그 말을 뺐어도 완벽했을 것 같은데요.”
풉 하고 김주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시간과 돈이 있다.
김주희는 구상한 걸 실행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주문을 쓰는 무장 병력.
그녀는 연맹의 시초를 안다.
그들이 최초 이 땅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안다.
주문이란 기적을 보여 줘 사람을 현혹해서?
아니지. 기득권, 그러니까 사람들 머리 위에서 권력을 지닌 자들은 6월에 내리는 서리 따위에 감탄은 해도 투자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칼이 되어 줌이 더 낫지.
무력 단체로 시작해서 그 힘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그걸 똑같이 해낼 수 있었다.
지식과 경험은 큰 힘이고.
현재 이 땅에서 그녀보다 나은 스펠 크리에이터는 없다.
마법 재능을 판독하고 사람을 모아, 부대를 꾸린다.
그녀의 목표였다.
음지에서 꾸물거릴 생각은 없다.
그래서야 억제력이 될 수도 없고.
“NS의 마법 부대. 듣기만 해도 좋지 않아? 짜릿하지 않아?”
“10년 걸린다면서요?”
“10년은 무슨, 전면에 내세워 쓸 만한 부대는 반년도 넘쳐.”
10년은 연맹이 자리 잡아야 하는 시간이지, 부대 창설에 필요한 시간이 아니다.
“그럼 짜릿하네요.”
스펠 유저 특수부대.
새로운 NS의 힘이 될 부대였다.